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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사자 꿈에선

by 통합메일 2015. 7.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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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사자 꿈에선>
2015.07.21

아는 동생과 함께 해변으로 갔다.
낮에 섬을 소재로 한 다큐를 봐서 그랬나 싶었는데,
생각해보니 아는 동생과의 가장 인상 깊었던 장소가 해변이었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오래간만에 맡는 충실한 냄새
무슨 강의라도 들으러간 기분으로 우연히
황송하게도 아니 여긴 바다이건만,
물소를 발견했다.
그즈음 해서는 이미 꿈이 아니라 생생한 현실이었다.
꿈을 초월한 꿈이요
현실을 초월한 현실이 펼쳐지는 것
바다물소 앞에서
나는 필사적이 되었다.
물소는 친구로 보이는 물소들과 함께 해변에 앉았다.
시덥잖은 사자들이 물소 떼의 주위를 맴돌았다
나만은 거기서 제외되고 싶었지만 결국 가장 지독한 건 나였다.
어찌 보면 차라리 하이에나라고 해두는 게 맞겠으나
그래도 싫어 바다사자가 되기로 했다.
사자들은 지루하게 물소 떼를 지켜봤다.
부신 눈을 잔뜩 찌푸려 미간엔 하염없이 깊은 주름이 패였다.
나는 필사적으로 짧은 편지를 썼다.
바다사자의 앞발은 필기에 적합하지 않았다.
그렇게 잠시 한 눈을 판 사이에 물소를 놓쳤다.
황망한 심정으로 달려 나갔다.
저 뒤에 있는 물소, 사자를 만나 서로를 위협하는 그들.
물소는 전화번호를 건네고 나서야 간신히 사자 떼를 물리칠 수 있었다.
쭈뼛거리며 다가서는 나를 향해 휙 몸을 돌리는
그녀의 눈빛엔 피곤과 지겨움이 어렸다.
선생님 저를 기억하시나요.
눈빛은 달라지지 않았다.
있는 힘을 다 해 되물었다.
길이 막혀있진 않다는 거죠?
마지막으로 있는 힘을 다 해 알겠노라 꾸벅 인사하고 발길을 돌렸다.
한참을 걷고 나서야 내 손이 여전히 편지를 꽉 쥐고 있음을 알았다.
화들짝 놀라 뒤를 돌아봤지만
이미 그곳엔 물소도 사자도 없었다.
쓰레기가 흐르는 육교 계단에 걸터앉아
넋 나간 표정으로 동트는 하늘을 마주했다.
육교 위에서 연예인 김수미 할머니가 청소하게 비키라며 쌍욕을 했다.
나는 시계를 가리키며 아직 7분 정도가 남았다고 대거리했다.
문득 옆자리를 보니 아는 동생도 사라져 보이질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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