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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상

남학우 신고식에 대한 고민

by 통합메일 2015. 4.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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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그런 생각을 하지 않은 건 아니다. 전통이라는 이름하에, 힘겹게 공모자를 만들어 이어가고 있는 이 일이 과연 옳을까. 옳음과 그름의 사이에서. 그 발음 사이에서 때로 정신이 들었다. 그렇다. 하기사 나는 어차피 옳음을 따지기 보다는, 유불리를 따지는 인간이었다.


그렇다. 어쩌면, 일이 이렇게 까지 이어져 온 것은, 나에게 옳음과 그름을 따지는 이들 보다는 유불리를 가지고 접근하는 이들이 언제 부턴가 많아졌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그렇게 생각하니 어지럽다.


문득 스스로를 하나의 프로세스라고 생각해 본다. 옳고 그름의 여부에 상관없이 선대에서 입력한 프로세스에 맞게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진행하는 기계라고 생각해 본다.


하지만 그것은 받아들이기가 힘들다. 나의 고민 때문이다. 온전히 겉치레를 위해서 그 무엇인가를 했다고 한다면 나는 자신 있게 억울함을 호소할 것이다. 가장 높은 자리에 설 때 마다 나는 가장 낮은 이들을 위했다. 가장 낮은 이들이 가장 빠르고 수월한 경로로 우리의 궤도에 진입하기를 희망했다. 비록 그 과정에서 설명의 생략이 있었는지는 몰라도. 실로 나는 그러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비록 그 과정에서 기존 세력의 형평성을 살피지 못하는 일이 있었는지는 몰라도. 나는 진심으로 어떻게든 그들이 최소한의 희생을 가지고 ‘우리’의 서사에 편입될 수 있는 길을 찾으려 했다.


어쩌면, 문제는 우리의 서사가 ‘희생’이라는 것을 핵심으로 하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획득이나, 성취가 아니라, 희생이나, 수호를 지상의 과제로 하는 집단이기 때문에 우리가 이렇게 움츠린 전통을 공유하고 있어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변명을 하고 싶다. 하나의 인간으로서, 왜 이렇게 되었는지. 역사의 죄인이 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그저 단순히 ‘비겁한 인간’이라는 단어로 매도되는 일을 피하기 위해서, 무슨 말이든 하고 싶다는 생각이다.


쉽게 말이 나오지 않는 이유는 몇 가지의 이유가 짐작된다.


첫째, 그 누구도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떠난 사람이든, 남은 사람이든, 새로운 사람이든, 그 누구도 이 괴리에서 발생하는 요구에 효율적으로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둘째, 그 누구도 역사의 이어짐을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힘겹게 엮어 나가는 우리의 서사가 이미 힘을 잃었음을 전제로 한다. ‘동문’ 혹은 ‘선배’라는 단어가 부담으로만 다가오고, 조교라는 존재가 그 사이에서 하나의 그야말로 교조 같은 존재로 확약하는 것으로 느껴지는 순간이 실제로 우리 후배들 사이에서 벌어지고 있을지도 모르고. 어쩌며 우리는 같은 공간에서 전혀 다른 서사를 씹으며 살아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한다.


 어지럽다.


다시 옳음의 문제로 돌아가자.


마음을 비울 필요를 느꼈다.


한꺼풀씩 한 해 한 해, 쌓인 역사가 벗겨져, 그 옛날 순수했던 학창 시절이 떠오른다.


옳음의 문제로 돌아가자고 했건만, 미안하지만, 이게 최선이다.


문득 생각났던, ‘그래도 그 때는 모두가 선했던 시절’이 있는 탓이다.


동기들 하나씩 고개를 돌려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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