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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작시34

[결혼식축시]오래된 술집 오래된 술집 어디 갈까 하다가 머뭇거리는 걸음 끝에 마지못해 밀어젖힌 유리문 저편으로 그리움 담을 그릇이 태어난다 때로 그것은 보잉 737 언젠가 한 번은 스쳤을지도 모르는 이들과, 돌아갈 수 없어서 유난히 밝게 빛나는 별들을 유리창 너머로 바라보며 우리의 이야기는 거짓말처럼 이륙하곤 했다 어디까지 날아갈까 이제는 땅 딛고 살고 싶어 낡은 엔진 같은 소리를 내면서 우리는 숱하게 또 비행했다 그러다 때로는 담배 끝에서 흘러나오는 구름을 보며 생각했다 그래도 이런 술집과 함께 늙어갈 수 있다는 것은 꽤 괜찮은 일이 아닐까 여기서 바라보는 뭇 풍경이 그리워지는 날이 오지 않을까 하염없이 불투명한 1초 뒤와 주머니 속에 구겨 넣은 고민들과 좀처럼 가라앉지 않는 서러움, 끝내 사랑할 수 없던 사람들까지 마지막 비.. 2013. 12. 12.
[자작시]월동준비 곧 겨울이 오리라해맞이를 위해서 고개를 좀 더 비스듬히 꺾어야 하는 일에 익숙해지리라나의 겨울은 허공에서 태어나리라계절은 베란다 유리창을 통해 자신을 꼭 닮은 나를 목격하리라그것의 눈동자는 앙상할 것이고, 끊임없이 무언갈 그리워할 것이며동시에 아무것도 기억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우리는 서로 한참을 바라보리라마치 방금 전에 헤어졌던 이들처럼아직도 거기 있냐는 눈빛으로 그 허공을 채우겠지기다리던 눈이 내릴 때까지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것들로 그 허공이 메워질 때까지바로 그 때까지, 나는 이번 생에서도 여전히 그리고, 지우고, 또 그린다그곳에, 그곳의 겨울에그러니까 영원한,겨울에 내가 내리고당신이 내린다 2013. 12. 10.
[자작시]비 오는 날의 호흡 비 오는 날의 호흡 비가 오는 날에는 짧은 호흡으로 말해요 우리의 대화가 늘어지지 않도록 간밤엔 기억이 내 등을 톡톡 그동안 너무 게을렀나봐요 됐어요 나는 꿈 속으로 갑니다 내 마음 영원히 깨고 싶지 않은데 나는 얼마 잠들지도 못해요 그래서 노년은 더욱 길어지는 거겠죠 계절의 경계가 무뎌졌다네요 우리의 양지에까지도 벌레가 꼬이고 아이들은 더이상 자신의 세상을 짓지 않아요 이렇게 또 호흡이 한숨을 닮아갑니다 이 비가 그치지 않길, 그게 내 소망이라면 나는 너무 괘씸한가요 이기적인가요 2013. 12. 6.
[자작시]멸망이 없는 아침 이 답답함의 까닭은 나의 둥지가 아파트여서는 아니다 서사 없는 삶, 조각난 하루를 세며 아침마다 멸망의 부재를 확인하는 게 에덴에서 난 나의 임무였다 내가 기다리는 것은 언젠가 끊어져버릴 이야기 닭이 되어버린 주작이다 저기 산 너머엔 나날이 하늘로 시간을 날려보내는 이들이 산다던데 잡을 수 없는 순간이 가진 유독함에 나는 간밤에도 오줌을 쌌다 헛헛하다 2013. 12.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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