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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쓰기]청순한 시집

by 통합메일 2013. 11.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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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순한 시집>

 

김정환

 

문득 시가 말라

도서관 서가를 헤맸다

죽은 시인의 이름 한 점 붙은

앙상한 시집을 집었다

죽었는지 살았는지 모를 학자들의 책과 함께

한 손에 움켜쥐고 다니다가

오늘의 외로움이 부화하는 순간에

펼쳤다

책을

그 시집을

한 번도 읽힌 적 없어 보이는

그 팽팽한 살결을 읽으며

어느 시집의 순결로

눈 먼 기다림을 달래는 기분은

실로 너무 멀다

달싹이는 내 입술에서는

누군가의 숨결이

끊어지지 않는 수평선을

수시로 넘나드는 소리가 들렸다

먼 곳에서 보내온

이 편지들을 다 읽었을 때는

당신의 기억도 웃으며 잠들까

시를 읽는 것은

멀어져가는 이의 숨결을

자신의 몸속에

조용히 접붙이는 사람들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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