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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

김연수의 『밤은 노래한다』 독후감

by 통합메일 2012. 5.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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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은 노래한다

저자
김연수 지음
출판사
문학과지성사 | 2008-10-01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역사가 기록하지 못한 청춘들의 가슴 아픈 노래! 역사와 사랑을...
가격비교 글쓴이 평점  

김연수의 『밤은 노래한다』 독후감

1.소개

2.구성

3.줄거리

4.민생단 사건

5.민족과 이념

1)실존주의로의 피신

2)실종과 죽음의 모티브(현실 직시)

3)해방으로의 방법론

4)유토피아를 지향할 수밖에 없는 인간

6.기타총평

1.소개

이 책은 김연수 작가의 손에 의해 2008년에 세상에 나온 작품이다. 작가 김연수는 1970년생으로 작가세계문학상, 동서문학상, 동인문학상, 대산문학상, 황순원문학상, 이상문학상을 수상했다. 저서로는 『가면을 가리키며 걷기』, 『7번 국도』, 『굳빠이 이상』, 『내가 아직 아이였을 때』,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밤은 노래한다』, 『세계의 끝 여자친구』, 『대책 없이 해피엔딩』, 『7번 국도』, 『원더보이』 등이 있다.

이 책 『밤은 노래한다』는 1930년 대 일제강점기 당시 간도 지방에서 우리 민족이 겪어야만 했던 시련을 극적으로 대변하고 있는 ‘민생단 사건’을 주요한 소재로 하여 그 속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을 매우 섬세한 구성과 아름다운 문체로 그려낸 작품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생각해보니 이 책은 내가 처음으로 접하는 김연수 작가의 장편소설이다. 그 이전까지 읽은 그의 글이라고는 문학상집에 들어있는 단편들과, 그의 단편집인 『세계의 끝 여자친구』 뿐이었다. 때문에 지금까지의 나는 그의 단편만을 보고 그를 정의내릴 수밖에 없는 처지에 있었기 때문에 그의 장편을 처음 접하는 입장에서 알 수 없는 흥분마저 느껴졌다. 그것은 그 이전까지 세간에서 말하는 ‘김연수의 글에서 느낄 수 있는 성스러움’을 나는 좀처럼 느낄 수 없었고 때문에 당연히 그에 대해 동의할 수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말이라고는 슬며시 눈치를 보며 ‘글쎄 나는 그 작가의 글은 나랑은 안 맞는 모양이다.’라고 에두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 책을 통해서 나는 작가 김연수를 확실히 다시 봤다고 자신할 수 있고, 또 흔히 말하는 ‘작가 김연수의 성스러움’을 체험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만큼 이 책은 나에게 적지 않은 감동과 전율과 아름다움으로 다가오는 것이었다.


2.구성

우리가 읽는 소설들을 보면 이따금 자유롭게 과거, 현재, 미래의 시간을 넘나들면서 사건을 아주 흥미롭게 풀어나가는 작품들이 있는데 이 소설도 바로 그러한 유형이다. 그런데 이 작품의 경우에는 자유로운 경지를 초월해서 다소 정신없다고 할 정도로 우리가 가지고 있는 ‘서사적 전개’라는 관념으로부터 철저히 자유로운 모습을 보여준다. 즉 미래로 흘러가야 함에도 불구하고 갑자기 과거를 진술하는 챕터가 등장하거나 혹은 한 챕터의 흐름 안에서 주인공의 심리변화에 따라서 번쩍이듯 과거로 돌아가는 장면들이 심심찮게 등장하는데, 그 때문에 조금만 방심하면 이야기의 흐름을 놓치는 경우가 생기기도 하지만 일단 작가의 이런 글쓰기에 익숙해지기만 하면 나의 정신세계나 독서 역시도 그 작품을 닮아서 한껏 자유를 만끽하는 경험을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또한 이 소설에서 내가 인상 깊었던 요소는 등장인물 한 명 한 명에 대한 작가의 애정이라고 할 수 있는 흔적들이다. 보통의 작가들의 경우에는 이야기의 전개가 산만해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중심이 되는 등장인물들을 최소한으로 압축시켜 놓고 마치 세상에 그들만이 존재하고, 그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인 것처럼 풀어나가는 경우가 많은데, 이 책에서 작가는 잠깐 스쳐지나가는 길 안내원 한 명에게까지도 모두 이름을 붙여주는 정성을 들였다. 이런 섬세한 신경은 역시 전개를 산만하게 하는 위험이 있기는 하지만 작품의 스케일이 대폭 넓어지고, 이야기의 현실감이 증강된다는 감정을 가져올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3.줄거리

이야기는 1928년 만주에서 시작된다. 당시 만주에는 일제의 탄압을 피해서 많은 조선인들이 건너가서 척박한 땅을 개발하고 여기저기에 공동체를 이루며 살았다. 그 중 용정이라는 도시에는 4명의 중학생들이 있었으니 그들의 이름은 안세훈, 박도만, 최도식, 이정희다. 이들은 평우동맹이라는 공산주의 학습 동아리에서 만나 알게 됐는데 박도만과 최도식은 모두 함께 이정희를 짝사랑했다. 하지만 이정희는 그 어떤 남자에게도 마음을 열지 않는 여자였다. 그러던 어느 날 일본 경찰에 의해서 이정희와 안세훈이 체포되는데 문제는 검거 당시 두 사람이 함께 있었고 그래서 그 당시 두 사람이 정사를 나누고 있었다는 소문이 퍼졌다는 거였다. 그 소문에 박도만과 최도식은 크게 흔들렸고, 안세훈과 이정희가 훈방조치된 이후에도 네 사람의 관계는 회복되지 않아 결국 평우동맹은 해체됐다. 이정희는 아버지에 의해서 서울로 보내졌고, 안세훈은 농민혁명을 위해서 시골로 흘러들어갔으며, 최도식과 박도만은 중국공산당에 입당하기 위해서 치열한 경쟁을 벌였는데, 공산주의자들에 의해서 폭동이 일어났을 때 최도식을 비롯한 몇몇 사람들이 검거되어 구속된다. 최도식은 지독한 고문에도 굴하지 않고 입을 열지 않음으로써 다른 사람들을 배신하지 않았고 동시에 상대적으로 적은 형량을 치르고 풀려날 수 있었다. 그런데 형을 적게 살았다는 이유로 사람들이 그를 의심하기 시작했다. 동료들을 팔아넘긴 게 아니냐는 거였다. 최도식은 정말 억울했지만 모든 사람이 다 그렇게 믿고 있는 상황 속에서 점차 정말 자신이 동료들을 팔아넘긴 것 같다는 기분이 들기 시작했고 결국에는 그렇게 믿어버렸다. 결국 그는 자신의 적이었던 일본 총영사관의 앞잡이 노릇을 하는 신세로 전락했고, 박도만은 중국공산당에 입당하여 별동대의 대장으로 눈부신 활약을 펼친다.

주인공인 김해연은 1932년 봄에 만주로 왔다. 경남 통영 출생인 그는 서울 고등공업학교 측량과를 졸업한 엘리트였고, 그런 이유로 조선인임에도 불구하고 일본의 만주 철도 회사에 취직해서 측량기사로 일하게 되었다. 조선인이었지만 경술국치에 태어난 그는 나라를 잃은 설움에 대해서 그다지 큰 감흥이 없었다. 그가 태어났을 때부터 나라는 이미 조선인의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에게는 뺴앗긴 조국을 되찾는 것보다는 자신의 출세가 더 중요하게 다가왔다.

용정으로 발령받은 그는 고등학교 동창을 만났다가 박길룡이라는 사내를 소개받는다. 그는 민족주의자인 동시에 중국공산당원이었는데, 김해연의 사상을 떠보기 위해서 민생단에 가입할 것을 권유했다. 하지만 김해연은 그 제의를 거절했고 박길룡은 그를 포섭하기 위해서 김해연과 이정희의 만남을 조작한다. 김해연은 그것이 철저한 우연이라고 철썩 같이 믿은 채로 이정희와 만났다. 서울 이화여전 피아노과를 졸업한 이정희는 그곳에서 박길룡에 의해서 중국공산당에 가입하고 다시 만주로 돌아와 있었던 것이다. 이정희는 진심 반 거짓 반으로 김해연에게 접근했고 김해연은 그녀를 진심으로 사랑했으며, 어느새 이정희도 그를 사랑하게 되었다. 김해연은 고민 끝에 그녀에게 청혼했고 그녀는 반지를 받아들였다. 만주에서 일하던 김해연은 만철 직원들을 경호하는 경호중대장 나카지마 타츠키와 제법 친분이 있었다. 시시한 인간은 모두 경멸하는 나카지마였지만 김해연은 조선인임에도 불구하고 제법 흥미로운 구석이 있었던 것이다. 그는 김해연의 소개로 이정희를 알게 되는데 사실 그는 그 이전부터 이정희를 알고 있었다. 박길룡은 김해연을 작업하기 이전에 나카지마에게 이정희를 접근시켰던 것이다. 하지만 이정희나 나카지마나 모두 모른체하고 아무렇지 않게 관계를 이어나갔다. 그즈음 일본 총영사관에 들어간 최도식은 전향한 척 하면서 중국공산당에게 일본군의 정보를 빼돌리고 있었다. 이정희 역시 그런 목적으로 나카지마에게 접근했지만 정작 정보를 빼돌리지는 못했다. 이정희는 나카지마로부터 일본군 토벌대가 대성촌이라는 곳을 토벌할 것이라는 정보를 획득해서 박길룡에게 보고하지만 박길룡은 그곳에 사는 안세훈을 죽도록 내버려두기 위해서 그 정보를 대성촌에 전달하지 않았고 결국 안세훈은 토벌대에 의해서 목숨을 잃는다.

어느 날 아침 회사에 출근한 김해연은 어떤 아이로부터 편지 한 통을 전해 받는다. 어떤 남자가 전해주라고 했다는데 그 편지의 주인공은 이정희였다. 이상한 예감에 사로잡힌 그는 이정희에게 가보고자 길을 나서는데 나서자마자 일본 형사에게 붙잡혔고 조사를 받았다. 일본 형사가 말하기를 이정희는 목을 매달아 죽었다고 했다. 그리고 그들은 김해연에게 사실 이정희는 안나 리라는 이름의 공산당 조직원이고 계획적으로 그에게 접근했던 것이라고, 그녀가 진짜 사랑했던 사람은 박타이라는 남자라고 말해줬다. 그는 이정희가 자신을 수단으로 삼았다는 사실을 쉽게 받아들일 수 없었다. 김해연은 박타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야 용정에 처음 왔을 때 소개받았던 박길룡을 떠올릴 수 있었다.

실없는 조사를 받고 풀려난 김해연은 실연의 상처를 다스릴 수 없어서 대련의 아편굴을 전전했다. 아편에 의지하지 않고는 자신의 존재를 유지할 수 없었다. 한참을 방황하던 김해연은 가까스로 정신을 차리고 용정으로 돌아왔다. 나는 나카지마가 정희와 정분을 나눴다는 이유로 일단 나카지마부터 찾아갔다. 김해연을 보고도 나카지마는 아무렇지도 않은 반응을 보였다. 자신을 죽이라며 총을 내미는 나카지마를 김해연은 차마 죽이지 못했다. 나카지마는 이정희가 자살을 할 리 없다고 말했다. 김해연은 최도식을 찾아가 정희가 목 멘 나무로 데려다 달라고 했다. 최도식은 그에게 이정희의 편지를 돌려줬다. 김해연은 이정희를 따라 죽으려고 그녀가 목을 맸다는 나무에 목을 매달아 자살을 시도하지만 가지가 부러져 죽지 못한다.

겨울이 찾아왔고 죽음에도 실패한 그는 팔가자라는 마을로 흘러들었다. 연인을 잃은 슬픔은 그에게 실어증을 가져다주었다. 그곳에 있는 사진관에서 일하며 그는 겨울을 보냈다. 속을 알 수 없는 그를 그곳 주민들은 못 미더워 하는 눈치였지만 봄이 오면서, 그리고 길송이라는 사진관 직원과 대거리를 한 판 하면서 속을 털어놓게 되자 모두 그에게 마음을 열었다. 하지만 그는 또 다시 누군가를 잃는 게 두려워 그조차도 선뜻 반갑지 않았다.

하숙집에는 여옥이라는 심부름 소녀가 있었다. 그녀는 야학에서 공산주의 혁명에 눈을 떴고 야학 교사와 사랑에 빠졌다. 교사는 그녀에게 바다를 보여주겠노라 약속했지만 대성촌 토벌 때 안세훈 처럼 일본군에 의해 살해되면서 그 약속을 지킬 수 없게 됐다. 연인을 잃은 그녀는 복수를 위해 공산당의 연락원 일을 도맡아 했다. 발이 빠르고 부지런한 그녀였다.

그 마을에서 생활하면서 김해연은 자신이 빛이기도 하고 어둠이기도 한 존재라는 것을 깨달았고, 그로 인해 정희를 이해하면서 조금씩이나마 정희를 잃은 상처를 극복해 나갔다. 그리고 동시에 사진관에서 일하는 길송이 공산주의자라는 사실도 알게 됐다.

여옥에게 묘한 감정을 느끼던 김해연은 결국 어느 밤 여옥과 사랑을 나눈다. 여옥도 그를 사랑하게 됐다. 김해연은 여옥과 함께 서울로 떠나기로 마음을 먹었지만 떠나기 전 온 마을 사람과 함께 여옥의 언니 결혼식을 방문했다가 일본군 토벌대의 습격을 받아 여옥은 한 쪽 다리를 잃었고, 김해연은 지긋지긋한 무력감 때문에 다시금 절망에 빠졌다. 김해연은 중국 공산당 동세영의 추천으로 정치 학습을 받게 되었고, 조선인 소비에트에서 생활하게 되었다. 여옥은 한 쪽 자리를 잘라내는 수술을 하고, 공산당 재봉대에서 일하게 되었다.

김해연은 정치 학습을 받았다. 머리로는 그 이론을 받아들일 수 있었지만 마음으로는 온전히 그것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그는 여옥이 그리웠다. 공산당 별동대의 박도만이 여옥에게 그의 편지를 전달해주었다.

그리고 그즈음 해서 민생단 사건이 터지기 시작했다. 중국 공산당에서는 조선인 민족주의자들의 연합인 민생단이 일본의 세력을 힘입어 만주에 조선인 자치구를 만들려는 움직임을 몹시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있었고, 거듭되는 토벌대의 습격을 중국공산당 내부에 민생단의 첩자가 숨어들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때문에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에서는 하부 조직의 구성을 빈농이나 중국인으로 하라는 방침을 내리고, 민생단과 조선인 민족주의자와 파쟁분자들을 척결하는 운동을 벌였다.

날마다 조선인 공산주의자들이 민생단으로 몰려 억울하게 죽어간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이따금 도망치는 조선인들은 그들이 진짜 민생단이라는 혐의를 굳건히 만들어줬다. 급기야는 박도만과 김해연마저 민생단으로 몰려 처형될 위기에 처했다. 처형만 기다리며 감금되어 있던 차에 여옥이 찾아왔다. 그리고 처형의 직전이라는 위기의 순간에 박길룡이 나타났고, 김해연이 속해있던 조선인 소비에트 공동체의 간부에게 역으로 혐의를 씌워 처형함으로써 박도만과 김해연을 위기에서 구해냈다. 박길룡은 민족주의자였기 때문에 중국공산당이 조선인들에게 누명을 씌워 죽여버리는 행태에 반대하는 입장이었던 것이다.

그때 때마침 일본군 토벌대가 쳐들어와서 유격구의 사람들은 산으로 도망쳤다. 박길룡 덕분에 목숨을 구한 박도만이었지만 그는 박길룡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민족주의자인 박길룡과는 달리 박도만은 조선이 혁명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일단 민족은 잠시 접어두고 중국 혁명에서 성공해서 그 혁명의 영향력을 조선으로까지 확대하는 수밖에는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산으로 피신한 후에 박도만은 박길룡을 직위해제시킨다는 당의 문건을 들이대며 사람들에게 박길룡을 체포할 것을 제안했지만 아무도 듣는 사람이 없었다. 이미 사람들은 조선인에게 억울한 누명을 뒤집어 씌워 마구잡이로 죽여버리는 중국공산당으로부터 마음을 돌려버린 상태였던 것이다. 결국 박도만은 박길룡에 의해 민생단이라는 누명을 쓰고 살해당했다.

토벌대의 포위를 뚫기 위해서 김해연은 혼자 몰래 산을 빠져나가 용정으로 향했다. 그곳에서 김해연은 일 년 전 자신에게 편지를 갖다 주었던 아이를 우연히 목격하고는 그 아이에게 그 편지를 누가 준 것인지를 캐물었다. 아이는 선뜻 대답하지 않았지만 최도식의 인상 착의를 묘사했을 때 아이의 표정은 확연히 달라졌다.

김해연은 나카지마를 납치해서 일행들이 있는 산까지 끌고 와서는 토벌대의 포위를 풀고 다함께 도망쳤다. 그들은 천리봉 너머에 있다는 조선인들의 마을로 갔다.

몇 년이 지나 1941년 8월 김해연은 용정으로 돌아와 최도식을 찾아갔다. 그는 최도식에게 정말 이정희가 자살한 것인지 당신과 박길룡이 죽인 것은 아닌지 물었다. 이정희는 김해연에게 누명을 씌우는 일을 거부하다가 죽었던 것이고, 진짜 첩보원은 총영사관에 근무하던 최도식이었다. 이정희는 허수아비에 불과했다. 그녀의 마지막 소원은 김해연에게 그 편지를 전달해 달라는 것이었다. 김해연은 최도식을 죽이려 하다가 그의 아이들을 보고는 그만뒀다. 그리고는 마지막으로 이정희와 함께 머물던 영국더기에 올라 옛날의 추억에 잠겼다.


4.민생단 사건

‘민생단 사건’은 이 소설의 중요한 소재다. 작품의 초반부에는 순정 소설 같은 분위기로 나아가지만 어느새 중반부에 이르면 역사적으로 큰 아픔을 간직한 사건의 한복판에서 대부분의 이야기가 전개되기 때문에 이 사건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이 필요했다.

만주사변 이후 조선인의 자치를 주장하며 일본의 만주 침략을 옹호하는 민생단이 간도 지역에 설립되었다. 이 일을 계기로 간도의 중국공산당과 항일유격부대에서 활동하던 수많은 조선인 당원과 부대원들이 일제에 협력한 민생단 단원으로 의심받기 시작했다. 결국 1932년 11월부터 1936년 2월까지 ‘반(反)민생단 투쟁’이라는 이름으로 대대적인 숙청작업이 진행되었다. 1983년 중국공산당 연변주위 조직부에서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모두 497명이 체포되어 367명이 살해되었다. 하지만 이는 확인된 인원에 국한된 것으로 실제 피해자의 규모는 훨씬 많아 1천여명이 체포되었고, 500명 이상이 살해된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민생단 사건이 진행된 1933년 9월부터 1935년 12월까지 조선인이 대부분이었던 옌지[延吉]ㆍ왕칭[汪清]ㆍ훈춘[琿春] 등 3개 현(縣)의 공산당원 숫자가 1,299명에서 181명으로 86.1%나 감소되었다는 통계도 있다. 일본군의 군사 토벌로 희생된 인원을 감안하더라도 이 사건으로 빚어진 피해 규모가 매우 컸음을 알 수 있다.

이 사건으로 일제의 군사 토벌로 죽은 사람보다 민생단 사건으로 죽은 사람이 더 많았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수많은 조선인 항일운동가가 피해를 당하면서 간도 지역의 항일 운동 자체가 크게 위축되었다. 특히 항일운동의 경험이 풍부한 간부들 가운데 상당수가 체포ㆍ살해되거나 위험한 처지에서 벗어나기 위해 도망쳐 버리면서 항일 조직 자체를 유지하기 어려운 상황에까지 놓이게 되었다. 또한 믿고 따르던 사람들이 민생단 단원이라는 혐의를 뒤집어쓰고 억울하게 처형되는 모습을 보면서 항일운동에 가담한 조선인의 사기도 크게 떨어져서 포기하고 도피하거나 일본에 귀순하는 사람들도 나타났다. 그 결과 1931년과 1934년 사이에 간도에서 항일무장투쟁에 참여한 인원이 80% 이상 줄었다는 통계도 있을 정도로, 조선 이주민이 대다수를 차지했던 간도 지역 항일 운동은 큰 타격을 받았다.

그리고 간도뿐 아니라 만주 전역에서 조선인에 대한 경계와 배척이 확대되어 항일 연합전선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만주사변 이후 만주 지역에서는 여러 민족과 계층이 힘을 합해 항일의용군, 국민구국군, 민중자위군, 항일연합군 등을 조직하여 대일 항전을 벌였다. 중국인 사회에서 조선인에 대한 불신과 경계가 커지는 상황에서도 이청천(李靑天)이 이끄는 한국독립군과 양세봉(梁世奉)의 조선혁명군은 북만주와 남만주에서 구국군 등과 공동으로 대일 작전을 펼쳤다. 하지만 민생단 사건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조선인에 대한 불신과 배척은 더욱 커졌고, 중국공산당 내부에서도 중국인 간부들이 조선인 항일운동가 대부분을 민생단으로 몰아 탄압하면서 민족 갈등이 확대되었다.

이는 조선인이 95% 이상을 차지하고 있던 간도 지역의 중국공산당과 항일유격부대의 약화를 가져와 결국 1936년 초에는 만주 지역에서 가장 세력을 떨치던 간도의 항일유격구를 포기하는 상황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그리고 이 지역 항일운동 세력의 구성 등에도 변화를 가져와 해방 이후의 역사에도 매우 큰 영향을 끼치는 요인으로 작용하였다.


5.민족과 이념

1)실존주의로의 피신

작품의 초반에서 주인공 김해연은 나카지마와 니시무라의 사상에 은연중에 공명을 느꼈다. 그 두 일본인은 모두 국가와 민족에 의해 규정되는 자아가 아니라 주체적으로 결단을 내리는 자아였다. 다시 말해 국가와 민족 보다는 인간의 조건에 매료된 자들이었다. 물론 그들의 그런 사상은 결과적으로 일본제국의 야망에 보탬이 되는 것이었지만 일단 그들의 동기는 조국이 아닌 그들로부터 주체적으로 나왔다고 볼 수 있는 여지가 있다고 할 것이다. 그리고 그런 그들에게 영향을 받는 주인공 김해연은 경술국치에 태어난 조선인으로서 조국의 독립보다는 자신의 취업을 더 우선시 하는, 일종의 기회주의자적인 면모를 보여주고 있으며, 그런 그의 행위 이면에는 모종의 실존주의가 자리잡고 있다는 생각을 해봤다. 다시 말해서 민족이나 조국과 같은 것들을 자신의 존재를 구속하는 족쇄로 규정하고는 그것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롭게 되어서 자신의 진정한 삶을 살아간다는 것이다. 그런 그를 보면서 나는 자연스럽게 하이데거를 떠올렸다. 위대한 독일의 철학자이지만 그는 결과적으로 나치에 부역하는 과오를 저질렀다. 인류의 실존을 꿈꿨던 그는 인간을 진정으로 자유롭게 하는 것은 ‘사유’이며 이러한 사유는 평화롭고 안정된 사회보다는 전쟁이나 국난이 일어나는 유동적이고 불안정한 현실에서 더욱 더 잘 발달될 수 있다고 믿었던 사람이었다. 어쩌면 이유는 좀 다를 수 있겠으나 나는 김해연이 민족의 독립을 외면하고 그 양심적 피신처로 실존주의를 택했던 게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2)실종과 죽음의 모티브(현실 직시)

하지만 세상은 그를 그렇게 안전한 곳에 안주도록 내버려두지 않았다. 비록 조국의 독립에 별 감흥을 느끼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인간인 이상 결국에는 누군가를 사랑할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나카지마가 김해연에게 말한 ‘사랑을 하라’는 말의 의미는 어쩌면 사랑을 하는 사람을 곧 지킬 것이 있다는 사람이고 또 잃은 것이 있다는 사람인 바 결국에는 무엇엔가 목숨을 바치고 누군가를 죽여야만 하는 운명의 굴레 속으로 뛰어든다는 의미가 아니었을까 생각된다.

나카지마의 말에 자극 받은 탓이었는지는 모르지만 아무튼 김해연은 이정희와 사랑에 빠지게 되고 이정희가 죽게 됨으로써 그는 그 굴레 속으로 뛰어들게 혹은 던져지게 되었다. 사랑하는 것, 지켜야 하는 것을 상실함으로써 그는 상심한다. 아편에도 취해보고, 벙어리 행세도 해보지만 한 번 사랑에 맛을 들인 인간은 결국 다시 또 다른 누군가를 사랑할 수밖에 없는 모양이다. 이정희의 아픔을 극복한 김해연은 여옥과 사랑에 빠졌다. 사랑에 빠진 그는 또다시 사랑하는 사람을 잃게 되는 것에 대한 본능적 두려움을 직감하고는 여옥과 서울로 도망가기로 결심하지만 운명은 그들을 놓치지 않았다. 죽진 않았지만 여옥은 다리를 잃었고, 김해연을 이웃으로 받아준 팔가자 마을 사람들은 모두 토벌대에 의해서 살해당했다. 결국 김해연은 다시 그 운명의 굴레로 들어가게 되었고, 완전히 현실을 직시하게 되었다.


3)해방으로의 방법론

당시의 만주는 북진하는 일제에 맞서서 다양한 세력들이 활동하고 또 연합하는 공간이었다. 때문에 각 세력에 따라서 내세우는 투쟁의 방법론이 제각기 달랐다.

중국공산당을 상징하는 강정숙의 경우에는 “지주들의 정의도, 농민들의 정의도 모두 존중해야 한다는 말은 대단히 그럴 듯해 보이지만, 그건 어디에도 속하지 않으면서 자기 잇속을 챙기려는 망명자들이나 할 수 있는 말입니다.” 라고 말한다. 이 대사를 읽으면서 내가 떠올린 것은 이탈리아의 정치학자 그람시였다. 그람시는 당시 이탈리아의 큰 문제는 지주 계급과 농민 계급의 갈등이었다. 그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 그람시는 지주들의 이데올로기에 맞서기 위해서는 농민과 지주들의 입장을 모두 포함할 수 있는 포용적 이데올로기가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중국공산당의 입장은 이러한 그람시의 주장에 완전히 반대하는 것이었다. 그들은 지주들을 혁명의 동반자로 받아들이는 것을 거부했다. 지주들은 일제와 마찬가지로 오직 척결의 대상일 뿐이었다. 그런 중국공산당의 주장을 바라보면서 김해연은 자신이 마음이 도저히 그런 사상을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것을 발견한다.

한편으로 조선인 민족주의자들의 경우에는 모종의 유토피아를 상정하는데 그 유토피아는 다름 아닌 조선이라는 민족이 모두 함께 행복한 그런 사회다. 해방 이후 민족주의 계열이 중심이 된 현재의 남한 사회가 어쩌면 불완전하게나마 그들이 그린 유토피아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때문에 그들의 경우에는 지금 당장은 세력이 약하여 아쉬운 대로 중국 공산당에게 의탁하고 있지만 궁극적으로 그들이 추구하는 것은 공산 혁명이 아니라 민족의 독립인 것이다. 따라서 그들의 유일한 적인 지주가 아닌 일제일 뿐이고, 공산당이라고 민족의 독립에 장애물이 된다면 척결의 대상이다.

이러한 입장의 차이는 여러 가지 갈등으로 표면화 된다. 우선 박도만의 경우에는 톨스토이와 공산주의 사이에서 자신이 갈등했음을 고백한다. 이를테면 인류애와 프롤레타리아 혁명 사이에서의 갈등이다. 처음에는 그도 궁극적으로 자신의 마음이 톨스토이에 향해있음을 부정할 수 없었지만 투쟁에 참전하고 사람을 죽이면서 톨스토이는 가슴 깊이 묻고 공산주의라는 총을 집어들 수밖에 없었다. 일종의 현실 직시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중국공산당과 민생단의 갈등 역시 이런 맥락이다. 민생단은 간도에서의 조선인 자치를 위해서 일제에 붙었고, 그게 못 마땅했던 중국공산당은 자기 조직 내부의 조선인들을 의심하여 민생단이란 누명을 씌워 죽여버린다.

이야기의 후반분에 나오는 박도만과 박길룡의 최후의 장면은 이러한 갈등이 극도로 치닫은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박길룡의 도움으로 목숨을 부지하기 전 중국공산당 동료들에게 처형될 위기에 처한 박도만은 비록 죽더라도 동지들에게 죽어서 다행이라고 자신의 떳떳한 죽음을 받아들이며 끝까지 혁명만세를 외쳤다. 하지만 박길룡에 의해서 그런 중국공산당의 세력이 몰살되고 목숨을 부지하게 되자 그는 오히려 박길룡에 반대한다. 민족보다는 지금 당장의 중국혁명이 우선이라는 것이다. 물론 궁극적인 목표는 조선혁명이었지만 결과적으로 그는 조선인이 아닌 중국공산당의 편을 드는 실수를 저질렀다. 그렇다면 우리는 박길룡의 입장이 전적으로 옳았다고 생각할 수 있을까? 반드시 박도만을 죽여야만 했을까? 민족주의자의 입장에서 중국공산당과 협력할 수 있는 방법은 없었을까?


4)유토피아를 지향할 수밖에 없는 인간

일단 소설에서는 그런 화합이 당장은 이루어지지 않은 것 같다. 역사적으로 독립 직전에 항일연합투쟁의 성과가 나타나긴 했지만 사실 우리 입장에서는 먼저 만주의 조선인들을 학살한 것은 중국공산당이다. 어쩌면 우리 민족의 독립 운동 방향이 민족주의로 조금이나마 치우치게 된 것은 중국공산당의 민생단 사건의 영향이 컸으리라는 생각이다. 그리하여 박길룡은 사람들을 데리고 유토피아라고 생각되는 곳으로 떠난다. 이것은 실존주의로 도피했던 인간이, 그러니까 현실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스스로의 존재를 스스로 규정할 수 있다고 자신만만했던 인간이 결국에는 현실을 마주해서 좌절을 거듭하다가 현실에 맞서 싸우다가 결국에는 유토피아를 지향할 수밖에 없다는 모종의 상징적 구도를 전달해주는 것 같다는 인상이다.


6.기타총평

김연수의 이 장편 소설을 읽으면서 나는 몇 번이나 다양한 이유 때문에 감탄에 혀를 내둘러야만 했다. ‘문학적 성스러움’을 알려준 그 수려한 문체도 그렇지만 무엇보다 그가 이 소설에서 보여준 그의 해박한 상식 때문이었다.

주된 소재가 되는 민생단 사건은 물론이거니와 일단은 등장하는 일본인의 이름이나 표기에서 볼 수 있는 한자적 지식과 중국지방의 지리적 지식, 그리고 북쪽 지방 사람들이 구사하는 방언은 그가 이 소설을 위해 얼마나 연구를 했는지 알 수 있게 해줬다. 심지어는 김해연이 이정희를 잃은 아픔에 찾게 되는 아편에 있어서도 그것을 피우는 방법을 구체적으로 설명하는 장면에서는 정말이지 ‘참 별 걸 다 안다.’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다만 티를 하나 잡자면 204페이지에 나오는 민생단 관련 자료는 어딘가에 나오는 자료를 너무 그대로 갖다 붙이고 약간만 수정한 티가 많이 나서 좀 아쉬웠다고 하겠다.

또 하나 덧붙이자면 김연수 식의 유머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이 소설은 초반부의 로맨스와 중반부의 역사적 사건의 한데 어우러져 하나의 인간사를 이루는 것 같은 형세를 보여주는데 그 초반부에서는 김연수의 수려한 문체를 포함해서 유머 또한 만날 수 있다. 아무래도 아직은 주인공인 김해연이 현실을 직시하지 않은 상태에서 실존주의라는 진통제에 취해있는 상태였기 때문이었으리라고 생각해 볼 수 있는데 나는 그러한 장면들을 보면서 몇 년 전에 개봉한 영화 <모던보이>를 떠올렸다. 박해일, 김혜수, 김남길이 주연한 이 영화는 이 소설과 약간 비슷한 모티브를 가지고 있다. 즉 친일파 부호의 아들로서 일제강점의 세상에서도 억울한 줄 모르고, 나라 잃은 설움도 모른 채로 희희낙락 살아가는 박해일에게 계획적으로 공산주의 민족운동가 김혜수가 접근하고 어느 날 김혜수가 사라진다. 그때부터 박해일은 조국을 잃은 현실에 직면하게 되고, 절친했던 일본 검사 김남길은 박해일을 인정사정 없이 고문하기도 한다. 여하튼 모티브도 그렇고, 초반의 유머러스한 부분도 그렇고 이래저래 닮은 점이 많은 두 작품이라는 생각이다.

책을 덮으면서 참 많은 생각이 들었다. 많은 생각이 들었는데 너무 많은 생각이라서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인지, 데카르트의 존재 증명이 의심스러워질 정도로 머리가 복잡했다. 그것은 그만큼 이 책이 단순하게 정리할 수 있을 정도로 가볍지 않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일 테다. 이 책은 대중성, 역사성, 문학성을 가지고 있다고 나는 내 나름대로 정의를 내려 봤다. 다시 말해서 초반부의 로맨틱한 문장이 대중들의 마음에 어필할 만하고, 민생단 사건이라는 중요한 역사적 사건을 재조명하는 계기가 될 뿐 아니라, 그러한 역사적 사건 속에서 개연성 있는 또 하나의 사건들을 펼쳐나가면서 민족과 인간의 문제를 고찰해낸 작품이라는 것이다. 국사 공부를 하면서 몇 줄의 문장으로만 읽고 지나갔던 민생단 사건을 하나의 서사 속에서 경험하면서, 나는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이 시간과 공기와 제도와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 피와 눈물로 이루어진 지층 위에 돋아난 생명들인지 어렴풋하게나마 더듬어볼 수 있었다. 그들은 그 당시에 공산당원인 동시에 일제의 앞잡이여야만 했던 사람들이었다. 떳떳하게 자신의 목숨을 내놓고 보람 있게 죽어갔던 사람들과는 달리 처절하게 후회하면서 억울하게 죽어가야만 했던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오늘날에 와서는 경쟁적으로 다루어지는 무수히 많은 독립의 줄기들에 가려져 좀처럼 주목을 받지 못하는 불운의 존재들이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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