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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시30

예뻐진 여자 여명이 들풀의 간사함을 밝게 비춘다간밤의 절망과 한탄은안개와 함께 걷히고이슬과 함께 말라붙었다뺨을 쓸어 올리는 바람에긴 후회가 눈물자국을 따라문득 떠올랐다가 때로 잊혀지곤 했다 노래를 잘 하나요중양이 되어가는 한때의 일출을 향해 외쳐 물었다햇무리 우수수 파도 위에 떨어져 일렁이는데문득 낮이 되기도 전에 돌아올 밤을 두려워 하는 것이고채 끝나지 않은 하루 안에서, 살아내지 못한 무수한 내일의 실존을 다짐하는 것부서진다 나의 시선결코 잠들지 않는 바람에, 굳지 않는 파도에,감고 싶지 않아 애써 멀리 던져두는 것 2014. 5. 7.
[자작시]비 오는 날의 호흡 비 오는 날의 호흡 비가 오는 날에는 짧은 호흡으로 말해요 우리의 대화가 늘어지지 않도록 간밤엔 기억이 내 등을 톡톡 그동안 너무 게을렀나봐요 됐어요 나는 꿈 속으로 갑니다 내 마음 영원히 깨고 싶지 않은데 나는 얼마 잠들지도 못해요 그래서 노년은 더욱 길어지는 거겠죠 계절의 경계가 무뎌졌다네요 우리의 양지에까지도 벌레가 꼬이고 아이들은 더이상 자신의 세상을 짓지 않아요 이렇게 또 호흡이 한숨을 닮아갑니다 이 비가 그치지 않길, 그게 내 소망이라면 나는 너무 괘씸한가요 이기적인가요 2013. 12. 6.
[자작시]우물 우물 “첨벙”또 누가 떨어진 모양이다친구들은 안간힘을 쓰며 벽을 기어올랐다축축한 벽에서 떨어지지 않으려 와글와글 울었다너도 빨리 올라 오렴호기심, 경멸, 동정, 혐오가 벽을 타고 흘러내렸다어차피 입구는 막혔어. 올라가 봤자야그래도 그 물 속에 있는 것보다는 낫잖아?대답 대신 나는 검은 심연으로 잠수했다말라비틀어진 청춘과, 시체가 된 꿈들이 부유했다나는 수몰되어 끊어진 계단 밑에 숨었다체온은 차디찬 수온을 닮아 가는데숨이 끊어지는 순간에도 꺾이지 않는 희망이 있었다입을 벌리면 부끄러운 비밀들이 기포가 되어 솟구쳤다모두 삼켜야만 한다검은 물에 잡아먹히기 싫으면검은 물을 잡아먹는 수밖에나는 끊임없이 들이마셨다내일을 지켜주지 못한 베란다 난간과모기향처럼 피워놓았던 연탄엉뚱한 곳에 박혀버린 식칼너무 많이 삼켜버린.. 2013. 12. 4.
[시쓰기]마지막 눈 김정환 슬슬 마지막 눈이 내릴 때가 됐구나. 깜빡깜박. 엎드림 위로 쌓임이 예약되어 있다. 그리고는 밤과 불투명 유리창과 채 쌓이지도 못하고 창을 적시는 헤드라이트를 꿀꺽꿀꺽 삼킨다 어깨가 깨진 까치 까마귀가 돋아난다 무릎이 잘린 도시에는 레드카펫 대신 진흙의 소리가 깔린다 바야흐로 전야제다 문을 열면 입을 벌린 냄새가 서있다 뒷걸음질 치다 넘어진 나를 날카로운 추억으로 난도질한다 알고 보니 구석기 시대에 유행하던 뗀석기다 최소한 간석기나 비파형동검은 기대했는데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까마귀들이 영혼을 쪼아 먹기 위해 기어온다 뱀보다도 느리다 기다리는 건 귀찮은 일이다 까마귀도 까치도 봄도 여름도 가을도 다음 첫 눈도. 2013. 11.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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