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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상

2014.05.22

by 통합메일 2015. 4.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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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5.22.


그렇게 여실하여라 아침이여, 이제는 더 이상 태어나듯 깨어나는 아침은 아닌 것이니, 채 끊어지지 않은 어제를 등에 지고 구부정 허리를 숙여 아픈 추억을 토해내듯 세수를 함으로써 조악조악 아침을 지어내는 것이다. 나는 출근길에 책을 읽는다, 는 생각을 출근길에 걸으며, 책을 읽으며 한다. 종이를 때려오는 낯선 볕에 문득 절기를 의심해보기도 하는 것. 20여분의 시간을 채울 수 있는 거리를 걸으며 나는 기분이 좋다. 그 거리를 뛰어서 이동하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 행복하다는 착각을 해보기도 한다. 여름으로 치닫을수록 볕이 원망스럽다. 선글라스를 꺼낼까 하다 그만두었다. 충대병원 오거리에 닿으면 아직 10분이 더 남았다. 사람들을 생각한다. 교수와 학생들을.. 그들이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을지를. 그제서야 나는 비로소 집을 나선 인간이 된다.


오전이라는 시간은 기묘하리만치 빠르게 흘러간다. 모든 것을 포용하고 용서할 수 있을만한 유속으로, 나는 좀처럼 뭔가를 해내지는 못한다. 무엇에 충실하기 위해서는 무수한 외면에 집착해야 하는 까닭이다.


한 시간의 점심은 참으로 위대하다. 먹든 먹지 않든, 혼자 먹든 누구와 먹든 위대한 명분과 함께 한다. 명분이 떠난 자리엔 지독한 피로가 자욱하게 남는 것이고 그렇게 오후가 시작된다.


그래도 오후에는 뭐라도 하려고 하기는 한다는 생각이다. 하지만 머나먼 퇴근시간이 다가오매 나는 그만 술 생각을 해버린다. 이른바 사냥의 시간이다. 어슬렁어슬렁 학교의 숲을 헤매며 술상대를 찾기 시작한다.


불행인지 다행인지는 모르겠지만 사냥이 성공하는 확률은 낮다. 이 숲도 이젠 과거와는 다르게 좋은 사냥감들이 자취를 감추기 시작했다. 슬픈 일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이미 진작에 씨가 마른 다른 숲에 비하면 그래도 사정이 스나마 나은 편에 속한다. 그것을 위안으로 삼고 살아가야 한다는 것에 속이 좀 쓰리긴 하지만 그 앞에서도 결국 어쩔 수가 없다는 말을 들이밀 뿐이다.


그렇게 사냥에 실패를 하면 비참과 좌절을 막기 위한 항생제를 스스로에게 주사한다. 긍정이라는 약은 중독성과 부작용 때문에 적잖이 위험한 것이지만 살아남기 위해서라면 선택의 여지가 없다. 그게 싫다면 죽거나, 사냥의 기술이나 안목을 길러야 할텐데, 길러야 할텐데. 물론 그 외에도 괴물이 되는 방법도 있기는 한테, 거기에서 생각을 멈춘다. 괴물이 될 것인가? 그럴 용기가 나에게는 있는가.


그런 생각 속에서 퇴근을, 밤을 맞이한다. 밤이 서서히 그 눈꺼풀을 들어올리는 모습을 지켜보는 나의 눈동자는 잔뜩 겁에 질려있을 것이다. 새카만 밤의 동공에 어리는 내 모습을 언뜻 본 것 같다. 소름이 끼치고 머리카락이 곤두섰다.


으슥한 오솔길, 물음표 가득한 무덤을 지나 집으로 간다. 정작 두려운 것은 여름을 향해 거침없이 자라나는 풀들이다. 생명이 만들어내는 그늘이 문득 소슬하다.


2014.0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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