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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기록

집에 바퀴벌레가 나왔다.(맥스포스 셀렉트 겔)

by 통합메일 2016. 6.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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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해서 시험문제를 깎고 있는데, 베란다에 뭐가 떠날아가는 걸 목격했다.

'나방 치고는 꽤 짙군, 그리고 어쩐지 우아해. 이것 참 귀찮게 되었는걸'

그때는 뭣도 모르고 겁도 없이 그런 생각을 했던 것이다.

신축원룸이라 바퀴는 아예 안중에도 없었다. 이제 내 인생에서 바퀴는 좀처럼 마주치기 힘든 대상이라는 자만도 한 몫 했을 터.

하여간, 한바탕 문제를 다 깎고, 베란다로 나가보니 오래된 기억이 그 자리에 박제되어 있었다. 사실 박제된 채는 아니었다. 차라리 그랬더라면 얼마나 좋았겠는가.

어릴 적 참으로 열악한 아파트에 살 적에, 그 아파트는 'Joe's Apartment'를 방불케 할만큼 바퀴의 왕국이었다. 초등학생이었던 나는 그 어린 나이에 '피할 수 없다면 즐기라'는 명언을 알았는지 관찰일기의 소재로 바퀴벌레를 택했다. 당연히 제대로 된 관찰은 없었고 그냥 상상의 나래를 폈으나 하여간 바퀴는 참 징글징글 맞았다.

정신이 아뜩해진 나머지 서둘러 머릿 속을 더듬는데 그러고보니 내 원룸에는 살충제 대용으로 쓸만한 게 전무했다. 분무기의 효과를 가진 게 그나마 화장실 청소 할 때 쓰는 베이킹소다 분무기, 다림풀, 샤넬 향수 같은 것들이었는데 그 중에서 다림풀이 가장 가까웠다. 그 조차도 바로 생각해내질 못해 뒤늦게 잡아들었는데, 샤키트 다림풀을 품고 베란다로 돌아갔을 때 녀석은 이미 자취를 감춘 뒤였다. 세탁기를 툭툭 발로 차보았지만 녀석은 이미 은폐엄폐를 완료한 모양인지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오늘은 글렀군.'

그리 생각하고, 차분히 베란다 샤시를 닫았다. 그 뒤의 일은 복기다.

'무엇이 문제였는가.'

더럽게 살긴 했으나, 정리의 부족이었을 뿐, 화학적 불결이 문제될 정도는 아니었다. 바퀴벌레가 무슨 포자처럼 생겨나는 것도 아닌 이상 외부의 유입이라고 볼 수밖에 없고, 유입경로를 찾아내는 게 급선무라는 생각이 들어 일단 맥주를 살 겸 나갔다가 건물 외벽을 관찰했으나, 바퀴벌레가 천리안이 있지 않은 이상 필로티 구조로 지어진 원룸 2층의 내 방까지 진입하는 경로가 그리 순탄해 보이지는 않았다.

'원흉은 내부에 있다.'

다시 방으로 돌아와 베란다를 면밀히 살펴보던 나는 세탁기 배수구를 발견했다. 그리고는 그 구멍이 지나치게 크다는 걸 깨달았다. 원주율을 이용해 넓이를 구한다면 구멍의 크기는 세탁기 배수 호스의 2배는 되어 보였다. 급한 대로 물티슈로 구멍을 막아보려 했으나 역부족이었다.

'어쩌면 녀석은 다시 이 구멍을 통해 탈출했을지도 모른다.'

안이한 생각이 꿈틀거리며 또아리를 틀었다. 하지만 그것은 전혀 합리적인 생각이라 할 수 없었다. 지난 생을 쏟아부어 싸워온 바퀴벌레란 녀석들은 그렇게 호락호락 물러설 녀석들이 아니었다.

대책을 세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녀석들에게 인류의 무서움을 보여줘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되었다. 또 한편으로는 동시에 오늘 아침 웹서핑을 하면서 봤던 세스코 신입직원 이야기가 떠오르면서, 이것이 나의 일상에 있어서 그 어떤 표지로 다가오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하는 것인데, 그 역시 합리적인 생각이라 할 수는 없는 것이고, 어쨌든 간에 이미 이건 생존의 문제가 되어버렸다.

그래서 내가 찾은 것은 맥스포스겔이다. 일전에 동생이랑 자취할 때 밤에 뭐가 자꾸 나와서 샀던 약이기도 한데, 알고 보니 그건 돈벌레였다.(바퀴벌레와 상극)

내 비록 그때는 뻘짓으로 마감하였으나 이번엔 기필코 과학의 힘을 보여주리라 다짐했다. 나의 베란다를 되찾는 그 날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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