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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쓰기]밭 만드는 날

by 통합메일 2013. 11.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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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밭 만드는 날>

 

김정환

봄에는 고추밭을 만든다

끊어질 듯 이어진 줄을 할머니가 걸어가면

나는 그 자국에 발맞추어 비료를 뿌린다

성겁게 혹은 촘촘하게 그렇게 땅은 기름지게

널뛰는 포말을 보고 있노라면

시선을 타고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있던 것도 뿌려진다

지워지지 않는 것들사실은 절대 잊고 싶지 않은 것들

추위도 더위도 세대의 보폭 밑으로 스며들어 지하수가 된다

나도 이젠 제법 하는구나 싶어 하면 어디선가 바람이 불어온다

목적을 잃고 산개하는 질소와 인산과 고토와 칼슘

할머니의 청춘 즈음에 우두커니 서서 오랜만에 고개를 든다

어느새 그곳에는 하늘이 있다끝나지 않은 세상이 있다

그래서 나는 문득 울고 싶어졌다

뿌려야 할 비료가 아직 많이 남아있는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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