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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상

간신과 군자

by 통합메일 2013. 6.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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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차피 세상에 완벽한 위인은 존재하지 못하는 모양이지만 나는 때로 유난히 비겁하고 비열하다. 그러면서도 평소에 대내외적으로는 법과 도를 읊느라 여념이 없다. 그런 나의 성격은 이따금은 나로서도 그야말로 종잡을 수가 없는 것이었다. 문득 생각해보니 그것은 내 안에 자리 잡은 간신과 군자가 상호작용하면서 만들어 내는 현상이 아닌가 하게 된다.

이런 성향은 내가 뱉는 독설에서 가장 극명하게 드러난다. 나는 내 범주 안의 사람에 대하여 상당히 엄격한 잣대를 적용하며 그것을 가감 없이 전달한다. 상대방의 수용능력은 고려하지 않는다. 고려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그런 것을 고려하기 시작하면 할 수 있는 말은 점점 줄어들게 마련이다. 그럴 바에는 차라리 그냥 일거함구 하는 게 낫지 않겠나. 혀를 천천히 뽑느냐 일시에 뽑느냐의 차이다.

이런 군자다움이 대의의 상황에서는 너무나도 쉽게 역변 한다. 그때의 나는 부드럽고, 상냥하며 잘 웃는다. 반갑게. 옳지 않은 것을 마주해도 일단은 딴지를 유보한다. 그것은 상대방을 타자로 인식하는 소이다. 자타의 엄연한 구분은 mr 인식이 결국 자아의 발현에 얼마나 지대한 영향을 줄 수 있는지를 증명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내가 하는 행위는 반격의 기회를 노리는 것이다. 일격에 상대방의 생각을 씹어 먹을 수 있도록 상대방이 나를 무시하고 있을수록, 그리고 나의 언변이 빛을 발할 수 있는 환경일수록 좋다. 하지만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나의 차림새, 배경, 돈 같은 것들이다. 그리고 그것은 결국 내가 나의 머리, 생각, 감정들을 가지고 획득해야할 대상인바 수월한 출세를 위해서는 나의 생각에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게 된다. 그러면 말과 행동은 물론이고, 말과 말, 생각과 말, 생각과 생각, 사이에서도 모순과 불일치가 발생하게 된다. 간신과 군자가 하나의 몸에서 동거를 시작하게 된 연유가 대저 그러하다.

무엇이 나의 진심이고 본 모습인지를 따지는 일은 무의미하다. 순수하지 못하면 군자가 아니며, 대인이 아니다. 나머지는 그저 소인배일 뿐이며 나 역시 그에 포섭되는 존재이다. 그나마 일말의 희망은 아니 위안은 소인배임에도 불구하고 군자가 되기를 희구한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중력이 없어진다면 나의 마음이 무중력의 상태에 놓여질 수만 있다면 나의 마음은 언젠가 군자의 별에 도착하게 되지 않을까, 하고 나는 생각해 본다.

치욕스러운 나의 현실이 정당화 될 수 있을까. 우리의 발목을 붙잡은 세속을 억지로 외면사혹 일관된 도만을 행하는 이들이 나의 면죄부가 될 수 있을까. 모르겠다. 애초에 간신 같은 자아를 정당화하려는 시도부터가 무모했던 건지도 모른다. 차라리 뻔뻔하게 간신으로서의 자아만을 추구하는 것이 조금이나마 죄를 덜어내는 길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럴 수 있다면 진작에 그렇게 했을 것이다. 철학의 세례를 받은 몸이 되어 나는 벌써 돌아갈 방법이 없는 강을 건넜다.

대개가 굳이 말할 필요도 없이 뻔하다. 애당초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이 무엇인지 모르겠다. 그래서 나는 마음이 무척 답답하다. 세상이 조금이라도 덜 순진한 척을 하고, 조금만 덜 속됐다면 나의 자아가 이렇게까지 분열할 필요는 없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인지도 모르겠다.

글씨가 마르고, 글도 마른다. 이것 참 퍽퍽하다.


29130616 게임에 손을 댈 뻔 했으나 가까스로 몸이 거부반응을 보이는 통에 위기를 모면했다.



그림입니다.
원본 그림의 이름: CLP00000b1cbab4.bmp
원본 그림의 크기: 가로 815pixel, 세로 1142pix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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