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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

신경숙의 '외딴방'에 대한 자전적 독후감-우리의 삶 언젠가 그 외딴방에서 만나리-

by 통합메일 2014. 6.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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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딴방

저자
신경숙 지음
출판사
문학동네 | 1999-12-06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열여섯에서 스무 살까지, 그 시간의 빈터![외딴방]의 문학적 의...
가격비교 글쓴이 평점  


신경숙의 『외딴방』 독후감

-우리의 삶 언젠가 그 외딴방에서 만나리-



4월에는 고추밭을 만든다. 팽팽하게 잡은 줄을 밟으며 비료 배낭을 맨 채로 주억주억 비료를 뿌려나가다 보면 어디선가 불어와 그만 황망스럽게도 그 하얀 분말을 휘저어놓는 바람이 있었다. 5월에는 고추를 심는다. 분업의 묘미가 펼쳐진다. 구멍을 뚫고, 모종을 심고, 물을 주고, 흙을 덮고, 쇠파이프로 고춧대를 박는다. 다시 5월에는 모내기를 한다. 논둑 경사에 늘어놓은 모판을 이앙기에 옮겨 싣는다. 멀어졌다 다시 가까워지는 이앙기를 보며 올해는 뜯모를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몇 번이고 거듭한다. 잔뜩 굽은 외할머니의 등을 눈으로 훔친다. 뜯모하지 말자는 말을 언제, 어떻게 꺼내야 할까. 역정 없이 그녀에게 그 말을 건넬 수 있을까. 그 심정을 읽었는지 웬일로 그녀는 뜯모 없이 하루를 끝낸다. 나는 기분이 좋다. 운수 좋은 한 해가 될 것 같았다. 벌써 절반이나 흘러버렸지만. 일을 마치고 마당에 둘러앉아 솥뚜껑 위에 고기를 구워먹는다. 사위가 저물고, 자손들은 모두 일을 놓았건만 그녀의 팔 다리는 쉴 줄을 모른다. 그제야 마음속에 듬성듬성한 논의 땜빵들이 떠오른다. 자손들이 떠나고 홀로 모를 허리에 차고 잔뜩 굽은 등을 한층 더 굽혀 그 여백을 메워나갈 그녀가 예상된다. 솥뚜껑 밑에서 타닥타닥 소리를 내며 외면이 타들어 간다. 고기를 씹느라 다 같이 입을 모아 다물던 잠깐의 정적에서 집 앞 또랑의 비린내가 난 것 같다.


6월에는 책을 찾는다. 도서관에 갈까 하다 문득 집의 책꽂이로 생각을 돌렸다. 언젠가 집에서 그 책을 본 기억이 났다. 즐겨 읽지는 않아도 책을 즐겨 사는 동생 덕에 언제부턴가 집에는 책이 부쩍 늘었다. 한참을 헤매다 결국 어머니의 방에서 그 책을 찾아냈다.

“그 책은 갑자기 왜?”

거실에서 건성으로 물어오는 동생에게 대충 에둘러 대답을 했다. 의심스러운 눈초리가 몇 개 날아왔다. 감히 인연이라고는 못해도 작지 않은 인상으로는 남아있는 작가였다. 그녀의 글 중에는 큰 감명으로 남은 것이 있었고, 우연히 방문한 교수님 연구실에서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그녀의 책을 본 기억도 있다.


마음잡고 소설책을 펼쳐 든 것이 얼마만인가. 읽으려고는 하는데 책 읽는 자세가 어떤 것인지 기억이 나질 않았다. 몸도 머리도 모두 잊은 모양이었다. 책상에 앉으면 허리가 아프고, 침대에 누우면 잠이 몰려왔다. 그래도 일전에 읽었던 다른 작품과 겹치는 설정이 많아 그나마 다행이었다.


일전의 그녀는 엄마를 부탁해, 라고 말했고, 그 알록달록했던 목소리는 이 땅의 많은 사람들에게 오래도록 전해졌다. 작가 신경숙의 소설 『엄마를 부탁해』와 『외딴방』은 그 자전적 성격에 있어서 닮았다. 기억인지 허구인지를 밝히지 않고 내미는 문장의 손을 마지못해 잡은 독자들은 어느새 그런 문제 따위야 어찌되든 상관없이 이야기에 빠져들게 된다.

이 책에서 내가 처음으로 부여잡은 키워드는 ‘죄’ 혹은 ‘용서’와 같은 것들이었다. 외면과 직면의 갈림길에서 갈등하는 화자의 마음속에는 죄의식이 자리 잡고 있었고, 그 동전의 이면에는 용서를 향한 욕망이 도사리고 있었다. 그런 마음이 그녀로 하여금 이 소설을 쓰게 만든 것이겠거니 생각했다. 하지만 글을 읽어 나갈수록 모호해지는 것은, 속죄와 용서의 대상이었다. 작중 현재의 화자가 보여주는 끊임없는 혼란과 방황은 어느새 독자로 하여금 이 소설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방향감각을 상실하게 만들어 버리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렇게 길을 잃어버린 곳에서 다시 만난 단서가 있었다. 이 책의 서사를 대표하는 구체성. 골목, 혹은 외딴방. 책의 어느 귀퉁이에서 나는 “골목”,하고 발음했다가 이내 다시 “시절”로 바꿔 읊조려 보았다. 그 변주가 마음에 들어 마음 속 작은 전율을 숨기며 엷게 미소 지어보는 밤이 있었다. 작가는, 혹은 작가가 다이빙한 화자는 그 골목에 있었다. 그 시절에 있었다.


작가는 1963년생이다. 내 어머니는 그보다 3년 앞선 1960년생이다. 작중에서 열여섯의 화자보다 세 살 많던 열아홉의 외사촌이 바로 내 어머니와 동갑이었을 것이다. ‘시절’을 붙잡으매 자연히 나는 이 이야기를 내 어머니 세대가 들려주는 옛날이야기와 같은 것으로 받아들이게 됐다. 신문이나 현대사 책이나 다큐멘터리에서 읽고 들을 수 있는 것과는 또 다른 그 시절의 이야기로 말이다.


작가의 책들 중 내가 좋아하는 작품들의 공통점은 자전적이라는 것, 더 정확히 말하자면 가족이라는 존재들을 품고 그들과 함께 살아온 시절을 그려내고 있다는 점인 것 같다. 아마도 그녀에게는 오빠가 셋. 큰 오빠, 작은 오빠, 셋째 오빠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녀가 태어나고 여동생이 하나 태어 난 후, 마지막으로 막내아들이 태어났지 않을까 한다. 그렇게 육남매 중 넷째로 살아온 자신의 삶을 부단히도 녹여낸 그녀의 글 속에서 나는 편안하고 안락하다. 무슨 사건이 일어나든, 어떤 역경이 닥치든 부모 형제라는 끈을 놓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그리고 마치 내 어머니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는 점에서 그녀의 글을 읽을 때면 때로 어머니 배에 귀를 붙였을 때 들리던 물 흐르는 소리가 어디선가 들려오는 것도 같다.





오십 오년여전 내 어머니 태어난다. 그 해가 1960년이리라는 확신은 없다. 그 해가 아니리라고 생각하는 게 더 합리적일 것이다. 혹 죽어버릴까봐 아니면 혹 너무 바빠서 출생신고를 천천히 하던 시절이 아니었던가. 실제로 내 아버지는 출생신고를 이 년이나 늦게 하지 않았던가. 어머니의 부모는 충청도 시골의 농군이었다. 갓난 어머니는 아마 몰랐을 것이다. 당신의 부모가 땅 파먹는 농부라는 사실을, 오십 여년이 흘러 지독하게 허리가 굽어 하염없이 땅에 붙어가게 되리라는 것을. 하지만 그녀의 아래로 큰삼촌이, 이모가, 작은 삼촌이 큼직큼직한 터울을 두고 태어나게 되고, 어린 동생들을 업어 보살피거나, 소 풀 뜯기는 일로 유년시절을 보내는 동안 이미 뼈저리게 깨닫게 되었으리라. 당신의 부모가 가난한 농사꾼이라는 사실을.


사실 그렇게 찢어지게 가난하거나 하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아마도 이 소설에 나오는 집과 엇비슷했을 것이다. 딸들은 몰라도 아들들은 어떻게든 뒷바라지를 해서 도시에 있는 대학에 보냈으니 말이다. 하지만 작중 화자의 어머니와 나의 외할머니의 성격 차이는 작가와 내 어머니의 삶에 적지 않은 차이를 만든 것 같다. 화자의 어머니는 자식들에게 농사일을 시키지 않는다. 어떻게 해서든 귀하게 키워 공부시키고 싶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는지 몰라도, 나의 외할머니는 자식들을 철저히 농사에 동원했다. 공부는 핑계가 될 수 없었다. 학교가 끝나면 소 풀을 뜯겨야 한다. 가장 싫은 건 돌이다. 뒷산 밭에는 돌이 자란다. 한 해 열심히 던져내도, 이듬해 봄에 다시 밭을 갈면 누가 돌을 갖다 부은 것 마냥 새로운 돌이 수북이 돋아나 있었다. 꿀꺽, 힘들게 삼키는 불평과 불만. 하지만 중학생이 된 내 어머니 뒷산 밭의 돌은 애교에 불과했다는 것 깨닫게 된다. 새로 사들인 언덕 너머 밭은 흙보다 돌이 더 많은 것 같다. 이쯤 되면 우직한 어머니의 입에서도 불평과 불만이 새어나온다. 하지만 나의 외할머니 아랑곳 않고 돌을 주워낸다. 해가 지는 줄도 모르고, 몇 십 년 뒤에 손가락이 돌아가 걷잡을 수 없이 뒤틀릴 줄도 모르고.


다른 성품의 어머니를 두었다는 사실이, 넷째가 아니라 첫째로 태어났다는 사실이 화자와 나의 어머니로 하여금 다른 모습의 유년시절을 살아가게 만든다. 그나마 두 사람의 삶의 비슷한 모습을 보이는 것은 학창시절에 들어가서부터다. 중학교를 졸업한 화자는 큰 오빠를 따라 서울로 가서 공장에 들어가고, 산업체특별학급에 입학한다. 그렇게 그녀는 외딴방에 들어간다. 내 어머니는 아직 외딴방을 만나지 못했다. 열일곱의 어머니, 고등학교에 들어간다. 집에 돌아오면 언제나 농사일과 어린 동생들이 기다리고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고등학교에 갈 수 있다는 사실에 행복하다. 학교는 언제나 멀었다. 그나마 가깝던 초등학교도 편도로 한 시간이 걸렸다. 중학교에 진학하고 나서부터는 10Km 정도 떨어진 읍내까지 나가야 했다. 교복을 입은 내 어머니, 삼십분을 걸어 나와 버스를 탄다. 그래도 버스가 있어 다행인데, 고등학교에 올라가서는 야간자율학습이 문제였다. 야간자율학습을 마치고 학교를 나서면 집으로 가는 버스는 이미 끊겨버렸다. 하는 수 없이 방향이 같은 친구들과 함께 길을 잡는다. 가로등도 없는 어두컴컴한 밤길을 뚜벅뚜벅 걸어가는 소녀들이 있다. 산허리 사이로 굽은 길을 돌아 마을이 하나 나올 때마다 친구들이 하나 둘 떠나간다. 하필이면 어머니의 집이 가장 마지막이다. 혼자가 되어 한 시간은 더 걸어야한다. 혼자가 되어 만나는 마을 앞의 다리. 언젠가 누군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밤이 되면 그 다리 밑에서 모래귀신이 모래를 뿌린다고. 다리를 건너갈 때는 등골이 잔뜩 오싹해진다. 그렇게 세 시간을 걸어야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그게 어머니의 학창시절이었다. 하지만 화자의 학창시절 역시 내 어머니 못지않았다. 아니 오히려 화자의 그것이 내 어머니의 것보다 더 괴로웠으리라는 생각이다. 그래도 부모 곁에서 학교를 다닐 수 있다는 것은 축복이 아닐까. 화자는 부모의 곁을 떠나 이역만리 타지에서 살림을 하고, 공장에 다니면서 밤에는 학교에 갔다. 그곳이 서울이라 교통편이 좋았다는 점을 빼면 그 삶이 내 어머니의 것보다 좋았으리라고는 차마 말 할 수 없을 것 같다.


고교졸업을 앞 둔 어머니, 시도 때도 없이 초조하다. 가난한 시골 여학생들은 대부분 대학진학을 일찌감치 포기했다. 가난해서, 혹은 성적이 나빠서, 혹은 생각이 없어서. 매난국죽 사군자의 이름을 따서 나눈 네 개 학급을 통틀어도 대학에 진학하는 학생은 몇 없다. 하지만 열아홉의 내 어머니, 대학에 가고 싶다. 밭에서 돌을 주워내는 일에 대한 불만처럼, 어머니의 마음속에 대학진학의 욕망이 꿈틀거린다. 꿈틀거리다 스멀스멀 입 밖으로 나온다. 밭 매는 외할머니 곁에서 슬쩍, 외할아버지 밥상에 저녁을 차리면서 슬쩍. 그런 어머니의 소망을 외할머니는 단칼에 잘라버린다.

“지금 니 동생들이 저렇게 어리고 집 안 사정이 영 그렇게 못하는 걸 뻔히 알 것인디 너 워째 그런 말을 하냐. 그런 생각 일찌감치 포기햐!”

속상한 어머니, 우직한 성품을 소리 죽여 울다 잠드는 데 써버린다. 선잠 든 어머니, 잠결에 외할아버지가 외할머니에게 하는 말을 듣는다.

“살림이 어려워도 어찌 영미는 공부를 해고 싶어 하니께 대학에 보내줍시다.”

곧바로 또다시 외할머니의 호통이 돌아온다.

“아이고 영미 아버지 암만 마음이 좋고 생각이 없어도 어찌 그럽니까. 무슨 돈이 있어 핵교에 보낼 것이며, 쟈 없이 집안일을 어찌 감당할 것이며, 거기다 호연이도 몇 년 있으면 이제 고등핵교 가야 할 것인디.”

외할머니의 호통에 어머니는 그만 움찔하여 깨어있는 사실을 들킨 뻔 한다. 말라버린 줄만 알았던 눈물이 다시 흐른다. 그렇게 말해주는 외할아버지가 고맙고, 또 그만큼 외할머니가 원망스럽다. 어머니, 며칠 뒤 다시 용기를 낸다. 아궁이 앞에서 불을 지피는 할머니에게 다시 대학 얘길 꺼낸다. 화가 난 외할머니, 부지깽이를 들고 뛰쳐나온다. 성화에 놀란 어머니 도망을 친다. 외할머니가 던진 부지깽이가 하필이면 원망스럽게도 어머니의 뒤통수에 명중한다. 그 뒤로 어머니, 다시는 대학에 가겠다는 말을 꺼내지 않는다.


어머니는 무엇이 되고 싶었을까. 문득 그런 생각을 해본다. 시와 서예를 좋아했으니 국문과에라도 가려했던 것일까. 신앙이 깊어 마을 교회에서 아이들 가르치는 일을 즐겨했으니 신학대학에 가고 싶었던 것일까. 어쩌면 그저 ‘대학’이라는 곳에 가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그곳에서 무슨 일을 겪고 또 무엇을 배우게 되더라도 대학에 가야만 당신의 인생이 숙명의 유수에 휘말려가지 않으리라는 것을 어슴푸레하게나마 깨닫고 있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어머니, 도시로 나가 공장에 들어간다. 공단에 있는 LG산전에서 기숙사에 지내며 누전차단기 따위의 품질검사를 맡는다. 새로운 친구들도 사귀고, 일은 어렵지 않았고, 즐거웠다, 고 기억되는 시절이었나 보다. 비록 대학에 가지는 못했지만 어머니의 공순이 생활은, 화자의 그것보다는 훨씬 더 유복했던 모양이다. 모난 돌이 정 맞는다는 말을 신봉했기에 노조와 사주 측의 싸움에 끼어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는 일도 없었던 모양이고, 민주화운동의 열기 같은 것과는 거리가 먼 나날들이었던 모양이다. 생각하기로는, 무엇보다 농사일에서 해방될 수 있었다는 사실이 가장 행복하지 않았을까. 어머니의 시절 속에서도 그 해 여름 광주에서는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죽었을 텐데도 말이다. 서울보다 가까운 청주였을 테지만, 되레 소식은 더 늦었고, 간신히 소식이 도착했을 때는 이미 잔뜩 희미해져 있었다.


어머니가 3년의 공장생활을 청산하게 된 계기는 큰삼촌이었다. 큰삼촌이 청주에 있는 고등학교로 진학하게 되면서 큰삼촌과 함께 방을 얻어 살게 된 것이었다. 내 나름대로는 그것을 내 어머니의 외딴방이라고 부르고 싶다. 삶이 시절과 함께 숙명의 유수에 대책 없이 휩쓸려가는 것을 손 놓고 바라봐야 이들의 안식처. 혹은 디딤돌. 공장 기숙사에서 나온 어머니는 큰삼촌 뒷바라지를 하면서 출판사에 다니기 시작했다. 아직도 기억나는 이름 들녘. 전집 팜플렛을 든 어머니, 도시를 활보한다.

“힘들긴 했어도 공장 일보다는 성취감이 있었어. 공장일은 단순하고 쉬웠지만 영 성취감이 없었거든.”

저녁 식탁에 앉아 고교졸업 이후의 삶에 대해 묻는 나의 질문에 대답하던 어머니는 그렇게 회고했다. 그렇게 어머니가 성취감 있는 일을 만났을 때 쯤, 화자는 희재 언니의 죽음을 경험했던 것은 아닐까. 시대의 희생양이라고 거창하게 부르기엔 비겁하고, 온전한 나의 책임으로 짊어지기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경험. 언제, 어떤 모양으로, 어떤 계기로 용서와 속죄를 받아야 할지 결코 알 수 없어 헤어날 수 없는 미로의 문양을 삶에 오롯이 새긴 채 화자는 살아간다.


아마도 5공 시절. 작중 화자의 노트를 펼쳐본 여자가 영부인이었던 시절의 어머니는 그런 나날을 보냈을 것이다. 독재자가 떠나고 또 다른 독재자가 독재를 하는 세상에서, 그래도 하루가 다르게 눈부시게 세상이 발전해 나가던 80년대의 한복판에서, 큰삼촌은 고등학교를 졸업한다. 공부를 썩 잘했던 큰삼촌은 서울에 있는 사립 대학교에 들어갔다. “등록금 돈다발을 들고 뒤도 안 돌아보고 집을 나가더라.”고 회상했던 것은 아마도 이모였던 것 같다. 무엇이 그렇게 분했을까. 서울을 목격한 큰삼촌은 서울의 그 무엇을 보고, 그와는 너무 동떨어진 집과 가족들에 대해 답답함을 느꼈는지도 모른다. 경제적으로든 문화적으로든 사상적으로든.


큰삼촌을 졸업시킨 어머니, 이제 결혼을 해야겠다고 생각한다. 어머니는 공무원을 원했다. 안정적인 수입을 가진 남편을 두고 싶어 했다. 가난한 집안의 장남이었던 아버지가 어머니의 남편이 되었다. 두 사람은 고졸이라는 점에서 닮았고, 어떻게 해서든 대학에 가야겠다는 꿈을 버리지 않았다는 점에서 닮았다.

“그 때 나 좋다고 죽자 살자 따라다니던 남자가 있었는데 그 남자 말고 니네 아빠 같이 재미없는 남자랑 결혼한 게 내 인생의 가장 큰 실수지.”

어머니는 도시 생활을 접고 다시 시골로 내려온다. 외딴방을 떠나 신혼집으로 들어간다. 결혼이라는 사건을 통해 어머니의 외딴방은 영원히 문이 닫힌다. 그토록 공무원 남편을 원했던 것은 외딴방에서 벗어나 숙명의 유수에서 헤엄쳐 나올 가장 확실하고도 현실적인 방법이기 때문에 아니었을까. 그곳에서, 그 골목에서 무슨 일들이 일어났는지 무슨 일을 겪었을지 나는 알지 못한다. 묻지도 않는다. 물어봐도 어머니는 딱히 할 말이 없어 보였다. 감추려는 게 아니라 설명해낼 수 없는 무엇인가로 채워진 시절인 듯했다. 외딴방이라는 것은 그런 시절들로 똘똘 뭉친 공간이 아닐까. 힘들고 괴로워 그것을 품고서는 도저히 살아갈 수가 없어 무의식적으로 잊으려 하다 보니 시간이 흘러 다시 꺼내보려 손을 집어넣어도 아무 것도 잡히지 않는. 화자도 그런 어려움을 고백한다.


결혼 한지 얼마 되지 않아 그 작은 월세방에서 내가 태어난다. 몇 년 뒤, 동생에 태어난다. 아버지의 잦은 전근 때문에 우리는 이사를 자주 다녔다. 내 나이 일곱 살, 우리 집이 생겼다. 월세방을 전전하던 우리 가족의 보금자리가 생겼다. 정원이 딸린 주택이었다. 정원에 있는 감나무가 나는 참 마음에 들었다. 잘 찢어져 그렇게 위험한 나무인 줄도 모르고 나는 툭하면 그 나무에 올랐다. 그 나무 위에서 책도 읽고 밥도 먹었다. 어디서인지는 몰라도 분명 책에서 본 모양이다. 학교가 가까운 집이었다. 걸어서 2분이면 닿는 초등학교에 들어간 나, 100점 맞은 받아쓰기를 들고, 때로는 학업상장을 들고 초록색 대문으로 뛰어 들어간다.


3년 뒤, 아버지의 전근으로 우리 가족은 청주로 이사한다. 어머니는 오랜만에 청주로 돌아온다. 아버지는 방송통신대를 병행했고, 도시로 나온 어머니는 다시 일을 시작한다. 집에는 어린 동생과 내가 남는다. 나는 이것을 나와 동생의 외딴방이라고 하고 싶다. 초등학교 3학년의 나, 조숙하고 씩씩하다. 맞벌이하는 부모님을 위해서라도 잘 자라야 한다고 늘 다짐한다. 이제 갓 유치원을 졸업한 여동생은 언제나 엄마를 찾는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엄마가 맞아주는 집을 늘 그리워한다. 하지만 이제 한참을 걸어서 돌아온 집에는 엄마 대신 상보가 씌워진 밥상과 그 주변을 맴도는 바퀴벌레들만이 그녀를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엄마가 보고 싶다고, 동생은 자주 울었다. 아직 어린 나, 이상한 변덕이 생긴다. 때로 동생을 잘 챙기다가도 그녀가 한없이 귀찮아진다. 오빠가 되어 동생을 잘 돌봐야 한다는 말에 수긍하면서도 때로는 그 모든 게 지긋지긋하게 느껴진다. 작중에서의 큰 오빠도 그런 생각이었을까. 돈을 벌면서 공부를 하고 동생들 뒷바라지까지 해야 하는 그라면 충분히 그런 생각을 하고도 남을 것이다. 뒤돌아보면 나의 경우는 철이 없었다. 그 시절의 그 집을 외딴방으로 부르자니 어쩐지 조금은 부끄럽다.


초등학교 4학년, 아버지는 일본으로 장기 연수를 가고, 어머니는 야간대학에 들어간다. 부모님 없이 지내는 일에 이골이 난 나도 조금은 걱정이 되는데, 동생의 얼굴은 아예 사색이 되어있다. 무엇보다 참을 수 없는 것은 심심함이었다. 바퀴벌레 득실대는 집에서 나와 동생은 끊임없이 장난을 연구했다. 조금만 뛰어 놀면 아래층 아주머니가 득달 같이 뛰어올라와 초인종을 눌러댔다. 불장난과 물장난. 아파트 뒤뜰을 태워먹기도 했고, 방안을 물바다로 만들기도 했다. 시간이 가지 않는 게 가장 힘겨웠다. 부모님이 돌아올 시간이 어서 왔으면 했다. 집을 어지럽혔다고 혼이 나더라도 부모님이 돌아와야 했다.


어느 날엔가는 밤이 깊어도 어머니가 돌아오질 않는다. 열한 살의 나, 불안해하는 동생을 간신히 달래 재우고 옆방으로 간다. 곰팡이 냄새 나는 벽과 옷장의 틈을 찾아 몸을 끼운다. 무릎을 세워 얼굴을 묻는다. 온갖 나쁜 상상들이 찾아온다. 젖어오는 눈알이 얼얼해지도록 얼굴을 무릎에 힘주어 붙이다 잠이 든다. 현관문 소리에 잠이 깬다. 움직이려 하지만 몸이 굳어 자세가 풀리지 않는다. 내 이름을 부르며 좁은 집을 헤매던 엄마가 방문을 연다. 서러운 나, 말이 아니라 동물의 울음소리와 같은 것으로 인기척을 낸다. 그제야 나를 찾아 미안한 웃음으로 달려드는 어머니의 얼굴에 나는 왈칵 울음이 터진다. 그 날도 그렇게 그 힘겹고 지루한 외딴방의 문이 닫힌다.


화자의 말처럼, 이제는 돌아갈 수 없는 외딴방이 그곳에 있었다. 제 아무리 사정이 나았다 한들, 작품 속에서 그려지는 것 같은 외딴방과 같은 시공을 한 번쯤은 겪어볼만한 것으로 이야기 할 수 있을까. 비전, 희망, 도전, 청춘, 실존, 의지와 같은 단어들이 작가의 고백 앞에서 힘을 잃고 털썩 무릎을 꿇는 광경을 목격한 기분이다. 긍정이 아닌, 속죄와 정리의 심정으로 임하려하면 어김없이 직면하는 물음. 시대인가 주체인가.


2014년 6월 4일의 전국동시지방선거를 앞두고 외갓집에 갔었다. 모내기를 마치고 고기를 사기 위해 읍내에 갔는데, 온통 붉은 현수막 천지다. 그러고 보니 지난 대통령 선거 때도 비슷한 풍경이었던 기억이다. 아마도 옆 마을이 故육영수 여사의 생가가 있는 옥천일 것이다. 40여 년 전 광복절 기념행사에서 그녀가 피살됐을 때, 몇 년 뒤 그녀의 남편이 역시 피살됐을 때 작중의 화자는 울었다. 많은 사람들이 눈물을 흘렸다. 내 어머니도 눈물을 흘렸을 것이다. 그런 경험들을 포함하여 다양한 시대상을 작가는 외딴방 속에 포함시켰다. 그 역시 속죄의 대상이 되는 것일까. 긍부정의 경계에서 괜한 발로 죄 없는 운동장의 흙을 파게 만드는 일이 되는 것일까.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수 없이 많은 말을 외치지만 무엇 하나 바뀌는 것이 없어 그들이 외친 것이 도대체 무엇이었는지 알 수 없게 되는 시절인 것 같다. 어쩌면 화자와 내 어머니와 나의 외딴방은, 나아가 이 세상의 외딴방은 아직 끝나지 않고 영원히 끝나지 않아 결국 다시 언젠가 그 어느 지점에서 고개를 주억거리며 나의 외딴방은 그런 것이었다고 고백하게 될는지도 모르겠다. 20대가 된 나, 바란다. 그때 그 어느 날 만나서 듣게 되고 마주하게 되는 당신의 외딴방이 조금이라도 덜 아팠기를. 그 속죄에 내가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기를.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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