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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상기억시간(形象記憶時間)>
김정환
이상하게도 적어두었던 이상한 시들을 파일로 만드는 이상한 짓으로 이상한 기분을 해소해보려는 이상한 시도는 참으로 이상하게도 아무런 성과도 가져다주지 못했다. 세상의 아픔을 끌어안는 거인이 되지는 못 하더라도 내 썩은 몸뚱이의 지방 한 조각이 깨어져 나가는 소리 정도는 제법 명쾌하게 낼 수 있지 않을까 싶던 젬병아리 포부는 총총총거리며 나의 등 어딘가를 찔러대는 만성적인 질병에 의해서 여리고성이 무너지듯이 “엄마”하면서 붕괴되었다. 이따금씩은 저 멀리 몇 만 걸음이나 떨어져 있는 것 같은 빨래 건조대나, 몇 만 광년 정도가 걸릴 것 같은 냉장고에 드리운 시간의 이름을 중얼거림으로써 나의 목소리를 확인한다. 눈금 하나 없는 시간을 정확히 12등분하고 24등분하는 낮과 밤이 행여나 나의 성대마저 도려내지는 않았을까 하는 두려움인 게다. 다행히 그런 때마다 목소리는 괜찮다는 안부를 목인지 아니면 뱃속 저 깊숙한 곳 인지에서 보내왔다. 그리고 그렇게 또 나는 안도하고, 안도함으로써 다시 불안해진다. 조각난 시간들이 눈앞에서 발렌타인데이의 초콜릿 모양으로 중탕되고 있다. 절기를 떠올리며 시간을 떠올리려 하지만 전혀 기억할 수 없는 것이고, 기실 떠올린다고 하더라도 할 수 있는 일은 없는 것이니, 생각하기로서는 그냥 차라리 시간의 용해 과정이나 진득하게 관찰하는 것이 낫겠다. 사방에 튀긴 빛의 자식들조차도 어찌하지 못하고 그저 바라만 보고 있을 뿐이다. 미안하지만 이번의 승자는 나다. 동시에 존재해야 할 다른 존재도, 누군가를 만나야 할 사람도, 그래서 그 누군가와 함께 공유해야 할 시간도 필요 없다고 생각하고 있는 지금의 이 순간이기 때문이다. 고마워 할 필요는 없다. 시간이란 원래 그런 모양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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