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에 해당되는 글 84건

  1. 한 시간 뒤에 죽게된다고 가정했을 때 내가 썼던 글
  2. 4월의 긴 이름
  3. 뜬금없지만 함신우
  4. 마로니에 공원
  5. 임용 D-100, 경희
  6. 시라는 것2
  7. 치명적인 계절
  8. 어서와 우울증
  9. 사라지는 것
  10. 아름다운 해변
  11. 율서 프로포즈 PD편
  12. 남 좋은 일
  13. N’s 정리
  14. 모녀의 종전 혹은 휴전
  15. 진정으로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하는 일에 대하여
  16. ‘SNS가 인생의 낭비다’라는 말에 대하여
  17. ‘인간은 정녕 어느 정도의 욕망을 가질 수 있을까’
  18. 2014.05.12
  19. 2014.05.25
  20. 2014.05.22
  21. 2014.05.21
  22. 남학우 신고식에 대한 고민
  23. 2014.05.19
  24. 2014.05.12.
  25. 의기소침지왕
  26. 굿바이 4월 the 잔인한
  27. 그러고보면 때로는 로맨스
  28. 대용형이 다녀갔고, 경희와의 통화
  29. 원재 돌잔치
  30. 마음의 문을 닫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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뜬금없지만 함신우







뜬금없지만 함신우


꿈 속에서 함신우가 나왔다.


2014.09.23.


한때의 감정을 생각해보면 그렇게 또 뜬금없는 것은 아니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하여간 몽환의 미로에서 ㅂ서어나온 아침은 매우 피곤했다.


그렇지 역시 꿈이라는 것은 아침의 물안개와 같은 것이라, 햇살 비치기가 무섭게 증발되는 것이지 기억은 어딘가로 사라져버리고.. 한줌도 안되는 감정만이 남았다. 홍상수이ㅡ 영화와도 비슷하게 찌질한 모습과 찌질한 감정이 쌓여가고.. 감히 어떤 말도 하지 못하면서 멀리서 바라보고 또 숱하게 그러기를 그치지 않는 것은.. 내가 꿈속에서 궁극적으로 바랐던 것은 새하얀 무언가가 나를 좋아하는 마음이었다.


며칠 전 오랜만에 미혜의 사진을 본 영향이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든다. 아마도 그럴 것이다. 그래야 할 것이다.


눈물을 흘렸던 것도 같다. 부연부연 설명을 하려해도 할 수가 없다. 팔다리가 떠오르고, 차는 혼자서 굴러가다 어딘가에 쳐박혔다. 아마 한번도 타본적 없는 SM3였을 것이다. 그것은 며칠전 어린이집 유리창을 닦고 있는 나를 힐끔 쳐다보고 지나간 여자를 픽업한 그 차였을 것이며, 그것은 세상에 대하여 내가 지니고 있는 피해와 배상에 대한 심리를 표상해주는 존재임에 틀림이 없으리라는 생각이다.


분명 탐스럽게 생각했던 나날들을 생각해 보면 그렇게 뜬금 없는 것은 아니지만, 생각도 별로 하지 않았던 최근을 생각해보면 그것은 확실히 뜬금없다.


나는 혼탁한 일상에 지친다. 내가 걷고 있는 곳이 어디인지 알지 못하고 나는 그저 자전거가 타고 싶을 뿐이다. 정직하고 솔직한 모습으로 무엇인가를 긍정하는 스스로를 긍정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많은 것들이 소실되어 안타까운 오늘이구나. 비가 온다고 했다. 창에 비가 스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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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로니에 공원







마로니에 공원


2014.09.20.


상경했다.


계획에는 없었던 마로니에 공원에 나의 존재를 놓아두고 있다. 그건 확실히 알겠는데 다만, 나의 실존은 어디에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 나의 실존은 경희를 쫓는 동시에 또한 누군가에게 쫓기고 있는 것이고, 들푸른 평야를 달리는 동시에 나의 골방, 가장 깊은 어둠에 영원히 잠겨 있는 것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나는 이번에도 나름대로의 스스로를 지켜낸 동시에, 그리하여 어김없이 나를 잃어버린 존재가 되었다. 혼돈으로서의 스스로는 여전하되 그것은 어디까지나 혼돈에 다름 아니다.


2014.09.020 즈음의 나는 누군가에게 한없이 절실한 존재인 동시에 그 누구에게도 상관이 없는 존재이다.


혼자서 글을 쓰니 해가 지고 사위가 저물었다. 사람들은 결코 사라지지 않았다.


불쾌한 곳이라고 몹시, 페이스북에 남겼다. 소리와 군상의 범람, 그리고 그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이는 자아들에 대해 불쾌했다.


천만의 인구를 모두 담을 수 없을 줄을 알면서도 길에 휘둘러지는 시선은 공상의 원수를 낳았다.


긴밤이 도래하기를 빈다. 언젠가의 멸망을 조금더 수월히 믿을 수 있을텐데.


공허하다 말하기엔 나는 비워지지 않는 그릇이요.


절망을 논하기엔 희망의 섬은 마르지 않고 대를 이을 것이다.


군상의 얼굴들은 늘 곁에 가까이 두고 바라볼 또다른 얼굴들과 함께한다. 나는 밤이 되고픈 충동에 숱하게 고개를 떨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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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용 D-100, 경희







임용 D-100, 경희


만년필이 인연에 있어 어떤 역할을 하게 되리라고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있었던 것도 같고, 없었던 것도 같다. 만년필을 다룬 병맛 다큐멘터리 때문에 크진 않아도 인연과 관련하여 어떤 계기를 맞게 되리라는 생각을 해보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녀와의 대화가 즐겁다. 그녀도 나와의 이야기가 즐거웠는지 모르겠지만 그렇기를 바란다.


요즘에는 다시 자전거에 필이 꽂혔는데 때마침 D-100이라고 그녀가 알려주었다. 자전거에 꽂힐 때 나는 마침 허정의 상태에 도달했던 모양인지 별다른 동요가 일지는 않았다. 오히려, 자전거 타기 좋은 고장으로서의 전라남도를 생각하게 되는 것을 보니 이제는 나도 올 한 해에 대한 갖은 미련을 얼추 버렸는가 하는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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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라는 것2







시라는 것2


시라는 것에 대한 또다른 영감.


어디에서 얻었는지는 정확하게 생각이 나지를 않는 것이지만, 이것은 그것이 지향하고 단 의도할만하여 결국에는 그 어딘가에서 만족하게 되는 것에 대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렇다. 그러니까 처음에는 그냥 잔잔하게 나의 감정을 서술하기 뭣했던 것이 시작이 아니었을까. 아름답지도 않고, 너무나 투박한 솔직함에 오히려 오해와 비웃음이 되기 쉬운 이야기들을 자르고.. 다른 빛깔의 단어를 입혀서 조합해내던 것이 시의 시작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가이 든다.


그러고보니 저기에 시의 숲에서 헤메이고 늪에 빠져 허우적이는 이가 보인다. 내심 신나게 비웃고 보니 그것은 거울에 비친 나다.


그에게는 차라리 나라는 존재를 만나지 않는 게 좋았을 것이다. 그냥 알량한 추억과 자부심을 가지고 실컷 배알이 꼴리는 삶을 살아가는 게 좋았을 것이다. 비굴한 사람이 될지언정 비참해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결국 그는 비참해지고 말았다. 쓰지 못한 것들과 쓰지 못한 것들을 맡으며 때로 하루를 헤멨겠지. 그리고 어느 순간 타협을 했을 것이다. 비참의 길을 거슬러 비굴한 고향으로 들어갔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그에 대하여 나름의 책임감을 느낀다. 하지만 그의 바람과는 다르게 그것은 죄책감은 아니다. 그것은 다만 나의 감정에 솔직하게 나의 의지에 의해서만 허용될 수 있는, 나의 의욕에 의해서만 용의될 수 있는, 일말의 선의에 다름 아니다. 차라리 가만히 있었다면 더 좋았을 텐데.. 나의 멱살을 잡으려는 순간 마음은 닫힘을 의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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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명적인 계절







치명적인 계절


많은 것이 나를 떠났다. 빠릿빠릿함도 공부, 책, 건강, 연애, 친구, 돈, 가족, 나의 생활. 그것들과 바꾼 것은 나의 돈인가. 하지만 돈도 그다지 많이 남은 것 같지는 않다.


올해는 4번의 월급이 남았는데.. 그것을 다 합쳐도 천만원을 만들지는 못한다.


공부라도 했으면 뭔가 덜 억울할 텐데.. 억울하다고 말하기에는 결국 나의 책임인 걸까.


그래도 생각해보면 계절 탓을 하고 싶다. 매년 이맘 때는 공부도 무엇도 아무것도 못 했던 것 같다. 나에게도 치명적인 계절이 있는 것인가?


머릿 속에 그 무엇에 대한 의욕도 없는 기분이다. 자전거를 타고 싶다. 메신저백을 메고, 하지만 내가 달리지 못하는 이유는 자전거 때문이 아니라. 그것은 나의 만들어 내고 있는 나의 일상에 기초한다.


치명적인 것은 계쩔이 아니라 나의 마음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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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서와 우울증







어서와 우울증


연수가 끝났고, 동시에 율서의 프로포즈가 끝났다. 그리고 나는 긴 잠을 잤다. 누군가들의 눈치를 본 게 아니라면, 흘러가는 주말을 저어하지 않았다면 좀 더, 좀 더 그렇게 계속 잤을 것 같다.


이래저래 마음이 아팠다. 이래저래 술을 들이부어도 마음은 쉬이 무너지지 않았다. 끊어지지 않는 이성은 그저 감성만을 거세당해 그저 앙상했다. 떠오르는 듯 했다가 수장되어 곧 물귀신이 되어버리는 감정을 이성에 새겼다. 용서하지 않으리라는 옹졸한 각인들이 얼마나 무시무시한 비참을 불러올 것인지 모르지 않는데도 멈출 수가 없는 것이다.


그래도 그 모든 것을 예상하기는 했다는 생각이기는 한데, 그래도 이 정도의 충격과 아픔을 가져오다니, 예측이 부족한 것인가, 내가 모자란 것인가. 아니 이것은 삶 자체에 내리는 아픔이다.


나의 삶이 옳지 못한, 어울리지 않는 길로 나아갈 때 필연적으로 감수할 수밖에 없는 고픔통이다. 혹은 지금까지 제대로 되지 않은 삶을 살아낸 데에 대한 대가이다. 이른바 지금이ㅡ 내가 관성적인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명백한 표지에 다름 아니다.


‘아무 것도 바라지 않는다. 단지 황금률이 지켜지길 희망할 뿐이다.’ 어느새 그것이 나의 가장 큰 콤플렉스가 되어 버렸다. 살아보니 이 세상은 끊임없이 무엇인가를 기대하고 그에 따라 끊임없이 실망하고 좌절할 때 그나마 겨우 자신의 본전을 지킬 수 있게 된다. 그런 점에 있어 나를 공직에 집어넣기 위한 어머니의 생각은 옳았다. 살아남기 위해 무수히, 해서는 안 되던 기대를 거듭하는 삶이어야 한다는 깨달음에 극도의 피로를 느꼈던 나날들이었다.


그럴 때는, 그런 사람들의 연락이 줄을 이어 들어올 때는 겁이 나고 우울함이 몰려온다. 아주 극도의 우울함이 환청과 함께.


요즘은.. 마음 편히 글을 쓸 공간이 부족하다는 생각을 한다. 집에서조차 방해받지 않고 무엇인가를 몇 시간 하기가 쉽지 않다. 쓰고 싶다는 충동과 혼자일 수 없는 피로함이 각축을 벌이다 몇 번이고 결판이 난다. 누워있는 나의 몸은 관성에 완전히 지배된다. 멀다. 멀어. 너무 멀어서 일어날 엄두를 낼 수 없다.


프로포즈 작품, 내가 만든 그 무엇에 대하여 머지 않아 포기해야 하리라고 생각하고는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갑자기 단번에, 전적인 방식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래도 공동기획의 공동제작이라 생각했건만 아무리 클라이언트라 하더라도 그리 당연하게 자신의 소유권을 전제하고 있을 줄은 몰랐다. 예상하지 못한 바이다.


좀처럼 사회적 각성을 이루지 못한 세태도 마찬가지다. 나야 뭐 돌연변이. 사회적 각성과 마초의식과 노비근성이 합쳐져 구성되어 있는 자아이다.


이것은 포기가 아니다. 선택의 여지가 없는 상황에서 결국 끝까지 선택을 하지 않기로 결단한 것이다. 매력적인 대상이 없는 상황은 아직 연애나 결혼의 포기를 논할 단계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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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지는 것







사라지는 것


분명한 것은 연수가 끝나간다는 것. 입버릇처럼 말한다.


“이게 사는 건가.”


돌아오는 답이야 뻔하다. 그것은 충분히 배부른 소리가 될 수 있다.


무릇 시라 함은 편지의 다른 말이다 생각한다. 보내지 못한 편지. 보낼 수 없는 편지. 전할 수 없는 순간과 깨달음을 마음에 못 다 묻고 남고 남아 글로 치워두는 것이 시의 용도가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을 만났다는 생각이다.


다만 시를 쓰는 자격을 생각하는 것이다. 그것이 편지라는 의미에서 시를 쓰는 사람은 누군가를 사랑해야 할 것이다.


분명히 그렇다고 생각한다. 미워하고 증오하는 사람을 위해서 시를 쓸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누가 뭐라해도 사랑하는 사람을 생각하면서 그 사람을 마음에 담고 하다못해 그것이 사랑이라 믿고 쓴 시만큼 아름다운게 있을까 생각한다.


네게 서사를 준다. 하지만 그게 가능할지는 의문이다.


이를테면 <돌아온 집>이라는 키워드로 화두를 제시해도 사람에 따라 수많은 이미지가 떠오를 터.



역시 소설을 써야겠구나. <집에 가는 길>부터.


2014.08.05.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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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해변







아름다운 해변


세상에는 다양한 여자가 있고, 이쁜 여자도 있고 못난 여자도 있다. 그리고 세상에는 친구로서의 경희와 여자로서의 경희가 있다. 나는 친구로서의 경희를 별로 잃지 않으면서 연인으로서의 경희를 얻고자 했다. 예상된 경우의 수로서 나는 모든 경희를 잃고 있다. 혹은 이미 잃었는지도 모른다. 울산여행에서 연락을 너무 많이 했던 모양이다.


오늘은 문득 아름다운 해변을 상상했다. 울산에서 본 해변은 아름답지 않았다. 그것은 사람이 없는 곳에서만 태어난다. 나조차도 없는 해변을 나는 꿈꾼다. 그 해변이 상징하는 것은 나의 마음이다. 누구도 찾아올 수도, 들어올 수도, 머물 수도 없는 마음을 나는 꿈꾼다. 기실 사람들은 앞다투어 그런 해변을 마련하고 있는 것 같다. 늘 그렇듯 나는 술에 취한 마지막 이를 챙기고 조용히 울며 노래를 부르며 송아지의 눈을 한 채 나의 해변으로 돌아가 사라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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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서 프로포즈 PD편







율서 프로포즈 PD편


김정환입니다. 현재는 충북대학교 윤리교육과 조교이며 2014년 구율서 프로포즈 영상의 공동기획, 촬영, 편집, 각본을 맡았습니다.


벌써 두 번째인가, 세 번째 작품인 것 같은데요. 이번 작품은 특히 힘들었던 것 같습니다.


일단 클라이언트인 구율서군의 의지가 상당했던 것이 주요했을 것이고, 그와 함께 구상을 하고 작업을 하는 과정에서 제 스스로도 영상과 서사에 대한 완성도에 있어서의 욕심을 갖게 되었던 것도 있었지요.


거의 두 달 간 함꼐 퇴근 후 만나서 구상을 하고 촬영을 하고 검토하고 다시 회의하고 고민을 한 결과물이 바로 여러분이 보신 영상입니다.


애당초 기획에 포함되었던 원대한 아이디어들을 모두 구현하지 못한 게 아쉽기는 하지만, 주어진 시간과 자원이 허용하는 한도 내에서는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입니다.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죠. 느끼셨겠지만 이 작품을 관통하는 방향성은 여백과 침묵입니다. 그런 의지가 처음부터 작용했던 것은 아니고요. 소스를 모아가면서 편집을 해나가는 동안 이런저런 시도를 해보니 클라이언트와 제가 공유할만한 스타일이 바로 이런 스타일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러다보니 영상의 후반으로 갈수록 여백, 침묵, 망설임, 어색함, 암전, 점멸 등의 아이템을 챙기는데 심혈을 기울이려 했습니다. 그런 맥락에서 영상편지를 보내주신 분들, 그중에서도 특히 리나님에게 깊은 감사를 전합니다.


많은 양의 다양한 소스를 숨쉴 틈 없이 보여주기 보다는, 눈빛과 응시와 침묵과 망설임과 넉넉한 간격을 통해서 최종적으로 이 영상을 보게 될 예비신부가 그 순간의 감정을 여유를 가지고 충분히 만끽할 수 있도록 하고자 했습니다.


이번 작품 역시 다른 작품들이 가지고 있는 보편적인 요소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를테면 포토 슬라이드쇼와 영상편지의 구성이 바로 그러한 것들이지요. 하지만 여타의 영상과는 차별되는 요소들이 있으니 사실 이거싱 이 작품의 포인트입니다. 그것은 바로 준비과정 영상과 예비신랑인 신랑의 육성멘트입니다. 자막 넣느라 들인 고생은 논외로 할께요. 100% 연출인 준비영상을 찍느라고 고생한 카메라 앞에서 작아지거나 커지는 나의 친구들.. ‘했’발음을 못해서 고생한 예비신랑에게 경의를 표합니다.


지난 광훈이 영상에서 삽질을 하면서 얻은 트라우마 때문에 이번에는 도저히 본 영상 분량 안에 제 모습을 넣지는 못하겠네요. 그래서 이렇게 따로 메이킹 PD필름을 준비합니다. 이런 일에 천부적 재주를 가진 제게 심심한 위로를 전하며, 모쪼록 다음 작품은 더 발전했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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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 좋은 일







남 좋은 일


연수 중 2014.8.2. 토요일 낮


간만에 마음 편하게 일어났다. 하지만 무엇인가를 해야한다는 강박은 여전했다. 무엇보다 덥다.


학교를 갈까 말까 한다. 갈까 말까. 귀찮다? 흠.. 버스만 타면 될텐데. 아무래도 영 귀찮은 걸. 하여간 오전에는 율서 동영상 작업을 했고.. 95%까지 완성도를 끌어올렸다. 박형원은 축가를 불러달라고까지 했는데.. 허허. 귀찮기도 한데 그보다는 일단 씁쓸한 느낌. 나아가서는 을씨년스러운 느낌이다.


그것은 남자에게 편지를 쓰는 것과 비슷하거나 혹은 더욱 끔찍한 일일 것이다. 결국 남 좋은 일만 한다는 점에 있어서 그것은 그렇게 끔찍하다. 나의 어머니는 그렇게 남 좋은 일을 하고 다니지 말라고 내가 어린아이일 때부터 신신당부를 해왔다.


하지만 나의 천성은 결국 타인을 위해 남 좋은 일을 하다가 죽어야 하는 존재인 모양이었고 결국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기브앤테이크의 보편화였다. 이것은 자유주의의 정신과 일맥상통한다. 다시 말해 그것이 내가 자유주의자가 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 내가 두 진영 사이에서 이렇게 피곤한 삶을 살지 않을 수 없는 이유다.


애증의 감정이 유증기처럼 가슴을 가득 채우고 폭발을 기다리고 있다. 조용히 기름탱크 위를 배회하는 이들에게 뭔가 해주고 싶은 말이 있는데 전할 방법이 없는 것.


주기 위해서도 받기 위해서도 명분이 필요한 것은 바로 그런 이유이며, 은혜를 모르는 이를 배척하고, 은혜를 지키는 이를 품에 안아야 하는 이유도 그런 이유다. 더 이상 나빠지지 않기 위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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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s 정리







N’s 정리


<그러고보면 생이라는 것은 자기검열과의 싸움일지도 모른다.>


답은 대화와 대화 사이에 숨어있는 것이고, 그러다 보니 해답을 얻기 위해서는 말이 통하고 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는 친구를 만나는 게 좋고, 헛되지 않은 글을 쓰기 위해서는 키보드가 아니라 펜을 집어드는 것이 좋은 모양이다.


“그러고 보면 그 처자를 만나면서 나는 ‘이 여자와 함께라면 기존에 내가 가지고 있던 권력에 대한 욕구를 포기하고 그냥 그렇게 소락소락한 생을 살아가도 되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해보기도 했던 것 같다.”


핵심은 ‘권력에 대한 욕구’다 친구 앞에서 옛 사랑의 이야기를 하면서 나는 내가 가진 권력에 대한 욕구를 발견하게 되었다. 발견이라는 단어를 쓰기에는 지나치게 새삼스러운 일일지도 모르겠지만.


벗을 앞에 두고 괜히 할 말이 없어져서 큰 맘 먹고 꺼낸 이야기였건만, 대사는 길에 이어지지 못하고 이내 끊어져 버렸다. 서사에 대한 열망이 이다지도 크건만 나는 어쩜 이토록 단편적인 인간인 것일까.


돌아온 집에서 휴일을 맞이했고, 드문드문 괜한 가능성이 두둥실 방안의 공기와 함께 부유했다. 대체 그녀는 왜 나를 버린 것일까. 나의 성격과 스타일이 내키지 않았을까. 나의 비전이 비루해 보였을까. 권력에 대한 나의 의지에 겁을 먹었을까. 아니면 권력에의 의지를 기대했건만 그녀 앞에서 사그러드는 그 불꽃을 보고 실망이라도 한 것일까.


평생을 가져가야 할 의문일지도 모르겠다.


2015.0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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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녀의 종전 혹은 휴전, 그리고



모녀의 싸움이 종전 혹은 휴전을 맞이했다.


일주일하고도 이틀이 지나 동생이 말문을 열었다.


무엇이 냉전을 그치게 만드는 원인이었는지는 아직도 알질 못한다.


짐작이 가는 것으로는 내가 술 먹다 남겨 싸온 닭강정, 그리고 일요일이라서 함께 교회에 간 모녀 사이에 어떤 대화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것 정도다.


이 글을 쓰는 지금은 오히려 더욱더 회의적이고 씁쓸한 느낌이 넘치고 있지만, 그래도 아까 동생이 낮에 활기찬 모습으로 또 까불까불대는 모습을 보니 기분이 나쁘진 않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엄연히 이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은 전혀 해결되지 않고 있다. 때문에 이렇게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못한 채 그저 작금의 불편함에 못 이겨 냉전이 종식되는 상황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역사를 배운 인간으로서 본능적인 불안과 불쾌감을 떨쳐낼 수 없는 것이 지극히 당연한 일이 아닌가 하고 주섬주섬 정리를 해본다.


가족이라는 것에 대하여 이 정도의 감정 밖에 갖지 못하게 된 스스로를 이따금씩 확인하는 것은 매우 유감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 점은 인정해야만 할 일이라고 스스로 인식하고 있다. 다만 그러한 인식과 함께 내가 가족에 대해서 갖는 인식과 감정 역시도 지극히 오래 되어버린 것이라서 이제는 당연할 정도로 평상시엔 자각하지 못하는 것이고, 나아가 그것은 하나의 가치관이 되어 나의 사고방식에 뿌리깊게 자리하고 있다는 점에 오히려 현실적인 문제라면 문제가 아니겠는가 하는 점이다.


그러고 보면 확실히 가정환경이 인간의 학습능력 혹은 나아가서 도덕적 능력에 작용하는 영향력은 심히 지대하다 하겠다. 그것은 인간이 기본적으로 맺고 있는 것이 가정환경 속에서의 가족과의 관계이고, 인간이 가정을 떠나서 맺게 되는 인간관계라고 하는 것들은 기실 가족이라는 관계를 확장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맥락에서 고려해볼 때는 실로 그 개연성이 이루 말 할 수 없이 그 폭을 넓혀 나간다는 인상이다.


나의 경우에는 관계라는 것을 지극히 이해타산적으로 바라보고자 하는 하나의 축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에 대하여 어쩔 수 없이 갖게 되는 인력의 감정이 공존하며, 그 두 가지의 감정은 심심찮게 나의 내외부에서 마찰을 일으키고 내가 맺고 있는 관계를 통하여 현시되어 나타난다. 그리고 그 두 종류의 감정이 맺고 있는 하나의 구조는 인간 관계 속에 있는 나에게 있어 하나의 엄연한 능력으로 작용하고 있는 듯 하다. 물론 관계성이라는 것을 하나의 능력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면 말이다.1)


1) 이에 대해서, 관계성을 능력이라고 인정하지 못하는 정말 미개한 인간들에게 있어서는 애당초 이 글을 읽지 않는 게 좋았을 것이며, 지금까지 읽은 글 역시도 그냥 잊어버리시길 추천한다.








진정으로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하는 일에 대하여



그녀의 이야기를 적을 마음이 생겨서, 용기도 들고 해서 술의 힘을 빌려서 침대에 누워 노트북을 배 위에 올렸더랬다.


결과적으로 나는 그녀에 대해서 그다지 제대로 된 글을 적어내지 못했다.


첫 번째 문제는 그녀에 대한 나의 기억 자체가 그냥 내 일방적인 것에 불과한 것이기 때문에 다분히 위험한 인상일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당시의 나는 지나치게 그녀에게 푹 빠져있었다. 그녀가 일방적으로 연락을 끊은 것은 아무래도 그런 이유 때문이었겠지. 그녀 자체가 가지고 있는 매력은, 나로 하여금 그녀와 함께했던 시간들을 이 세상 그 무엇보다 아름다운 것으로 만들어 주었다. 그 시간이 그리 길지 않았다는 것이 뼈에 사무칠 정도로 안타까울 만큼 그녀는 나에게 있어서 참으로 귀하고 아까운 존재였다. 하지만 그래봤자 그것은 어디까지나 나의 일방적인 감정에 불과했을 가능성이 다분한 것이다. 그녀 역시도 나와의 만남에서 그런 감정을 느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지만, 그 관계의 건전성을 생각해볼 때, 그리고 그 당시에 내가 얼마나 개차반이었는지를 생각해 볼 때 그럴 가능성은 별로 기대할 수가 없다. 아마도 그래도 나는 그녀에 대한 이야기를 적어보려는 시도를 좀처럼 할 수가 없었고, 애써 그런 시도를 함에 있어서도 좀처럼 제대로 된 이야기를 적어낼 수가 없었던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그렇다 한 마디로 자신감의 부족이다.


두 번째 문제는 기억의 불확실성이다. 분명히 ‘한 여름밤의 꿈’이라고 묘사될 수 있을 정도로 그 기억은 찬란하고 아름답게 빛나는 것이기는 하지만, 동시에 흐리멍텅한 것이기도 하다. 때문에 삶의 몇몇 마디에서 불현 듯 마주하게 되는 그녀와의 기억들을 더듬어 문자로 표현해 내려고 할 때마다 나는 심각한 불투명 유리를 마주하게 되는 것이다.


세 번째는 타인의 시선이다. 그녀가 못 생겼다는 사실이, 혹은 관계의 비정상성이라는 특징이 나로 하여금 그녀와의 이야기를 끄집어냄에 있어서 끊임없이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게 만든다.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그냥 아무런 이야기나 써보려고 생각을 해봤자 소용이 없는 일이었다. 나는 철저하게 타인들의 눈 사이에서 살아가고자 하는 욕망을 가진 인간이기 때문이고, 그 연장선 위에서 내가 글을 쓰는 이유는 결국 누군가에게 그 이야기를 들려주고자 하는 인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글을 씀에 있어서는 내가 누구인지를 철저하게 가리고 쓰는 시도가 필요할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고보니 기실, 언제나 나를 감추고 쓰는 글이 그나마 봐줄만 했던 것 같다.







‘SNS가 인생의 낭비다’,라는 말에 대하여


나는 반박을 하곤 했다.


인정하지 않았다.


대신 나는 ‘인생의 낭비라는 것은 SNS가 아니라, 댓글, 혹은 게시판 활동이다.’라는 명제를 세워보곤 하였다. 게시판에 게시물이나 댓글을 다는 행위로 인하여 타인과 의견의 불합치를 이루게 되고, 대립하게 되면서 소모적인 양상으로 치닫는 상황이 그야말로 인생의 낭비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만약, 그러한 소모적인 노력을 통해 상대방이나 집단의 마인드를 조금이라도 바꿀 수 있다는 희망이 있다면 그 소모는 모종의 투자로 승화될 수 있는 것이겠지만, 내가 생각하기로, 아무리 온갖 카오스 이론적 가능성들을 고려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사태를 더욱더 악화시키면 시켰지 상황을 개선시킬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이를테면, 인터넷 공간은 이미 진지하게 자신의 의견을 개진하고, 그 어떤 새로운 생각과 사실, 혹은 생각하는 방법들을 학습할 수 있는 공간이 아니라, 어떤 새로운 가십에 눈과 귀를 기울이고, 자신의 감정을 쏟아붓기 위한 배설의 장으로 변질 되어 버린지 오래라는 것이다.


다만, 정작 세간에서 한심한 대상으로 매도되고 있는 SNS, 즉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같은 경우에는 타인에게 적절한 방식으로 자신을 포장하거나,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자신의 의견을 개진할 수 있다는 점에 있어서, 그것은 결코 ‘인생의 낭비’가 아니라는 개인적인 확신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트위터와 관련해서는 타인이 나의 의견에 동의하든 안 하든 간에 그냥 나의 생각을, 그것이 개소리든 아니든 간에 공허한 인터넷 상에 소리지를 수 있는 장이 된다는 점에 있어서, 그리고 그것이 그 누구에게도 폐를 끼치지 않는다는 것으로 설계되어 있다는 점에 있어서 참으로 매력있게 다가왔다. 페이스북의 경우에는 나의 근황을 타인에게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고, 나 역시도 타인의 근황을 효과적으로 수집할 수 있다는 점에 있어서 참으로 유용한 수단이었다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근래의 나의 경우에는 기존에 내가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던 SNS에 대해서 조금은 다른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과연 인간은 완벽하게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하는 의문이 서서히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특히 페이스북의 경우가 그러했고, 트위터의 경우에도 이미 꽤 오랫동안에 걸쳐 관계를 맺어온 이들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세상의 이슈나, 인간에 대한 회의적이고 잔인한 생각들을 표현하고자 하는 시점에서, 역시 어김없이 타인의 시선을 의식한 나머지 나는 스스로 자기검열을 단행해버리고 마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러니까 결국 내가 온전하게 나의 생각을 표출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면, 애당초 내가 세웠던 명제의 건전성이 위험해지는 것이 아닌가? 결국 SNS도 여타의 게시판과 같이 인간과 인간 사이에 연결된 네트워크에 불과한 것으로서, 그곳에서조차 온전히 나의 생각과 감정을 표출하는 것이 불가능한 것이라면, 이 역시 소모적인 것이 아닌가? 이러한 깨달음을 얻은 이상 이쯤에서 SNS에 의존하는 스스로의 행위를 바로잡는 것이 지극히 합리적이고 합당한 일이 아니겠는가.


무언가가 아직도 불분명하기는 하다. 나는 과거와의 단절을 희망하고 있는 것인가, 아니면 SNS를 이용함에 있어서 새로운 방식을 취사선택하려 하고 있는 것인가?


굳이 말하자면 전자에 가까운 것 같다. 새로운 세계로 들어갈 준비를 하고 있는 나는 제법 노력을 했었음에도 불구하고, 과거와의 상당한 이질감을 경험하고 있다. 굳이 말하자면 과거의 여러 관계들이 번거롭고 귀찮게 느껴지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지금까지 내가 취했던 노력들을 앞으로도 계속해야 한다면 절대 사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뻔뻔스럽게도 내가 했던 노력과 열정의 절반도 보여주지 않으면서 정말 뻔뻔하게 나에게 이러저러한 것들을 요구하는 이들을 바라보면서 나는 무슨 생각을 해야 하는가? 내가 베풀었던 은혜에 대하여 그들이 그 무엇인가 감사하다는 생각을 했으면 하는 생각이다. 그리고 내가 이룬 많은 것들에 대하여 나의 위대함을 인지하기를 바란다. 하지만 그런 일들이 가능하지 않은 상황이라는 것을 아는 나는 그런 기대를 접고, 다른 방법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것 같다.


문제는 의지다. 외로움을 딛고 무엇인가를 할 수 있는 의지. 외로움을 외면하고서라도 내가 의지를 고취할 수 있게 만드는 그 무엇인가는 과연 무엇일까? 이미 무너져가는 가족들을 먼 시선으로 바라보면서 여전히 나는 호흡이 거칠다.







‘인간은 정녕 어느 정도의 욕망을 가질 수 있을까’

대명사 하나를 적는다.


그녀.


그녀의 이름은 정원이다.


‘정’이라고 적고,


‘원’이라고 적는다.

‘인간’이라고 하기엔, 나는 남자 혹은 여자 한쪽의 신체적ㆍ심리적 성 한쪽만을 차지한지라 장담하지 못하겠다.


육체적ㆍ심리적으로 남성인 나는 감히, 여자는 그 자체로도 아름답지만, 그녀가 진정으로 아름다워지고 사랑스러워지는 순간은, 그녀가 누군가의 관찰대상이 되고, 누군가로부터 사랑하는 존재가 될 때라고 고백한다.

사랑 앞에 겸손은 무의미하다.


‘생각한다’라는 것은 ‘믿는다’와 다를 바 없고, ‘믿는다’라는 것은 곧 ‘그렇다’는 의미와 위상을 차지한다.


나는 그녀를 사랑했다.


나는 그녀를 사랑했다고 믿는다.


나는 그녀를 사랑했다고 생각한다.

먼 길을 돌고 돈다.


여행을 하던 나는 끊임없이 되뇌었다.


“이것은 무언가를 얻기 위한 여행이 아니라, 무언가를 버리기 위한 여행이다.”


그리고 덧붙였다.


“다른 모든 것을 얻기 위해서.”


긴 여행에서 돌아와, 많은 것을 얻었고, 많은 것을 잃었다.


잃음과 얻음의 연속에서 몸과 마음이 함께 피로해지고 피폐해졌던 것 같다. 차라리 엄살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만큼 고통을 지극히 현실적이었다. 눈앞에서, 피부 밑에서 고통이 쉴새 없이 꿈틀거렸다.

저 멀리 당신이 걸어간다. 몇 번을 떠올린다 해도, 풍경은 어두운 밤, 드문드문 인색하게 밝혀놓은 가로등이 국도를, 그 옆의 풍성한 밭을 서툴게 그리고 있었다.


‘여름이 오는구나. 거침없이 여름이 오는구나.’


그렇게 생각하게 되는 밤이었다.


저 멀리 당신이 걸어갔다. 아장아장 걷지도, 성큼성큼 걷지도 않았다. 내숭일 게 뻔했을지라도, 양팔 벌려 내딛는 걸음걸음마다, 내 발바닥 마디마디가 행성의 지표면에 닿아 셀 수 없는 키스를 나누는 기분이 들었다. 입맞춤마다 별가루가 반짝여, 하는 수 없이 가슴이 무너졌다.


저 멀리 달려가는 당신을 잡아야했다. 만날 수 없는 가을이 될까봐. 하지만 잡을 수 없을 만큼 당신은 앞서 달려가 버렸다. 가로등의 행렬이 문득 끝나던 곳, 어둠의 현관에 들어서며 문득 돌아보던 당신이 거기 있었다. 괜히 거칠게 남은 손의 감촉, 수줍게 숨기던 뒤꿈치가 순서대로 나의 기억에 작별을 고했더라. 그대 미련 없이 그렇게.

“너와 함께 있는 건 이렇게 좋지만, 이렇게 죽고 싶지는 않아.”


꿈을 말하노라면, 그녀 배시시 웃으며 말했다.


“그래요. 그렇군요.”



괜히 미움이라도 불러보려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그렇게 마냥 걱정해서는 안돼.”

2014.05.12







피곤하구나


피곤하구나 나의 몸이여, 어쩌면 이리도 힘든 것일까. 주말의 휴식이 아직 부족했던 모양이다. 아니면 스트레스. 무엇이 나를 이렇게 힘들게 하고, 무엇이 나에게 스트레스로 다가올 것인가. 외로움?무엇이 외로운가. 봐라 나는 외로움을 모르는 사람이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좀처럼 그렇지가 못하다. 외로움에 대한 면역이 지금의 나에게는 없다. 이를테면 지금의 나는 그루브가 없다. 이것은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이다. 그루브라는 것 역시도 사람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그루브가 먼저인가 아니면 사람이 먼저인가? 이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욕심을 내리자니 스러질 것들이 너무나도 많구나.


저녁을 먹고는 문득 그런 생각을 했다. 관계에 따라서 아름다울 수 있는 거리가 다 따로 존재한다는 그런 생각이 드는 것이다.


2014.0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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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5.25.


참 많이 변했구나.


주일이라하는 일요일의 오전에 대략 총총히 담배를 피우러 나갔다가 돌아들어오는 길에 들여다본 거울 속에는 그렇게 생각할만한 내가 들어있었다. 그러니까 3개월이란 시간 동안 나는 제법 많은 사람들을 만난 것이고, 아마도 그들이 나를 많이 바꿔놨을 것이다. 새롭게 만난 인연도 있고, 기존에 유지해온 인연이 새롭게 다가오는 경우도 있었는데 내게 스트레스로 다가오는 것은 대개 후자였다. 그래 이른바 스트레스다.


어제는 낮잠을 자는데 꿈 속에서의 나는 어두운 밤길을 걸어 집에 가는 중이었다. 밤이 너무 깊었다. 칠흑 같은 어둠이 사위를 채웠고, 덕분에 보이는 것은 앞서 걸어가는 이의 뒷모습 뿐이었다. 휴대폰 LED를 비췄지만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공간을 비출 수 있는 것은 앞서 가는 이가 들고 가는 등불이었다. 강하지는 않았지만 앞선 이의 등불은 분명 유일하게 그 공간을 비추고 있었다. 아니 요즘 웬 등불인가 싶을 법도 하건만 그런 이상함도 느끼지 못하고 홀린 듯 그를 따라갔다.


꿈에서 깨어나니 어스름한 저녁이었다. 계씨나 표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기도를 하고 싶기도 했다. 꿈 속에서 나를 인도하던 이의 정체가 무엇인지 궁금했다.


다만 좀 조용히 기도하고 싶었다. 시끄럽고 열성적으로가 아니라, 기복신앙에 매몰된 부끄러운 이들 사이에서가 아니라, 조용하고 성스러운 고귀한 사람들 사이에서 신을 찾고 싶었다.


교회에 나와 이 글을 쓴다. 예상했던 대로 나는 기복을 미끼로 한 세뇌의 장에 앉아있다. 헤어나올 수 없는 7일 마다의 감옥에 나는 절망한다. 잡으면 부스러지는 이미지, 칠흑을 밝히던 앞선 이의 등불을 향해 손을 뻗는다.


2014.0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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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5.22







2014.05.22.


그렇게 여실하여라 아침이여, 이제는 더 이상 태어나듯 깨어나는 아침은 아닌 것이니, 채 끊어지지 않은 어제를 등에 지고 구부정 허리를 숙여 아픈 추억을 토해내듯 세수를 함으로써 조악조악 아침을 지어내는 것이다. 나는 출근길에 책을 읽는다, 는 생각을 출근길에 걸으며, 책을 읽으며 한다. 종이를 때려오는 낯선 볕에 문득 절기를 의심해보기도 하는 것. 20여분의 시간을 채울 수 있는 거리를 걸으며 나는 기분이 좋다. 그 거리를 뛰어서 이동하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 행복하다는 착각을 해보기도 한다. 여름으로 치닫을수록 볕이 원망스럽다. 선글라스를 꺼낼까 하다 그만두었다. 충대병원 오거리에 닿으면 아직 10분이 더 남았다. 사람들을 생각한다. 교수와 학생들을.. 그들이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을지를. 그제서야 나는 비로소 집을 나선 인간이 된다.


오전이라는 시간은 기묘하리만치 빠르게 흘러간다. 모든 것을 포용하고 용서할 수 있을만한 유속으로, 나는 좀처럼 뭔가를 해내지는 못한다. 무엇에 충실하기 위해서는 무수한 외면에 집착해야 하는 까닭이다.


한 시간의 점심은 참으로 위대하다. 먹든 먹지 않든, 혼자 먹든 누구와 먹든 위대한 명분과 함께 한다. 명분이 떠난 자리엔 지독한 피로가 자욱하게 남는 것이고 그렇게 오후가 시작된다.


그래도 오후에는 뭐라도 하려고 하기는 한다는 생각이다. 하지만 머나먼 퇴근시간이 다가오매 나는 그만 술 생각을 해버린다. 이른바 사냥의 시간이다. 어슬렁어슬렁 학교의 숲을 헤매며 술상대를 찾기 시작한다.


불행인지 다행인지는 모르겠지만 사냥이 성공하는 확률은 낮다. 이 숲도 이젠 과거와는 다르게 좋은 사냥감들이 자취를 감추기 시작했다. 슬픈 일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이미 진작에 씨가 마른 다른 숲에 비하면 그래도 사정이 스나마 나은 편에 속한다. 그것을 위안으로 삼고 살아가야 한다는 것에 속이 좀 쓰리긴 하지만 그 앞에서도 결국 어쩔 수가 없다는 말을 들이밀 뿐이다.


그렇게 사냥에 실패를 하면 비참과 좌절을 막기 위한 항생제를 스스로에게 주사한다. 긍정이라는 약은 중독성과 부작용 때문에 적잖이 위험한 것이지만 살아남기 위해서라면 선택의 여지가 없다. 그게 싫다면 죽거나, 사냥의 기술이나 안목을 길러야 할텐데, 길러야 할텐데. 물론 그 외에도 괴물이 되는 방법도 있기는 한테, 거기에서 생각을 멈춘다. 괴물이 될 것인가? 그럴 용기가 나에게는 있는가.


그런 생각 속에서 퇴근을, 밤을 맞이한다. 밤이 서서히 그 눈꺼풀을 들어올리는 모습을 지켜보는 나의 눈동자는 잔뜩 겁에 질려있을 것이다. 새카만 밤의 동공에 어리는 내 모습을 언뜻 본 것 같다. 소름이 끼치고 머리카락이 곤두섰다.


으슥한 오솔길, 물음표 가득한 무덤을 지나 집으로 간다. 정작 두려운 것은 여름을 향해 거침없이 자라나는 풀들이다. 생명이 만들어내는 그늘이 문득 소슬하다.


2014.0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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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5.21







2014.05.21.


지난 밤에는 모녀의 다툼이 있었다. 좋게 말하면 다툼이요. 리얼하게 말하면 슬픈 싸움이었다. 딸은 효심이 부족했고, 어미는 지나치게 빨리 늙고 있었다. 하필이면 그날 읽은 책의 단편소설 김숨 - <막차>에서는 이런 구절이 등장했다. 여자가 늙어서 가장 절실해지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말이다. 소설은 그 세 가지에 대해 ①돈, ②딸, ③종교라고 했다. 소설의 주인공은 자신이 그런 것들 중에 어느 하나 가진 게 없음을 한탄했다. 반면에 나는 그 구절을 읽으면서 우리 엄마는 세 가지를 모두 가졌다는 사실에 안도했고 심지어는 우월감을 느끼기도 했다. 필수요소에 아들이 누락되는 노골적임에 불안해하고 분노하기 보다는 안도를 했던 것이다. 그것은 내 어미의 노후가 복될 것으로 예견되는 것에 따른 것이기도 했고, 그 구절이 선사하는 면책에 따라 만끽하는 홀가분함이기도 했을 것이다. 그래서 그러한 일말의 못된 생각이 현실의 화를 불렀는가 싶기도 했다. 자신이 경험한 서운함과 서러움과 비참함을 폭발시키는 어머니에게 딸은 역시 생을 통해 쌓아온 자신의 감정을 폭발시키는 것이었다. 악다구니만을 주고받는 두 사람 사이에 잠시 껴들었다가 이내 그만 두고 나의 둥지로 돌아와, 하던 게임이나 계속했다. 문득 드는 생각이라는 것이 저 모녀는 그래도 늦었지만 저렇게라도 싸우는 게, 앞으로를 위해서 저렇게 또 같이 자라 나아가는 게 낫지 않을까라는 것이었다. 사춘기를 제대로 경험하지 못한 아이가 그렇게 어머니의 손에 의해 결국 어른이 되고, 어머니도 그렇게 늙어가는 것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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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그런 생각을 하지 않은 건 아니다. 전통이라는 이름하에, 힘겹게 공모자를 만들어 이어가고 있는 이 일이 과연 옳을까. 옳음과 그름의 사이에서. 그 발음 사이에서 때로 정신이 들었다. 그렇다. 하기사 나는 어차피 옳음을 따지기 보다는, 유불리를 따지는 인간이었다.


그렇다. 어쩌면, 일이 이렇게 까지 이어져 온 것은, 나에게 옳음과 그름을 따지는 이들 보다는 유불리를 가지고 접근하는 이들이 언제 부턴가 많아졌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그렇게 생각하니 어지럽다.


문득 스스로를 하나의 프로세스라고 생각해 본다. 옳고 그름의 여부에 상관없이 선대에서 입력한 프로세스에 맞게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진행하는 기계라고 생각해 본다.


하지만 그것은 받아들이기가 힘들다. 나의 고민 때문이다. 온전히 겉치레를 위해서 그 무엇인가를 했다고 한다면 나는 자신 있게 억울함을 호소할 것이다. 가장 높은 자리에 설 때 마다 나는 가장 낮은 이들을 위했다. 가장 낮은 이들이 가장 빠르고 수월한 경로로 우리의 궤도에 진입하기를 희망했다. 비록 그 과정에서 설명의 생략이 있었는지는 몰라도. 실로 나는 그러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비록 그 과정에서 기존 세력의 형평성을 살피지 못하는 일이 있었는지는 몰라도. 나는 진심으로 어떻게든 그들이 최소한의 희생을 가지고 ‘우리’의 서사에 편입될 수 있는 길을 찾으려 했다.


어쩌면, 문제는 우리의 서사가 ‘희생’이라는 것을 핵심으로 하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획득이나, 성취가 아니라, 희생이나, 수호를 지상의 과제로 하는 집단이기 때문에 우리가 이렇게 움츠린 전통을 공유하고 있어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변명을 하고 싶다. 하나의 인간으로서, 왜 이렇게 되었는지. 역사의 죄인이 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그저 단순히 ‘비겁한 인간’이라는 단어로 매도되는 일을 피하기 위해서, 무슨 말이든 하고 싶다는 생각이다.


쉽게 말이 나오지 않는 이유는 몇 가지의 이유가 짐작된다.


첫째, 그 누구도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떠난 사람이든, 남은 사람이든, 새로운 사람이든, 그 누구도 이 괴리에서 발생하는 요구에 효율적으로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둘째, 그 누구도 역사의 이어짐을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힘겹게 엮어 나가는 우리의 서사가 이미 힘을 잃었음을 전제로 한다. ‘동문’ 혹은 ‘선배’라는 단어가 부담으로만 다가오고, 조교라는 존재가 그 사이에서 하나의 그야말로 교조 같은 존재로 확약하는 것으로 느껴지는 순간이 실제로 우리 후배들 사이에서 벌어지고 있을지도 모르고. 어쩌며 우리는 같은 공간에서 전혀 다른 서사를 씹으며 살아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한다.


 어지럽다.


다시 옳음의 문제로 돌아가자.


마음을 비울 필요를 느꼈다.


한꺼풀씩 한 해 한 해, 쌓인 역사가 벗겨져, 그 옛날 순수했던 학창 시절이 떠오른다.


옳음의 문제로 돌아가자고 했건만, 미안하지만, 이게 최선이다.


문득 생각났던, ‘그래도 그 때는 모두가 선했던 시절’이 있는 탓이다.


동기들 하나씩 고개를 돌려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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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5.19







2014.05.19.


지난 주에는 말이다. 병철과 악다구니를 했다. 내 돈 내고 술 쳐먹은 건 아닌 것 같은데 그러니 적어도 돈지랄은 아닌 것 같은데 그래도 참 한심하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그놈도 한심하고 나도 한심하다. 대체 우리는 왜이리도 한심한 것일까. 아니 사실 이 마당에 한심한 것은 오직 나뿐인지도 모르는 일이지.


학생회 행사 뒤풀이 가면 십중팔구 후회가 밀려온다. 무엇이 문제냐 하면 그들에 내가 녹아들지 못하거나, 내가 그들을 녹여내지 못하는 것이다. 이래나 저래나 나의 입지는 한없이 좁고 또 좁다. 김혜림에 대해서는 잘못 생각했던 게 좀 있었다는 생각이다. 어쨌거나 나의 실수고 타인의 연애에 지나치게 관심을 가졌던 것도 실수다.


시골에 가서 일을 하면서 이래저래 생각을 해봤다. 내가 할머니에게 기대하는 어른으로서의 체통을 아이들은 나에 대해서 기대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런 생각을 해봤다.

창영은 지 행복에 여념이 없고, 기홍은 졸업한 07이고, 병철은 투덜이 스머프에 문규는 요새 또 얼굴을 미추지 않는다.


문득 다 내던지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애당초 맞지 않고 말이 안되는 조합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내 새끼는 바라지 않는다고 호언장담을 했지만 문득 그런 다짐들이 무색해지는 순간들이 분명히 존재했고, 또 잦아지는 기분이다. 때로는 어쩜 내가 업무에서 받는 스트레스를 그들에게 투영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어느덕 서로에게 부담스러운 존재가 되어버렸다는 자각은 결코 반갑지 않은 것이다.


돈도 아껴써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자중하고 자중해야 할 것이다. 사랑한다.


2014.05.19 오후 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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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5.12.







2014.05.12.



며칠전에는 스승의 날&동문회에 다녀왔다. 뭐랄까, 그들에게 내가 이상하게 보이지 않았으면 하는 그런 생각이다. 어색함을 씻어달래려고 열심히 술을 마셨다. 그리고 열심히 유난을 떨었다. 열심히 움직였다. 딱히 잘 보이고 싶은 생각보다는 나에게 시비를 걸지 못하게, 아니 뭐 시비랄 것도 없지만 하여간 딱히 말을 걸지 못하게 하려는 마음이었다는 생각이다. 그리고 그렇게 술을 많이 마신 날의 다음날에는 여지없이 깊고 푸른 우울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눈을 떴을 때 가장 먼저 챙긴 것은 소지품보다는 정시닝었다. 정신이 그렇게 흐물흐물해진다. 기억은 끊어지지 않은 듯 끊겨있었다. 필시 무엇인가는 끊어졌을 터 가장 무서운 것은 내가 잃어버린 기억이 무엇인지 나는 결코 알 수 없으리라는 것이다. 다행인 것은 아슬아슬하게나마 나는 큰 실수들을 빗겨나간 듯 하다는 것이다.


2014.0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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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음악은 ‘야샤 하이페츠’


우울하다는 것으로 나의 상태를 묘사해보고자 한다. 나는 심히 슬픈 인간이 되었다. 음악이라도 들으니 그나마 살겠는 걸, 하는 기분이다. 오늘 나는 무슨 일을 했는가? 한가한 토요일이건만, 아니 금요일이건만 나는 아무것도 해낸 것이 없다는 생각이다. 분명히 등교할 때는 공부를 향한 나름대로의 포부를 가지고 있었던 것 같은데, 나는 결국 아무것도 해내지를 못했다. 책 한 번 펼치지 못했다. 일이 있기는 했지만 일 핑계를 대기에는 지나치게 나태했던 것이 사실이다.


무기력하다는 생각이 든다. 인간들에게 애써 활발한 척 보여주는 것도 지친 모양이다. SNS에 썰을 풍기면 나는 그들과 지나치게 나이가 차이났고, 지나치게 멀었다. 어쩌면 차라리 만나지 않았으면 좋았을 거라는 생각이 드는 이유는 그렇고 그런 것이다.


그나저나 정말로 우울하다. 집에 있을 땐 하루종일 혼자 있어도 전혀 외롭지가 않았는데 조교서의 삶은 참으로 적잖이 외롭다. 필요한 것을 술을 한 잔 기울이며 함께 늙어갈 인간인 것 같은데 그 조건을 충족시키는 인간이 생각보다 정말 없다. 행여나 조건을 만족하는 인간은 속이 너무 능구렁이 같은 것이다.


더불어 사랑할만한 사람도 없다는 생가이다. 어떻게 그렇게 없을 수 있는가 하고 생각해보니 그것은, 사랑의 대상이 될 법한 이들이 하나 같이 모두 다 지극히 인간이라는 것이다. 예쁘고 노래를 잘 하고, 글도 좋아하는 인간은 없다. 나조차 그러하지를 못하지만 정말 잘 없다.


실로 사랑할 가치가 드문 세상이다.


2014.05.09. 밤 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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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바이 4월 the 잔인한







굿바이 4월 the 잔인한


세월호도 그렇고 유난히 잔인했던 4월로 기억될 것 같다. 하지만 5월이 되니 날은 쉬이 더웠다 춥기를 반복하는 것이고, 마음 속은 조용히 잠을 청한다. 달라지는 것은 별로 없고 필시 다른 이들의 마음도 사정도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나는 간절히 믿어 보는 것이다.


가족 같이 사랑으로 본질적인 것들은 야속하게도 멀어질수록 아름답다. 사랑은 사랑은 사랑은.


그래서 사랑을 하고자 하는 이의 생은 외로울 수밖에 없는 것일 테다. 그리고 같은 이유로 사랑으로부터 도망치려고 하는 사람은 버림받는 것을 누구보다 두려워하는 이가 아닐까.


도망치는 일과 포용하는 일의 무한반복. 그것으로 점철되는 삶의 본질을 통찰하고 그러한 삶을 몇 번이고 다시 살만한 가치가 있는 것으로 긍정하고 의욕하는 일. 어떻게 할까. 모르겠다. 어린이날. 공부하겠다고 학교에 나왔는데 잘 안 된다. 아무래도 너무 놀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라면에 소주를 몇 잔 걸치고 초저녁에 소파에 누워 잠을 잤다. 불편한 잠자리를 추스르면서 이게 뭐하는 짓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서울에 갈 생각을 해봤다. 경희는 아마도 나를 만나주지 않을 것이다. 지난 몇 주 동안 그녀에게 향하는 나의 마음을 추스르니 나는 나를 지키고 동생으로서의 그녀를 지켰으나 남녀관계로서의 그녀를 영영 잃어버린 게 아닌가 하는 예감 아닌 예감이 든다. 그러면 어차피 가야 하는 서울, 소리 없이 훌쩍 다녀올까 하는 생각을 하지만 도둑도 아니고, 또 그런 기회를 공으로 날려버리는 일도 마뜩찮다. 하지만 기회를 아끼려다 결국 영영 그녀를 잃느니 아예 장기전을 도모하는 게 현명한 걸지도 모르겠다.


어차피 나는 이제, 아니 애초부터 사랑 때문에 죽을 수 있는 사람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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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보면 때로는 로맨스


그렇게 찾아오는 모양이다.


사랑은 늘 그렇게, 드문드문 하기만 할


거듭거듭 생각해본다.


무엇을? 내가 얼마나 이기적인 인간인지를. 때로는 <자기애>라는 미명을 통하여 그 추악함을 미화하곤 했다. 자기만을 위하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숨기기 위하여 사력을 다하는 일이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던 모양이다.


그 어떤 새로운 미래 때문에 나의 과거에 모질지 못하는 일, 그것이 또 얼마나 잔인한 일인지 나는 모르는 것이 아니다. 기실 나의 사랑이 랗고 있는 가장 커다란 문제이기는 한데 아직까지 명확하게 정리가 되지 않는다.


성격이 점점 이상해지는 것 같다. 고집과 분노와 증오와 파멸에의 의지 같은 것들이 분출될 곳을 찾아서 눈을 희번득이고 있었다.


2014.0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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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용형이 다녀갔고, 경희와의 통화


대용형이 다녀갔다. 오전에 갑자기 방문을 하겠다고 전화를 하고 함께 점심을 먹었다. 스마트폰 스카이프 영상통화 사기건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까 했는데 예상과는 달리 그 이야기는 하지 않고 그냥 뭐 시시콜콜한 음담패설이나 하다가 끝마쳤다. 일단, 특강자료를 받으러 왔다는 구실을 내세웠지만 어째 그 사건을 알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고 다니며 눈치를 보고 있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오히려 더 의미있게 다가온 사건은 경희와의 통화였다. 그녀는 학습에 대하여 심각한 부담을 느끼고 있었다. 흠 그러고보니 아마 그녀도 올해가 마지막 기회가 아닐까 하는 생가이 든다. 나야 뭐 아예 지나버린 인간인 것일까.


이래저래.. 그녀가 고백하는 불안이 나에게 스며들었다. 사실 아직 반바퀴도 돌리지 못한 인간이 알량하고 변변찮은 직업을 믿고 여유를 부리고 있는 꼴이라니 말이다. 반성이라는 말조차도 과분할 정도의 불안과 수치심이 엄습했다. 공부에의 충동이 밀려왔다. 하지만 그것이 어디까지나 충동인 이상 그것은 역시 잡념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하지만 반대로 순수지학을 지향하게 되면 지지부진하게 될 것임을 안다. 진부하지만 결국에는 중용이 가장 중요하다는 얘기가 될 것이다. 미래에 대한 희망과 욕구는 공부에의 동기부여가 되는 동시에 잡념이 되어서는 안 될 것이고, 순수지학을 추구하되 그것에 매몰되어서는 또 안 될 것이다.


술마시고 그녀와 나눈 이야기들이 망각되어 버린 것들이 많다는 것을 깨달았다. 술 마시고 그녀에게 전화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았고, 나아가 그것은 술 자체를 자제해야 하는 이유가 된다.


어머니께서 우스갯소리로 상속 거부를 천명했다. 그것 참 그럴 리가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것이 현실이 되는 상상을 하니 소름이 끼칠 정도로 무서운 일이다.


그 대화를 통해서 내 동생은 역시 멍청한 년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돈을 버니 자연스레 작가에의 뜻이 희미해지는 것을 느낀다. 슬픔조차 느껴지지 않는 이 마음은 대체 얼마나 병이 든 것인가.


2014.07.14.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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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재 돌잔치







원재 돌잔치


땀이 흥건하지 않길 빌면서 걸어왔는데 날 듯 말듯 할 때에 도착을 했던 것 같다.


원재는 많이 늙어 나는 가슴이 아프면서도 안도했다. 그리고 다시 가슴이 아팠다. 다들 전쟁의 전리품 마냥 아들이나 딸, 하여튼 아이들을 껴안고 나타났다. 친구도 연인도 아이도 없는 나는 계영이의 치맛자락을 잡았던 모양이다.


그마저도 그녀의 가족과 함께. 그래 그러고보니 이것 참 지독한 민폐가 아닌가. 지독하기 이를 데 없다. 남기태를 원망하고 싶은 마음 따위는 조금도 없다. 아니 사실 그럴 정신이 없다.


꿈은 언제나 다짐했던 나의 마음을 배신하곤 한다. 일상이 꿈에 의해 침식되는 풍경이 시리도록 푸르다. 새벽의 푸르름이 생경하다. 돌아온 일상은 한없이 구차할 뿐이다. 참을 수가 없을 정도로.. 자아를 유지하기 힘들 정도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꿈에 불과하다고 치부하며 뻔뻔하게도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다시금 그들을 욕구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꿈 속에서의 타락이 얼마든지 레떼의 강을 건널 수 있음을 알고 있으며 병든 나의 마음이 다시는 낫지 않으리라는 것도 안다.


자러 가자.


오늘도 끝이다.


2014.07.13. 약 20:00


이원재 아들 돌잔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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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문을 닫는 일







마음의 문을 닫는 일


<낙타 등 위의 낙엽>


근자에는 윤병이를 포기하고, 최근에는 기시 유스케의 책을 즐겨보고 있다.


<푸른불꽃>에는 낙타의 등을 부러뜨리는 낙엽이라는 글귀가 등장한다. 사건을 일으키는 마지막 한 장의 자극. 그러한 작은 자극이 결국 이 모든 일이 시작되게 만든다.


비슷한 맥락에서 나는 생각해본다. 인간과 인간 사이의 관계를 만드는 것은 마음을 여는 힘이 아니라, 마음을 닫게 만드는 힘이 아닐까. 다시 말해 중요한 것은 마음을 열었는가,가 아니라, 마음을 닫았는가 하는 것이다. 그렇다. 이것은 성선설에 기대고 있는 생각이다. 성선한 인간은 대개 마음을 열고 있는 존재이기 때문에 인간이 인간에게 마음을 열고 있다는 것은 별로 신기한 일이 아니다.


때문에 인간관계를 조정하고 싶은 인간이라면 상대방이 자신에게 마음을 열었는가 보다는, 마음을 닫았는가 그렇지 않은가를 사료해야 한다.


현실에서의 예를 떠올려보면 글쎄...


쿨하고 쌀쌀맞은 이들을 생각해 볼 수 있지만 그들의 경우 마음이 닫히든 말든 개의치 않은 캐릭터들도 있다는 점 때문에 적확히 일치한다고 보기는 힘들 것 같다. 그보다는 오히려 윤병이 같은 캐릭터가 그런 스타일에 적합하지 않은가?


나의 기준에서 보면 여전히 그는 그리 현명하지 않은 관계성을 지향하고 있기는 하다. 마음의 닫힘을 경계한다기 보다는 오히려 차라리 누군가의 마음을 닫기 위해 치닫기를 거듭한다는 인상을 주기 때문이다.


이렇게 그에 대해 생각하고 있자니 증오와 경계의 대상에서 어느새 연구와 이해의 대상으로 변화하는 것을 느낀다. 그에 대해서는 혹시 나의 생각을 담은 이러한 기록이 그에게 노출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들기도 한다. 기우일지 모르지만 눈을 희번득이며 모든 사람의 비밀을 찾아다니는 평소의 습성을 생각해보면 괜한 걱정은 아니라 할 것이다.


지난 밤 취한 그가 꺼낸 말의 요지는 나를 위해 충성을 바쳤으니 그에 맞는 보상을 달라는 것 같았다. 그러한 고백은 불만이라는 감정으로 요약된다. 그는 나의 처사에 불만을 느꼈는지 모르지만 나는 그의 불만이 부당하다고 여긴다. 그가 알아야 할텐데 조금이나마 열린 마음이 닫혔음을. 그리고 이미 그 자신 역시 그렇다는 것을.


2014.07.12. 토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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