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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쓰기]나는 봄비

by 통합메일 2013. 11.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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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봄비>

 

김정환

 

 

따스한 봄날엔 해변으로 가야하는데

그냥 술만 마셨어

이슬이 되려고 했는데

그만 봄비가 됐어

유난히 정직한 계절에

달콤한 물방울이 되어 세상을 적셔

 

소리도 없이 나는 기름칠을 해

머리하러 가는 버드나무와

흐느끼는 아스팔트

즐겨찾기해 놓은 버스 타이어에까지 말야

 

어김없이 돌아온 봄은

내 몸과 마음 사이의

어디쯤엔가 있어서

으스러지도록 껴안아도

결코 터뜨릴 수 없는 것이란다

 

화가 나서 노래를 하지만

이미 젖은 봄 위엔

아무것도 쓰여지질 않아

터벅터벅 황홀한

밤길을 걸어

꿈으로 갈 뿐이야

 

그렇게 인주 묻지 않은

밤이 지나면

결국 시큼함만 남기고

나는

 

껄떡임이 멈추기도 전에

땅은 표정을 잃고

벚꽃은 이슬마저 털겠지

 

하루 종일 사랑했으니

고지식한 하늘에도

작은 떨림 정도는 남을게야

요동치는 봄을 덮고

나는 이제 눈을 감아

 

다음 추억에서는

누구의 가슴에서

태어날까

그래서

 

괜찮아

그래서

 

나는 이렇게

봄비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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