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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상

후벼 파는 말, 마치 제세동기처럼

by 통합메일 2013. 7.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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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벼 파는 말, 마치 제세동기처럼


안녕, 오늘도 무한의 자기검열

지금은 새벽 5시 20분가량 되었다. 반항과 투쟁의 잠을 자다 지쳐서 깼다. 어제는 외식자리에서 사람들의, 특히 정현이의 후벼 파는 말이 있었다. 내가 들이 내미는 정당화와 합리화의 방패를 요리조리 피해 들어오는 것. 그것은 마치 제세동기처럼 나의 심장에 강한 자극을 남겼다. 진부한 광경이었지만 뭔가가 극단으로 치닫는 모습이 그나마의 신선함을 선사했다. “이 또한 그렇게 흘러 언젠가는 결국 잔잔한 기억이 되리라.” 나는 나의 신조를 떠올렸다. 그래서 침착과 냉정을 잃지 않으려했다. 그것은 언제나 후회를 모면하는 좋은 선택이 돼 주었다. 때로는, 분노의 억압이 되레 후회로 다가오는 때가 분명 있기는 있지만 어제는 적어도 그러한 경우는 아니었다.

솔직히 나는 나의 요구들이 모두 관철되기를 희망하지는 않는다. 내가 언급한 내 친구 놈들의 놀이에 정적으로 합류하기에는 나는 돈도 시간도 열정도 아깝다. 다만 이것은 기준의 문제이고, 결국 이것은 기준의 문제다. 친구들의 기준에 있어서, 세상의 기준에 있어서 고시생도 그 정도로 즐길 것은 즐겨야 하지 않냐는 것이 일반적이라는 것을 알아줌으로써 나의 고결함과 자제심 혹은 우월성 같은 것들을 인정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어차피 나는 세속의 방식으로 나를 파괴할 의향이라든지 용기라고 할 것은 없다. 이것은 나를 비롯한 많은 이들에게 위안을 주는 안전선과도 같은 것으로서, 문학, 예술, 학문, 선비에 대한 나의 지향이 야기하는 결과이다.

이해받는 일에 실패하여 나는 사춘기가 떠올랐다. 그땐 참 그랬던 것 같다. 그리고 어제의 광경은 어딘지 모르게 사춘기의 시절과 닮은 구석이 많았다. 나는 궁지에 몰린 인상이 되었다. 내던질 정당화와 합리화가 모두 고갈되었다. 그렇게 만난 바닥은 오히려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진작에 만났더라면 좋았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바닥을 딛은 후에도 길은 여전히 보이지 않았다. 명랑만화 같았으면야 이런 식으로 정신을 차리고 시험 보는 기술에 매진하여 취업을 하면 좋겠지만, 나의 삶은 차라리 그로테스크하기 이를 데 없는 것이어서 차라리 누구라도 죽여 버리거나 하다못해 어떤 방식으로든 자신을 파괴하지 않고서는 견딜 수가 없는 것이었다. 나의 삶, 그것이 딛고 있는 우호의 감정이 얼마나 살얼음을 닮아있는지 나는 비로소 혹은 새삼 확인할 수 있었다. 그것은 정신을 무수히 조각내기에 무척 알맞은 환경이 아닐 수 없었다. 자아가 분열되고, 그 분열은 또 각기 분열되어 나가겠지. 그것 참 해피엔딩이었다. 문득 나는 내가 『인간실격』의 요조와 얼마나 닮았는지를 가늠했다. 물론 아직 멀었다. 하지만 그 길의 연장선 위에 내가 서있기는 한 것 같았다. 처음 그 책을 읽은 나는 그 책을 선물해준 이에게 눈이 잔뜩 팔려있었다. 그래서 그녀가 봐달라고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것조차도 알아차리지 못했다. 나는 그 책 속의 일들을 어디까지나 문학의 범주에서 다루었기에 그게 어떻게 그녀에게 위안으로 다가왔는지 짐작조차 하지 못했는지도 모른다. 그런 그 책이 거기에 얽힌 아픈 기억이 시간을 타고 흘러와 나의 마음에 젖어든다. 슬픔이 또 다른 슬픔을 위로하는 일이 허용된 세상을 나는 살아간다. 세속인들의 극단에 궁지에 몰릴 만큼 내가 고아하매 나는 자랑스럽다. 20130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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