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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리 철학

우리 교회 주체사상 만들기: 노무현은 지옥에 갔을까

by 통합메일 2013. 5.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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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교회 주체사상 만들기: 노무현은 지옥에 갔을까



언젠가 우리 교회 설교 시간에 목사님께서 말씀하시길 “소박하고 국민들을 사랑한 노무현 대통령이었지만 그 분께서는 안타깝게도 예수를 믿지 않아 지옥에 갔습니다.”라고 하셨다.
언제나처럼 머릿속으로 이런저런 딴 생각을 하며 설교를 듣는 둥 마는 둥 하던 나는 그 문장에 귀가 번쩍 열리는 기분이었다. 그렇다. 놀랐다. 그것은 다음과 같은 이유 때문이다.
비록 내가 나태한 신자이지만 그래도 나름대로 자부하는 것이 내가 다니는 교회의 담임 목사님은 세인들이 흔히 지적하는 헌금 집착, 동네 민폐 유발, 정치 편향에 대해서 비교적 조심스러운 자세를 가지고 설교에 임하시는 분이었기 때문이다. 뭐 물론 이런저런 사석에서 맞은편 아파트에 사는 동네 아저씨로 뵐 때는 나름의 정치관이 있으리라 생각하지만 그래도 분명 웹상에서 기독교를 가루가 되도록 까이게 만드는 그런 요소들로부터는 자유로운 편이라고 생각했는데 좀 전의 그 발언은 아무래도 역시 가루가 되게 까이기 딱 좋았던 것이다. 물론 그렇게 까는 행위의 주체라 함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생전 사진이 올라오기가 무섭게 댓글로 눈물을 흘리는 이들을 말한다고 하겠다. 아무튼 설교 시간에 공식적으로 그런 발언을 좀처럼 하지 않던 분이셔서 나는 놀랐다.





<<정신 놓기 시작>>
그리고 그 놀람의 결과로 나는 고민에 빠졌다. 공화국(북한 말고 대한민국 말하는 거다;)의 매력을 사랑하고 좌빨 리버럴이 되기를 추구하는 나와, 나태하기는 하나 그래도 나름의 신앙심을 가지고 종교적인 범주 안에서는 기독교의 신앙 체계에 동의하는 부분이 제법 있는 나 사이에서의 정체성 갈등이었다고 해둘까 한다.
이명박 정부 이후로 인터넷/정치 담론영역에서 참여정부의 역사와 기독교와의 관계가 어떠한지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긴 하지만 새삼 우리 교회 예배 시간에 담임 목사님의 육성으로 그러한 문장을 듣게 되니 지금 당장이라도 귓전에 네티즌들의 성토가 몰려드는 것 같았다. 대체 그러한 상황에서 나는 어느 쪽 편을 들어야 한단 말인가? 좌빨 리버럴 지망생이라고 하여 반드시 노무현의 천당행을 바라야 하는 필연성이 성립하는 것은 아니겠으나 아무래도 그의 지옥행 티켓에 도장을 쾅쾅 찍어주자니 마음 한구석이 편치 않음이 있었다. 결국 쉽게 풀리지 않는 고민에 입성하게 되는 순간이 아닐 수 없었다.
이 문제를 풀어보자면 이렇다. 일단 노무현 전 대통령을 그리워하는 그 특정 민중들은 목사님의 발언에 뭐라고 하겠는가? 그것은 어렵지 않게 짐작이 가능한데 다음과 같지 않을까 한다.
“시부랄, 국민을 사랑한 노무현이 예수를 안 믿었다는 이유로 지옥에 가면, 국민을 우롱한 이명박은 예수 믿었다는 이유로 천국에 간다는 거냐? 뭐 그런 경우가 다 있어!”
뭐 진짜로 국민을 사랑한 게 누구인지는 역사적 평가나 비교적 사실의 영역에 속하는바 그것을 따지고 들어가면 얘기가 산으로 가니 일단 차치하기로 한다. 아무튼 그들은 아무래도 저와 비슷한 방식으로 까고 들어올 것이다. 그렇다면 저 반박의 요지는 무엇인가? 그것은 천국행 티켓 발급 기준에 대한 회의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즉 그들에게 있어서 천국에 가는 기준은 예수를 믿었느냐 안 믿었느냐가 아니라 국민을 사랑했느냐 사랑하지 않았느냐에 있다. 때문에 그들은 신앙을 기준으로 티켓을 발급하는 우리 목사님의 주장에 동의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한편 우리 목사님은 어떠한가? 이 경우에는 앞서 말했듯이 신앙을 기준으로 티켓을 발급한다. 그게 다다. 실로 간단명료하다. 서로의 기준이 다른 것뿐이다. 하지만 갈등은 여전히 존재한다. 그 갈등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그리고 심지어 때로는 그것이 발언 자체를 넘어서 그 발언의 주체에 대한 분노로까지 이어지기도 한다. 그것은 가치관과 그 소유주체인 인간이 만들어 내는 관계가 갖는 특성으로부터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문제일 것으로 생각된다.
군중으로서의 감정이 이입되는 논쟁의 경우 이러한 비판은 흔히 주장의 주체에게로 전이된다. 그 주장에 대한 비판뿐만 아니라 그 주장을 한 주체에 대한 포괄적인 비판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목사님과 사적인 관계(응?)를 맺고 있는 나는 사실 그 점이 가장 염려스러웠던 게 아닐까. 그러니까 내가 목사님의 주장에 동의하는지 안 하는지의 여부를 떠나서, 이를테면 저 발언으로 인하여 목사님이 비판을 넘어선 비난의 대상이 되는 상상이 나를 불편하게 하는 것 같았다는 말이다.
그리하여 나는 그 불편함을 해소하기 위해(라고 쓰고 심심해서) <우리 교회 주체사상 만들기>를 해봤다. <교회>와 <주체사상>이 만들어 내는 형용모순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일단 목사님의 주장에 대해서 가해지는 정치적 비판/비난들을 걷어내는 일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여러 가지 다양한 반박들이 있을 수 있겠지만 그런 것들에 대해서 내가 제기하고자 하는 것들 중에 하나는 목사님의 주장은 목사님이 할 수 있는 최선의 것이었을 수 있는 여지가 있는 것이고, 기실 그 주장을 반박하는 이들 중의 대다수는 그 주장에 대한 접근을 재고해야할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무슨 말이냐 하면, 교회 내부에서 누구보다 기독교의 율법과 신앙체계를 수호하고 또 공고히 해야 하는 사명을 지닌 존재가 목사라는 전제하에 기독교의 율법이 신앙을 가지고 천국행 티켓을 발급하는 것이라면, 오히려 목사가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 천국행 티켓을 끊어주는 일이 모순이 된다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기독교의 신앙논리 안에서의 일이다. 이렇게 접근한다면 목사님의 발언을 해석함에 있어서 발언의 장소와 발언의 객체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으리라는 생각이다. 만약에 이 발언을 정치적 직위에 있는 이가 일반 민중을 향하여 공적영역에서 행하였다면 그것은 정치적 공격인 동시에 고인의 인격을 모독하는 행위임에 모자람이 없으리라는 데 나는 동의한다. 노무현의 업적에 대하여 어떻게 평가하든지 간에 고인에 대한 그런 식의 발언이 공적영역에서 일반 대중을 향하여 행해진다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종교인이 해당 종교의 신앙 교리에 따라서 해당 종교의 신전에 모인 신도들을 향하여 한 발언이라면 그것은 다분히 종교적 발언이라고 할 수 있는바 정치적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의 접근이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즉, 해당 발언은 기독교의 구원설을 공히 동의한다는 전제 하에 그것의 당부가 논의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 기독교의 구원 이론 체계에 동의하지 않는 상태에서 각기 양립 불가능한 영역의 사람들이 이 문제를 가지고 논쟁을 할 경우 갈등이 해결되기 어렵다. 더욱이 이 글의 초입에 제시한 발언을 보면 목사님은 정치적인 입장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을 꽤 괜찮게 평가하고 있다. 그의 정치적인 업적에 대해서는 존경을 보내지만 기독교의 율법에 대입시켜 보면 결코 그에게 천국 티켓을 내어줄 수는 없는 것이 바로 목사님의 입장이었으리라고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사실 문제의 본질은 천국과 지옥이라는 단어에 있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든다. 문제의 발언에서 사용된 천국/지옥은 물론 기독교에서 사용되는 개념이다. 그것은 신앙을 통한 구원의 여부로 그 향방이 결정되는 개념이다. 이것은 기독교의 근본 교리인바 이것이 깨지면 신앙 체계의 근간이 위태롭게 된다. 이러한 구원의 기준이나 체계는 이미 꽤 널리 알려져 교회 밖의 대중에게도 상식에 가깝다. 그리하여 그들은 노무현이 지옥으로 갔다고 말하는 목사님에게 비난을 가할지도 모르는 상황이 되는 것이다. 분명 국민을 사랑한 노무현 전 대통령은 우리가 은연중에 전제하는 칸트의 최고선으로서의 덕복합일에 따라 사후에라도 신에 의하여 안락한 곳에 가야 하는데, 기독교에서 말하는 지옥은 그리 안락한 곳은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기서 두 가지를 지적하자면 우선 노무현을 지옥으로 보낸 것은 목사님이 아니기 때문에 그를 비난할 필요는 없다고 말하고 싶다. 그는 그저 자신의 본분에 충실했을 뿐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비신자인 이상 목사님의 입장에서는 그가 지옥에 갔다고 말하는 것이 그가 천국에 갔다고 말하는 것보다는 덜 모순적이다. 그가 지옥에 가게 되는 이유는 그저 신이 그렇게 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해당 발언을 반박한 근본적 방향은 다름 아닌 기독교의 신에게 돌아가야 함이 온당할 것이다.
또 다른 한 가지는 해당 발언을 반박하기 위해서는 기독교의 신앙 체계에 동의한다는, 그리고 그러한 신앙 체계를 부여한 기독교의 신을 믿고 복종한다는 전제가 있어야 한다. 비록 우리가 기독교에서 언급되는 사후세계를 천국과 지옥으로 부르고 있기는 하지만 우리사회에 존재하는 다양한 종교들을 고려해 볼 때 그러한 천국과 지옥은 다른 종교의 그것과 꼭 똑같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중세시대 아우구스티누스와 안셀무스가 “아니까 믿는 것이 아니라, 알기 위해 믿는 것이다.”라고 한 이후로, 그리고 오캄이 이성과 신앙, 그리고 철학과 종교의 연결을 잘라버린 이후로 철학은 증명의 대상이라기보다는 믿음의 대상이다. 합리적 이성에 의해 도출된 것이 아닌바 그것은 논쟁으로 다툴 것이 아니고, 무엇보다 그 종교 내부의 체계에 동의하지 않는다면 그냥 무시해버리면 그만인 일이다.







<<정신 차리고 쓰는 글>>
여기까지 말한 것을 보면 “그럼 결국 교회사람 아니면 그런 발언에 토 달지 말라는 거냐?”라는 반문에 직면할 수 있다. 이러한 질문에 그렇다고 하자니 또 내 가슴 한 켠이 불편하다. 그 이유는 내 주장에 결함이 있기 때문이다. 그 결함은 바로 지옥에 간 사람이 하필이면 노무현이라는 데에 있다. 왜 그러한가? 그가 대통령이라는 위치에 있어서 그런가? 국민은 사랑하는 큰 선행을 한 사람이라서 그런가? 아니다 여기에서는 그런 거 다 필요 없다. 내가 위에서 전개한 논리에 따를 때, 노무현이 부적절한 이유는 그가 교회 밖의 사람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결국 내가 사용한 논리가 자가당착적이라는 것을 고백하는 것이다. 하지만 사실 나는 그 이상의 방법이 생각나지 않는다. 결국 종교라는 것이 그러한 비이성적인 결단을 함유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교회 내부에서 그 내부의 신앙 체계를 공유한 사람들에게 한 발언이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는 명제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그 발언에서 지옥에 갔다고 표현되는 사람 역시도 교회 내부의 사람이었어야 마땅하다. 하지만 목사님은 교회 바깥의 사람, 그리고 하필이면 후임인 이명박 전 대통령 때문에 정치적/종교적으로 많은 대비를 이루는 노무현 전 대통령을 소재로 사용했다. 결국 그러한 선택은 부적절하다고 여겨질 소지가 있는 것이다. 꼭 누군가를 지옥으로 보내야 했다면 교회 바깥의 사람이 아니라 교회 내부의 사람을 보냈어야 했다. 그렇게 했다면 그 교회 바깥의 누구도 그 주장에 이의를 달지 않았으리라. 종교의 다양성이 보장되는 나라라면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특정 종교의 교리에 끌려가서 천국과 지옥을 오가지 않을 자유 역시도 보장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여기에서 하는 것은 제법 적절하지 않은가? 물론 이러한 생각은 종교적 영역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기독교를 위시한 대부분의 종교는 종교적 다양성을 전제하지 않는다. 민주사회에서 존재하기 위하여 울며 겨자 먹기로 그것은 인정하는 척을 하기는 하나 종교의 영역인 교리에 의거할 때 세상에 유일한 <종교>는 오직 그들 자신뿐이다. 이런 점을 생각할 때 교회는 하나의 결단을 해야 한다. 대체 교회는 그리고 종교는 이 사회에 포함되어 있는 존재인가 아니면 이 사회를 품고 있는 존재인가? 전자라면 종교는 정말 울며 겨자 먹기로라도 근본주의적 성향을 최대한 잘라내야 할 것이고, 후자라면 적어도 자유민주공화국에서 떳떳하게 존립하기는 힘들 것이다.
물론 현대 자유주의 국가는 종교를 상호 양립 불가능한 선호의 영역으로 규정하고 그들 간의 갈등을 조화시키기 위한, 공통적 합의가 가능한 영역으로서의 정치적 영역을 상정하고 나름대로의 화합을 도모하고 있지만 최근 전 세계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종교적 갈등을 지켜보는 시선에서는 그 정치적 영역이라는 것이 그러한 갈등들을 얼마나 완화시켜 줄 수 있을지 회의적이지 않을 수 없다.
자유주의와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북한과 같은 국가를 우리나라의 기독교가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생각해보면 기독교에 있어서도 자유민주공화국과의 결별은 썩 남는 장사가 아닐 것이고, 또 한편 종교를 포기하는 일은 인류에게 있어서 역시 크나큰 손실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결국 양자가 상생하는 길은 다음과 같은 경우의 수로 이루어 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1.영역 불가침
첫 번째는 영역 불가침이다. 말 그대로 우리가 자유민주공화국에 포함된 존재로써 이 사회에는 다양한 종교가 있음을 인정하고 그들의 영역을 침범하거나 부정하지 않는 것이다. 이 경우에 따르면 다른 종교를 부정하거나 포교/전도를 하는 것이 금지된다. 그런데 이로 인해서 아주 골치 아픈 문제가 발생할 수 있는데 하나는 혹세무민의 이단 역시도 인정해야 하는가 말아야 하는가 하는 문제에 직면하게 되는 것이다. 일단 이것은 해당 종교의 교리를 사회 일반의 가치관에 비추어 검토함으로써 어느 정도 해결이 가능하리라는 생각이다. 이전에 설정해 둔 사회 일반의 공통적 영역으로서의 정치적 영역이 여기에서 작동하는 것이다. 또 하나는 기독교와 같이 유일신을 모시는 종교에 있어서는 해당 교리 체계가 흔들리게 된다는 것이다. 물론 종교만을 인정할 뿐 그 종교의 신을 인정하지 않는 방식으로의 회피 방법이 있기는 할 것이다. (대표적인 예가 불교다. 원시불교에서의 부처가 어디 신이었는가?)

2.교리 해석의 유연화
두 번째는 바로 교리를 해석함에 있어 유연한 자세를 취하는 것이다. 이러한 방법은 가만 보면 오늘날 이미 널리 사용되고 있는 것으로 보여진다. 이를테면 기독교의 경전을 보면 특히 구약에 이스라엘 부족주의에 연원하여 동성애자라든지 다른 신을 믿는 자들에 대해서는 상당히 공격적으로 행동하라는 강령들이 있는데 오늘날 이를 그대로 행하는 자들은 별로 없다. (만약 그런 이들이 있다면 바로 근본주의자들일 것이다.) 교리를 해석함에 있어 유연성이 발동하기 때문이다. 이런 방법으로 많은 갈등이 해결될 길이 열릴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는데 여기에도 몇 가지 문제점이 있으니 하나는 그러한 유연성이 신앙 체계의 핵심을 구성하는 전제에도 적용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것이고, 유연한 태도를 취한다는 것을 모종의 예외를 인정하는 행위로 간주할 때 그것은 미끄러운 경사길 이론에 따라서 무수히 많은 예외를 양산해 내게 됨으로써 결국 이단과 정통 종교의 구분을 모호하게 만들 것이라는 위험성이다. 그런데 앞서 말한 것처럼 이러한 이단과의 구분 혹은 이단으로의 예방은 사회적으로 합당한 것으로 간주되는 정치적 영역에서 규정하는 가치에 의하여 도모될 수 있는 것인바 결국 종교는 사회적 가치에 기대지 않을 수 없게 되고 그럼으로써 사회와의 융화를 기대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맺는말>>
목사님의 말씀을 듣고 생긴 고민을 해소하기 위해 장난삼아 시작한 글이 약간 길어졌다. 글의 요지를 보면 나는 결국 기독교의 배타성을 지적함으로써 속세의 편을 들어주는 결론으로 마무리를 짓게 되었지만 그래도 나는 꽤 나의 신을 신뢰한다. 다만 그와 동시에 살아있는 동안에는 내가 자랑스러운 공화국의 시민이라는 사실을 망각하고 싶지 않은 것이고 때문에 내가 믿는 신앙이 공화국의 시민들에게 폐로 인식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 것일 따름이다.
나는 내가 믿는 종교의 교리에 따라 사후에 내가 신 앞에 서게 될 것이며 천국 혹은 지옥으로 가게 되리라고 생각하고 있다. 다만 내가 진정으로 바라는 것은 내가 어디에 가서든지 행복한 것이다. 내 스스로가 나의 존재와 상황을 긍정하지 못한다면 천국에 가도 행복하지 못할 것이고, 긍정한다면 지옥에 가서도 행복할 수 있으리라고 믿는다. 나의 신께서 나를 지옥에 보내신다 하여도 행복하고자 노력하고 희망할 수 있는 자유 정도는 허락하시리라 믿는다. 비록 이것이 중2병적 자아도취증에 걸린 인간의 허무맹랑함이라 할지라도 그것이 나의 생각이고 결단인 이상 나의 실존이 그외의 방법으로 이루어질 수는 없을 것 같다.
어쩌면 이것은 사람을 사랑하는 것과 신을 사랑하는 것 사이에서 경험하게 되는 갈등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다. 분명 기독교의 이론에 따르면 존재가 가지는 완전성의 위계에 따를 때 가장 완전한 존재인 신을 사랑하는 것이 인간을 사랑하는 것보다 더욱 훌륭한 일이다. 그리고 아마도 그런 이유로 신을 사랑하는 이만이 천국행 티켓을 끊을 수 있을 것이다. 가장 좋은 일은 인간도 사랑하고 신도 사랑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두 가지가 갈등을 빚는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나는 그 가능성을 부정하고 싶다. 인간은 어느 하나만을 골라서 사랑할 수 있는 상황에 놓일 수 없다. 인간을 사랑하기 위해서는 신을 사랑해야 하고, 신을 사랑하기 위해서는 인간을 사랑해야 할 거라고 생각한다. 굳이 우선순위를 따지자면 인간을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은 신도 결코 사랑할 수 없으리라고 생각한다. 특히 그가 살고 있는 곳이 자랑스러운 공화국이라면 말이다.

자 이제 다시 이 질문에 대답해보자.

노무현은 지옥에 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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