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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쓰기]우리는 모두 기억을 빚지고 사는 사람들이다

by 통합메일 2013. 11.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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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모두 기억을 빚지고 사는 사람들이다>

 

김정환

 

최초의 기억은 네 살

태어났을 때의 기억은 전혀 없다

출생 전날 나는 대체 몇 병이나 마셨던 걸까

어머니 뱃속 어디에 그 많은 술이 있었나

유년시절에서 그 이야기만 쏙 빼주신 부모님의 배려란.

 

사랑하는 당신이 서운함이라고 써내놓은 것들

왜 이렇게 생소하게 보이는 걸까

이제야 좀 눈에 익어가는구만

고장 난 카메라 같은 내 얼굴 앞에서

당신은 그만 한숨을 푹 내쉰다.

 

오랜 추억을 돌아 나오는 길

끝까지 붙잡지 못하고

결국 마지막에 기억을 놓쳐버린 이는

아마도 남들보다 유난히 많은 기억을 짊어져야 했던

고마운 사람이라고 생각하기로 한다.

 

누군가를 배웅해야 하는 날

우리는 기억할 수 없는 시간도 함께 떠나보내지만

그들을 닮은 또 다른 누군가를 기억하면서

마침내 조금씩 갚아나가게 된다.

우리는 모두 기억을 빚지고 사는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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