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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생각

식민지 근대화론은 곧 친일인가? 잘못된 반일과 혐일을 경계한다.

by 통합메일 2013. 12.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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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2월 3일 우리나라 대표적 커뮤니티 사이트 중의 하나인 뽐뿌(http://www.ppomppu.co.kr) 카툰/유머 게시판에는 <일제 덕분에 나라가 발전했다는 게 개소리인 이유>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왔다. 게시글의 주요 내용은 2006년 KBS에서 제작된  HD역사스페셜 63회 '13년의 꿈, 대한제국'이라는 다큐멘터리의 캡쳐를 근거로 나열하면서 일본 제국주의의 침탈이 없었더라도 당시의 우리 민족은 이미 저렇게 근대화로 나아가고 있었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었다.



유튜브 주소 http://www.youtube.com/watch?v=A3UPpUr7vaQ

<19분 40초를 보면 전차에 대한 얘기가 나온다.>


http://www.ppomppu.co.kr/zboard/view.php?id=humor&no=200223


그 게시물을 본 대다수의 사람들은 글쓴이의 의견에 격하게 공감하는 모습들을 보였다. 중복되는 댓글을 제외하면 약 30여명이 댓글을 단 것 같은데 그 중에서 반대의 의견을 제시하는 사람은 나를 포함해 아주 극소수였다. 정확히는 두 세명? 네다섯명? 정도였던 것 같다. 그것도 개중에는 나를 포함하여 친일로 몰릴 것을 염려한 나머지 조심스러운 이의제기의 수준에 머무르는 경우가 태반이었다.

오랫동안 지속된 일본의 우경화와, 친일편향교과서 논란, 그간의 정치인들이 보여준 친일행보들이 국민들을 이렇게 만들었으리라 생각하면 이해가 가기도 하지만, 그런 이해가 나를 군중우매론자로 만든다. 이런 현실은 참으로 안타깝다.

위와 같은 게시물을 보고 나는 선뜻 납득이 가질 않았다. 일본이 조선보다 먼저 개항을 했건만 조선보다 전차 개통이 늦다는 게 말이 안되기 때문이다. 혹시라도 늦었다면 그에 걸맞는 사정이 있었을 것이다. 그리하여 기사를 찾아보니 다음과 같은 기사가 있었다.






출처:  http://5505.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400714


이 기사는 오마이뉴스에서 작성된 것으로서, 위에 달아놓은 동영상의 내용을 직접적으로 겨냥해서 비판하고 있는 내용이다. 일찍이 나와 마찬가지로 저런 내용에 대해서 의문을 품었던 사람이 없었을리가 없다. 이런 귀한 기사를 작성해주신 기자님에게 감사를 드린다.

기사의 내용을 보면 동영상에서 말하는 아시아 최초의 전차 국가로서의 조선이라는 주장은 당시의 이탈리아 외교관 로제티의 잘못된 발언에 근거하고 있다는 것이고, 실상은 아시아에서 최초로 전차를 개통한 도시는 일본 교토이며, 도쿄의 경우에도 전차 개통이 늦어진 나름의 이유가 있고, 심지어는 조선에 전차를 만들 때는 기술자가 없어서 일본의 기술자들을 데려다가 전차를 만들었다는 것이니, 위의 동영상이나 게시물들은 식민지 근대화론을 부정하고 자발적 근대화론을 주장하려고 하고 있으나, 결국에는 일본인들이 우리나라에 전차를 만들어줬다는 것을 시인하는 아이러니를 저지르고 있는 것이다.

이쯤되면 실소도 나오지 않는다. 일본의 우익들이 이러한 짓거리를 보면 어떤 생각을 할까? 그야말로 우매한 조선인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까? 

그리하여 나의 댓글은 이렇게 달렸다.



하지만 이에 대하여 뽐뿌 이용자 <람쥐>님은 그런 측면에서의 식민지 근대화론의 여지는 있지만, 전략적인 측면에서 그러한 용어가 결국에는 일본 우익들에 의하여 악용되기가 너무나도 수월하다는 요지의 주장을 댓글로 달았다. (캡쳐를 뜰까 하다가 그것도 나름 남의 글이라 무서워서; 궁금하신 분들은 위 링크 타고 들어가서 아랫 쪽의 댓글을 읽어보시면 됩니다.)






그래 <전략적>. 그 앞에서는 인정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나는 그의 말대로 전략적 태도의 필요성을 수긍했다. 수긍은 했지만, 그야말로 씁쓸했다. 지성을 이런 방식으로 사용해야 하다니. 진리와 사실의 고찰이 아니라, 전략적 열세에 빠지지 않기 위해 발악하는 데 사용해야 하다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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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래의 세태를 보면, 일본의 우경화에 대응하는 한국의 우경화를 보는 기분이 새삼든다. 하지만 사실 생각해보면, 우리나라의 우경화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북한은 더 심하지만 남한만 해도 그 역사적 특성 때문에 필연적으로 우경화의 길을 걸어온 지난 60년이 아닌가 한다.

1983에 는 의 이 다. 터 10년 인 1993에 교 3인 는 수 인 의 로 에 다. 해외여행이 허용된지 10년이 지났지만, 아직 지방도시에서 해외 구경을 해본 사람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개인적으로 좋은 경험이기는 하였으나, 일본에 다녀왔다는 꼬리표가 달린 내게 이런저런 질문을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모종의 선입견 같은 걸 가지고 있었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옆집 살던 여자아이가 일본인들이 총으로 안 쏘더냐는 것이었다.

1년 간의 국비연수를 다녀온 아버지는 일본 예찬론자가 되었다. 일본인들에게 배워야 할 것들이 많다는 이야기를 노상 하고 다녔다. 나는 그게 매우 못마땅했다. 아버지의 이야기들에는 일리가 있었지만, 내가 접한 사람들의 선입견을 고려할 때 아버지가 밖에서도 그런 말을 하고 다니다간 "친일파" 소리를 들을 게 뻔했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명석한 두뇌를 가지고 있었지만, 눈치라든가 사리분별은 조금 약했다. 인간관계 능력이 떨어졌다. 실제로 아버지는 그러한 일본 예찬으로 어머니와 종종 다투곤 했다. 덕분에 나는 일본 예찬론자가 되지 않을 수 있었다. (다행히 지금은 안 그러신다. 그냥 인생 한 때의 호기였던 듯. 열정의 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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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 는 미국 비주얼락의 바람이 불었고, J-POP이라 불리는 일본음악도 알음알음 퍼져나갔다. 인터넷이 보급되던 시절이었고, 매니아들에 의해 수입된 일본음악들이 제법 널리 퍼졌다. 당시 우리 학교에는 일본에 진짜 '미쳤다'라고 할 정도로 심취한 아이가 있었는데, 제법 부잣집 아이였고, 두꺼운 뿔테 안경에 마른 체형이었다. 조용한 아이였지만, 그에게는 남들의 흥미를 끄는 게 있었으니 심히 일본적이라는 것이었다. 숱하게 일본 여행을 다녀왔고, 각종 CD를 사모았으며, 언어에도 제법 능통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아마 치바대에 갔다던가 그렇게 들은 것 같다. 아이들은 그를 매우 신기하게 쳐다봤다. 문득 햇수를 세어보니 내가 일본을 다녀온 후로 10년이 흘러 있었다. 그 사이에 일본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은 많이 바뀌어 있었다. 아이들은 그가 들려주고 보여주는 일본 아이돌의 음악과 사진에 열광했고, 그의 일본 여행담을 들은 한 선생님은 그런 여행의 기록은 반드시 문자의 형태로 보존하는 게, 금전적 측면이라든지 인생의 측면에서 쓸모가 있을 것이라고 공개적으로 진지하게 조언하기도 했다. 당시는 김대중 대통령의 임기 말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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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터 10이 . 나의 예상대로라면 한일 양국의 관계와 교류는 좀 더 가깝고 활발해졌어야 하지만 그렇지가 않은 듯 하다. 앙금처럼 가라앉은 역사를 열심히 흔들어대는 이들이 있었다. 한국에도 있었고 일본에도 있었다. 그들은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역사를 이용했고, 상대방을 이용했다. 그런 농간에 놀아나지 않는 국민들도 꽤 있었지만, 믿을 수 없을 만큼 쉽게 속아주는 국민들이 훨씬 많았다. 그들은 잘 알고 있었다. 내부의 단결과 결속을 공고히 하기 위해서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외부의 적을 만드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말이다. 그들이 부활시킨 것은 망령으로서의 자신이 아니라, 외부의 적으로서의 세상이었다.

양국의 지성이 교류하는 일은 줄어들었다. 있다 하더라도 정치라는 화려한 수식의 표지에 가려 저 깊이 침전해 들어갔을 것이다. 일본인들은 한국을 뻔뻔하고 미련하다고, 일제강점의 경험이 한국에게 근대화라는 축복을 가져다 주었다고 말하는 모양이다. 한국인들은 그에 대해서 일본인들의 역사적으로 우리보다 미개했으며, 고대중세에 걸쳐 일본에 문화를 전파해준 것이 한민족라고 하면서 그들과는 또다른 방식으로 상대방을 무시한다.

그렇다 <무시한다>. 그리고 <무시당하지 않으려 애쓴다>. 위에서 언급된 게시물은 그런 노력의 결과이다. 여기에는 자존심의 문제가 개입되어 있다. 나는 이런 모든 일들이 감정과 쓸데없는 자존심 싸움의 측면에서 양국 간의 문제를 바라보는데서 생긴다고 생각한다.

로 서 는 의 과 의 이 히 는 이 고 다. 그들은 똑같이 상대방을 깔보고 무시하는 행위를 통해 자신의 자존감을 확보하려는 경향이 있다. 그것은 상당히 비합리적인 행위이기 때문에 그런 행위에 수반되는 근거들에는 그리 까다로운 객관성이 요구되지 않는다. "인정할 것은 인정하다"는 생각은 찾아보기가 힘들다. "바람은 이해하지만 사실은 사실이다."라는 주장도 찾아보기 힘들다. 그저 오로지 "우리가 최고이고, 내가 믿는 것이 곧 사실이다."라는 주장을 하고 있는 듯 하다.

내가 보기에 그런 류의 행위들은 모종의 답을 미리 전제하고 이야기를 시작한다. 식민지 근대화론을 꼬집고자 했던 위 게시물의 경우에도 "한국은 일본보다 열등할 리가 없고, 당연히 일본보다 우월하며, 식민지의 경험 없이도 근대화의 길을 걸어갈 수 있었을 것이다."라는 답을 전제하고 논리를 전개하는 듯 하다. 이것은 마치 북한의 선전과 유사한 인상을 준다. 지난 월드컵에서 브라질과 북한이 축구 경기를 할 때 그들에게 물어보면 그들은 이런류의 논리에 아주 중독이 된 나머지 "당연히 우리가 이기는 거 아닌가?"라고 대답을 한다. 물론 그런 모습을 바라보는 우리는 깔깔깔 아주 재미있게 웃는다. 이게 비합리의 참된 모습이다. 정신승리의 결말이다. 비합리를 통해 일말의 승리를 했을 때 맛보는 성취감은 있겠으나 그것은 결코 스스로에게 건강한 결과를 가져오지 않는다.

나는 일본인들과의 교류가 없어서 실제로 그들이 자기들끼리 한국에 대해서 어떻게 까고들 앉아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한국인들이라서 한국인들의 얘기를 많이 듣기 때문에 사회 속에서 은연 중에 묻어나는 일본에 대한 무시나 경멸의 냄새를 맡는다. 대체 어쩌다 이렇게 된 것인지 모르겠지만, 일본을 혐오하고 무시하는 것을 호기롭게 생각하는 문화가 생겨난 것 같다. 어떤 이들(팟캐스트 <나는 잉여다>)은 우리민족이 과거에 그들에게 문화를 전파해 주었다고 해서 아직까지도 그들이 미개한 줄 아는 모양인데, 일본인들이 가진 기술력은 물론이거니와, 사상의 깊이, 보편화된 개인주의(물론 양날의 검이다)들을 생각해보면 그들을 무시하는 것이 얼마나 비합리적인 일인가 하는 생각이다. 과거에 미개했다고 해서 지금까지도 미개한 줄 알았다가는 큰코 다치기 십상일 것이다. 물론 나는 그들이 그런 점을 알면서도 그렇게 얘기하는 것일 수도 있다고 생각을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런 행위가 정당화 혹은 합리화될 수 있을까? 그것은 합리적인 일이 될 수 있을까? 그것은 도덕적인 일이 될 수 있을까?

는 과 을 할 가 고 다. 우리 해야 할 것은 일본에 대한 반대, 그것도 일본의 우경화에 대한 반대이다. 우리는 그들에게 "너희는 다 개새끼들이야."라고 할 것이 아니라, 그들이 가고 있는 그 우경의 길이 그들은 물론이고 동아시아 전체 나아가 세계에 어떤 악영향을 끼칠 것인지에 대해서 경고해야 한다.

고 에 리 에 도 야 다. 앞서 말했듯 나는 한국의 내부에도 일본의 우경화에 대응하는 우경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고 본다. 반일이라는 가면을 뒤집어 쓴 비합리적인 혐일이 보편화될 떄 그것은 일본의 혐일과 시너지 효과를 일으켜 양국의 지성을 극단적으로 멀어지게 할 것이다. 더군다나 그런 식으로 혐오와 무시는 우리 스스로에게 이롭지 않다. 왜냐하면 그것은 합리적이고 도덕적인 방식으로 이루어진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합리성이 결여된 행동의 반복은 그 행동의 주체를 비합리적인 행위에 익숙해지게 만든다. 비도덕적인 방식이 인간의 영혼에 해롭다는 것은 고대 희랍 시대의 소크라테스 때부터 이어져 내려온 주장이다.

는 을 해 를 는 로 야 다. 우리는 비참해지는 일을 두려워하지 않아야 한다. 비참한 역사가 있다 하더라도 그것은 과거에 불과하다. 그 역사의 연장이 비참한 미래를 가져온다 하더라도, 아직 오지 않은 시간에 불과하다. 이것은 국가적 실존, 사회적 실존, 민족적 실존에 대한 이야기이다. 비참해지는 일과 무시당하는 일을 피하기 위한 비합리적인 노력의 결과가 위에서 본 그런 왜곡의 게시물이다. 우리는 일본의 역사왜곡을 숱하게 비판해왔다. 그런 우리가 역사왜곡을 한다면 우리는 더이상 그들을 비판할 자격이 없다. 이것은 도덕적 의무의 문제다. 따라서 과실의 경중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나는 우리 민족과 국가가 합리적이고 도덕적이기를 원한다. 그런 합리성과 도덕성이 동아시아와 세계를 선도하기를 꿈꾼다.

한 은 게 냐 가 다. 이 냐 가 할 다.

나는 우리 민족이 그런 진리에의 의지를 견지해 나갈 수 있는 힘이 있다고 믿는다.

내가 믿는 우리 민족의 저력이 바로 그런 것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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