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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골

by 통합메일 2015. 6.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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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골


어쩐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돌아앉아 감춰진 당신의 얼굴,

왜 그리도 화가 났던가


분명 같은 침대에 나란히 누워있었는데

울창한 졸음을 헤치고 나아가보니

나의 손 아슬아슬 닿지 않게

당신의 등골이 보였다

아름다운


말을 꺼낼까

손을 뻗을까

어쩌면 당신은 나를 떠날지도 모른다

주워 담을 수도 없게 또박또박


하지만 등골에 취해

나는 잠자코 있었다

정점을 찍은 새가 경험하는 추락,

시야가 흐려지는 것과 같은 속도로

잠자코 있었다


재차 날갯짓을 하는 대신

추락하는 시야에 풍경을 각인했다

돌아앉은 당신의 뒷표정,

몰래 숨긴 손가락으로

이별을 세는 여자의 등뼈


얇은 옷감 위로

희미하게 돋아난 등골에

당신이 맺혔다

닿을 듯 말 듯,

나의 시야도 초점을 잡았다 놓는 일


먹먹한 어둠을 헤치고

그 뒤의 옷감을 뚫고

그 뒤에 놓여있을

그 뒤를 상상했다


절정의 미가 당신의 뒤에

그 뒤에

그 뒤에

그 뒤에 있다고 알려주고 싶었다


어딘가로부터

살포시,

지친 새의 투신음이 들렸다

하나의 세상도 그렇게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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