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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상

진정으로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하는 일에 대하여

by 통합메일 2015. 5.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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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으로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하는 일에 대하여



그녀의 이야기를 적을 마음이 생겨서, 용기도 들고 해서 술의 힘을 빌려서 침대에 누워 노트북을 배 위에 올렸더랬다.


결과적으로 나는 그녀에 대해서 그다지 제대로 된 글을 적어내지 못했다.


첫 번째 문제는 그녀에 대한 나의 기억 자체가 그냥 내 일방적인 것에 불과한 것이기 때문에 다분히 위험한 인상일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당시의 나는 지나치게 그녀에게 푹 빠져있었다. 그녀가 일방적으로 연락을 끊은 것은 아무래도 그런 이유 때문이었겠지. 그녀 자체가 가지고 있는 매력은, 나로 하여금 그녀와 함께했던 시간들을 이 세상 그 무엇보다 아름다운 것으로 만들어 주었다. 그 시간이 그리 길지 않았다는 것이 뼈에 사무칠 정도로 안타까울 만큼 그녀는 나에게 있어서 참으로 귀하고 아까운 존재였다. 하지만 그래봤자 그것은 어디까지나 나의 일방적인 감정에 불과했을 가능성이 다분한 것이다. 그녀 역시도 나와의 만남에서 그런 감정을 느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지만, 그 관계의 건전성을 생각해볼 때, 그리고 그 당시에 내가 얼마나 개차반이었는지를 생각해 볼 때 그럴 가능성은 별로 기대할 수가 없다. 아마도 그래도 나는 그녀에 대한 이야기를 적어보려는 시도를 좀처럼 할 수가 없었고, 애써 그런 시도를 함에 있어서도 좀처럼 제대로 된 이야기를 적어낼 수가 없었던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그렇다 한 마디로 자신감의 부족이다.


두 번째 문제는 기억의 불확실성이다. 분명히 ‘한 여름밤의 꿈’이라고 묘사될 수 있을 정도로 그 기억은 찬란하고 아름답게 빛나는 것이기는 하지만, 동시에 흐리멍텅한 것이기도 하다. 때문에 삶의 몇몇 마디에서 불현 듯 마주하게 되는 그녀와의 기억들을 더듬어 문자로 표현해 내려고 할 때마다 나는 심각한 불투명 유리를 마주하게 되는 것이다.


세 번째는 타인의 시선이다. 그녀가 못 생겼다는 사실이, 혹은 관계의 비정상성이라는 특징이 나로 하여금 그녀와의 이야기를 끄집어냄에 있어서 끊임없이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게 만든다.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그냥 아무런 이야기나 써보려고 생각을 해봤자 소용이 없는 일이었다. 나는 철저하게 타인들의 눈 사이에서 살아가고자 하는 욕망을 가진 인간이기 때문이고, 그 연장선 위에서 내가 글을 쓰는 이유는 결국 누군가에게 그 이야기를 들려주고자 하는 인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글을 씀에 있어서는 내가 누구인지를 철저하게 가리고 쓰는 시도가 필요할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고보니 기실, 언제나 나를 감추고 쓰는 글이 그나마 봐줄만 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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