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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쓰기23

[자작시]비 오는 날의 호흡 비 오는 날의 호흡 비가 오는 날에는 짧은 호흡으로 말해요 우리의 대화가 늘어지지 않도록 간밤엔 기억이 내 등을 톡톡 그동안 너무 게을렀나봐요 됐어요 나는 꿈 속으로 갑니다 내 마음 영원히 깨고 싶지 않은데 나는 얼마 잠들지도 못해요 그래서 노년은 더욱 길어지는 거겠죠 계절의 경계가 무뎌졌다네요 우리의 양지에까지도 벌레가 꼬이고 아이들은 더이상 자신의 세상을 짓지 않아요 이렇게 또 호흡이 한숨을 닮아갑니다 이 비가 그치지 않길, 그게 내 소망이라면 나는 너무 괘씸한가요 이기적인가요 2013. 12. 6.
[자작시]우물 우물 “첨벙”또 누가 떨어진 모양이다친구들은 안간힘을 쓰며 벽을 기어올랐다축축한 벽에서 떨어지지 않으려 와글와글 울었다너도 빨리 올라 오렴호기심, 경멸, 동정, 혐오가 벽을 타고 흘러내렸다어차피 입구는 막혔어. 올라가 봤자야그래도 그 물 속에 있는 것보다는 낫잖아?대답 대신 나는 검은 심연으로 잠수했다말라비틀어진 청춘과, 시체가 된 꿈들이 부유했다나는 수몰되어 끊어진 계단 밑에 숨었다체온은 차디찬 수온을 닮아 가는데숨이 끊어지는 순간에도 꺾이지 않는 희망이 있었다입을 벌리면 부끄러운 비밀들이 기포가 되어 솟구쳤다모두 삼켜야만 한다검은 물에 잡아먹히기 싫으면검은 물을 잡아먹는 수밖에나는 끊임없이 들이마셨다내일을 지켜주지 못한 베란다 난간과모기향처럼 피워놓았던 연탄엉뚱한 곳에 박혀버린 식칼너무 많이 삼켜버린.. 2013. 12. 4.
[자작시]사산 사산김정환자 여기 단어 두 개그리움이 그립다기억해본다세수를 하다가 사진첩 생각이 났다언젠간 고향의 옹달샘을 찾듯 잠시 돌아올지도 모를 이들이 떠올랐다보이지 않는 그들의 눈동자에서말간 손이 뻗어 나오리라박제된 시간을 더듬으리라나는 용기 내어 그리움을 잉태한 인간이다세면대 위로 뚝뚝 떨어지는 추억을 노려보는 인간이다당신도 한 방울의 그리움을 품었는가환멸의 정상에 올랐을 때 문득 혼자일까 두려워불현듯 창을 열고 허공을 젓고 싶다내 그리움이 아니라고, 내가 원한 것이 아니라고하지만 알잖아사귀지 않아도서로의 망각을 나눠먹은 이들은언젠간 같은 얼굴로똑같은 그리움을 사산하는 법이라는 걸이 글엔 그리움도 상징도 아무것도 없다는 걸 2013. 12. 3.
[자작시]불치병 불치병 김정환 TV를 틀면, 라디오를 틀면 속삭이는 목소리 들린다조근조근한 손가락이 칙칙한 허공을 가리켜오늘도 많은 사람들이 병사했다고 알려주었다보이지 않는 그곳에 불치에 거꾸러진 이들의 빈자리가 있었다허전한 공명음은 우리 삶의 배경음악이었다.탁주로 떠넘기는 떨림에 취해 나는 울었다몹쓸 병, 함께 하고 싶어서몹쓸 병, 자유롭고 싶어서몹쓸 병, 행복하고 싶어서몹쓸 병, 사랑하고 싶어서불치병, 약도 없어서불치병, 결코 나을 수 없어서겨울밤 이불 속에 웅크려 제발 낫게 해달라고 기도했다하지만 다시 눈을 떴을 때도 속은 여전히 텅 비어 있었다찢어지는 기침으로 아침을 꿰메며 죽도록 살고 싶었다봄의 햇살에 눈을 감으면 가슴 속 구멍에 빛이 고였다빛이 고였다 빛이 고였다 마르지도 않고 빛이 고였다뜨겁게 익은 눈물이 .. 2013. 12.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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