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회귀, 소설의 활자를 걸어가는 일
영원회귀의 세계에서의 재미있는 점은 그러한 사실을 꺠달은 인간이 절망하거나 무력감을 느끼려 한다고 해도 그것이 이미 반복되고 있는 것이라는 점에 있어서 그러한 감정을 마음껏 갖는 것 역시도 어쩐지 편치 못하고 겸연쩍어진다는 것이다.
그렇다 확실히 겸연쩍다. 뭔가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에 슬퍼하려 한다고 하더라도 그러한 행위는 자신이 뭔가를 할 수 있음을 전제로 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영원회귀의 굴레 안에서는 내가 무엇을 하든 하지 않든 기뻐하든 슬퍼하든 혹은 그 어떤 변덕을 부린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이미 무수히 반복되고 반복될 행위라는 점에 있어서 온전히 내가 의지하고 의욕한 행위라고 할 수가 없게 된다. 오히려 그것은 영원회귀의 절대적인 법칙 속에 흔적도 없이 흡수되고 마는 것이다. 좀처럼 인식할 수 없는 영원회귀의 법칙을 깨달았다는 사실은 제법 커다랗기는 하지만 그러한 깨달음이 다음의 생으로 연속될 수 없는 이상 그 불가항력의 단절 앞에서 그것은 아무런 의미를 갖지 못한다. 심지어 지금의 내가 그 법칙을 알게 되었다는 사실은 곧 이전의 생들에 있어서도 나는 언제나 이것을 알고 있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므로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 우리가 경험하는 모든 것은 언제나 우리에게 최초의 경험인 동시에 (it) 언제나 무한히 반복되어 온 것 (one)이고 나아가 이대로 무한히 반복되어 나갈 것이다. 이러한 원리로 작동하는 구조로서의 삶을 살아가나다는 것은 마치 하나의 소설을 읽는 것과도 같지 않나 한다. 내가 자의든 타의든 어떤 행위를 하거나 사건을 경험한다는 것은 동시에 이전의 삶에서 어떤 일이 있었으며 이후의 삶에서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지를 알게 되는 일이다. 이것은 마치 삶을 살아간다는 것은 길게 이어진 소설의 활자들을 걸어가는 것과도 같다는 것으로 묘사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삶을 살아가는 것은 우리에게 어떻게 다가와야 할 것인가? 영원회귀는 그 진실성을 증명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또 한편으로는 그것을 부정하는 것 역시도 불가능하다. 다시 말해 우리의 삶이 영원히 계속된다는 증거가 없으며 또 한편으로 우리의 삶이 단절되어 정지한다는 근거가 없다. 이러한 구조를 수용한다고 하더라도 우리를 혼란시키는 것은 대체 그러한 스토리가 어떻게 결정되었는가 하는 것이다. 아마도 영원회귀가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는 핵심이 바로 이것이 아닐까 생각하는 것인데, 즉 언젠가 이 무수한 반복의 시초라 할 수 있는 최초의 삶이 있는가 아니면 그런 시작도 끝도 없이 마치 도장처럼 한 번에 이 모든 순환이 다 같이 존재하게 되었느냐 하는 것이다. 이것이 가진 차이는 매우 중요한데 전자의 경우에는 언제라고 하든 이야기가 최초로 쓰여지는 미정의 상태가 한번쯤은 있었다거나 현재가 그러한 상태일 수도 있다는 것으로 연결될 수 있는 반면 후자의 경우에는 그러한 미정의 상태는 단 한 번도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모든 목적들을 거세하려한 니체의 의도를 생각해 볼 때 후자가 유력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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