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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식축시]오래된 술집

by 통합메일 2013. 12.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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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술집


어디 갈까 하다가
머뭇거리는 걸음 끝에
마지못해 밀어젖힌 유리문 저편으로
그리움 담을 그릇이 태어난다
 
때로 그것은 보잉 737
언젠가 한 번은
스쳤을지도 모르는 이들과,
돌아갈 수 없어서
유난히 밝게 빛나는 별들을
유리창 너머로 바라보며
우리의 이야기는
거짓말처럼 이륙하곤 했다
 
어디까지 날아갈까
이제는 땅 딛고 살고 싶어
낡은 엔진 같은 소리를 내면서
우리는 숱하게 또 비행했다
 
그러다 때로는
담배 끝에서 흘러나오는
구름을 보며 생각했다
그래도 이런 술집과 함께
늙어갈 수 있다는 것은
꽤 괜찮은 일이 아닐까
 
여기서 바라보는 뭇 풍경이
그리워지는 날이 오지 않을까
하염없이 불투명한 1초 뒤와
주머니 속에 구겨 넣은 고민들과
좀처럼 가라앉지 않는 서러움,
끝내 사랑할 수 없던 사람들까지
 
마지막 비행을 하던 밤에는
때마침 달이 밝아
세상은 잠시 별을 잊었다
여명도 잔잔하게 멀었다
그 시니컬한 배려 속을 날아서
우리는 한 번도 떠나온 적 없는 곳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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