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단상

어서와 우울증

by 통합메일 2015. 5. 8.
반응형

어서와 우울증


연수가 끝났고, 동시에 율서의 프로포즈가 끝났다. 그리고 나는 긴 잠을 잤다. 누군가들의 눈치를 본 게 아니라면, 흘러가는 주말을 저어하지 않았다면 좀 더, 좀 더 그렇게 계속 잤을 것 같다.


이래저래 마음이 아팠다. 이래저래 술을 들이부어도 마음은 쉬이 무너지지 않았다. 끊어지지 않는 이성은 그저 감성만을 거세당해 그저 앙상했다. 떠오르는 듯 했다가 수장되어 곧 물귀신이 되어버리는 감정을 이성에 새겼다. 용서하지 않으리라는 옹졸한 각인들이 얼마나 무시무시한 비참을 불러올 것인지 모르지 않는데도 멈출 수가 없는 것이다.


그래도 그 모든 것을 예상하기는 했다는 생각이기는 한데, 그래도 이 정도의 충격과 아픔을 가져오다니, 예측이 부족한 것인가, 내가 모자란 것인가. 아니 이것은 삶 자체에 내리는 아픔이다.


나의 삶이 옳지 못한, 어울리지 않는 길로 나아갈 때 필연적으로 감수할 수밖에 없는 고픔통이다. 혹은 지금까지 제대로 되지 않은 삶을 살아낸 데에 대한 대가이다. 이른바 지금이ㅡ 내가 관성적인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명백한 표지에 다름 아니다.


‘아무 것도 바라지 않는다. 단지 황금률이 지켜지길 희망할 뿐이다.’ 어느새 그것이 나의 가장 큰 콤플렉스가 되어 버렸다. 살아보니 이 세상은 끊임없이 무엇인가를 기대하고 그에 따라 끊임없이 실망하고 좌절할 때 그나마 겨우 자신의 본전을 지킬 수 있게 된다. 그런 점에 있어 나를 공직에 집어넣기 위한 어머니의 생각은 옳았다. 살아남기 위해 무수히, 해서는 안 되던 기대를 거듭하는 삶이어야 한다는 깨달음에 극도의 피로를 느꼈던 나날들이었다.


그럴 때는, 그런 사람들의 연락이 줄을 이어 들어올 때는 겁이 나고 우울함이 몰려온다. 아주 극도의 우울함이 환청과 함께.


요즘은.. 마음 편히 글을 쓸 공간이 부족하다는 생각을 한다. 집에서조차 방해받지 않고 무엇인가를 몇 시간 하기가 쉽지 않다. 쓰고 싶다는 충동과 혼자일 수 없는 피로함이 각축을 벌이다 몇 번이고 결판이 난다. 누워있는 나의 몸은 관성에 완전히 지배된다. 멀다. 멀어. 너무 멀어서 일어날 엄두를 낼 수 없다.


프로포즈 작품, 내가 만든 그 무엇에 대하여 머지 않아 포기해야 하리라고 생각하고는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갑자기 단번에, 전적인 방식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래도 공동기획의 공동제작이라 생각했건만 아무리 클라이언트라 하더라도 그리 당연하게 자신의 소유권을 전제하고 있을 줄은 몰랐다. 예상하지 못한 바이다.


좀처럼 사회적 각성을 이루지 못한 세태도 마찬가지다. 나야 뭐 돌연변이. 사회적 각성과 마초의식과 노비근성이 합쳐져 구성되어 있는 자아이다.


이것은 포기가 아니다. 선택의 여지가 없는 상황에서 결국 끝까지 선택을 하지 않기로 결단한 것이다. 매력적인 대상이 없는 상황은 아직 연애나 결혼의 포기를 논할 단계가 아니다.

반응형

'단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시라는 것2  (0) 2015.05.08
치명적인 계절  (0) 2015.05.08
사라지는 것  (0) 2015.05.08
아름다운 해변  (0) 2015.05.08
율서 프로포즈 PD편  (0) 2015.05.08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