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감상'에 해당되는 글 52건

  1. 트랜스포머 최후의 기사
  2. 영화 Father And Daughter를 보고
  3. 본격 복음 영화 '신은 죽지 않았다' 감상
  4. 공각기동대 웃는남자에 대한 해석과 연관된 장면들
  5. 마당뺑덕 예고편(정우성, 이솜, 박소영)
  6. 오싱 영화감상문 (일본에 드리운 전쟁의 또다른 그림자)
  7. 영화 명량 감상 후기, 최민식만 믿고 돈 쳐바른 영화
  8. 타짜 : 신의 손 (Tazza : The High Rollers 2, 2014) 예고편 (Trailer)(최승현, 신세경)
  9. 밀리언 웨이즈 예고편(세스 맥팔레인, 샤를리즈 테론, 아만다 사이프리드, 리암니슨)
  10. 동경가족(東京家族) 예고편 유튜브
  11. 영화 신의 한수 후기(정우성,이시영,이범수,안성기,김인권 주연) (2)
  12. Korean Movie 이것이 우리의 끝이다 (Futureless Things, 2014) 에피소드 예고편 (Episode Trailer)
  13. [이브 생 로랑] 공식 메인 예고편
  14. 커피 한잔이 섹스에 미치는 영향 예고편
  15. 로크 메인예고편
  16. 트랜스포머4: 사라진 시대 티저 예고편 (한국어 자막)
  17. Jersey Boys 예고편
  18. Think Like a Man Too 예고편
  19. 양지의 그녀(陽だまりの彼女, The Girl in the Sun) 영화감상문
  20. 수상한 그녀 영화감상문
  21.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OST - 데이빗 보위(David Bowie)-Space Oddity
  22. 프리즈너스 영화감상문-선악의 혼탁
  23. 홍상수 감독 영화 목록 :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1996) ~ 우리 선희(2013)
  24. 영화 '더 임파서블'(the impossible) - 쓰나미로 헤어진 이산가족의 재회
  25. MBC 불만제로 62회(2014년 2월 5일) 물티슈,스마트폰 배터리,
  26. 영화 '몬스터' 개봉 임박 - 출연(이민기, 김고은)
  27. 영화 '캡틴 필립스' - 세계 영웅 미국의 시각에서 바라본 소말리아에 대한 인도주의적 시선
  28. 영화 '앤더스 게임' - 생명존중과 반전 하나만 믿고 내지른 영화
  29. 영화 '여러분, 안녕'(minasan sayonara) - 뒹굴녀 쿠라시나 카나(Kana Kurashina) 출연
  30. 영화 <또 하나의 약속>(또 하나의 가족) 개봉 임박. 2014년 2월 6일






여자친구와 함께 보러 갔던 트랜스포머 최후의 기사.

여친도 이런 SF물을 좋아하나 싶어서 매우 반가웠드랬다.

그런데 막상 트랜스포머 포장지를 벗겨보니 이렇게 집중이 안 될 수가 없다.

기분탓인가 생각을 했지만 전혀 기분탓이 아니다.

어쩌면 이 작품이 트랜스포머 최초의 작품이었다면 좀 신선함을 가져갈 수 있었겠으나

이미 여러 작품들을 통해서 트랜스포머에 적응이 된 관객들을 상대로 이런 만만한 전개를 펼치는 것은 전혀 납득할 수 없는 일입니다.











영화 Father And Daughter를 보고

(시간과 상상의 경계에 찍히는 발걸음)

 

마음이 텅 비어 숱하게 남자들을 갈아치우는 여자는 오늘도 술집에서 누군가를 만나 밤길을 걷는다. 밤 길, 밤 길. 영원히 끝나지 않았으면 좋을 길은 여자의 집 앞에서 끝이 난다. 여느 남자들과는 달리 그녀는 이번에는 라면 먹고 갈래?”를 시전하지 않는다. 필요한 것은 미래. “내일은 뭐해요?.”라는 말이 그들의 미래를 하나로 묶어 주었다.

 

나는 상상을 해본다. 좋아하는 여자를. 그리고 그녀의 집 앞에서 돌아서서 나의 집으로 돌아가는 발걸음을. 나는 그녀의 방을 알고, 그녀의 방에서부터 나의 집으로 오는 가장 좋은 루트를 알고 있다. 어두컴컴하다가도 때로 가로등 불빛이 짙어지기도 한다.

 

지금의 서술은 이루어지지 않은 일이다. 동시에 어쩌면 결코 이루어지지 않을 일이거나, 언젠가는 반드시 이루어질 일이기도 하다. 하여간 문제가 되는 사건 A는 남자가 여자를 데려다주고 그녀의 방 앞에서 발걸음을 돌려 자신의 방을 향한 루트를 밟아나간다는 점이며, 이것은 마치 왈츠의 스텝을 추는 것과도 같은 일이 될 것이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 있어서 그러한 사건 A를 바라보면 무수히 많은 시선이 돋아난다. 과거에 존재하는 나는 아직 일어나지도 않는 그러한 일을 상상해내고 있는 것이고, 방문을 닫고 자신만의 공간으로 들어간 그녀는 시커먼 얼굴을 하고 있는 휴대폰을 힐끗 훔쳐본 뒤, 밤 거리에 찍히는 남자의 스텝이나 뒷모습 따위를 상상해보는 것이다. 나아가서는 실제로 그러한 스텝을 밟아 집으로 들어간 남자의 경우에도 여자가 생각할 자신의 스텝을 상상해 보는 것이다. 무엇보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부분은 이 사람들 모두 지금 여기에 존재하는 내가 상상해낸 이들이라는 점이다.

 

이 글을 쓰고 있는 나, 방으로 들어간 여자, 돌아가고 있는 남자, 돌아간 남자 중에서 사건 A에 가장 근접한 인물은 누구일까? 시간 적으로는 역시 지금 집으로 돌아가고 있는 남자라고 하는 게 온당해 보이지만, 사실 여기서 말하는 사건 A는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일이라기보다는 각자의 마음속에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떠오르게 되는 이미지라고 보는 게 타당하다. 당연한 말이지만, 각각의 시점에서 생각하는 사건 A라는 것은 똑같을 수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애당초 물리적인 시공간을 가지고 접근한다는 것이 어불성설인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다면 결국 정서적인 거리를 기준으로 생각해보게 되는 일인데, 정서적으로 가장 가까운 것은 누구인가 하는 것 역시 어려운 일이다. 여자를 들여보내고 돌아가는 남자의 발걸음이 포함하며 내뿜고 있는 정서에 가장 깊게 공감할 수 있는 것은 누구일까?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공감한다.’라는 행위의 정확한 정의를 내리는 것이 선행 과제일 것이다.

 

내가 보기엔 해당 사건으로부터 얼마나 풍부한 감정을 느낄 수 있는가 하는 것이 가장 문제가 아닐까 한다. 그렇다면 역시 가장 깊게 공감하는 것은 방문을 닫고 들어간 여자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왜냐하면 여자는 해당 사건이 시작하는 시점까지 해당 사건을 구성하고 있는 존재였기 때문이며, 이후로는 해당 사건으로부터 배제될 수밖에 없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그녀는 자신이 남자와 함께 걸어온 길을 떠올리며, 이제는 남자가 혼자서 걸어가야만 하는 길을 상상하게 되는 것이고, 적절한 정보를 가지고 가장 적당한 거리에서 상황을 바라보고 있다는 점에 있어서 가장 풍부한 공감을 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든다. 결국 여기서 대상이 되는 사건이라는 것은 실제로 ㅇ리어난 사건이 아니라, 자신의 머릿속에 태어난 심상인 것인바, 실제 사건과의 접근성 내지는 경험은 오히려 가상의 사건으로서의 사건 A에 몰입하게 만드는 데 방해가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실제로 그 길을 걸어가고 있는 남자라든지, 그 길을 다 걸어서 자신의 방으로 돌아가 버린 남자의 경우에는 오히려 몰입이 어려운 것이다. 결국 그들의 경우에도 지금 과거의 여기에서 이 글을 쓰고 있는 나와 다를 바 없이 그녀의 시점을 상상함으로써 이 사건에 몰입할 수밖에 없다. , 그렇다면 사건 A를 두고는 상황 속의 남자와, 그러한 상황을 가정하고 있는 나 사이에 별반 유의미한 차이가 없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는 것이며, 그러한 사건을 통하여 지금 여기의 나와, 여자, 집으로 돌아간 남자가 하나로 맺어지고 있다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놓치고 있는 게 있다는 생각도 든다. 그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여성이 가정하고 있는 상황 속에 존재하는 남성이다.

 

2016210일의 나는 미처 존재하지 않았고, 존재하지 않거나 존재할 상황을 영화를 보며 만들어 냈다. 그 상황 속에는 남자와 여자가 있으며, 여기서 문제가 되는 상황 A는 사실 여자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라 보는 게 타당하다. 내가 주목하고 있는 그 상황의 감정적 특성이란 것은 이 남성에 대해 이 여성이 가지고 있는 애틋함에 기대고 있기 때문이다.

 

가상의 상황이 만들어지고, 그 가상의 상황 속에 존재하는 여자는 다시 한 번 가상의 상황을 만들어 거기에 자신의 감정을 이입한다. 그렇게 만들어진 감정은 가상의 남성에 의하여 밤의 골목 여기저기에 발자국으로 찍힌다. 가상이 가상을 낳고, 그 가상은 또 다른 가상을 낳는다. 즐거운 일이다. 이따금 인간과 인간들이 만나서 장래의 꿈과 희망을 논하는 일이 즐거운 까닭과 같으리라. 알이 알을 낳고 그 알은 또 다른 알을 낳듯. 지금의 나 역시 누군가 그려준 하나의 상황이라면 그것도 참 재밌지 않겠는가.

 

말할 것도 없이, 이 상황의 감정에 대해 가장 깊고 풍부하게 공감할 만한 사람은 여자가 상상하는 상황 속의 남자다. 자신의 박자가 아니라, 여자의 호흡에 따라 한 걸음 한 걸음 발을 내딛고 있는 이 사람이야말로 이 상황에 가장 공감을 하고 있는 사람이며, 문제가 되는 상황의 감정 그 자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그러하다.

 

애틋해지는 일

 

지금의 나를 러버의 창작물로, 그 애틋함으로 인식하기

 

사랑하는 길이 아닌가.

 

나름대로 서둘러 적었음에도 불구하고 느낌이 많이 쇠퇴해버렸다. 문득 나름대로의 현상학적 사고를 해냈다는 생각이 든다. 현대 철학자들의 이야기를 이해하는 일이 그토록 어렵던 이유가 무엇이었는지 알만도 하다.










신은 죽지 않았다 (2015)

God's Not Dead 
6
감독
해롤드 크롱크
출연
케빈 소르보, 쉐인 하퍼, 트리샤 라파쉬, 코리 올리버, 하딜 싯투
정보
드라마 | 미국 | 113 분 | 2015-04-16
글쓴이 평점  



나는 흔히 언급되는 모태신앙으로 분류될 수 있는 유형의 인간이다.


모태신앙이란 어머니의 태중에서부터 이미 믿음의 자식으로 


태어나 성장할 것으로 계획된 인간이라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이는 또 두 가지 유형으로 구분되는 데,


그 계획과 기대에 부응하여 독실한 믿음을 가지고 살아가는 경우가 있고,


부응하지 못하고 신을 부정하거나 끊임없는 의심을 거듭하며 살아가는 경우가 있는데


나는 아무래도 철저히 후자에 속한다.




이것이 단순히 흔한 교회혐오주의자들의 논지대로


일부 교회가 보여주는 세속적인 일탈과 부정을 목격한 결과라면


차라리 얘기가 간단해지겠는데




많은 경우에는 어릴 적부터 접해온 교리 그 자체에 대한 무수한 의문들


논리적 비약, 모순 등을 견디지 못하고 상당한 혼란에 빠지게 되는 경우가 많지 않나 싶다.






이 영화가 만들어졌다는 걸 알게되고 적잖이 기대를 했다.


과거에 인터넷 상에서 떠돌던 '미국 대학 교수와 학생의 신 존재 증명  논쟁'을 


실사화하지 않았을까 하는 기대를 갖게 됐던 것이다.





마는,


매우 실망적이었던 것은,


기독교 재단에서 제작한 건가 의심이 들 정도로..


내용이 다분히.. 선악의 잣대가 치우쳐 있으며.....


신 없이는 확고한 도덕적 잣대를 확립할 인간의 능력을 부정함으로써 결정적인 패착을 이루었다.





무슬림 가족까지 등장시켜 그 집 딸이 기독교로 개종한 내용을 보여줄 때는..


이건 종교적 차별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끔찍했다.


물론 이쯤 되면 이 영화에서 말하는 신이라는 것이


그냥 절대자라든지 섭리로서의 신이 아니라,


명확히 히브리의 신이라는 사실을 확신할 수가 있게 되면서


영화를 관람하기가 매우 괴로워지게 된다.





하지만 그래도 창조론과 진화론을 두고 과학자들의 주장에 대해 반박하는 주인공의 논변은


제법 흥미롭게 지켜볼만 했다.


우주 창조의 근원과 관련해서는 순환논변을 통해서 신앙이나 과학이나 공통적인 난점이 있을 수밖에 없다고 하고 있고,


진화론과 관련해서는 지구의 나이를 고려할 때 인류 진화까지 걸린 시간을 따져보면 그것은 거의


순간적인 창조로 간주해도 무방할 정도의 눈깜짝할 시간이었다고 하고 있는데


아무리 순간적인 것으로 간주하려 한다고 해도


흙을 빚어서 아담을 만드는 시간에 비교할 수는 없겠으나,


그래도 성경을 비유적(신천지 용어라 무섭 ㅋ)인 표현으로 받아들인다면 융통이 가능할 것으로 판단되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인공과 가장 첨예하게 대립해야 할 철학교수는


별다른 논리적 반박도 못하고 그저


"엄마를 살려달라고 빌었지만 하나님은 우리 엄마를 살려주지 않았어!"라고


우스꽝스럽게 외칠 뿐이고...............






극의 클라이막스라고 할 수 있는 마지막 수업 부분에서


주인공의 교수에게 "당신은 하나님을 증오하나요?"라고 물을 때는...


뒤에 이어질 내용이 너무나도 뻔하게 예측이 되어서 손발이 오그라들 정도였다.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도덕적 절대성이 성립될 수 없다고 열변을 토하는 장면에서는


실로 어안이 '벙벙'할 수밖에.........


주인공(제작자)는 신~절대적 존재가 명확히 명령함으로써만


인간에게 절대적인 도덕적 의무가 성립한다고 생각하는 모양인데..


인간의 존재를 관찰하고 그 존재들이 맺어내는 관계를 고찰하는 것만으로도


충분리 도덕적 절대성을 논리적으로 유추해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철학자가 대체 몇 명인가?


물론, 논리적 유추에 따른 결함들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공격을 받을만한 약점이 생기지만


그렇다고 해서 편히 신의 명령이라는 것에만 의존하기에는


인간이 가진 사고력이 지나치게 아깝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기에


나는 굳이 이 영화에서 악역을 자처하는 (매우 무능해보이는) 철학교수에게 감정이입한다.





가만 보면 내가 느끼는 모순의 핵심은,


신과 이 세상의 연결고리가 과연 존재하는가이다.


나에게 있어서 신은


존재하지 않거나,


존재하더라도 현세에는 별다른 영향을 끼치지 못하는 존재가 아닌가 싶다.


혹은 인격체라기 보다는 그저 하나의 섭리로 받아들이거나.


Good God이 존재한다면 세상은 좀 더 완벽하고 좋아져야 하지 않을까?


(세상에 존재하는 '악'에 대해서는 중세 천년 암흑기 동안 조명설이니 자유의지설이니 하는 것들로 수없이 쉴드가 쳐진 일이니 굳이 길게 언급하지 않겠다.)


하찮은 인간인 나의 머리로도, 아직 세상은 좀 더 완벽해지고 더 나아질 여지가 차고 넘친다.


신은 나보다 더 내다보고 완벽한 존재임에 분명할진대,


대관절 어떤 의도가 있었기에 우리가 계층적 분명함을 끊임없이 확인할 수밖에 없도록


세상을 이리도 불완전하고 불행복하게 방치하는가?


(아마 나의 이러한 자문마저도 어쩌면 신의 섭리와 계획 안에서 노는 걸지도 모르겠다만)





그리 한다면 그것은 현세 기복의 대상이라기 보다는,


사후를 준비하기 위한 경배의 대상


(이럼 너무 사후보험 같은 느낌이 강해지나;;;;;; 그럼 언제부터 가입해야 하는 건데?!ㄷㄷㄷㄷㄷ)


혹은 존재의 섭리로서의 경외의 대상


이라고 나는 생각하는 듯 하며,


인격체인지 확신하지 못하고,


그것이 오롯이 기독교인들에게만 영향을 미친다는 주장에 반대하는 바


'하나님'이라는 용어보다는 '신'이라는 용어를 애써 사용하려 한다.






이러다가도 3년에 한 번 정도 가위에 눌릴 때면 나도 모르게 주기도문을 외우는 김정환이다.













그 유명한 공각기동대의 웃는 남자 로고 심볼?


최근에는 공각기동대 TV판을 다시 보고 있다


Arise 보다가 TV판 보려니.. 리뉴얼판임에도 불구하고 화질의 압박이 ㄷㄷㄷ


하여간 소시적에는 필자를 극도로 하악하악 거리게 만들었던 게 다름 아닌 공각기동대라는 애니메이션이고


그 중에서도 이 웃는남자 심볼은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동그란 원형을 따라서 글자가 이동하기 때문에 제대로 읽기도 힘들고


어디가 시작이고 어디가 끝인지 분간하기 힘든데..


엔하위키에 따르면


'웃는 남자'는 J.D 샐린저의 단편 소설 《웃는 남자》(The Laughing Man)에서 따온 것이며, 


그림에 들어간 문구 "내가 하고 싶은 일은, 귀머거리에 벙어리 행세를 하며 지내는 것이라고 생각했다."는 


샐린저의 소설 《호밀밭의 파수꾼》에서 인용한 것이다.


라고 한다.






TV판 1기 Stand Alone Complex를 보다보면


종특이라 할 수 있는 어려운 스토리와 더불어서


웃는남자가 주는 메시지 때문에 머리가 터져버릴 지경


그러니까 전뇌가 녹아버릴 지경인데 ㅋㅋ


오랜만에 다시 정주행을 하다보니 시작하자마자 의미심장한 대사가 있어서 옮긴다.


쿠사나기 모토코


얼마나 멋진가.












욕망에 눈 멀다, 집착에 눈 뜨다
치정 멜로 '마담 뺑덕' 메인 예고편

- 제목 : 마담 뺑덕
- 감독 : 임필성
- 출연 : 정우성, 이솜, 박소영
- 제작 : (주)영화사 동물의 왕국
- 제공 : CJ엔터테인먼트
- 배급 : CJ엔터테인먼트
- 개봉 : 2014년 10월

* 시놉시스
8년 전, 처녀 덕이 그리고 학규. 욕망에 눈멀다 
불미스러운 오해에 휘말려, 지방 소도시 문화센터의 문학 강사로 내려온교수 학규(정우성)는 퇴락한 놀이공원의 매표소 직원으로, 고여있는 일상에 신물 난 처녀 덕이(이솜)와 걷잡을 수 없는 사랑에 빠진다.그러나 학규는 복직이 되자마자 서울로 돌아가고 덕이는 버림 받는다.


8년 후, 악녀 덕이. 학규와 그의 딸 청이 사이를 파고들다 
8년 후, 학규는 작가로 명성을 얻지만 딸 청이(박소영)는 엄마의 자살이 아버지 탓이라 여기며 반항하고, 학규는 눈이 멀어져 가는 병까지 걸린다. 모든 것을 잃을 위기에 처한 학규의 앞 집으로 이사 온 여자 세정. 눈이 거의 보이지 않는 ‘학규’가 세정이 8년 전 덕이라는 걸 모른 채 그녀에게 의지하는 사이, 청이 또한 그녀에게 집착하게 된다.

덕이와 학규, 그리고 청이. 집착에 눈뜨다 
덕이 없이 아무것도 못하게 된 학규, 그리고 두 사람 사이를 눈치채고 위험한 질투를 시작하는 청이. 세 사람의 위태로운 관계의 한 가운데,
마침내 주도권을 쥔 덕이는 학규의 모든 것을 망가뜨리려고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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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싱 (2013)

Oshin 
7.4
감독
토가시 신
출연
하마다 코코네, 우에토 아야, 이나가키 고로, 이즈미 핀코, 키시모토 카요코
정보
드라마 | 일본 | 109 분 | 2013-12-05
다운로드 글쓴이 평점  




오싱 영화감상문 (일본에 드리운 전쟁의 또다른 그림자)


1.소개

사랑스러운 소녀의 모습이 담긴 포스터. 포스터가 예쁜 영화는 눈길이 가게 되고, 감상 전부터 마음을 두근거리게 만들고, 걷잡을 수 없는 기대감에 스스로를 내맡기게 되는 역할을 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것 같다. 이 영화가 바로 그렇다. 얼마나 사랑스러울까, 얼마나 사랑스러운 이야기를 보여줄까. 나는 그런 기대를 가지고 이 영화의 감상을 시작했다.


2.줄거리

1900년 대 초의 일본 산골마을. 아직 아이, 아니 아기라고 부르는 게 어울릴 것 같은 오싱이 살고 있다. 자라나고 있다. 위로 한 명의 오빠가 있고, 오싱이 있고, 그 밑으로 어머니의 뱃속에는 잉태된 또 하나의 생명이 있다. 오싱네 집은 매우 가난하다. 그래도 오싱은 행복했다. 행복하다고 믿었다. 부모가 있었고, 할머니가 있었고, 오빠가 있었고, 곧 태어날 동생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하나 하나의 입이 오싱의 부모에게는 크나큰 부담이었다. 어느 날 아빠가 말했다. "오싱 너도 내일부터는 일을 나가라." 농담으로 들은 오싱은 절대 안 나갈 것이라고 받아쳤지만 아버지의 말은 농담이 아니었다. 아니 농담이라 하더라도 그것은 정말로 절박한 현실로부터 기인하는 것이었다. 찢어지게 가난하여 집안이 찢어지기 시작하려 하였다. 어머니는 뱃속의 아이를 유산하기 위해서 엄동설한에 냉골 얼음물에 들어가 몸을 담근다. 그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은 오싱은 가족들을 위해 다른 집에 식모살이를 하기로 결심한다. 입이 하나 줄었고, 동시에 얼마간의 양식도 얻었다. 어미는 찢어지는 마음으로 새끼를 보낸다.


도시의 상인집에 식모로 들어간 오싱. 식모살이는 과연 결코 쉬운 게 아니었다. 오싱을 담당하는 또다른 식모는 엄하기 이를 데 없었다. 처음하는 살림이 좀처럼 손에 붙질 않았고 늘 혼나기 일쑤였다. 나중에는 돈을 훔쳤다는 누명까지 뒤집어 쓰고, 할머니가 준 소중한 동전마저 뺴앗기기에 이르렀다. 억울함과 분함을 참지 못한 오싱은 그 집에서 도망나와 눈 덮인 산천을 하염없이 걸었다. 하지만 어린 오싱이 뚫고 가기엔 자연의 힘이 너무나도 거대했다. 다행히 숲 속에 사는 사냥꾼이 쓰러진 오싱을 발견함으로써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다.


사냥꾼들은 정신차린 오싱을 도시로 돌려보내려고 했지만, 오싱의 고집에 못 이겨 오싱은 그들과 함께 지내게 된다. 봄이 올 때까지 오싱은 제법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하지만 오싱을 구한 사냥꾼에게는 나름의 사연이 있었으니 그는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던 일본군의 패잔병이었다. 전쟁에 나갔다가 그곳에서 목격한 참혹함을 견디지 못하고 군에서 뛰쳐나왔던 것이다. 전쟁에서의 악몽과 몸에 박힌 총알에 그는 때떄로 처절하게 괴로워했다.


마침내 오지 않을 것 같던 봄이 찾아왔고, 오싱이 마을로 돌아가는 날이 되었다. 사냥꾼은 오싱을 데리고 산을 내려왔다. 그런데 그 길에서 탈영병을 잡으러 다니는 군인들과 마주치게 되었다. 군인들은 예리한 관찰력으로 사냥꾼이 탈영병임을 알아챘고 사냥꾼은 도망치다가 결국 군인들의 총에 맞아 죽음을 맞이한다. 오싱에게 글을 가르쳐주고 하모니카를 가르쳐 준 아저씨였다. 오싱이 참으로 오랜만에 만난 '좋은 사람'이었다.


갈기갈기 찢어져 허탈한 마음을 가지고 오싱은 집으로 돌아간다. 하지만 아버지는 그를 반갑게 맞아주기는 커녕 다짜고짜 뺨을 때리기 바쁘다. 알고보니 오싱이 그 집에서 도망나온 후로 양식을 뺴앗기고 망신을 당했다는 것이다. 또 한 번 오싱은 억울함을 겪지만 따뜻하게 품어주는 어머니 덕분에 참을 수 있었다.


오랜만에 돌아온 집이었건만 오랜 시간 머물러 있을 수는 없었다. 가족들을 위해서 또다시 오싱은 도시로 나간다. 이번에는 다른 부잣집에 들어가서 식모살이를 시작했다. 어린 나이였지만 이젠 제법 살림이 손에 익어 능숙했다. 주인집 딸내미와 크고 작은 마찰도 있었지만 결국에는 화해하여 좋은 사이가 되었다. 그러던 어느날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주인집에서는 할머니가 위독하시다는 소식을 전하며 서둘러 집에 가보라고 했지만 오싱은 자신의 맡은 일을 다 끝내야 한다고 고집을 부렸다. 그러다가 이런저런 사람들이 모두 만류해준 덕분에 허겁지겁 집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야속하게도 할머니는 이미 임종을 맞은 뒤였다. 죄책감에 흐느끼는 오싱. 하지만 깊은 잠에서 다시 깨어났을 때 세상은 다시 고요해져 있었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말이다. 언제나처럼 어머니는 자신을 위해서 일하고 자신을 위해서 밥을 지었다. 그런 엄마에게 다가가는 오싱. "나는 엄마의 딸로 태어나서 정말 좋아."라고 말한다. 모녀는 서로를 꼭 껴안았다.


3.아역의 연기

영화를 보다보면 어쩔 수 없이 그런 생각을 하게 된다. 저렇게 어린 아이가 어떻게 저렇게 훌륭한 연기를 할 수 있는가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정말이지 오싱의 역할을 맡은 아이라면 5~6살 정도 밖에 되지 않을 것 같은데 대단했다.뺨 맞는 연기는 대체 어떻게 소화해 낸단 말인가? 맞고 던져지고 아주 아역이 고생이 많았을 것 같다. 주인집 딸내미 역할을 맡은 아역의 경우에는 오싱보다는 확실히 몇 살 정도 나이가 많아서 이해가 가고 또 생김새가 예쁘장한 것이 배우 준비를 제법 오래 했을 것 같다는 짐작이 드는 것이지만, 오싱의 경우에는 세상물정을 몰라도 엄청나게 모를 것인데 정말 대단했다.


4.전쟁의 그림자

이 영화의 배경이 되는 것은 1900년대 초반, 그러니까 우리 민족으로 따지면 대한민국 이전의 대한제국 시절의 이야기 정도가 될 것 같다. 정말히 말하자면 1907년 고종활제가 강제퇴위될 때 즈음의 일이 아닐까? 그야말로 일제가 우리민족에게 본격적으로 가혹한 억압과 통치를 시작했던 시대이기에 가장 일본이 밉게 여겨지는 시기라 할 수 있겠지만, 이 영화를 보면 그 시절을 살아가는 일반 일본 민중의 삶 역시 고단하고 평탄지 않았으리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그러니까 전쟁이라는 것은 결국 살아남기 위해서, 그런 욕심과 목적에 의해사 다른 이들의 것을 빼앗으려는 의도에서부터 시작하게 되는 것이기지만 그런 욕심을 이루기 위해서 그러한 과정에서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게 된다는 사실을 새삼 확인할 수 있었다. 그야말로 전쟁이 선사하는 그림자라고 할 수 있는 게 아닐까?


무엇보다 일본으로서는 승전했기 때문에 자랑스럽게 생각할 수도 있는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에 대하여 간접적으로나마 이렇게 그것을 해서는 안 되는 짓으로 묘사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감상하기엔 이 영화만한 것도 없다는 생각도 든다. 혹자는 이런 영화를 과거에 대한 일본의 변명이라고 해석하고 규정할는지도 모르겠지만, 적어도 나의 눈에는 전쟁이라는 소용돌이를 두고 그것으로부터 아픔을 겪기로서는 일본의 민중이나 한반도의 민중이나 별반 다르지 않았으리라는 해석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나아가 그런 해석을 가져오게 만드는 영화를 만드는 그 어떤 능력과 의지의 이면에 존재할 것으로 사료되는 일본인들의 사유와 반성이 부럽게 느껴졌다. 이를테면 오늘날에 문제가 되는 일본의 우익들이 엄존하고 있다 하더라도 그렇게 스스로의 선조가 저지른 과거의 과오에 대하여 끊임없이 생각하고 표현해보려고 하고 또 그것을 승화시키고자 하는 의지는 실로 대단하고 부럽다고 여겨졌다.


그런 측면에서 보자면 과거를 바라보는 우리의 문화는 어떤 승화나 반성이나 반추 같은 것이 결여된 채로 피해자의 모티브에 매몰되어 가해자인 일본에 대한 맹목적인 힐난으로 치닫는 경향이 보여 우려스럽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그런 류의 움직임 이외의 어떤 다양성을 가진 움직임이 좀처럼 포착되지 않고, 어쩌면 혹시나 존재할지는 몰라도 일반 대중이 그것에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으며 나아가 심지어는 국가나 학계 조차로 그런 것에 그 어떤 관심을 가지려는 의지나 문제의식을 결여하고 있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명량 (2014)

8.1
감독
김한민
출연
최민식, 류승룡, 조진웅, 김명곤, 진구
정보
액션, 드라마 | 한국 | 128 분 | 2014-07-30
글쓴이 평점  



명량이 대세다.


거금 16,000원을 들여서 엄마랑 같이 보러 갔는데 매우 실망했다.


분명 역사극인데.. 아.. 뭐라고 해야 하나.. 고증이 거의 안 된 기분


왜놈들 역할은 좀 일본배우들을 고용해서 쓰길 바란다. 사토 코이치 같은 사골 배우들 쓰면 좋을텐데


일본 사극이랑 비교할 때.. 그것이 가지고 있는 어떤 풍류가 전혀 없다.


류승용과 조진웅을 왜군 장수로 캐스팅한 게 이 영화의 가장 큰 실수다


일본어 공부 좀 잘 시키지.. 애들이 한 컷에 한 마디 이상 하는 경우가 드물다.


그래도 조진웅은 대사가 좀 길었던 것 같긴 하다


류승용 아이라인 바른 새끼 누군지 잡아와라 코디랑 같이 잡아와라







.


마지막 라운드로 한바퀴 돌아가는 롱테이크 전투씬도 극악이다.


피 뿜어져 나오는 특수효과가 삑사리 나는 것도 봤다.


완성도가...... 이건 완성된 영화라는 생각이 안 든다.


만들다 만 영화같다.


암만 좋게 봐주려 해도..


커다란 배들을 띄워놓고 바다에 물살을 일으키는 효과를 낸 것은 대단하다


그런데 배들이 움직이는 궤적을 보면.. 판옥선 2014년 디젤엔진 에디션도 아니고 너무 티난다.


돛이라도 올리던가..... 노만 저어서 그 속도를 어떻게 냄


격군으로 아이언맨 같은 걸 쓰나?


그나마 진구나 이정현 같은 배우들을 봐서 좋았고 이들의 연기는 괜찮았다




마지막에 해병들이 전라도 사투리를 쓰면서 우리의 고생을 후손들이 기억 못하면 호로새끼라고 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518 같은 걸 꼬집는 게 아닌가 한다.



























감독
세스 맥팔레인세스 맥팔레인 (Seth MacFarlane)테드 2(2015), 19곰 테드(2012)100자평 쓰기
주연
세스 맥팔레인세스 맥팔레인 (Seth MacFarlane)알버트 역명대사 쓰기 100자평 쓰기
샤를리즈 테론샤를리즈 테론 (Charlize Theron)안나 역명대사 쓰기 100자평 쓰기
아만다 사이프리드아만다 사이프리드 (Amanda Seyfried)루이스 역명대사 쓰기 100자평 쓰기
리암 니슨리암 니슨 (Liam Neeson)클린치 역명대사 쓰기 100자평 쓰기
출연
닐 패트릭 해리스닐 패트릭 해리스 (Neil Patrick Harris)포이 역명대사 쓰기 100자평 쓰기
지오바니 리비시지오바니 리비시 (Giovanni Ribisi)에드워드 역명대사 쓰기 100자평 쓰기
사라 실버맨사라 실버맨 (Sarah Silverman)루스 역명대사 쓰기 100자평 쓰기
에반 존스에반 존스 (Evan Jones)명대사 쓰기 100자평 쓰기
웨스 스터디웨스 스터디 (Wes Studi)명대사 쓰기 100자평 쓰기
데니스 하스킨스데니스 하스킨스 (Dennis Haskins)명대사 쓰기 100자평 쓰기
타탄카 민스타탄카 민스 (Tatanka Means)명대사 쓰기 100자평 쓰기
찰렌 케이츠찰렌 케이츠 (Challen Cates)명대사 쓰기 100자평 쓰기
랄프 가먼랄프 가먼 (Ralph Garman)명대사 쓰기 100자평 쓰기
렉스 린렉스 린 (Rex Linn)명대사 쓰기 100자평 쓰기
특별출연
이완 맥그리거이완 맥그리거 (Ewan McGregor)명대사 쓰기 100자평 쓰기
라이언 레이놀즈라이언 레이놀즈 (Ryan Reynolds)명대사 쓰기 100자평 쓰기
크리스토퍼 로이드크리스토퍼 로이드 (Christopher Lloyd)명대사 쓰기 100자평 쓰기











동경가족(東京家族) 예고편 유튜브


읽자면 도쿄가조쿠


아오이 유우가 나오는 것 같아서 얼른 봤다.


유튜브에서 東京家族으로 검색하면 풀버전 영상도 나오는데..


무자막이기도 하고 저작권이 무서워 링크하지 못한다.


주연
하시즈메 이사오하시즈메 이사오 (Isao Hashizume)히라야마 슈키치 역명대사 쓰기 100자평 쓰기
요시유키 카즈코요시유키 카즈코 (Kazuko Yoshiyuki)히라야마 토미코 역명대사 쓰기 100자평 쓰기
니시무라 마사히코니시무라 마사히코 (Masahiko Nishimura)히라야마 코이치 역명대사 쓰기 100자평 쓰기
나츠카와 유이나츠카와 유이 (Yui Natsukawa)히라야마 후미코 역명대사 쓰기 100자평 쓰기
츠마부키 사토시츠마부키 사토시 (Satoshi Tsumabuki)히라야마 쇼지 역명대사 쓰기 100자평 쓰기
아오이 유우아오이 유우 (Yu Aoi)마미야 노리코 역명대사 쓰기 100자평 쓰기
나카지마 토모코나카지마 토모코 (Tomoko Nakajima)카나이 시게코 역명대사 쓰기 100자평 쓰기
하야시야 쇼조하야시야 쇼조 (Shozou Hayashiya)카나이 쿠라조 역











신의 한 수 (2014)

7.5
감독
조범구
출연
정우성, 이범수, 안성기, 김인권, 이시영
정보
범죄, 액션 | 한국 | 118 분 | 2014-07-03
글쓴이 평점  


7월 3일에 개봉했었구나


정우성이라길래 나름 기대를 하고 봤다.


최근 들어 액션영화가 좀 떙기기도 했고 말이다.


롯데시네마에서 심야영화로 보니 둘이 합쳐 만원이더라


가격은 만족스러웠으나 영화가 값을 못 한다는 느낌이 강했다.



영화를 보러 가기 전에 확인한 네이버 영화 평점은 8.75


네이버 영화평점 믿을만 한 게 못되는 줄은 알지만 그래도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공을.. 들였을까.




아무튼 이 영화는 소재의 측면에서 많은 가능성을 가지고 있었다.


'바둑'이라는 소재를 영화의 뼈대 삼가 그것을 액션과 접목시키는 아이디어는 꽤 쓸만했다.


하지만 그런 소재가 제대로 살려지지 않았다는 게 문제다.


사실 바둑은 그냥 있어도 그냥 없어도 그만인 것이고..


싸움 잘 하는 놈이 장떙인 판이 되어버린 것이다.


이것 참..



하긴 제작자의 입장에서도


이제 바둑이라는 것에 대해 흑백 정도만 구분할 줄 아는 관객을 상대로


바둑을 소재로 하여 영화를 만들려고 하니 눈앞이 캄캄하기는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간의 홍보를 생각하면 이것은 근 사기다.


사실 이 영화에서 바둑은 별반 의미를 갖지 않는다.



배우들도 마찬가진데..


정우성(큰돌)을 제외하면 다들.. 사건에 개입할 개연성이나 필연성이 상당히 조악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그리고 그 중에서 으뜸은 이시영(배꼽)이다.


극에서 이시영을 빼버려도 별로 차이가 없을 정도의 비중을 차지하는데


딱 봐도 히어로를 위한 히로인으로서 삽입되었다는 느낌이다.




꼬라지 보아하니


어떻게 해서든지 시련을 제공하고


복수전의 구도를 만들어서 이런저런 아이디어들을 가지고 스토리를 전개해 나가는 판.


틈틈이 삽입되는 잔인한 장면을 제외하면


무슨 정우성이 원빈의 <아저씨>에 배 아파서 찍은 영화 아닌가 하는 느낌이 강하다.


제작비도 정말 얼마 안 들었을 것 같다.


가만 보면.. 영화에 등장하는 배경들이 정말 한정적이다.


경제적인 영화다.


투자자들 좋겠다.




그나저나 영화에 나오는 마작 테이블 부럽더라.


마작은 패만 사도 십 몇만원이던데 ㄷㄷㄷㄷㄷ










Korean Movie 이것이 우리의 끝이다 (Futureless Things, 2014) 에피소드 예고편 (Episode Trailer)














로크 메인예고편







로크 메인예고편








트랜스포머4: 사라진 시대 티저 예고편 (한국어 자막)


Jersey Boys 예고편








Jersey Boys 예고편









Think Like a Man Too 예고편








양지의 그녀(陽だまりの彼女, The Girl in the Sun) 영화감상문



양지의 그녀

The Girl in the Sun 
8.3
감독
미키 타카히로
출연
마츠모토 준, 우에노 주리, 타마야마 테츠지, 오오쿠라 코지, 타니무라 미츠키
정보
로맨스/멜로 | 일본 | 128 분 | -
글쓴이 평점  



1.소개

2.줄거리

3.등장인물의 매력

4.알츠하이머? 내 머릿속의 지우개?

5.일본의 전통신앙

6.무리한 반전

7.부족함을 채우는 연출

8.다시 보고 싶은 영화, 기억하고 싶은 사랑

1.소개

이 영화는 <소라닌>, <컨트롤 타워>, <우리들이 있었다>와 같은 영화를 연출한 미키 타카히로(三木孝浩, Takahiro Miki) 감독의 작품이다. 일본의 인기 아이돌 그룹 아라시의 멤버로서 배우 겸 가수인 마츠모토 준과, <스윙 걸즈>, <거북이는 의외로 빨리 헤엄친다>, <무지개 여신>, <행복의 스위치>, <구구는 고양이다>, <노다메 칸타빌레> 등으로 우리나라에도 두터운 팬층을 보유한 우에노 주리가 주연을 맡기도 한 영화로서, <양지의 그녀>는 개봉 전부터 많은 팬들을 기대에 설레게 만들었다. 필자의 경우 평소 일본 로맨스 드라마를 즐겨 보는지라 마찬가지로 제법 기대를 가지고 감상에 임했는데, 실망스러운 부분도 적지 않았고, 동시에 그 연출의 측면에 있어서 부족한 부분의 상당히 상쇄할만한 장점도 확인할 수 있었다.



2.줄거리

와타라이 마오라는 이름의 소녀가 있다. 소녀의 집은 괜찮고 평범하다. 어머니는 가정주부, 아버지는 경찰관이다. 하지만 소녀는 전혀 평범하지가 않다. 소녀는 그 집의 친딸이 아니다. 소녀는 그 부부에 의해 우연히 발견되었다. 그것도 옷을 모두 벗은 나체의 상태로 길거리에서 말이다. 뿐만 아니라 소녀는 그렇게 발견되기 이전까지의 기억을 모두 잃어버린 상태였다. 부부는 그런 소녀를 딸로 받아들여서 학교에 보냈다. 소녀는 그 동네에 있는 학교에 들어갔지만 왕따의 대상이 되었다. 그런 그녀를 지켜준 유일한 사람은 같은 반의 오쿠다 코스케라는 남학생이었다. 어느 날 그녀는 같은 반의 여학우들로부터 심한 왕따를 당하고 있었고, 그런 광경을 목격한 코스케는 그 나쁜 무리들에 맞서 소녀의 편을 들었다. 이후로 왕따의 손가락질은 코스케에게도 동일하게 향해지게 되었다. 코스케는 조금 후회가 되기도 하였지만, 워낙 정의로운 소년이었던 그는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서 그녀를 보살피고 또 챙겨주면서 지내게 된다. 그러면서 두 사람은 함께 다짐을 하게 된다. 열심히 공부해서 지금 자신들을 괴롭히는 사람들이 없는 세상을 나아가기로 말이다.

하지만 그런 다짐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은 이별을 맞이하게 된다. 코스케가 먼 지방으로 전학을 가게 된 것이다. 소녀에게 남은 것은 도쿄에 있는 대학에 가자는 코스케와의 다짐 뿐이었다.

시간이 흘러 영화는 코스케의 시점을 중심으로 흘러가기 시작한다. 코스케는 대학을 졸업하고 광고회사에 들어간 아직은 좀 풋기가 덜 가신 사회인이 되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에 나왔건만 아직까지 변변찮은 여자친구 하나 없는 그를 주변사람들은 가엾게 생각하고, 그 역시도 그것이 점점 스트레스로 다가오는 것을 느낀다. 그러던 어느 날 선배와 함께 거래처로 발표를 나가게 되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그는 과거의 그 소녀 ‘와타라이 마오’와 재회하게 된다. 몇 년 만의 재회에 거래처의 직업으로 만난 그들은 어쩔 수 없이 좀 어색하기는 했지만 머지않아 두 사람은 그런 어색함을 극복하고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게 되며, 그런 사랑은 매우 순조롭게 진행된다. 결국 두 사람은 결혼승낙을 받기 위해 마오의 부모님을 찾아뵙게 되었다. 이 역시 순조로울 것으로 기대했지만 이번에는 좀처럼 순조롭지가 않았다. 그녀의 부모는 그녀를 데려올 때의 그녀의 상태 때문에 그녀가 또 언제 다시 이상을 겪게 될지 모른다는 생각에 선뜻 그들의 결혼을 승낙하지 못했다. 결국 그들은 부모의 승낙 없이 혼인신고만으로 결혼생활에 들어간다.

참으로 행복한 신혼생활이었다. 모든 것이 완벽하다는 말이 절로 나오지 않을까 싶은 나날들이 그려졌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순조로움만큼 이제 그들은 진짜 시련을 맞이하게 된다.

어느 날부턴가 오쿠다의 아내 마오는 점점 이상해져 갔다. 뭔가를 자꾸만 깜빡하기도 했고, 자고 일어나니 머리카락이 한 움큼씩 빠져 있기도 했으며, 늘 피곤해 했다. 오쿠다는 그녀를 데리고 병원에 가보기도 했지만 의사는 딱히 이상한 곳은 없다고, 문제가 뭔지 모르겠다는 말만을 되풀이 할 뿐이었다.

그렇게 점점 알 수 없는 불행이 불안의 그림자를 그들의 일상에 길게 드리워가기 시작하던 어느 날 옆집에 사는 꼬마가 발코니에 대롱대롱 매달려 떨어질 것 같은 위기에 처한다. 오쿠다가 달려가 끌어당겨 보지만 역부족이었다. 결국 꼬마는 땅으로 추락하게 되는데, 그 사이 아래층으로 뛰어간 마오가 번개 같은 속도로 꼬마를 낚아챔으로써 꼬마는 무사할 수 있었다. 다행히 꼬마는 무사히 목숨을 건졌지만, 그 순간 마오가 보여준 동작은 사람의 것이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날렵했다. 마오를 향한 오쿠나 코스케의 의구심과 불안은 더욱더 심각해져 갔고, 결국 그도 그렇게 지쳐가는 것 같았다.

그 즈음하여 영화는 숨기고 또 숨겨왔던 비밀을 공개한다. 바로 마오의 정체다. 사실 마오는 원래 고양이였다. 참으로 황당한 이야기이기는 하지만 어린 시절 코스케는 바닷가에서 익사할 뻔한 고양이를 구해준 적이 있었는데, 그 고양이는 코스케의 고운 심성에 반하여 자신도 인간이 되고 싶다고 마녀에게 부탁하여 인간이 되었고, 그렇게 인간이 된 마오를 지금의 부모가 거두어 와타라이 마오라는 이름을 붙여주었고, 그녀는 자신이 좋아하는 오쿠다 코스케의 곁에서 살아갈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고양이로서의 수명이 다하여 그녀는 천천히 죽어가고 있었다. 이제는 어떻게 할 것인가. 영화는 이 가련한 남녀에게 어떤 길을 보여줄 것인가. 그래도 나는 영화가 그들에게 자비를 베풀 것이라고 기대했다. 어떤 방법으로든지 그들이 그 역경을 극복할 수 있으리라고 예상했던 것이다. 하지만 영화는 그런 식으로 이야기를 흐지부지하게 만들지 않는다.

마지막 아침을 차려준 마오는 조용히 아무렇지도 않게 그의 곁을 떠난다. 그녀가 떠났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아차린 코스케는 그녀를 찾아 백방으로 수소문하지만, 그녀를 기억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그녀의 부모조차도 그녀를 기억하지 못했다. 이 세상에서 그녀를 기억하는 사람은 오직 그 뿐이었다. 그 순간 그는 그 옛날 만났던 마녀의 존재를 기억해 내고는 그녀를 만나러 갔다. 그리고 마침내 다시 마오를 만날 수 있었다. 마녀는 그에게 이제 해가 지면 그나마 코스케에게 남아 있는 마오의 기억마저 사라져 버릴 것이라고 얘기했다. 이제 그들에게 남은 시간은 정말 얼마 되지 않았다. 천천히 두 사람은 그들의 운명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다시 만나기를 기대했다.

다시 눈을 떴을 때,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가 있었다. 마오라는 존재를 제외한 모든 것이 그대로였다. 마오와 관련된 모든 것, 심지어는 코스케가 가지고 있던 기억마저도 사라져 버렸다. 물론 그러한 기억의 주체인 코스케마저도 그러한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그런 세계로 우리는 돌아온 것이다.

이렇게 끝난 것인가. 마오가 없는 하루를 살아낸 코스케의 눈에서 문득 눈물이 흐른다. 그는 정말로 그녀의 기억을 잃은 것일까. 아니면 그 눈물이 암시하듯 그녀의 기억을 조금이라도 간직하고 있는 것일까. 이어서 화면은 우리에게 다음과 같은 노래와 함께 가사를 보여준다.


Happy Times together we’ve been spendin

(함께한 행복한 시간 속에)

I wish that every kiss was never ending

(모든 키스가 영원히 이어지면 좋을텐데)

Oh, woudn’t it be nice

(그렇다면 멋지지 않겠니)

Maybe if we think and wish and hope and pray it might come true

(희망하고 기도하면 이루어질 지도 몰라)

Baby then there woudn’t be a single thing we couldn’t do

(그렇다면 우리에게 불가능한 일이란 단 하나도 없겠지)

We could be married

(우리가 결혼한다면)

And then we’d be happy

(분명 행복할 거야)

Oh, woudn’t it be nice

(그렇다면 멋지지 않겠니)

You know it seems the more we talk about it

(얘기를 하면 할수록)

It only makes it worse to five without it

(결혼하고 싶어져)

But let’s talk about it

(하지만 얘기해보자)

Oh, woudn’t it be nice

(그렇다면 멋지지 않겠니)


그리고 다시 화면이 돌아와, 거리를 걷는 코스케의 모습이 비춰지고, 작은 고양이 한 마리가 다가와 그의 다리에 매달린다. 가라앉는 시선, 들어올려지는 고양이. 그리고 그때 들려오는 그녀의 목소리.

“고양이.. 좋아하세요?”

그가 대답한다.

“네”


3.등장인물의 매력

앞서 소개했듯 이 영화에는 마츠모토 준과 우에노 주리라는 인기 배우들이 출연한다. 이것은 이 영화가 가지는 굉장한 강점이라고 생각된다. 물론 이 영화가 그렇게 배우 캐스팅만 가지고 밀어붙이는 작품은 아니지만, 출연하는 배우들이 그 인지도 자체만 가지고도 관객들에게 어필할 수 있다는 사실은 분명 관객들에게 적지 않은 매력으로 작용한다는 사실을 반증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아가 그들이 얻은 인지도라는 것이 단순히 그들의 외모에만 기인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상기할 때 이러한 캐스팅이 가져다주는 매력은 더욱더 무지하지 못할 것으로 다가온다. 특히 우에노 주리 같은 경우에는 과거 그녀가 출연했던 훌륭한 작품에서 그녀가 보여준 연기력과 꾸준한 백치미의 연기로 인하여 관객들로 하여감 영화를 봐야겠다는 동기를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한 배우라고 생각되는 것이다.



4.알츠하이머? 내 머릿속의 지우개?

하지만 역시 영화도 ‘서사’에 기반을 둔 매체이자 예술이기에 그것을 이야기 할 때 가장 중요하게 다뤄야 할 것은 역시 그것이 보여주는 ‘이야기’일 것이다.

본 영화의 줄거리에 대해서는 이미 앞서 이야기 했지만, 이 영화는 과거와 현재를 틈틈이 교차해서 보여주는 구성을 취하고 있기 때문에 이 영화를 처음 접하는 관객들로서는 영화의 후반부에 이르기 전에는 좀처럼 이 이야기가 숨기고 있는 과거의 사연을 짐작하기가 힘든 것이고, 그로 인해 대체 이 영화가 어디로 흘러가는 것인가 하는 의구심을 갖게 되는 것 같다.

때문에 나도 영화의 중반부에서 두 남녀가 부모님으로부터 결혼 승낙을 얻지 못하는 이유를 바라보면서 이것이 혹시 과거 개봉한 우리나라 영화인 <내 머릿속의 지우개>처럼 알츠하이머와 같은 질병을 주요 소재로 채택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보기도 하였다.

하지만 앞서 서술했듯 이 영화에 담겨진 이야기는 그런 것과는 아주 많이 거리가 멀었다.



5.일본의 전통신앙

이 영화에서 우리가 확인할 수 있는 일본이라는 나라의 민족이 예부터 공유해 온 어떤 신앙이며, 특정 동물에 대해 집단이 공유하고 있는 이미지이다. 여기에서 다뤄지는 동물은 ‘고양이’다. 국가나 민족에 따라서 특정 동물에 대해 각기 상이한 이미지를 공유하고 있으리라는 것은 쉽게 짐작이 가능한 동시에 또 한편으로 그 상이함의 정도 때문에 매우 흥미로운 것이기도 하다.

이를테면 우리나라에서 고양이는 흉물이지만, 일본에서의 고양이는 매우 사랑받는 동물이다. 물론 최근 우리나라의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고양이를 기르는 것이 유행으로 자리 잡게 될 정도로 그에 대한 이미지가 크게 변해버렸지만 말이다. 또 다른 예를 들자면 우리나라에서는 흉조로 취급되는 까마귀가 일본에서는 길조로 인식되는 것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를테면 개를 매우 좋아하고, 예로부터 개를 가까이 두고 길러온 우리 민족의 문화가 오늘 날에 이르러 진돗개를 주요 소재로 한 영화나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일본의 경우에 있어서는 고양이에 대한 그런 집단의 이미지가 이런 영화로 형상화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그만큼 고양이를 친근하고 귀여우며 나아가 인간미 있는 동물로 묘사하고 있다는 점이 매우 인상적으로 다가오는 작품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6.무리한 반전

하지만 이 영화가 보여주는 반전이라는 것은 다소 무리했다는 느낌이 적지 않다. 뜬금 없이 여주인공의 정체가 사실은 마녀의 마법을 통해 인간이 된 고양이라는 설정이라니 말이다. 그런 인상은 아마도 영화의 후반에 이르기까지 관객들이 이 영화가 가지고 있는 판타지적 허구성을 전혀 인식도 짐작도 하지 못했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영화의 서막에 플래시백처럼 그 단서가 될 만한 영상이 교차되기는 하지만, 그것만 가지고 이 영화가 어떻게 흘러갈 것인지 짐작할 수 있었던 관객은 그리 흔치 않으리라는 생각이다.

차라리 영화의 초중반부터라도 그런 설정을 짐작할 수 있도록 해주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고, 결과적으로 무리하게 꺾어버리는 반전이 영화의 완성도를 상당 부분 훼손시켰다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다.



7.부족함을 채우는 연출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즉 그런 무리한 연출로 인해 훼손된 완성도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점을 상쇄시켜 줄만한 요소들이 존재하니 바로 ‘연출’이다. 초반에 분위기를 잡기 위해 중구난방이었던 연출의 힘이 영화의 후반부에는 제법 한 곳으로 집중이 되는 느낌이 든다.

데우스 엑스 마키나의 남용을 자제함으로써, 주인공 남녀가 이야기의 흐름을 따라서 결국 이별의 귀결을 맞이하게 되는 것도 괜찮게 평가할 만한 부분이다. 서사라는 것에 있어서는 무조건적인 해피엔딩은 결코 좋지 않다. 서사가 묘사하는 현실이라는 것은 전혀 그렇지 않기 때문에 서사라는 것에 그런 장치를 도입하면 도입할수록 그것은 현실로부터 멀어지고, 현실로부터 공급받는 그 어떤 힘(혹은 현실감이라고 부를 수 있는)을 잃게 된다.

나아가 어찌 보면 최종적으로 두 남녀가 다시 재회하게 됨으로써 결국 해피엔딩으로 끝난다고 간주할 수 있는 부분이 없지 않지만, 그에 대해서는 미리 복선을 깔아 둠으로써 관객이 그로 인한 완성도의 훼손에 둔감해지도록 만든 것도 좋게 평가할 만한 부분이라고 생각된다.



8.다시 보고 싶은 영화, 기억하고 싶은 사랑

나름 신랄하게 비판해버렸지만 나는 이렇게 영화에 대한 감상문을 쓰면서 몇 번인가에 걸쳐 다시 이 영화를 감상했다. 등장하는 배우들 때문인지 무엇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이 영화에는 다시 보고 싶은 그 무엇이 존재하는 것 같았다. 어쩌면 다시 보면 영화가 미리부터 알려주던 그녀의 정체를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다시 영화를 보니 과연 또 다른 재미가 있었다. 영화 속에는 틈틈이 그녀의 정체를 암시하는 장면들이 존재했다. 이를테면 늑목 위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중심을 잡는다든지, 늑목 꼭대기에서 한 번에 뛰어내린다든지, 뜨거운 음료를 잘 마시지 못한다든지 하는 것들 말이다.

하지만 그게 다는 아니라는 생각이다. 영화를 다시 보면서 나는 아름다운 두 남녀의 모습을 보며 즐거워하고 있었다. 그것은 마치 지나가버린 사랑을 복기하는 사람의 심정과도 닮아 있는 것이었다. 지금이야 어떻든 아름다웠던 시간, 기억나지 않아도 아름다웠을 시간을 돌아보고 싶은 욕구가 바로 나로 하여금 이 영화를 다시 보게 만든 근본적인 동기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끝-








수상한 그녀 영화감상문

1.소개

2.줄거리

3.다시 태어나도

4.윤회와의 차이점

5.니체의 영원회귀 사상

6.영화의 한계

7.맺는말




1.소개

이 영화의 감독은 황동혁이다. <도가니>, <마이파더>, <기적의 도로>를 연출한 감독이기도 하다. 주로 등장하는 배우들은 심은경, 나문희, 박인환, 성동일, 이진욱, 김현숙, 황정민, 김슬기, 진영이다. 2014.01.22.에 개봉한 이 영화는 <써니>, <광해>의 흥행으로 인기를 얻은 배우 심은경의 출연과 그 독특한 설정으로 인해서 개봉 전부터 세간의 관심과 기대를 얻었다. 대중성을 챙기다 보니 필연적으로 고루하고 진부해지는 장면들이 보이기는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 소외받고 있는 노인들에 대하여 대중들이 한 번쯤 진중하게 생각해 보고, 반성을 하게 되는 계기를 마련해주는 영화였다고 생각된다. 물론 그러한 반성이 이 사회에 어느 정도의 변화를 가져올지는 미지수이지만 말이다.





2.줄거리

영화의 주인공이 되는 것은 오말순이라는 이름을 가진 할머니다. 일찌감치 남편과 사별하고 홀몸으로 외아들을 훌륭하게 키워낸 그는 교수 아들을 둔 어머니가 되었다. 며느리도 봤고, 손자 손녀도 두었다. 제법 남부럽지 않은 노년에 접어들었다고 할 수 있건만, 전형적인 고부갈등을 비롯하여, 지난 날의 회한들이 점점 그 노년을 잠식해 들어가는 측면이 있었다. 그런 상황으로 그녀의 주위가 어둡게 물들어 가던 어느 날 결국 며느리가 쓰러지고 만다. 원인으로 지목되는 것은 시어머니가 며느리에게 선사하는 스트레스. 며느리의 요양을 위해서, 시어머니인 오말순을 요양원으로 보내는 문제를 두고 가족들은 심각하게 회의를 했다. 그리고 당연히 그런 이야기들은 그녀에게 큰 서러움과 상처로 다가왔다.

그렇게 급속도로 지쳐가던 어느 날, 쇼윈도 너머로 들여다보이는 오드리 햇번의 사진을 보고 멈춰선 그녀는 ‘청춘 사진관’이라는 이름의 사진관에 들어가 사진을 찍게 된다. 그런데 이때 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나게 된다. “50년은 젊어 보이게 해드릴께요.”라는 사진사의 대사는 단순한 농담이 아니었는지, 사진관을 나온 그녀는 정말 50년 전의 청춘의 모습이 되어있었던 것이다.

변해버린 자신의 모습에 놀란 그녀는 감히 가족들에게로 돌아가지 못한다. 그리고 그녀는 이왕 이렇게 된 거 나신을 내쫓으려 했던 서운한 가족들에게 복수도 할 겸 아예 가출을 해버리기로 결심을 한다. 그리고 자신을 좋아하는 영감의 집에 하숙으로 들어가 살면서, 자신의 손자와 함께 밴드활동을 하기도 한다. 또 그 와중에 방송국PD와 인연이 닿아서 묘한 로맨스를 연출하기도 한다.

육체만 젊어진 그녀였기에 주인집 영감에게 정체가 들통나는 등 여러 가지 헤프닝이 연발했지만 정말로 즐겁게 살아갔다. 현실성이 결여되어 있기는 했지만 그녀가 보여주는 삶의 재미는 관객으로 하여감 그런 개연성의 문제를 망각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그러던 와중에 영화는 또 하나의 장치를 보여준다. 바로 다시 노인으로 돌아갈 수 있는 장치였다. 상처가 나거나 헌혈을 해서 몸속의 피를 잃어버리면 그만큼 다시 노인의 몸으로 돌아가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 장치가 가동되기 시작하는 것은 바로 그녀의 손자가 교통사고를 당해서 수혈이 필요한 상황에 처했을 때이다. 영화적 설정답게 손자는 RH- 혈액형을 가지고 있었고 그와 동일한 혈액형을 가지고 있는 것은 가족 중에서도 할머니가 유일했던 것이다. 하지만 다들 알고 있듯이 그녀는 헌혈을 하게 될 경우 다시 노인의 몸으로 돌아가게 된다. 젊은 몸이 되어 이루고 또 누리고 있던 모든 것들을 포기하고 또다시 초라한 삶으로 돌아가게 되는 것이다. 그녀는 선뜻 손자에게 자신의 피를 주고자 하지만 박영감이나, 그녀의 아들이 그녀를 만류한다. 노인의 몸으로 돌아오지 말라고 그녀를 만류한다. 하지만 그녀는 그러한 만류에지지 않고 결국 자신의 피를 손자에게 주고 다시 노인의 몸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3.다시 태어나도

이 영화는 쉴 새 없는 코믹한 요소들을 가지고 관객들에게 다가감으로써 그것이 끌어안고 있는 메시지를 교묘하게 녹여냄으로써 관객들이 그런 메시지를 좀처럼 인식하지 못하거나, 혹은 별반의 인식 없이 수용하게 되는 효과를 보고 있다.

그렇다면 그것은 어떤 메시지인가? 이 영화의 처음과 끝을 관통하는 화두라면 그것은 “다시 태어난다면”, 혹은 “다시 태어나도”라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비록 영화가 보여주는 것은 ‘다시 태어난다’는 사건은 아니지만, 50년이라는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는 것은, 어떤 주체에게 있어서 그 50년이라는 시간을 다시 살 수 있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물음을 던지는 것이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되돌려진 것은 그녀의 육체일 뿐, 그녀의 정신이나 사회적 상황 등은 여전히 그대로라는 점에서 영화가 보여주는 것은 한계가 있기는 하지만, 어떤 측면에서는 오히려 그렇게 때문에 그것은 우리에게 더욱 더 의미심장한 하나의 사례로 다가오는 것 같다. 그리고 나아가 그런 사례를 확장시켜서 그리고 보편화시켜서 우리 모두에게 그러한 기회가 주어진다, 우리 모두에게 우리 각자의 삶을 다시 살아갈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과연 우리는 어떠한 선택을 할 것인가, 하는 질문을 관객으로서의 우리는 필연적으로 직면할 수밖에 없다. 그것이 바로 이 영화가 관객 앞에서 상영될 때 갖게 되는 본질적인 의미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4.윤회와의 차이점

이러한 장치가 만들어 내는 구도에 대하여 대부분의 사람들은 ‘윤회’라는 개념을 떠올리게 된다. 그러한 개념을 근본적 사상의 하나로 채택하고 있는 대표적인 종교가 불교라 할 것인데, 내가 보기에는 이 영화에서 발견할 수 있는 윤회적 발상은 불교적 의미에서의 윤회와는 적지 않은 차이가 있으리라는 생각이다. 왜냐하면 이 영화의 경우에는 주체가 자신의 정체성과 관계들을 거의 그대로 유지한 채로 기존의 자신의 삶을 살아감에 있어서 직면하게 되는 선택을 요구하는 상황들에 대하여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라면, 불교에서 이야기하는 윤회의 경우에는 삼계육도로 표상되는 서로 다른 세계를 상정한 상태에서, 주체가 다음 생에서는 지금과 같은 세계에서 태어나거나, 혹은 다른 세계에서 태어나고, 설사 같은 세계에서 태어난다 하더라도, 전생에서의 기억은 유지할 수 없으며, 그 세계에서도 역시 이전 생과 동일한 종(이를테면 인간)을 유지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이야기하고 있다.

따라서 내가 보기에 이 영화에 투영된 세계관을 윤회적이라고 이야기 하는 것은 적잖은 오류를 내포하고 있다는 생각이다. 만약 적어도 관객은 그녀의 전생과 현생과 내생을 모두 다 알고 있지만, 정작 그녀는 그러한 기억을 유지하지 못하고 그냥 그 새로운 삶을 나름의 방식으로 새롭게 또 새롭게 살아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는 것이 이 영화라면 윤회적 세계관을 통하여 분석하는 것이 타당할 수도 있겠으나, 이 영화의 경우에는 전혀 그렇지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내가 이 영화에서 발견하게 되는 것은 선택을 마주함에 있어 주체로서의 인간이 갖게 되는 의지를 다루는 생철학의 문제이다.


5.니체의 영원회귀 사상

그리고 그러한 생철학 중에서도 내가 생각하는 것은 근현대의 철학자 니체가 주장한 영원회귀의 사상이다.

니체가 말하는 영원회귀 사상은 초월적 신의 죽음 뒤에 그 자리를 대신해 새롭게 나타나는 세계관으로서, 인간의 자연적 삶을 초월적 세계 혹은 초월적 존재가 부여하는 궁극의 목적으로부터 해방시켜 그것을 있는 그대로 긍정하려는 것이다. 모든 사라진 순간은 되돌아온다. 그렇다면 삶의 목적은 어떠한 초월적인 것도 아닌 이 현생에서 다시 한 번 살고 싶을 정도로 사는 것일 수밖에 없다. 이러한 관점에서 인간에게 부여되는 가장 중요한 물음은 ‘지금 내가 행하는 것을 무수히 또 행하려 하는가?’이다. 이처럼 니체의 영원회귀 사상은 인간의 삶에 대한 최고의 긍정을 함축하며, 그러한 긍정을 통해 서구의 수동적 허무주의를 극복하고자 하는 성격을 지닌다.1) 이와 관련한 니체의 원문은 다음과 같다.

모든 것은 가며, 모든 것은 되돌아온다. 존재의 바퀴는 영원히 돌고 돈다. 모든 것은 시들어가며, 모든 것은 다시 피어난다. 존재의 해는 영원히 흐른다. 모든 것은 부러지며, 모든 것은 다시 이어진다. 똑같은 존재의 집이 영원히 지어진다. 모든 것은 헤어지며, 모든 것은 다시 만나 인사를 나눈다. 존재의 바퀴는 이렇듯 영원히 자신에게 신실하다. 매 순간 존재는 시작된다. 모든 여기를 중심으로 저기라는 공이 굴러간다. 중심은 어디에나 있다. 영원이라는 오솔길은 굽어있다. 그대는 생성의 거대한 해라는 괴물의 존재에 대해 가르치고 있다. 이 괴물은 모래시계처럼 늘 되돌려져야 한다는 것이 아닌가. 다시 출발하여 내달리기 위해.






극중에서 이러한 측면이 가장 잘 드러나는 것은 주인공인 오두리(오말순)의 손자가 교통사고로 사경을 헤매게 되는 장면에서이다. 다분히 진부하고 작위적이기는 하지만 영화는 극적 설정을 통해 하나의 딜레마를 보여준다. 그녀의 손자는 Rh-라는 매우 희귀한 혈액형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지금 당장 수혈이 필요한 상황에서 그에게 피를 줄 수 있는 사람은 오직 그의 할머니인 그녀 뿐이고, 만일 손자에게 헌혈을 하게 되면 그녀는 50년이나 젊어진 자신의 육체를 포기하고 다시 늙은 육체로 돌아가게 된다. 하지만 반대로 자신의 손자에게 피를 주기를 거부한다면 그녀는 계속해서 젊은 육체를 유지하며 살아갈 수 있게 된다. 그렇게 한다면 자신의 손자가 위험에 처할 수는 있겠지만, 그녀는 자신에게 주어진 ‘인생을 한 번 더 살아갈 수 있는 기회’를 계속 영위해 나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딜레마는 영화의 본질적인 부분을 이루며, 그것을 바라보는 관객에게 피할 수 없는 질문을 던진다. 그 질문은 “만약 당신이라면 저와 같은 상황에서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그 상황에서 그녀의 정체를 아는 두 사람이 그녀의 선택을 만류한다. 박영감의 경우에는 “쭈글쭈글한 늙은 몸이 뭐가 좋다고 돌아오느냐”고 말했다. 무엇보다 그녀의 아들의 대사가 매우 인상적이다. “제 아들은 제가 책임지고 살릴게요. 가세요. 그냥 가세요. 제발. 제발 가셔서, 남이 버린 시래기 주워 먹지 말고, 그 비린내 나는 생선장사 하지 말고, 자식 때문에.. 자식 때문에 아귀처럼 살지 말고, 명 짧은 남편 만나지 말고, 나처럼.. 나처럼 못난 아들도 낳지 마세요. 그러니 제발.. 제발 가세요..엄마.”

그리고 그런 아들의 만류에 그녀는 이렇게 대답한다.

“아니. 난 다시 태어나도 하나도 다름 없이 똑같이 살란다. 아무리 힘들어도 하나도 다름없이 똑같이 살을란다. 그래야 내가 니 엄마고, 니가 내 자식일테니까.”

이러한 대사에서 나의 마음을 가장 자극한 것은 바로 ‘하나도 다름 없이’라는 대목이었다. 객관성의 눈으로, 세간의 눈으로 바라볼 때 결코 행복하고 편안한 삶이 아니었을 그러한 삶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얼마든지 몇 번이나 그러한 삶을 살아내겠다고 말하는 그녀의 의지는 진정한 주관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볼 때만 가능한 것이고, 진실로 자신의 삶을 긍정함으로써 삶이 인간에게 필연적으로 부여하고 강요하게 되는 허무주의를 극복해낸 이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동시에 그것은 그녀라는 캐릭터가 삶에 대한 하나의 통찰을 이루었음을 보여주는 단면이기도 하다. 즉, 아무리 새로운 삶을 살아낸다고 하더라도 결국 돌아올 것은 돌아오게 마련이다. 50년이나 젊어진 생이라 하더라도 그저 미루어졌을 뿐 노년과 죽음이라는 것은 저 멀리에서 여전히 그를 기다리고 있다. 그렇다면 그러한 상황에서 무엇이 옳은 선택이겠는가.

마찬가지로 이 세상을 살아가는 뭇 인간들에게 있어 어지간히 괜찮은 스스로의 생에 만족하지 못하고 늘 불평만을 반복하며 좀 더 높은 곳에 있는 사람들을 질투하는 나날을 보내는 경우에 있어 이와 같은 딜레마 상황에서의 결단은 적지 않은 시사를 주는 것 같다. 그것이 무엇이고 어떻든 간에 그것은 나 자신의 인생이다. 그것을 부정하거나 긍정할 수 있는 것은 오직 그 자신 뿐이라는 깨달음, 그리고 그러한 깨달음을 통해서 스스로의 생을 무한히 긍정하게 될 때 우리는 그러한 자신의 삶이 몇 번이든 반복되기를 희구할 수 있을 것이고, 그리고 그 삶에서 만나온 무수한 사람들을 진심으로 사랑할 수 있을 것이다.


6.영화의 한계

하지만 본 영화가 가진 그러한 의의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명확한 한계를 가지고 있다. 즉, 시나리오상 노인의 캐릭터를 주인공으로 채택하고 있기는 하지만, 결국 50년 전 육체로의 회귀라는 장치를 핵심적인 모티브로 사용함으로써 관객들이 접하기로써는 노인이 아니라 젊은이들의 서사로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고, 그런 결과로 결국 이 영화에서는 노인의 자아를 채택하고 있지만 오히려 그로 인해서 더욱더 노인이라는 개념이 소외되고 있는 효과를 초래하게 되는 것으로 나는 관찰하였던 것이다.

이것은 ‘대중성’이라는 것을 추구할 수밖에 없는 상업영화로서의 한계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고, 중년층과 청년층, 혹은 나아가 노년층까지 포섭하려 했던 시나리오의 의지가 간과했던 부분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엔딩 크레딧을 보고 진하게 남는 어머니와 자식 간의 대화를 곱씹다가 어느 순간에는 결국 무엇인가 놓친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것을 바로 그러한 이유가 아닐까 하고 생각한다. 영화를 다시 복기해보자, 분명 이 영화의 발단 단계에서 주인공인 오말순이 노년의 일상을 살아가면서 직면하게 되는 회의와 권태를 유발시키는 것은 지난날에 대한 후회와 가족들로부터의 소외였다. 여전히 그는 자신의 자손들을 사랑하는 인물이지만, 그녀가 그들을 사랑하는 방식을 그 사랑의 대상이 되는 인물들은 곱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상황, 그리고 그로 인해 발생하는 소통의 부재와 소외가 바로 문제의 본질 중의 하나임은 확실하다 할 것이다.

물론 영화는 영원회귀의 사상을 가져와서 그러한 의지를 가진 영혼의 소유자를 바로 오두리(오말순)으로 그려냄으로써 그녀가 그러한 소외와 그로부터 발생하는 고통을 나름의 방식으로 해소하고 극복해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영화의 이러한 노력은 부족하고 또 나아가 문제를 더욱 악화시키고 있는 측면이 있다는 생각에 천착하게 되었다.

첫째로, 다시 태어나도 똑같은 생을 살아냄으로써 똑같은 아들과 며느리와 손자, 손녀를 만나겠다는 그녀의 의지는 분명 그녀의 영혼을 구원할 것이며, 그러한 장면을 바라보는 이들로 하여금 모종의 메시지를 얻게 해줄 것이다. 하지만 과연 그러한 개인적인 해탈과 같은 것이 그 문제를 공유하고 있는 모든 이들에게 문제의 해결과 더 나아가 모종의 구원과 같은 것을 제공해줄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남는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는 경험적으로 그와 같은 훈훈한 경험의 이후에도 여전히 문제들이 상존해 나가는 것을 숱하게 발견하고 또 경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개인적인 깨달음은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과정에서 물론 필요한 것이겠지만, 보다 근본적인 것은 그러한 관계에 대한 고찰이고 관계에 대한 조율 혹은 수정이라 할 것인데, 이 영화에서는 며느리나 손녀나 아들과 같은 인물들의 관계 호전에 대한 노력이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다. 관계라는 것이 상호성을 본질로 한다는 점을 상기해 볼 때 영화가 보여주는 이와 같은 구도는 관계의 그러한 본질을 제대로 구현해내지 못했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둘째로, 이 영화에서는 노인이라는 존재를 끝까지 ‘베푸는 존재’로만 묘사하고 있다. 그것은 물론 훈훈한 장면이기는 하지만, 과연 그들 세대보다 훨씬 더 평화롭고 안락한 일상을 영위하는 우리가 우리의 노년 세대에게 그러한 헌신을 아직까지도 요구할 자격이 있는가?, 그것은 지나치게 잔인한 일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가창력이라는 재능을 가진 오말순은 50년 전의 아름다운 육체로 돌아가서 가요 오디션에서 승승장구함으로써 스스로의 개성을 발휘하고 자아실현을 해나가지만 기실 그것은 노년으로서의 그녀라기보다는, 어디까지나 청춘으로서의 그녀가 행하는 일들이다. 다시 말해 이 영화는 발상적 측면에 있어서 이 시대의 노년들이 자신의 삶을 충만하게 만들만한 그 어떤 아이디어도 제시하고 있지 못하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영화에 등장하는 노인들의 삶이라는 것은 좋은 날에 노인들의 카페에 모여 앉아 궁상을 떠는 것에 불과한 것으로 묘사되고 있지 않은가. 노년으로서의 오말순 역시도 그 중에 하나였고, 그녀가 그 공간을 벗어나서 좀 더 넓은 곳으로 나아갈 수 있었던 것은 결국 50년 전의 육체를 얻어서 다시 청춘으로 돌아감으로써 가능했던 것이다. 이러한 요소들을 살펴볼 때 나는 이 영화가 노년 문제에 대한 어떤 해결이나 개선의 의지를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라고 파악하였고 나아가 그러한 문제들을 더욱더 극명하게 노정시키는 한편 또 한편으로는 악화시키는 데 일조하고 있다는 판단을 내렸다.


7.맺는말

제법 신랄한 비판으로 말미를 장식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이 영화는 볼만한 영화라는 데에 동의한다. 그래도 나름 신선한 발상이었고, 그러한 원초적 모티브가 진부하고 촌스럽게 변질되지 않도록 이것저것 세심한 정성이 깃들어졌다. 덕분에 관객으로서의 나는 제법 긴장을 풀고 쉼 없이 깔깔대며 웃을 수 있었다. 배우들의 연기 역시도 훌륭했다는 생가이다. 무엇보다 주연 배우인 심은경의 절정 연기는 참 굉장했다는 생각이고, 이야기가 진행되는 내내의 연기도 매우 안정적이었다. 무엇보다 이 영화를 보는 많은 사람들에게 ‘다시 태어난다면’, 혹은 ‘다시 젊어질 수 있다면’이라는 질문을 던지고 그에 대한 대답을 생각해 볼 수 있게 만들었다는 점에 있어서도 충분히 볼만한 가치가 있는 영화라는 생각이다.


-끝-


1) 『김병찬의 전공 도덕윤리 길라잡이1』, 김병찬, 2014













Ground Control to Major Tom

지상관제소에서 톰 소령에게

 

Ground Control to Major Tom

지상관제소에서 톰 소령에게
Take your protein pills and put your helmet on
단백질 알약을 복용하고 헬멧을 착용하십시오

 

Ground Control to Major Tom
지상관제소에서 톰 소령에게

 

Commencing countdown, engines on
초읽기를 시작합니다, 엔진을 가동합니다.

 

Check ignition and may God's love be with you
점화를 확인합니다, 신의 가호가 함께하길

 

Ten, Nine, Eight, Seven, Six, Five, Four, Three, Two, One, Lift off
10, 9, 8, 7, 6, 5, 4, 3, 2, 1, 우주선발사!

 

This is Ground Control to Major Tom
여기는 지상관제소, 톰 소령에게 전합니다

 

You've really made the grade
정말 대단한 일을 해냈습니다

 

And the papers want to know whose shirts you wear
당신이 어디 셔츠를 입고 있는지 기자들이 알고 싶어 합니다

 

Now it's time to leave the capsule if you dare
괜찮다면 이제 우주선 캡슐에서 나와볼 시간입니다

 

This is Major Tom to Ground Control
여기는 톰 소령, 지상관제소에 전합니다

 

I'm stepping through the door
문을 나서고 있습니다

 

And I'm floating in a most peculiar way
너무 특이한 방식으로 떠다니고 있습니다

 

And the stars look very different today
오늘따라 별이 아주 다르게 보입니다

 

For here am I sitting in a tin can
왜냐하면 내가 여기 깡통 같은 우주선 안에 앉아 있으니까요

 

Far above the world
지구에서 저 멀리

 

Planet Earth is blue
지구는 푸르고

 

And there's nothing I can do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Though I'm past one hundred thousand miles
아주 빠른 속도로 여행하고 있지만

 

I'm feeling very still
아주 평온하게 느껴지고

 

And I think my spaceship knows which way to go
어디로 가야 하는지 우주선이 아는 것 같습니다

 

Tell my wife I love her very much, she knows
아내에게 많이 사랑한다고 전해주세요, 당신 아내도 알고 있어요

 

Ground Control to Major Tom
지상관제소에서 톰 소령에게

 

Your circuit's dead, there's something wrong
회로가 작동하지 않습니다, 뭔가 잘못된 것 같습니다

 

Can you hear me, Major Tom?
내 소리가 들립니까, 톰 소령?

 

Can you hear me, Major Tom?
내 소리가 들립니까, 톰 소령?

 

Can you hear me, Major Tom?
내 소리가 들립니까, 톰 소령?

 

Can you hear me, Major Tom?
내 소리가 들립니까, 톰 소령?

 

Here am I floating round my tin can
여기 우주선 안을 떠다니고 있어요

 

Far above the Moon
달에서 멀리 떨어져서

 

Planet Earth is blue
지구는 푸르고

 

And there's nothing I can do.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아무것도 없습니다













프리즈너스 (2013)

Prisoners 
7.4
감독
드니 빌뇌브
출연
휴 잭맨, 제이크 질렌할, 비올라 데이비스, 마리아 벨로, 폴 다노
정보
범죄, 스릴러 | 미국 | 153 분 | 2013-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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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즈너스 영화감상문

목차

1.소개

2.줄거리

3.탁월하고 만만치 않은 완성도

(1)아름다운 불친절

(2)선악의 혼탁

4.프리즈너스(죄인들, 수감자들, 포로들)

(1)수감자

(2)죄인

1.소개

이 글은 영화 <프리즈너스>를 시청하고 작성한 영화감상문이다. 이 영화는 두 가정의 여자아이들이 한꺼번에 영문도 모르게 납치되면서 시작되며, 사라진 딸을 찾기 위해 아버지 배역의 휴 잭맨이 펼치는 연기가 일품이다. <그을린 사랑>을 연출한 드니 빌뇌브 감독이 연출을 맡았다. 주연 배우로는 휴 잭맨, 제이크 질렌할, 테렌스 하워드, 폴 다노가 출연한다. 얼핏, 이 영화는 흔한 유아 납치물로 여겨지기 쉽지만, 영화를 끝까지 보게 되면 그런 오해의 여지는 거짓말처럼 설 자리를 잃게 된다. 자식을 사랑하는 아버지가 자식을 찾을 실질적인 방법을 찾지 못하는 상황을 소름기칠 정도의 디테일로 묘사하는 동안 관객은 어느새 영화에 깊이 빠져서 헤어 나올 길을 찾지 못한다. 그리고 그렇게 매료된 관객을 영화는 최후의 반전을 가지고 습격한다.

 

2.줄거리

한가로운 휴일, 평화로운 마을 두 부부의 딸이 사라졌다. 가족들은 딸들을 찾아 나섰지만 찾을 수 없었고 결국 경찰에 신고했다. 마을이 발칵 뒤집어졌다. 그리고 그 날 밤 유력한 용의자로 정신지체자인 알렉스 존스가 체포된다. 알렉스가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된 이유는 아이들이 사라질 당시 집 근처에 놓여있던 캠핑카 속에서 그가 체포되었기 때문이다. 경찰은 알렉스를 심문하지만 알렉스는 혐의를 부인했고, 결국 그를 풀어주게 되었다. 이에 대하여 유괴된 아이의 부모 중 목수인 켈러 도버는 강하게 항의한다. 풀려나는 자신의 멱살을 잡은 도버에게 알렉스는 내가 떠날 때까지 아이들은 울지 않았어요. 내가 떠나니까 아이들이 울었어요.”라고 속삭인다. 마치 당신만이 알아야 한다는 것처럼, 당신은 알아야 한다는 것처럼. 그 말 한마디에 도버는 더욱더 심증을 굳히게 된다. 그것은 곧 확신으로 자리 잡았다.

한편 이 사건의 수사를 맡은 형사 로키는 알렉스는 범인이 아닐 거라고 생각하고 다른 방향으로 수사를 전개해 나가기 시작했다. 그는 일단 성범죄 전과자들을 찾아 나섰다. 전과자들을 방문하다가, 역시 성범죄 이력이 있는 어느 타락한 신부의 집을 방문하게 되었다. 신부는 술에 취해 쓰러져 자고 있었다. 그 집에서 로키는 숨겨진 지하실을 발견했고, 그곳에서 미라가 되어버린 시체 한 구를 발견했다. 신부를 두들겨 패자 신부는 그가 연쇄아동살인범이라 죽였던 것이라고 실토했다. 고해성사를 한답시고 신부를 찾아와서는 자신은 신과 전쟁을 벌이고 있다며 그 수단으로 아이들을 유괴해서 죽이고 있다는 떠들어 댔고, 앞으로도 계속해서 아이들을 죽이겠노라 다짐하며 떠나기에 그냥 두고 볼 수만은 없어서 그를 죽였다는 것이다. 이 사건과 연관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신부도 그 이상은 아는 게 없었다. 죽어버린 살인마에게 가족이 있었다는 것 밖에는.

다시 켈러 도버 쪽으로 돌아와 보면, 그는 경찰이 풀어준 용의자 알렉스를 납치해서 폐가처럼 되어버린 자기 아버지의 집에 그를 감금한다. 그리고는 자신과 마찬가지로 유괴된 딸의 아버지인 버치와 함께 그를 고문하기 시작한다. 처음에 버치는 양심의 가책 때문에 그를 돕길 주저했지만 딸을 찾지 않을 거냐는 도버의 윽박에 이내 협력하고 만다. 얼굴이 부어 형체를 알아 볼 수 없을 정도가 될 때까지 지독한 고문이 이루어졌지만 알렉스는 끝내 입을 열지 않았다. 나중에 버치의 아내에게 이 일이 발각되지만 그녀 역시도 도버를 말리지는 못하고 그저 방관만 할 뿐이었다. 자식을 찾아야 한다는 일념으로 그들은 죄책감과 싸웠다. 더 이상 때리면 알렉스의 생명이 위태로울 지경이 이르자 도버는 나무를 잘라서 감옥을 지었다. 그 안에 알렉스를 가두고, 그가 대답을 할 때까지 뜨거운 물을 끼얹었다.

한편 형사 로키는 행방불명된 아이들을 위한 기도회에서 수상한 남자를 목격했다. 그의 뒤를 쫓자 그 남자는 도망쳐 버렸고, 로키는 그를 강하게 의심하여 수배를 건다. 그 남자는 사라진 소녀들의 집에 몰래 침입하여 아이들의 옷을 훔쳐갔다. 얼마 뒤 아이가 있어 보이지는 않는데 매번 다른 치수의 어린이용 옷을 사간다는 의복가게 점원의 신고를 받고 출동한 로키는 그의 집을 찾아가 그를 체포한다. 그리고 그의 집을 수색하는데 그의 집에서는 정체를 알 수 없는 가방들이 잔뜩 널려있는 방이 있었다. 그 가방을 열어보니 그 안에는 뱀과 아이들의 옷이 들어있었다. 벽에는 미로가 잔뜩 그려져 있었다. 싱크대에는 피 묻은 돼지머리가 놓여있었다. 로키는 체포된 그를 심문하지만 그는 계속해서 미로만 그려댈 뿐이었다. 사실 그는 어린 시절 납치됐다가 탈출한 사람이었다. 미로를 풀면 집에 갈 수 있다는 납치범의 말대로 그는 열심히 미로를 풀었고, 그 기억이 트라우마가 되어 미로에 대한 집착을 보이는 한편 유괴된 기억을 되살려 이번에는 자신이 아이들을 유괴하는 입장이 되고자 하는 욕망을 해소하기 위해서 차마 정말로 아이들을 유괴하지는 못하고 아이들의 옷을 훔치거나 사서 그 옷에 돼지피를 묻혀 가방 안에 모아둠으로써 그러한 욕망을 해소하는 인간이었다. 이런 사실을 미처 알지 못하는 로키는 답답함을 이기지 못하고 미로에 열중한 그를 윽박질렀다. 그리고 흥분한 로키를 말리기 위해 다른 경찰관들이 들이닥치는데 일순간 취조실은 아수라장으로 변했고, 그 틈에 미로에 집착한 사나이를 경찰관의 권총을 빼앗아 자살을 했다. 귀중한 참고인이 그렇게 죽어버렸다. 모든 게 수포로 돌아갔다는 생각에 좌절한 로키는 홧김에 책상을 뒤엎는데 죽어버린 참고인이 그리던 미로가 일전에 신부의 지하실에 발견한 유괴범 시체의 목에 걸려있던 팬던트의 문양과 동일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또 한편 로키 형사는 집에 침입자가 있었다는 도버 부인의 신고에 도버의 집에 방문하게 되었는데, 그 과정에서 우연히 도버의 지하실을 둘러보게 되었다.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라는 말을 좌우명을 삼고 살아가는 도버는 지하실에 온갖 물건들을 쌓아두고 있었다. 그런데 그 물건들 중에 절반이나 비어버린 양잿물 자루를 발견한 로키는 그가 지금 무슨 일을 꾸미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도버를 미행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만 미행은 들통이 나버렸다. 도버는 형사가 자신을 미행하고 있다는 걸 눈치 채고는 주정뱅이 행세를 하며 그의 추격을 따돌렸다. 나중에 도버가 알렉스를 감금하고 고문하는 집을 로키가 찾아내기는 하지만 그 집을 방문하고도 로키는 알렉스가 그곳에 갇혀있다는 사실을 알아내지 못했다.

참고인이 자살해 버림으로써 사건은 또다시 미궁으로 빠지는 듯 했다. 그런데 어느 날 기적과도 같이 버치 부부의 아이가 발견되었다. 유괴범의 집에서 혼자 탈출한 거였다. 구조되어 병원에서 치료를 받던 아이를 도버는 찾아갔다. 그런데 도버를 본 아이는 도버에게 아저씨도 거기 있었어요. 우리의 입을 막았어요.”라고 했다. 사람들은 영문을 알 수 없었다. 도버가 아이들을 납치했다는 말인가? 하지만 당사자인 도버는 그 말의 의미를 알 수 있었다. 아이가 자신을 본 것은 며칠 전 방문했던 알렉스 숙모네 집에서였던 것이다. 아이는 그 집의 어딘가에 감금되어 있었고, 입을 막아서 소리를 내지 못하고 그저 도버를 바라만 봤던 것이다. 도버는 부리나케 그 집으로 달려갔다. 형사 로키도 도버를 쫓아갔다. 로키는 그가 아버지의 폐가로 간다고 생각하고 그곳으로 향했다. 하지만 도버는 폐가가 아니라 알렉스 숙모네로 갔기 때문에 폐가에는 감금된 알렉스뿐이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로키는 알렉스를 발견하게 된다.

한편 도버는 연장을 들고 알렉스 숙모네를 방문한다. 문을 고쳐준다는 핑계를 대고 집 안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눈치 빠른 알렉스 숙모는 권총으로 그를 제압한다. 유괴범은 알렉스의 숙모였던 것이다.

이야기의 전말은 이렇다. 알렉스의 숙모, 그러니까 홀리 존스는 남편 존스 사이에 자식을 두었지만 그 자식들은 병으로 일찍 세상을 등지고 만다. 그 일로 신을 원망하게 된 두 사람은 신에게 대항하고 능멸하고 조롱하는 의미에서 아이들을 유괴하며 죽이는 일을 반복해 왔다. 알렉스와 앞서 권총으로 자살한 남자는 모두 그런 유괴의 희생양들이었다. 그러다가 앞서 얘기에 나왔던 것처럼 그녀의 남편은 신부에게 고해성사의 명목으로 신을 조롱하러 갔다가 신부에 의해 죽임을 당하고 그녀만이 남게 되었다. 혼자가 된 그녀는 유괴한 아이 베리에게 알렉스라는 이름을 붙이고 숙모와 조카의 관계가 되어 계속 아이들을 유괴하며 살아왔던 것이다.

그녀는 도버에게 환각약물을 먹게 해서 신체능력을 저하시키고, 다리에 총을 쏜 뒤에 지하 구덩이에 가둬버렸다. 다리에 큰 부상을 입은 도버는 꼼짝없이 지하구덩이에 갇혀버렸고, 그곳에서 딸의 호루라기를 찾았다. 딸은 이곳에 있었지만 지금은 아니다. 도버는 안도와 불안을 동시에 느꼈다.

폐가에서 도버는 못 찾고 알렉스만 찾은 로키는 짚이는 구석이 있어 홀리 부인의 집으로 간다. 이미 도버는 지하 구덩이에 갇힌 상태였다. 문을 두드려도 기척이 없자 그는 현관문을 열고 집으로 들어섰고, 그가 들어설 때 유괴범은 정신을 잃은 도버의 딸에게 주사기를 들이대고 있었다. 그것을 목격한 로키와 유괴범 사이에 총격전이 벌어졌고, 유괴범은 사살됐지만 로키 역시도 눈가에 부상을 입게 되었다. 앞이 잘 보이지 않는 몸으로, 아이를 살려야 한다는 일념에 로키는 위험천만한 곡예운전을 하면서 병원 응급실로 달려갔고 아이는 극적으로 구조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도버의 행방은 오리무중이었다. 아이는 돌아왔지만 그 아이를 찾던 아버지가 사라져버렸다. 로키는 수사 마무리를 위해 유괴범의 집에서 추가적인 증거가 없는지 살펴보고 있었다. 하지만 딱히 더 추가적인 증거는 나오지 않았다. 동료들을 철수시키고 혼자 남은 로키가 크게 한 숨을 내쉬었다. 그때 어떤 소리가 그의 귀에 들려왔다. 아주 미약한 소리였다. 잘못 들었나? 그렇게 생각하는 찰나 또 그 소리가 들려왔다. 역시 잘못 들은 건가? 순간 또 그 소리가 들렸다. 잘못 들은 게 아니었다. 영화는 거기서 끝난다.

 

3.탁월하고 만만치 않은 완성도

(1)아름다운 불친절

2013102일에 개봉한 이 영화는 많은 호평, 특히 전문가들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았다. 그것은 이 영화가 가지고 있는 연출의 탁월성 때문이 아닌가 한다. 확실히 이 영화는 만만한 영화가 아니다. 이 감상문에서 줄거리가 차지하는 분량이 저렇게 많은 이유 역시도 이 영화가 2시간 30분이라는 상영시간 동안 그보다 더 많은 이야기를 압축해서, 조각조각 띄엄띄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원체 추리물이라는 것이 영화가 전개됨에 따라서 조각난 증거들을 모아나가는 과정이기는 하지만, 이 영화는 일단 이야기의 전개가 도버와 로키라는 두 인물에 의해서 두 갈래의 방향으로 나아가다가 마지막에 가서야 겨우 합치되는 구성을 취하고 있는데다가, 이 이야기의 이전에 미리 설정된 또 다른 이야기의 증거들과 이 이야기의 증거들이 홉합되어 제시되고 있기 때문에 단순히 증거들을 수집하기만 하면 끝나는 게 아니라, 그렇게 제시되는 증거들을 관객이 머리를 써서 분류한 뒤에 조립하는 노력이 요구되는 영화가 탄생하게 되었다.

그런데 이처럼 노력이 필요하다 보니 나처럼 영화 보는 눈이 없는 관객에게 있어서는 좀 지나치게 불친절하다는 생각도 든다. 그 촘촘한 구성과 연출에 시나브로 눈과 마음이 즐거워져서 영화를 보고 난 후 밀려오는 그 의미심장함이 가슴 깊숙이 자국이 남았다고 생각을 하게 되는바 바로 감상문을 써보려고 했지만, 영화에 배치된 증거와 장치들이 워낙 많아서, 때로는 이 증거를 어느 쪽 이야기에 분류시켜야 할지 헷갈리는 경우가 있었다. 결국에는 영화를 세 번쯤 보고나서야 정확한 줄거리를 이해해 낼 수 있었다.

특히 로키에게 체포되어서 결국 권총으로 스스로의 목숨을 끊는 용의자의 경우, 마지막에 진범인 홀리 부인이 사살되었는데, 그럼 그 남자는 누구였는가, 하는 의문이 가시질 않아서 결국 인터넷 여기저기에 검색을 해서야 그가 누군지 알 수 있었다. 그러고 보니 도버와 홀리 부인의 대화중에 홀리 부인이 남편이 뱀을 기르다가 뱀에 물려 죽었다고 둘러대는 장면이 있었다. 그리고 체포된 그 남자의 방에서는 뱀이 들어있는 가방이 발견되었다. 그게 힌트였던 거다.

이처럼 이 영화는 재미가 있기도 하지만, 그 재미를 100% 즐기기 위해서는 다른 영화와는 달리 모종의 노력이 필요할 것으로 생각된다. 그리고 앞서 말했듯 그 불친절함이라는 것이 어떤 이들에게 있어서는 다소 불쾌하게 혹은 무감하게 다가올 수도 있겠지만, 거듭해서 보면 볼수록 내가 놓쳤던 그 어떤 것을 새롭게 발견하게 됨으로써 질리기는커녕 오히려 더욱 흥미롭게 다가온다는 점에서 있어서 이 영화는 참 즐겁다.

 

(2)선악의 혼탁

앞서 필자도 적었듯이 이 영화의 발단부분만 보면 그냥 흔한 납치 유괴물이겠거니 생각하게 되지만, 영화를 보다 보면 뭔가 좀 다르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여기서 말하는 <흔한 납치 유괴물>이라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그것은 유괴범은 어떻게 갱생이 불가능한 악을 상징하는 것으로 그려지고, 하다못해 유괴범에게 동정의 여지를 남긴다 하더라도 최소한 유괴를 당한 부모나 그 주변사람들은 아무 죄 없는 순한 양으로 그려지는 것이 바로 그런 흔한 납치 유괴물이라 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러한 영화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선과 악을 제법 명확히 규정하면서 이야기를 시작하고, 이야기를 전개해나가면서 그러한 규정을 더욱 공고히 하는 측면이 있다 하겠다.

하지만 이 영화는 다르다. 처음에는 이 영화 역시도 그런 선악의 경계를 명확히 그어 보이는 듯 했다. 하지만 이야기가 전개됨에 따라서 그런 경계가 급속히 희미해지기 시작하는 순간이 있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은 자식을 유괴당한 도버가 용의자인 알렉스를 잔인하게 고문하는 장면이다. 하도 맞아서 더 이상 부을 수 없을 정도가 되어버린 알렉스의 피투성이 얼굴을 봤을 때 그 누가 경악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물론 그것이 영화라는 점을 상기하고 있다면 그 순간에서 경악과 동시에 웃을 수 있겠지만, 그 웃음은 어디까지나 경악을 품고 있는 웃음이다. 솔직히 그 분장도 어떻게 했을까 싶다.

이와 같은 장면을 마주하면서 관객들은 순간 선악 혼탁을 목격하게 된다. 대체 누가 선이고 누가 악이란 말인가? 과연 알렉스는 진짜 범인일까? 그가 범인이 아니라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가 범인이 아닌데도 저렇게 무자비한 고문을 저지른 도버는 용서받을 수 있는 것일까? 자식을 사랑했기 때문이라는 이유에서? 오히려 그게 인간적인 것이라는 변명을 통해서?

이러한 질문을 던지다보면 그 즈음하여 우리는 어렴풋하게 눈치 챌 수 있게 된다. 선악에 대한 규정은, 그것이 선사하는 감정은 사실과 진실의 문제에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는 것이라는 것을 말이다. 이른바 서사의 힘이다. 비록 영화에서는 알렉스가 그렇게 선하고 순진하고 모자란 인간으로 나왔기 때문에 그에 대한 고문이 그만큼 더욱더 잔인하게 비춰질 수밖에 없었지만, 만일 그가 진짜 극악무도한 유괴범이라면 어땠을까? 그 경우에도 우리는 동일한 감정을 느끼고 동일한 판단을 내릴 수 있을까? 결국 이 영화에서 모든 것은 진리와 사실의 문제로 귀결된다. 그리고 그 문제를 풀기 위해서 이 영화가 관객들에게 건네는 열쇠가 바로 이 영화의 제목인 프리즈너스(죄인들, 수감자들, 포로들)라는 단어다.




 

 

4.프리즈너스(죄인들, 수감자들, 포로들)

이 영화의 제목 <프리즈너스>를 우리말로 옮기면 <죄인들, 수감자들, 포로들>이라는 의미가 된다.

 

(1)수감자

일단 가장 크게 와 닿는 수감자라는 단어부터 살펴보도록 하자. 프리즈너스라는 단어를 하필이면 수감자라고 번역할 필연성은 이 영화에서 숱하게 찾아볼 수 있다. 실제로 감금을 당하는 사람들이 그렇고, 영화에서 중요한 단서로 등장하는 미로가 상징하는 바가 또 그러하다.

이 영화에서 수감자라고 한다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사람은 역시 도버에게 감금을 당하는 알렉스. 그도 그럴 것이 이 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도버가 알렉스에게 행하는 고문의 잔인성과 창의성에 감탄과 경악을 금치 못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알렉스는 아이들을 납치한 용의자로 의심받고 그렇게 고문을 당하고 감금을 당했지만 수감자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은 또 있다.

바로 유괴당한 아이들이다. 이 영화의 발단이 되는 사건은 유괴. 아이들이 유괴당하면서 영화는 추진력을 얻기 시작한다. 아이들을 찾아야 한다는 목적의식을 영화와 관객이 공유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엄밀히 말해서 이 영화의 중심이 되는 사건, 아이들이 경험한 사건은 납치 혹은 유괴가 아니라 감금이다. 생각해보면 이 영화에서는 아이들이 납치되는 장면이 관객들에게 보여지 않는다. 아이들은 납치된 게 확실할까? 물론 영화를 끝까지 감상한 관객이라면 납치유괴된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아이들이 사라진 직후의 영화 속의 인물이었다면 아이들은 그저 사라진 것일 뿐이다. 그 누구도 아이들이 유괴당하는 장면을 보지 못했으니 그 아이들이 납치된 것인지 가출을 할 것인지 알 수 없다. 영화가 그 장면을 보여주지 않은 까닭에 대하여 나는 그것이 이 영화에서 중요한 것은 납치가 아니기 때문이 아닌가 하고 생각해봤다. 다시 말해서 정작 이 영화가 주목하고 있는 것은 아이들이 경험한 납치가 아니라, 아이들이 경험한 감금이 아닌가 하고 생각하는 것이다. 물론 납치가 있어야만 감금도 있을 수 있겠지만, 아이들을 바깥세상과 그들의 부모로부터 단절시키는 행위의 정확한 명칭을 궁리해본다면 그것은 감금이라고 해야 마땅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고, 그런 맥락에서 이 영화에 등장한 아이들 역시 수감자라고 불릴 여지가 충분하다는 생각이다.

그뿐인가? 수많은 아이들을 납치, 감금, 살해한 홀리 부인과 알렉스를 납치, 감금, 고문한 도버 역시도 감금되어 있는 인간이다. 그들은 무엇에 의해, 무엇으로부터 감금되어 있는가? 그들은 무지, 분노, 절망 등에 의해서 진리로부터 감금된 인간이다. 놓치기 쉽지만 홀리 부인과 도버에게 있어서 그들이 감금을 행하게 되는 동기는 묘하게 닮아있다. 홀리 부인 역시도 자식들을 잃은 슬픔 때문에 신을 조롱한다는 명분으로 아이들을 희생시키기 시작했던 것이고, 우리 모두 잘 알고 있듯이 도버 역시도 자식을 구하겠다는 생각으로 그런 일을 저지르게 된 것이다. 흔히 속세에서 언급되는 인간성 혹은 인간미라는 개념을 염두에 둔다면 그들의 행위에 공감할 여지도 없진 않아 보인다. 하지만 엄밀한 의미에서의 윤리적 차원에서 바라볼 때, 그들이 행한 행위의 동기 혹은 목적은 결국 진리로부터 유리되어 있는 것이다. 거기에는 무지, 분노, 절망 같은 요소들이 개입되어 있다. 그것들은 어디로부터 온 것인가? 우리에게 그와 같은 감정과 결함을 부여한 것은 누구인가? 신인가? 아니면 우리들 스스로인가? 이러한 물음을 마주한 우리는 <프리즈너스>의 또 다른 의미인 죄인이라는 키워드를 집어 들어야 할 것 같다.

 

(2)죄인

이 영화에서는 종교적인 상징이 심심찮게 등장한다. 애당초 홀리 부인이 범죄를 저지르기 시작하게 된 원인이 되는 것이 바로 신에 대한 증오였고, 홀리 부인의 남편을 죽임으로써 그러한 범죄에 부분적으로 브레이크를 걸게 되는 것은 타락한 신부였으며, 영화 중간에는 인간이 원죄를 가지고 태어났음을 고백하는 문장이 라디오를 통해 흘러나온다. 이러한 연출에 대해서 나는 그것이 말하고 있는 것이 어쩌면 인간은 라는 이름의 벽돌로 쌓아올려진 감옥에 감금되어 있는 존재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됐다.

그러한 감옥에서 탈출하는 방법은 진리를 관조하는 것이겠지만 그것은 인간의 노력만으로는 불가능하다. 어쩌면 인간은 현세에서는 그러한 일을 실현해내지 못할 수도 있다. 인간은 어디까지나 원죄를 타고난 존재이기 때문이다. 물론 영화에서 등장하는 아이들이라든지, 어린 시절에 유괴 당했던 알렉스 같은 경우에는 대체 그들에게 그 어떤 죄가 있냐고 물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들이 유괴된 것이 그들이 가진 원죄 때문이라고 반문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나는 그것이 원죄 때문이라고 생각하는데, 다만 그 원죄는 그들의 것이라기보다는 그들을 납치하고 감금한 사람들의 것이라고 하는 게 편안할 것 같다.

혹자는 이 영화를 의무론과 목적론, 즉 의무주의와 공리주의의 대립으로 분석하기도 했다. 나름 일리가 있는 분석이란 생각이다. 특히 도버라는 인물을 봄에 있어서 그러한 도구는 매우 탁월하게 자신의 기능을 수행한다. 도버가 알렉스를 고문하는 장면에 있어서 의무론과 목적론 중 어떤 것을 선택하느냐 하는 것은 매우 상이한 결과를 가져오게 될 것이다. 일단 영화 속의 주인공은 목적론을 선택한 듯 보인다. 언뜻 보기엔 그렇다. 딸을 찾겠다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그것일 위한 최선의 수단으로 알렉스를 고문한 것이기 때문이다. 반면에 만약 그가 의무론에 충실했다면 그는 자신이 가진 이성적 능력으로 통하여 보편성을 가지는 법칙을 발견해 내고 그러한 법칙에 대한 존중을 가지고 선의지에 입각하여 행위를 했을 테고 그렇게 행위를 하게 된다면 필연적으로 인간에 대하여 오직 수단으로만 대해서는 안 된다는 준칙으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었을 테니 알렉스를 고문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 영화에는 그렇게 의무론과 목적론으로 양분할 수 없는 지점이 존재한다는 인상을 받았다. 일례로 도버가 알렉스를 고문하기 이전에 그 행위에 대하여 정당화하는 대사를 보자. 그는 이렇게 말한다. “저건 이미 사람이 아냐. 아이들을 유괴할 때부터 그는 사람이기를 포기한 거야.”라고 말이다. 무척이나 흥분한 표정으로 말하지만, 위에서 언급된 의무론과 목적론의 대립을 상기하며 읽어본다면 어지간히 의미심장하다고 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것은 마치 우리가 그러한 서사를 위와 같이 의무론과 목적론의 이분법으로 재단할 것을 미리 예상하고 그러지 못하도록 함정을 파놓은 것 같은 인상마저 받게 한다. 나아가 도버가 설정해 놓은 목적이라는 것이 사랑하는 자신의 딸을 위한 것이라고 할 때, 알렉스를 고문하는 일이 비인간적인 일로서 인간성의 정식이 어긋나는 것이라 한다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아무 것도 없는 상황에서 유일한 희망인 알렉스를 고문하지 않는다는 것 역시 인간으로서 존중받아야 할 그의 딸들에 대한 의무를 방기하는 일이 되는 것이 아니냐는 반문이 가능할 것이라는 생각이다. 다시 말해서 이런 상황에서 무작정 목적론을 비판하고 의무론을 채택하게 된다면 의무론적 윤리학이 가지고 있는 치명적인 단점, 즉 상충하는 의무 사이의 갈등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알 수 없게 되는 미로에 빠지게 된다.

그렇다 미로다. 어쩌면 우리가 갇혀 있는 감옥이라는 것은 이러한 의무들로 쌓아올려진 것인지도 모르겠다. 물론 그러한 의무들 역시 원죄로부터 기인하는 것이고, 나아가 그러한 원죄에서 기인하는 무지로부터 기인하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무지에 상반되는 개념, 즉 진리에 대한 통찰은 단순히 어떤 과학기술이나 자연적 사실에 대한 인식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이를 테면 신적인 혹은 철학적인 깨달음을 의미한다. 그것은 위에서 필자가 언급했던 것과 같은 의무의 상충이라는 고질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열쇠가 되는 지식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런 지식을 결여한 인간은 결국 스스로를 가두게 되고, 나아가 다른 누군가를 가두게 된다. 죄인을 찾기 위해, 혹은 죄인을 가두기 위해, 혹은 스스로를 가두기 위해 인간은 다른 누군가를 가두는 것이고, 다른 누군가를 가두기 위해서 스스로를 가두는 것이다. 나아가 인간은 누군가를 죄인으로 만들기 위해, 죄인이 되는 것이며, 죄인을 처단하기 위해 죄인이 되는 것이다. 참으로 답답한 명제들의 연속이다. 그 답답함이 감옥을 떠올린다. 하지만 이러한 어렴풋한 통찰만으로도 2시간 30분이라는 시간을 함께 헤맨 이들은 늘 우리와 함께 공존하지만 결코 우리는 인식할 수 없는 그 어떤 것의 존재를 혹은 인식 가능성은 혹은 인식 불가능성 그 자체를 짐작이라도 해보는 경험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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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드라마 감독 홍상수
하하하하하하 (2010)네티즌별점8.1
한국 드라마 감독 홍상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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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희의 영화옥희의 영화 (2010)네티즌별점8.2옴니버스
한국 드라마 감독 홍상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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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방문어떤 방문 (2009)네티즌별점6.5옴니버스
<첩첩산중> 역 한국 드라마 감독 홍상수
첩첩산중첩첩산중 (2009)네티즌별점8.0단편
한국 드라마 감독 홍상수
잘 알지도 못하면서잘 알지도 못하면서 (2008)네티즌별점7.9
한국 드라마 감독 홍상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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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과 낮밤과 낮 (2008)네티즌별점7.8
한국 드라마 감독 홍상수
해변의 여인해변의 여인 (2006)네티즌별점6.1
한국 로맨스/멜로, 드라마 감독 홍상수
극장전극장전 (2005)네티즌별점6.9
한국 드라마 감독 홍상수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여자는 남자의 미래다 (2004)네티즌별점6.1
한국 로맨스/멜로 감독 홍상수
생활의 발견생활의 발견 (2002)네티즌별점7.8
한국 로맨스/멜로, 드라마 감독 홍상수
오! 수정오! 수정 (2000)네티즌별점7.1
한국 로맨스/멜로, 드라마, 코미디 감독 홍상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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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의 힘강원도의 힘 (1998)네티즌별점8.2
한국 드라마 감독 홍상수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 (1996)네티즌별점8.0







1961년 서울에서 출생한 홍상수 감독은 중앙대학교 연극영화과 재학 중 대학을 중퇴하고 미국으로 건너가 1983년 부터 1989년까지 캘리포니아 예술대학, 시카고 예술연구소에서 영화 연출을 공부했다. 유학 시절 고전 영화와 유럽 영화를 보며 많은 영감을 얻은 그는 <개미보는 여인>을 비롯한 몇 편의 단편 영화를 연출했다. 

1991년에 귀국한 그는 TV 프로덕션 시네텔의 PD 생활을 거쳐 1994년 동아수출공사에 입사하여 감독 데뷔를 준비한다. 그의 감독 데뷔작은 구효서의 원작 소설 '낯선 여름'을 각색한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이다. 원작과는 판이하게 다른 이 작품은 홍상수 감독의 연출 스타일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영화였다. 그는 이 영화에서 인물들의 소소한 움직임과 맥락을 알아차리기 힘든 대화에 집중하면서도 일상의 이면에 존재하는 잔혹함(살인)을 함께 보여주려 하였다. 이 한편의 데뷔작으로 홍상수는 흥행과는 상관없이 비평계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아 16회 영평상과 17회 청룡영화제, 42회 아시아 태평양 영화제에서 신인 감독상을 수상하였고, 15회 뱅쿠버 영화제에서는 용호상을 수상하기도 하였다. 

홍상수 감독의 두 번째 작품은 강원도를 중심으로 두 남녀의 흔적을 찾아가는 <강원도의 힘> 이다. 그는 <강원도의 힘>에서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의 살인 장면에서 볼 수 있었던 드라마적 요소를 이면에 감춘 채 더욱 평면적이고 소소한 일상의 세밀한 묘사에 치중한다. 또한 그는 무명의 신인배우를 주인공으로 캐스팅해 기성 배우가 줄 수 없는 신선함을 살렸고, 형식적 측면에서도 영화를 두 부분으로 나누어 '금붕어'나 '살인사건' 같은 기제를 사용하여 새로움을 시도했다. <강원도의 힘>은 전작과 마찬가지로 '적당히 순수하고 적당히 비겁한' 인물을 중심으로 대사와 제스처가 한층 강조된 작품 성향을 보여주었다. 51회 깐느 영화제 공식 부문에서 특별언급상을 타기도 한 이 영화를 통해 홍상수 감독은 19회 청룡영화제 감독상, 각본상과 38회 대종상 신인 기술상을 수상하였고, 14회 산타바바라 영화제에서는 심사위원상을 받았다. 

단 두 편의 영화로 작가주의적 감독으로 인정을 받은 홍상수는 1997년부터 한국예술종합대학교 영상원 영화과 교수로 재직하게 된다. 그리고 2000년 홍상수가 선택한 세 번째 영화는 하나의 사건에 대한 두 남녀의 서로 엇갈린 기억을 다룬 <오! 수정> 이었다. 한국영화로서는 드물게 흑백으로 촬영된 <오! 수정>에서도 전작과 유사한 점을 발견할 수 있다. 그러나 평단에게서는 호평을 받았지만 관객에게서는 외면을 받았던 앞의 두 영화와는 달리 <오! 수정>은 관객에게서도 좋은 반응을 얻어 53회 깐느 영화제 '주목할만한 시선'에 공식 초청되었고, 아시아 태평양 영화제 각본상을 수상하였다. 

이러한 관객의 호응은 네번째 영화인 <생활의 발견>으로 까지 이어진다. <생활의 발견>은 주인공이 이른바 춘천 여자와 경주 여자를 거치는 과정을 그린, 시나리오 없이 간단한 줄거리와 연출의 변을 적은 30여 쪽의 트리트먼트만을 가지고 만든 영화였다.

그리고 2004년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에서 홍상수 감독은 스쳐가는 한 명의 여자에게서도 다양한 상상을 하는 남자들의 본성과, 그들이 상상하고 추구하는 여자를 유쾌하게 그려낸다. 그는 이 작품에서 과거 작가주의적 감독이라 불리었던, 다소 무거운 연출 스타일을 벗어던지고 가벼우면서도 진솔한 이야기로 관객들에게 다가가고자 노력하였다. 2005년에는 <극장전>을 통해 2년 연속 칸느 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하는 쾌거를 이룩하였다. 

특정 계절과 일상적인 경험에 착안하여 새로운 작품을 시작한다는 홍상수 감독은 이번 <해변의 여인>에서는 최초로 봄을 배경으로 낯선 사람과의 만남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감성의 변화를 물씬 느끼고 있다는 홍상수 감독. 이번에는 신비로운 해변을 배경으로 아름다운 배우들과의 만남을 통해 보다 많은 영화 관객과 조우할 예정이다.











더 임파서블 (2013)

The Impossible 
8
감독
후안 안토니오 바요나
출연
이완 맥그리거, 나오미 왓츠, 톰 홀랜드, 새뮤얼 조슬린, 오클리 펜더개스트
정보
드라마, 스릴러 | 스페인 | 113 분 | 2013-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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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완 맥그리거를 보고 제법 기대를 했으나 오히려 그의 배역은 큰 비중은 아니었던 것 같다.


차라리 장남으로 나오는 그 아역 배우가 더 매력적이었다는 생각이다.


엉망진창이 된 사방을 어떻게 만들었을지.. 만물이 떠내려가는 그림을 어떻게 찍었을지 의문이다.


부상으로 뼈가 드러나는 어머니의 모습이 매력적이었다.









MBC 불만제로 62회(2014년 2월 5일) 물티슈,스마트폰 배터리,






62회

1. 물티슈 긴급 안전점검!

2. 배불뚝이 스마트폰 - 스마트폰 배터리 부푸는 현상


▶ 물티슈 긴급 안전점검!


2011년, 산모와 영유아 등 144명의 목숨을 앗아갔던 가습기살균제 사건. 그 이후, 가습기살균제에 사용됐던 주요 성분들은 유독물로 지정됐다. 그런데! 최근 물티슈에 가습기살균제 성분이 함유돼 있다는 보도가 잇따르고, 소비자들의 불안감은 점점 커지고 있는데... [불만제로UP] 시중에 판매되고 있는 영유아 물티슈 23개 제품을 국가 인증시험기관에 맡겨 가습기살균제 검출 시험을 진행했다. 그 결과는 매우 놀라웠다. 23개 제품 중 6개 제품에서 가습기살균제 성분 중 CMIT(클로로메틸이소치아졸리논), MIT(메칠이소치아졸리논)가 검출된 것! 하지만 이들 제품은 CMIT, MIT성분을 사용했다고 전혀 표시하지 않았다. 이는 모든 성분을 표시해야 하는 전성분표시제를 위반한 것이다. 


또한, 우리가 식당이나 카페 등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일회용 물티슈도 CMIT, MIT성분을 사용하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일회용 물티슈 실험 결과는 더욱 충격적이었는데... 현재 일반 물티슈는 공산품으로 분류되어, 제조 및 판매 과정에 있어 정부의 관리·감독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상황이다. 특히 영유아용 물티슈는 그 용어만 있을 뿐, 안전을 담보할 수 있는 관리 기준은 따로 없었다. 그렇다면 외국의 경우는 어떨까? [불만제로UP] 일본 현지 취재 결과, 일본은 24개월 이전 아기들에게 사용되는 물티슈는 약사법에 준거해 화장품 기준으로 영유아 물티슈를 엄격하게 관리하고 있었다. 


어른, 아이 할 거 없이 일상생활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물티슈. 과연, 어떻게 만들어지고 관리되고 있을까? [불만제로UP]이 긴급 물티슈 안전점검에 나섰다! 


▶ 배불뚝이 스마트폰 - 스마트폰 배터리 부푸는 현상 


현대인의 필수품, 스마트폰! 당신의 스마트폰은 안전합니까? 


[불만제로UP]은 삼성, LG, 애플의 최신 스마트폰 배터리의 성능을 실험했다. 첫 번 째, 동영상 재생 시간 측정. 어떤 스마트폰이 가장 오랫동안 재생될까? 두 번째, 인터넷 화면 지속 시간 측정. 인터넷 사용에 제일 유리한 휴대폰은? 세 번째, 게임 중 발열 온도 측정. 과연, 가장 뜨거운 스마트폰은? 무려 40도가 넘는 온도를 기록한 삼성ㅍ스마트폰! LG와 애플의 스마트폰보다 10도 가량 차이를 보이며 높은 온도를 기록했다. 스마트폰의 높은 발열, 괜찮은 걸까?


요즘 삼성 스마트폰 배터리가 부푸는 현상에 대한 제보가 끊이질 않고 있다. 특히, 한 제조사의 배터리만 심하게 부푸는 상황! [불만제로UP] 삼성 스마트폰 배터리 제조사 4곳의 배터리를 구입, 실험을 진행했다. 그 결과, 제보가 빗발쳤던 제조사의 배터리가 눈에 띄게 부풀었는데... 또한, 배터리 폭발 실험에서도 쉽게 부푸는 만큼 폭발의 위험성도 높게 나타났다. 삼성전자는 문제의 제조사 배터리에 대해 결함을 인정하고, 갤럭시S3 배터리에 대해선 2014년까지 무상 교환해주기로 했다. 하지만 갤럭시 노트1을 포함한 다른 기종에 대해서는 배터리 수명 말기에 일어날 수 있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만 하는데... 이에 삼성 스마트폰 사용자들의 억울함은 더욱 커지고 있다. 


[불만제로UP] 다양한 실험을 통해 스마트폰의 성능부터 위험성까지 낱낱이 파헤친

다. 









영화 '몬스터' 개봉 임박 - 출연(이민기, 김고은)








은교에서 열연했던 김고은이 주연으로 나온다고 하여 무척이나 기대가 되는 작품이다.


줄거리



<출저: DAUM 영화>



노점상을 하며 하나뿐인 동생과 살고 있는 '복순', 약간 모자라지만 제대로 건드리면 큰일나는 그녀는 동네에서 일명 '미친년'이라 불린다. 어느 날 그녀 앞에 나타난 냉혈 살인마 '태수'는 비밀을 감추기 위해 복순의 동생을 죽이게 된다. 동생의 복수를 위해 칼 한 자루 손에 든 채 그를 추격하는 복순, 그리고 살인을 마무리 하기 위해 집요하게 복순을 쫓는 태수. 포기를 모르는 두 괴물의 숨가쁜 추격이 시작된다!










캡틴 필립스 (2013)

Captain Phillips 
8.7
감독
폴 그린그래스
출연
톰 행크스, 캐서린 키너, 바크하드 압디
정보
드라마 | 미국 | 134 분 | 2013-10-23
글쓴이 평점  



소말리아 해적은 이제 우리에게 남의 나라 일이 아닌 것이 되어버렸다. 그도 그럴 것이 <삼호 주얼리호>라는 우리나라 배가 소말리아 해적에게 나포되었고, 그 배의 선원들을 구출하기 위하여 우리나라 해군이 출동하여 이명박 대통령의 지휘 아래 해적들을 소탕한 사건이 지난 2011년에 있었기 때문이다.


http://ko.wikipedia.org/wiki/아덴_만_여명_작전


이른바 <아덴만의 여명 작전>이다. 이 영화는 우리나라 국민들로 하여금 바로 그 사건을 회상하게 만든다.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있어서 그 사건은 우리나라 해군력에 감탄하고 그런 국방력을 지닌 국가의 국민으로 자부심을 갖게 만든 사건이었다고 생각된다. 이 영화를 보면서도 아마 미국인들은 자신의 국가의 국방력에 매우 감탄했으리라는 생각을 해본다. 실로 이 영화에 등장하는 미 해군 전함들과, UDT SEAL 대원들을 보면 한 눈에 반할 정도다. 특히 어디 보디빌더들만 모아온 것 같은 UDT SEAL 대원들을 보면 그 등빨하며,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며 저격총을 펼쳤다 접는 그런 씬들을 보면 밀리터리 덕후가 아니라 하더라도 눈이 반짝반짝 빛나게 될 것이다.


다만 이 영화는 단순히 그러한 세계 영웅 미국의 모습만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소말리아 해적들의 처지에 대한 고려 역시 잊지 않고 있다. 사실 영화를 다 보고 나서 남는 여운은 바로 그들이 그렇게 해적질을 할 수밖에 없는 어떤 현실적인 구조나 처지로부터 비롯되는 씁쓸함 같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실제로 이 영화는 주인공인 캡틴 필립스 뿐만 아니라 소말리아 해적들의 처지나 심경 같은 것들을 매우 큰 비중을 두어 다루고 있다. 해적질은 조직적 구조를 이루고 있는 것이고 그들 역시 자신의 봇의 명령에 따라서 그런 일을 하는 것 뿐이었다. 그런 측면에서 이 영화는 그들을 일방적으로 비난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입장에서 그들을 이해하고자 하는 시도를 하고 있다. 그런 점에 있어서 이 영화는 나름의 의의가 있다. 소말리아 해적을 이런 식으로라도 다루는 것은 그들에 대한 세계적 이해를 증진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하지만 영화를 끝까지 보고서도 여전히 남는 씁쓸함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에는 여전히 '세계의 영웅 미국'이라는 사고방식이 깃들어 있는 것이고, 소말리아 해적들에 대한 인도적 시선 역시도 그러한 영웅적 위치에서 주어지는 것이라는 것이다. 솔직히, 어쩔 수 없는 부분이라는 생각도 들고, 그런 측면에서 이러한 비판이 꼬투리 잡는 것으로 읽힐 여지도 있다고 생각된다. 뭐 그렇다고 소말리아 해적들을 좀 더 멋있게 묘사할 수도 없는 것이고 말이다. 다만 앞서 내가 칭찬했던 부분이 이런 부분에 있어서 독이 된다는 생각이다. 이를테면 지나치게 멋지게 나오는 UDT SEAL 대원들의 모습을 조금만 덜 멋있게 묘사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그런 생각이다.


이를테면 영화 <론 서바이어>에 나오는 UDT 대원들처럼 말이다.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는 이 영화에 나오는 UDT들은 아무래도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캡틴 필립스>에 나오는 UDT들과 엄청나게 비교된다. 은폐하고 있다가 목동에게 발각되고, 인도적 행위를 했다가 거의 몰살까지 당한다. 뭐 이것도 어찌 보면 너무 측은하고 폼이 안 나는 것 같고 하여간 그 어떤 중간이 있었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그런 생각을 해봤다.












엔더스 게임 (2013)

Ender's Game 
7.8
감독
개빈 후드
출연
해리슨 포드, 아사 버터필드, 벤 킹슬리, 헤일리 스타인펠드, 비올라 데이비스
정보
SF, 액션, 어드벤처 | 미국 | 113 분 | 2013-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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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이 영화가 전미 박스오피스 1위를 했다는 사실과 평점이 7.8이나 된다는 사실에 놀랐음을 고백한다.


볼거리가 아주 없는 영화는 아니다. 포스터에서도 짐작할 수 있듯이 이 영화는 우주에서 이루어지는 일을 그리고 있고, 그 우주에서의 화려하고 치열한 전투씬을 매우 아름답게 그려냈다. 그 유명한 명작 게임 <홈월드>를 해본 사람이라면 그 영화를 보면서 홈월드에 대한 추억을 회상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다.


그리고 제법 충격적인 반전도 하나 있다. 스포일러가 될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밝힐 수는 없지만 반전 그 자체만 놓고 볼 때는 참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러한 반전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내게 있어서 졸작을 면치 못한다.


스토리는 뭐,, 외계인이 나온다. 한 번 외계인의 침공을 받은 경험이 있는 지구인들은 다시 공격받는 일을 방지하기 위하여 대단한 노력을 기울인다. 그러한 노력 중의 하나가 천재 지휘관을 양성하는 일이다. 주인공 <앤더>가 바로 그런 인물이다. 이 꼬맹이가 지구를 구하게 되는데 그 핵심이 되는 것은 이 아이가 가진 전술전략적 천재성이다. 타고난 전략가/지휘관인 그는 엄격한 훈련에 의해 마침내 지휘관이 되고.. 외계인을 퇴치하는데 그런 외계인들에 대한 측은지심이 발동하여 자신이 멸종시킨 외계인의 마지막 핏줄을 챙기면서 영화가 끝난다.


일단 줄거리면 봐도 막장 냄새가 풀풀 나는 데다가.. 중간에 삽입되는 복선인 <꿈>도 정말 뜬금없다는 생각이 든다. 어떻게 해서든 이 주인공 소년과 외계종족 사이의 연관성을 만들고는 싶은데 딱히 생각도 안 나고, 머리 짜기도 귀찮으니 만만한게 꿈이었던거 아니냐는 의심이 들었다.











여러분, 안녕

See You Tomorrow, Everyone 
7.6
감독
나카무라 요시히로
출연
하마다 가쿠, 쿠라시나 카나, 나가야마 켄토, 하루, 안도 타마에
정보
드라마 | 일본 | 120 분 | -
글쓴이 평점  




오랜만에 일본영화를 봤다. <여러분, 안녕>(minasan sayonara)라는 제목의 이 영화는 일본 영화 특유의 영상미? 소박미? 서민미? 같은 것을 포함하고 있는데, 그와 독립적으로 영화 초반의 '낯설게 하기'가 제법 탁월한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장 핵심이 되는 것은 남자주인공이 대규모 주택단지를 벗어나지 못하는 까닭에 대한 이유다. 이 영화를 관통하는 핵심, 영화 후반까지 영화의 긴장을 유지하도록 만들어주는 장치가 바로 이 문제다. 대체 그는 왜 빌라단지를 벗어나지 않으려고 하는 것일까? 이 까닭을 깨닫게 되는 순간, 그 비밀이 풀려버리는 순간 영화가 힘겹게 유지하던 긴장은 생각보다 맥없이 풀려버리고 만다.


하여간 그는 단지 내에 설치된 초등학교를 졸업했지만, 단지를 벗어나는 것을 원하지 않았기 때문에 중학교에 진학하지 않았다. 중학교는 단지 바깥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동창들이 하나둘씩 단지를 벗어나는 동안 그는 철저히 단지 안에서 자신의 삶을 살아가게 된다.


걱정되고 답답하기도 하련만 그의 어머니는 그의 선택을 믿어주고 또 지원하고 격려해주기까지 한다. 어머니는 그에게 있어 가장 든든한 후원자였을 것이다. 그곳에서 그는 성을 경험하고, 사랑을 하고, 일을 한다. 하지만 우리 모두 예상할 수 있는 것처럼 사람들은 하나 둘 그의 곁을 떠나기 시작했다. 사랑했던 약혼자마저도 그를 붙잡아 두는 단지를 떠나버렸고, 결국 어머니마저 떠나버린다.


대체 그가 단지를 떠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나저나 이 영화를 보다보면 매우 흥미로운 인물을 한 명 발견할 수가 있다. 어디서 봤던 것 같다 싶었고, 또 매우 예쁜 얼굴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바로 쿠라시나 카나(Kana Kurashina)다.

http://movie.naver.com/movie/bi/pi/basic.nhn?code=146108


이 사람이 누군가 할 분도 계실텐데..



바로 이 사람이다.


아.. 위 아래 사진이 차이가 너무 나나?


내 차마 링크를 걸지는 못하지만 유튜브에 가서 Kana Kurashina로 검색해보면, 혹은 뒹굴녀라는 키워드로 검색을 해보면 몇몇 사람들에게는 매우 익숙한 영상을 만나게 될 것이다. 이른바 한 때 <뒹굴녀>라는 이름으로 큰 인기를 끌었던 그 동영상이다. 비키니 입은 처자가 그냥 침대 위에서 뒹굴뒹굴 뒹굴 뿐인데, 그것만으로 수많은 남정네들의 심금을 울렸던 그런 동영상이라고 할 수 있겠다.


무엇보다 그 영상에서 엄청 예쁘게 나와서 더 그랬던 것 같다. 화장빨인지 영상빨인지 나는 잘 모르겠다. 하여간 이 ㅊㅈ가 영화도 찍었구나, 혹은 영화배우였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네이버 영화, 또 하나의 약속]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100654


영화 <또 하나의 약속> 개봉 임박. 2014년 2월 6일





삼성 생산직으로 일하다가 암에 걸렸지만 산업재해로 인정받지 못하고 죽어간 딸, 그리고 남겨진 아버지의 외로운 싸움



이 영화는 제작두레 방식으로 제작되었다.



http://anotherfam.com/board/about.php


나는 제작두레라는 영화제작 방식을 별로 곱게 보지 않는다. 그 선의는 이해하되, 2만원이라는 돈을 내고 받는 것이 <영화티켓>이 아니고, <시사회 초대권>이기 때문이다. 이건 배급의 문제에서 필연적으로 비롯되는 것인가? 모르겠다; 이 영화가 만들어지면 나는 이 영화를 보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마치 아파트를 선분양하듯이 그렇게 미리 영화 티켓을 사는 방식으로 영화 제작에 기여할 수는 없는 것인지 의문이다. 위와 같아서는, 비록 이 영화 제작진 나름대로는 제작두레에 참여한 사람들에 대하여 나름의 보상을 제공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 보상물을 따져보면 이건 거의 후원에 가깝다는 생각이다. 무엇보다, 그렇게 만들어진 영화는 단순히 무료 배포되는 것이 아니라 상업적으로 활용이 되지 않는가? <그것은 알기 싫다>에서 이 영화에 대한 이야기가 자주 나와서 줄곧 들었는데, 나는 뭇 영화의 상업영화성에 대해 거부감을 느끼는 게 이상하다는 그들의 주장에는 동의하나, 이렇게 제작두레 방식으로 제작된 영화가 상업적으로 사용되는 현실에 대해서는 의아하다. 그렇다면 애당초 제작두레를 표방했을 때 내걸었던 선의는 어디로 가버린 것인가?


개봉하면 볼 생각이기는 하나,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문제가 있고, 그것을 해결하려하기 보다는 회피하려는 이들이 더 눈에 띄어서 씁쓸하다.


감독의 말에 따르면, 어차피 이 영화를 보려고 마음 먹은 관객들이 계시다면 가급적 개봉 첫 주에 봐달라고, 한다. 첫주 반응이 영화 상영의 지속을 결정하기 때문이라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