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시작

[시쓰기]무대 위의 저녁 SE

by 통합메일 2013. 11. 28.
반응형

<무대 위의 저녁 SE>

 

김정환

 

태양을 거세당한 극장

나는 무대 위에 뿌리 내린 한 그루 저녁이 되었다.

서로의 사타구니를 쓰다듬는 관객들 앞에서

부릅뜬 조명에 의해 곱게 박제되어 있는 것.

방백도 독백도 모든 대사가 다 끝났는데

일렁이는 이곳을 내려갈 수가 없다.

누군가는 나를 봐주리라는 생각인가.

저기 극장을 나서는 연인의 권태 정도는

나를 주인공으로 생각해 줄 것인가.

가지를 구부려 밑동의 여명을 잘라내고 싶지만

할 수 있는 가장 큰 일은 오직 무위(無爲뿐이니

저 태양 같은 걸 직시하여 내 눈을 태우리

찢어진 시간의 틈으로 눈부신 저녁이 흘러들어왔고

벙어리 별처럼 나뭇잎 한 장이 소리도 없이 떨어졌다.

반응형

'시작'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시쓰기]계란  (0) 2013.11.28
[시쓰기]별명을 짓는 저녁  (0) 2013.11.28
[시쓰기]발톱  (0) 2013.11.28
[시쓰기]항이루호르몬  (1) 2013.11.27
[시쓰기]형상기억시간(形象記憶時間  (0) 2013.11.27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