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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쓰기]여기는 잔잔하다 2

by 통합메일 2013. 11.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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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 잔잔하다 2>

 

김정환

 

유리와 칼이 날카로운 이유는 차가운 소리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뜨거움에 시달리던 이들은 고향에 돌아온 부상병처럼 입 다문 소리를 냈다

가느다란 불빛 새어나오던 부엌에서 아버지가 내려놓는 소주잔 소리

신경질을 내고는 복숭아를 깎으려고 동생이 집어든 과도 소리

마음이 아픈 것은 오직 그 때문이다

난류와 한류가 만나는 곳에서 마음은 늘 바다를 꿈꿨다

모든 것을 집어삼키고야 말겠다.

물속에 누워 눈부신 멍울들의 출렁임을 바라보고 있으면 곧 잠이 왔다

이따금 낯익은 소주잔이나 과도가 나를 지나 심해의 바닥으로 침전해 갔다

마음은 어떤 소리로 만들어졌을까

그 온도를 느끼기엔 나는 너무 먼 곳으로 와버렸다

모든 것이 가라앉는 세상

그 수면의 계단 밑에서 나는 부유한다

잔잔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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