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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쓰기]없는 편지

by 통합메일 2013. 11.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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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는 편지>

 

김정환

 

푸르른 네게 쓴다.

하지만 이것은 없는 편지다.

 

깊이 팬 나에게 쓴다.

하지만 이것은 없는 편지다.

 

너에게 쓰는 편지에는 내가 없다.

도서관에서 풀어본 사랑의 계산식과

내 안에서 순식간에 기화하는 그 모습이,

꿈속에서 떠난 여행지와

그 아래 함께 머물고 싶던 여명과

우주에 그려진 너의 궤적이

한 획도 담기질 않았다.

 

나에게 쓰는 편지에는 네가 없다.

내가 죽어야 할 이유와

세상을 긍정하게 하는 거짓말,

모든 존재를 하찮게 만드는 고귀함,

이성의 분장을 하고 춤추는 감성,

부끄러운 줄 모르고 길기만 하던 밤이

꾹꾹 말라붙어 있을 뿐이다.

 

언제쯤 나는

너에게 나를,

나에게 너를

적을 수 있을까

 

언제쯤 우리는

같은 편지에서 만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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