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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생각

(일간베스트)일베와 일베를 욕하는 이들에 대하여-나는 왜 멸시를 게을리 했는가

by 통합메일 2013. 12.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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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는 말

인터넷 공간에서 많은 이들이 일베와 일베 이용자들을 공격한다. 그 와중에 나는 그들을 적극적으로 공격한다기 보다는 일베와 일베 이용자를 비판하는 이들의 오류를 지적하고 비판하는 일에 더욱 매진해왔다. (물론 그런 과정의 뒤에는 보통 "너 일베충 아니냐?"는 식의 사상검증이 뒤따르기 마련이었기 때문에 그것은 지난하고 조심스러우며 신경쓰이는 작업이었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일베와 일베인들에 대해 적극적으로 비판하기를 게을리 했다. 




나는 스스로를 진중권 빠돌이로 규정하는 인간으로서, 정치 사회에 대한 그의 대부분의 의견에 큰 이견을 보이지 않는 편인데, 일베를 향한 그의 주장, 즉 "그들은 당연히 멸시받아야 합니다."라는 주장에 선뜻 동의하기가 어려운 순간들이 있었다. 물론 후술하게 될 것이지만 거기에는 내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었고  이 정도의 시간이 지나고 나니 어쩌면 그러한 것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인격으로서의 모종의 의무 방기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불어 일베와 일베 이용자에 대하여 내 나름대로의 확고한 정의와 논리를 확립하지 않으면 인터넷 공간에서 마주하는 숱한 일베 관련 논쟁 앞에서 굉장히 피곤해지는 일을 반복적으로 경험해야 할 것 같다는 판단에 이르게 되었다. 그리하여 이 글을 쓴다.


대한민국 인터넷에는 웹 문화를 주도해 나가는 거대 커뮤니티들이 있다. SLRCLUB, 뽐뿌, 보배드림, 오유, 루리웹, MLB파크, 그리고 일베와 디씨인사이드 같은 곳들이다. 이러한 커뮤니티들은 해당 커뮤니티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목적'과 구성원들의 연령, 지역, 문화적 선호, 사회 정치적 신념에 따라서 다양하게 난립하거나 첨예하게 대립하기도 한다.


그중에서도 논란의 중심에 서 있는 곳이 일베다. SLRCLUB/뽐뿌/보배드림/오유/루리웹/MLB파크 등은 진보를 자처하는 정치세력을 지지하는 이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고, 일베와 디씨인사이드는 보수를 자처하는 정치세력을 지지하는 이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는 커뮤니티이다. 이와 같은 정치적 선호와 신념에 따라서 인터넷 커뮤니티들은 양립불가능한 대립의 구도를 보인다.


그러나 정작 그보다 더 일베가 논란, 정확히 말하면 비판의 대상이 되는 근본적인 이유는 그 커뮤니티의 이용자들이 보여주는 엽기적이고 패륜적인 행각들 때문이다.


관련된 뉴스를 얼핏 추려도 다음과 같다.


홍어 택배” 5.18 희생자 모독한 일베 회원, 재판관할권 대구로 이송

진중권 "일베 인증, 쓸데없는 '인정'욕구 버려라" 

맥도날드 할머니, 일베 회원 조롱 인증샷 "묵은지 냄새나"

'일베 로고 피해' 연세대 "SBS서 사과, 공식 입장 없다"

수지 성희롱 합성 사진한 일베 회원 검거 불구, 수지 조롱글 여전

경찰, '리틀싸이' 황민우 악플단 '일베 유저' 수사 착수




<물론 이거는 매우 일부이고 엄청 많다.>

위키백과의 내용도 참고하자

http://ko.wikipedia.org/wiki/일베저장소



그들은 매우 엽기적이고, 비윤리적인 행각으로 인해 무수히 많은 뉴스의 소재가 되었고, 일베와 상반되는 성향을 가진 커뮤니티에서 정말 날마다 가루가 되도록 까였다. 어쩌다 그런 커뮤니티들을 이용하던 사람이 일베회원으로 들통나는 날에는 그에 대한 철저한 공격이 이어졌다. 유명 연예인도 일베 회원이라는 의혹이나 증거가 제기되면 연예인으로서의 생명에 치명상을 입게 되기도 했다. 


사실 나는 일베를 하는 것도 아니고 살면서 딱히 일베 회원에게 봉변을 당해본 경험도 없기 때문에, 더욱이 굳이 내가 나서서 그들을 비판하지 않더라도 이미 지나칠 정도로 많은 사람이 앞다투어 그들을 비난하고 비판하고 있었기 때문에 일베에 대한 비판에 힘을 쏟지 않았다. 더욱이 일베를 비판하는 이들 중에는 그들에 대해서 아주 진절머리가 난 이들도 있는 모양인지 감정을 앞세워서 비난 일변도로 나서는 일이 잦았고, 또 동시에 인터넷 전반에 일베에 대한 집단 조롱이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아가는 모습을 목격하면서 본능적인 거부감을 느끼게 되면서 차라리 일베를 까는 사람들을 까는 일에 더욱 매력을 느끼게 되었다.





다음은 약 6개월 전에 작성한 글이다.


일베는 가깝고, 이상적 의사소통 상황은 멀다.


 이성과 감성이 등을 맞댄 존재임을 확인할 때가 있다. 논리에 어긋나는 글을 읽을 때와 매우 논리적인 글을 읽을 때 우리가 경험하는 감정은 결코 같지 않다. 그것은 아마 인간에게는 논리 속에 숨은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는 능력이 있기 때문이리라.


최근 논란이 되는 일베에 대한 문제에서는 나는 감정의 문제를 경험하게 된다. 일베에 대한 세간의 반응을 접할 때 내가 느낌 첫 번째 감정은 불쾌함이었다. 공식적인 지면에서 이루어지는 비판들에서는 큰 거부감을 느끼지 않았지만 일베와 대척하고 있는 일반인들의 모임에서는 거부감을 느꼈다.


두 번째의 불합리는 나는 일베인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불쾌함을 느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나는 익히 알려진 일베인들의 악행에 반대하고 그런 것에도 불쾌함을 느낌에도 그 대척점에 서 이들에 대해서도 비슷한 감정을 느낀다는 것이다.


나의 감정은 이 어딘가에 불합리한 게 존재한다고 말하고 있었다. 일베를 까는 글의 구조는 우선 일베에 대한 부정적인 사례, 캡쳐, 기사, 주장들을 게시하고 그 밑으로 댓글이 주욱 달리는 형식을 취한다. 대부분 한탄 섞인 조롱이나, 조롱 섞인 한탄이다. 나는 여기에 문제가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비판이라기보다는 조롱, 비난, 한탄이 대부분이다. 사람이 아니라느니 벌레니까 박멸하라느니 하는 조롱이 대부분이다.


또 내가 주목하는 것은 다른 의견을 용납하지 않는 분위기다. 물론 형식적으로는 열린 대화의 장을 표방하고 있기는 하지만 일베를 향한 조롱에 제동을 거는 의견에 대해서는 더 일베충 아니냐는 사상검증이 가해진다. 물론 진짜 그 사람이 일베인일 수도 있지만 설사 아니더라도 아니면 말고라는 식이다. 그런 의심을 던진 사람은 좀처럼 사과하는 일이 없고, 누구도 그를 비판하지 않는다. 이런 사례가 반복되면 일단 의심하는 것이 하나의 관습으로 굳어지게 되고, 그만큼 소수의견의 묵살당하고, 아예 애당초 표현될 기회를 상실하게 된다. 과거 공안 정국 때 사상범을 체포하고 퇴출하는 사회일반의 분위기가 연상된다면 나의 기우인가?


괴물과 싸우면서 결국 괴물이 되어간다는 말을 확인하지 않을 수 없고, 문득 정신을 차려보면 일베의 평행이론이라는 망상에 이르기도 한다. 물론 본인들은 극구 부정하겠지만 원래의 괴물이 사라지면 다음은 그들의 차례가 되어야 마땅하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소수의견이 멸종에 이르게 된 상황을 정당화할 수 없다.


일베를 비판하면서도 합리성을 유지하는 이들은 있다. 하지만 일상의 영역에서 마주하는 경우에 대해서는 그런 이들이 많지는 않은 것 같다. 비합리가 또 다른 비합리를 합리성의 기치로 공박하고 조롱하매 나는 불쾌하다. 일베인들을 나라 밖으로 추방이라고 시키고 싶은 모양인데 그럴 수 없어 저들끼리 모여 자신들은 전혀 다르다는 듯 희희덕 거리며 자위하는 게 일인 것 같아 나는 불쾌하다. 소통의 의지 없이 진영에 똬리를 튼 채 상대를 비방하는 일에 몰두한다.


비방을 위한 비방, 조롱을 위한 조롱, 의미 없는 한탄. 다르긴 하되 얼마나 다른가?


일베는 가깝고 이상적 의사소통 상황은 멀다. 2013.06.08. 토요일 저녁을 맞이하며.




당시의 나는 분명히 웹상에서 이루어지는, 합리적 의사소통이 결여된 채로 일방적 조롱화 희화로 일관되는 세태에 대하여, 모종의 사상 검증과 자기검열의 풍조가 잉태되는 것 같은 문화에 대하여 상당한 거부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 거부감은 나로 하여금 그런 거대한 거대한 서사에 제동을 거는 딴지로 나아가도록 동기를 부여했지만, 그런 동기가 무색할 정도로 그 서사는 거대했다. 그것은 실로 무시무시했다. 원체 논리가 탄탄한 것도 아닌데, 열심히 준비해서 탄탄한 논리를 가진다 하더라도 그들 하나하나를 상대로 모두 설득해낼 수는 없는 일이었다. 괜히 딴지를 걸었다가 일베충으로 몰리는 것도 두려웠다. 무엇보다 내가 주저한 이유는 나의 내면에 일베를 비판하는 이들로부터 느끼는 거부감에 못지 않은, 일베와 일베 이용자에 대한 거부감 내지는 귀찮음이 자리잡고 있었던 탓이 아닌가 한다.


이를테면, 일베와 일베 이용자들의 행각이 나쁘기는 하지만 그들을 공격하는 방식이 잘못되었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은 마음은 있었지만 그것이 자칫 그들을 옹호하는 것으로 비춰지게 될까봐 저어함이 있었고, 논리전의 본질상 판을 뒤집을만한 팩트를 가지고 있지 않는 이상 애당초 편을 고를 때 이미 그 승패가 결정나게 되는 것이기 때문에 괜히 시험공부하느라 시간도 없는데 일베 옹호자로 낙인이 찍혀 인터넷 공간에서 한바탕 크게 관광을 당할까 두려웠던 것이고, 나아가 근본적으로는 그렇게 딴지를 걸면서 그 대안으로 제시할 만한 어떤 새로운 비전 같은 게 없었다. 한마디로 괜히 신나게 일베 까는 사람들 까고 다니가 등 떠밀려 일베 옹호론을 펼치게 되면 필망하게 될 것이 뻔하다는 계산이 나오더라는 말이다.


언론과 네티즌을 통해서 내가 일베에 대해 수집/획득/소유하게 된 정보는 다음과 같은 키워드로 대표될 수 있다.


1.보수를 자처하는 정치세력에 대한 지지

2.한국 여성 비하(남성연대)

3.장애인 비하

4.노인 비하

5.외국인 노동자 비하(주로 후진국이나 개발도상국)

6.과거 산업화 시대에 대한 찬양(그리고 민주화에 대한 비하)

7.특히 광주 민주화 운동 희생자에 대한 비하

8.전라도라는 지역에 대한 적개심과 경멸과 비하

9.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조롱과 증오와 경멸과 비하

10.온정주의 거부

11.신자유주의 찬양과 복지정책에 대한 비방

12.북한 정권에 대한 강력과 증오와 그에 기반한 경멸/비하/조롱

13.패륜적 언행

14.상호 반말

15.유해게시물


홍어 택배” 5.18 희생자 모독한 일베 회원, 재판관할권 대구로 이송

진중권 "일베 인증, 쓸데없는 '인정'욕구 버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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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지 성희롱 합성 사진한 일베 회원 검거 불구, 수지 조롱글 여전

경찰, '리틀싸이' 황민우 악플단 '일베 유저' 수사 착수


<물론 이거는 매우 일부이고 엄청 많다.>

위키백과의 내용도 참고하자

http://ko.wikipedia.org/wiki/일베저장소

문맥상 다시 한 번 더 붙임.



이 외에도 물론 또 있을 것 같은데 이 정도면 그래도 대표적 키워드는 얼추 나온 것 같다. 사회를 롤즈처럼 공정한 협동의 체계로 보든, 아니면 로크처럼 소유와 권리에 대한 분배로 보든 간에 위와 같은 특징들 중 특히 여성비하, 장애인 비하, 노인비하, 외국인 노동자 비하, 민주화 운동희생자에 대한 비하, 지역감정, 사자 명예훼손, 패륜적 언행을 본질로 하는 집단이나 주체는 자유민주주의를 근간으로 하는 우리나라 정치사회체제와 시대적 정신을 고려할 때 어떤 식으로든 비판을 면할 수가 없다. 그것은 의무론적으로든 아니면 결과론적으로든 그릇된 것이며, 또 한편으로 사회의 공리를 감소시킴으로써 해악을 끼치는 것이다.


나라면 한국여성/장애인/노인/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비판은 인권정신, 인본주의, 의무와 효율로서의 사회 통합의 의의를 가지고 비판할 것이고, 산업화에 대한 찬양과 민주화에 대한 비하, 사자에 대한 비판과 비하는 자유주의와 민주주의를 근간으로 하는 이 사회의 기본 이념에 근거하여 비판할 것이며, 패륜적 언행은 인륜과 도덕과 윤리학에 근거하여 비판할 것이다.




나는 왜 멸시를 게을리 했는가


따라서 방법은 다를 지언정 일단 나는 위의 특징들로 규정지어질 수 있는 '일반적인' 일베 이용자들에 대해서는 접근방식이 다를 지언정 비판적인 태도를 취한다는 점에서는 기본적으로 동일하다. 하지만 문제는 이러한 접근방식에서 발생한다.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나는 일베에 반대하는 커뮤니티들에서 저들끼리 모여 앉아 한탄, 푸념을 하듯이 일베를 욕하고 조롱하는 모습이 매우 꼴보기 싫었다. 무슨 대선에서 진 야권지지자들이 아직도 제 버릇 못버리고 모이기만 하면 습관적으로 새누리당 조롱하는 모습을 보는 일과 비슷했다. 서로 양립불가능한 반대되는 방향을 가진 주장들이 있다면 그것의 건전한 충돌 방식은 양자 간의 합리적 토론과 논쟁이라 할 것이다. 그런데 이것은 그런게 아니라 똑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끼리 모여서 생각이 다른 사람들을 입 모아 공격하는데, 개중에는 물론 훌륭한 글들도 있지만, 많은 게시글과 댓글들이 아무래도 그냥 다들 비슷한 생각들이다보니까 한탄이나 푸념의 모양을 띠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내가 말하는 거대한 서사다. 그러한 한탄과 푸념의 문화, 일방적 조롱과 비하의 문화가 자리를 잡아 가는 와중에서 일베를 비판하는 게 무슨 소용이겠는가. 이를테면 거세게 흐르는 강문에 한 양동이의 물을 흘려보낸다고 무슨 소용이 있겠냐는 말이다. 그런 행위가 의미가 있으려면 메말라 갈라지는 논밭에 뿌려야 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차라리 일베에 가서 그들과 싸우는 것이 나았으리라는 생각을 이제서야 해본다.)


더군다나 엎친데 덮친 격으로 그러한 분위기의 커뮤니티 속에서 반론의 문화가 뿌리 뽑히고 있었다. 들숨과 날숨을 닮은 일베욕은 얼마든지 허용되지만, "그런데", "하지만", "그러나"로 시작되는 반론들은 수월히 지지를 얻기 힘들었고, "너 일베충 아니냐"는 사상검증에 시달려야 했다. 때때로 나는 그런 세태에 진절머리가 나서 홧김에 그냥 이왕에 이렇게 다른 거 아예 나라를 한 번 더 쪼개서 삼국시대로 돌아가자는 비아냥을 흘리고 다니기도 했다. (물론 개중에는 정말로 일베 회원인 이들도 있었다. 그런 이들 때문에 사상검증의 문화가 생겼을 것이다. 과거 북한이 간첩을 보내기 시작하면서 군사정권이 안보 마케팅을 시작했던 것처럼 말이다.) 자신의 신분을 속이고 여론을 혼란에 빠뜨리는 것을 분란조장이라고 했다. 나는 분란조장이라는 단어를 있는 그대로 풀이한 그 의미 자체에 대해 부정적 태도를 보이는 것에 대해서는 반대한다. 그런 태도는 자칫하면 다원적 분위기마저도 분란으로 간주하여 독선적인 풍조를 만들어 낼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신의 정체성을 숨기고 악한 의도에서 그러한 분열을 의도적으로 일으키는 행위에 대해서는 결코 동의할 수가 없었다. 때문에 그런 프락치 일베충 때문에 사상검증이 필요하다는 이들의 주장 앞에서 별다른 반론을 제기하기가 힘들었다. 그렇게 내가 말할 자리는 더욱더 좁아져 갔다. 그들의 말은 나름의 일리가 있었다.


이러한 문제는 근본적으로 구조에 기인하리라는 생각이다. (짠짠짠 만병통치약 구조주의 등장! 나와라 구조주의 만능팔!)

즉 서로가 서로의 진영에 숨어서 서로를 욕하는 구도에서는 필연적으로 위와 같은 풍조와 문화가 만들어질 수밖에 없었지 않는가 하는 생각이다. 좀더 근원을 추적해 들어간다면 그러한 구조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를 생각해야 할텐데, 뭐 그것은 우리사회가 품고 있던 지역, 성별, 정치, 사회, 외교에 대한 신념의 차이가 마치 기적과도 같이 하나로 융합되어 이분법적 구조를 낳았고, 그런 구조의 구도가 인터넷이라는 공간에 일베와 반일베열합 커뮤니티라는 양립된 두 세력으로 구체화되었다는 추측도 가능할 것이다. 그리고 앞서 내가 비판했던 일베와 일베 이용자를 비판하는 못난이들은 이러한 구도를 배경으로 하여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던 사람이라고 면죄부를 줄 수도 있다. 다시 말해 위에서 언급한 특성을 가진 일베 이용자가 자신의 정체성을 공개하며 반일베연합에 해당하는 커뮤니티에서 반일베연합의 주장을 비판할 경우 그 시나리오를 손쉽게 예상할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반일베연합에 해당하는 커뮤니티의 이용자가 일베에 가서 일베와 일베 이용자를 비판하게 될 경우 일어나게 될 시나리오 역시도 손쉽게 예측이 가능하다. 쉽게 말해 씨알도 안 먹힌다. 오히려 어줍잖게 접근했다간 논리적으로 관광을 당하고 심할 경우에는 신상까지 털리게 된다. 그러한 상황에서 결국 할 수 있는 것은 자신과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과 함께 그들을 규탄하는 것이고, 진영은 더욱 공고해지는 것이며, 그러한 규탄과 진영논리들이 나의 눈에는 못난이들의 푸념 퍼레이드로 비춰졌던 것이다. 결국 그것은 커다란 구조와 그 안에서 필연적으로 결과될 수밖에 없는 합리적 논쟁의 불가능성을 인식하지 못한 나의 불찰이라고 판단할 수 있는 여지가 있는바 반성을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조가 그들을 그렇게 만들었고 그들이 또 나를 이렇게 만들었다면 나의 문제 역시도 구조의 문제의 연장선 상에 있으니 나 역시도 면죄부를 허용받아야 할 것이 아닌가하는 구조주의 특유의 핑계를 대보는 것이며(본인은 딱히 구조주의자는 아니고, 구조주의를 논리의 뼈대로 쓴 김에 그냥 한 번 해보는 거다. 구조주의란 무릇 "이게 다 구조 탓이다."라는 말을 써줘야 제 맛이 아닌가.), 또 한편으로는 나나 그들이나 구조의 문제를 인식하고 그 문제를 극복, 개선하려고 하기 보다는 그냥 당장 같은 울타리 안에서 눈에 보이는 이들과 함께 입을 모으거나, 배알이 꼴려 딴지를 거는 일에 매진했다는 점에 있어서 공히 모종의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으리라는 생각이다.


이에 대해 또 양비론 운운하는 비난이 있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렇다 양비론이다. (참고로 나는 양비론을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둘 다 똑같이 나쁜 놈들이야 아무 소용없어"라는 회의주의적 주장에 "양비론"이라는 이름을 붙여 사용하던데 나는 이게 매우 잘못된 일들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보기에 회의주의랑 양비론은 엄연히 다르다. 양비론은 둘 다 나쁘다고 주장하되, 그 나쁨을 가지고 지속적인 비판과 개선에의 노력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거세하지 않는 주장이다. 이를 건전한 양비론이라고 지칭하는 사람도 있던데 일견 동의한다.) 진영논리에 갖혀서 서로에 대한 합리적 토론의 가능성을 스스로 잘라버리고 자신의 울타리로 돌아가기를 반복한 점에 있어서 일베도 반일베연합도 그 사이의 나도 모두 공범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일베와 일베 이용자들에 대한 비판적 이론의 확립을 그만둘 수가 없다. 양비론으로 출산된 현실과 무관하게 진리는 언제나 그곳에 존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멸시에 대한 결단

다시 일베에 대한 이야기로 돌아가자.

먼저 한가지 밝혀둘 것이솔직히 말해 나는 일베 이용자들이 감성팔이라는 이름으로 공격하는 정치적 온정주의에 대해서는 비판적인 입장으로 그들의 주장과 궤를 같이 한다. 근거를 밝히자면 마이클 센델의 강의 - 정의란 무엇인가에서 나온 자유지상주의자 노직이 국가 형성의 목적을 소유와 권리의 효과적이고 효율적인 보전으로 보고 국가의 역할을 극소국에 한정하고자 하는 의도에서 그러한 온전주의에 반대했다고 한다면, 나는 그와는 달리 국가가 사회의 공정한 협력의 조건을 증진하고, 칸트의 인간성의 준칙에 입각하여 사회적 약자와 최소수혜자에 대하여 합리적이고 합당한 수준의 복지를 제공해야 하지만 그러한 복지의 제공에 있어서 온정주의가 개입하게 되면 그러한 합당성이 위축될 수 있다는 측면에서 온정주의에 반대한다. 다시 말해 나는 복지도 국가의 따듯하고 친절한 온정이 아니라, 국가의 의무로서 당연하게 그리고 무표정하게 이루어져서, 그 수혜자가 그 어떤 아쉬움이나 미안함 없이 당당하게 그것을 수혜하는 사회를 꿈꾸는 것이다. 아무래도 내가 아는 한 일베와 일베 이용자들은 하이에크류의 신자유주의적 최소국가의 맥락에서 온정주의를 비판하는 것이고, 그렇다면 결과적으로 그들과 나는 서로 같은 이름을 가졌지만 다른 것을 가리키는 것에 대해서 각자 비판을 하고 있는 것이 되겠다. 그렇다면 왜 굳이 이 부분에서 그것을 밝히는지 그 이유가 문제가 되겠는데, 비록 그 목적과 내용은 다르지만, 그 비판이라는 것이 때와 상황에 따라서 비슷한 외형을 하고 나타나는 바 내 스스로도 가끔 두 입장에 대한 구분이 모호할 때가 있어 기회가 되는 대로 분명히 해두고자 함이다.


앞서 나는 내가 오늘날의 가장 억울한 이론으로 규정하는 <양비론>을 가지고 양자를 비판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현 구조에 대한 방법론에 있어서의 양비일 뿐이고, 그 내용에 있어서까지 양비인 것은 아니다. 내게 있어서 비록 양자가 구조에 대한 방법적 측면에서 있어서 똑같이 못난이 짓을 했다고 하더라도 각자가 주장하는 내용에 있어서 반일베연합의 주장은 내게 있어 수월하게 수용가능한 편이고, 일베연합의 주장은 대부분 수용하기 힘든 것들이다. 나아가 개인적 차원을 넘어서서 내가 이해하는 윤리 도덕적 규범과 사회적 인습에 비추어 선에 가까운 쪽은 반일베연합이라고 하겠다.


이러한 인식은 예전부터 가지고 있었다. 위에 이탤릭체로 적어놓은 글을 썼던 반년 전에도 물론 마찬가지였다. 윤리적 취향과 절대적 선악의 문제에 있어서 위와 같이 얼추 결론을 확립한 이후에도 나에게는 숙제가 남아 있었다. 그것은 상황인식에 이어지는 대안 마련의 일이었다. 어떤 대안이 없이는 극명하게 분열되어버린 구조와 거대한 서사에 대해서 어떤 의미있는 파장을 일으킬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것은 결단을 필요로 하는 일이었다.


그것은 어떤 결단인가? 지금에 와서야 적절한 용어를 찾았다

그것은 멸시에 대한 결단이다.



위에서도 붙였던 진중권의 트윗이다. 말했듯이 이전의 나는 그들을 멸시하는 일에 대해 매우 주저했다. 그것은 다음과 같은 이유 때문이었다.


1.귀납적 진리의 부재로 인한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의 문제

사실 이건 그냥 핑계라고 해도 별로 할 말은 없다. 귀납적 지식은 대부분의 상황에서 예외를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그리고 지금의 이런 일베 이용자들의 사안에 있어서는 그들에 대한 전수조사라는 것은 결코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에, 그것은 근거로 하여 일반화의 오류를 지적하는 일은 만사형통의 도깨비 방망이와도 같은 것이다. 그래서 이 논리는 상황에 따라서 매우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이를테면 일베와 일베 이용자들을 포괄적으로 범주화하여 (그리고 거친 표현으로) "일베충은 박멸해야 한다."라고 한다면 그러한 일베충이라는 개념이 실제하는 것인지는 논외로 하더라도, 모든 일베 사용자가 곧 일베충이라고 불릴만한 수준의 도덕성을 가지고 있고, 또 그런 행위를 했다는 증거가 없는 이상 그런 주장은 오류라고 비판을 하게 되는 상황을 말한다. 따라서 그러한 귀납적 결함이 상존하는 이상 일베와 일베 이용자에 대한 규정은 어디까지나 가설연역적 차원에 고립되어야 한다는 당위로 이어질 수 있게 된다. 즉, 다음과 같이 말이다. "일베 이용자가 위에서 언급한 특징들을 공히 가지고 있다고 한다면, 그러한 조건 하에 그들은 비판받아 마땅하다.(박멸되어야 한다.-탐탁치 않지만 뭐 표현의 차이라고 하겠다.)"라고 표현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야기가 다소 메타윤리적인 방향으로 흐르고 있어서 글을 읽는 독자의 자아 분열이 염려되는데, 하여간에 쉽게 말하자면 일베를 비판하고 있는 현재의 일반적인 상황이 말꼬투리잡기가 아주 용이하게 생겨먹어서 그 매력을 포기하기가 힘들었다는 고백인 동시에 반성이다.


하지만 역시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일베충은 보는 족족 잡아 죽여야 한다"는 일반론적 주장보다는 내가 제안한 가설연역적 명제가 귀찮고 번거롭기는 하지만 장기적인 비판의 건전한 문화를 고려할 때 더욱더! 훨씬! 마땅히!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는 점에 있어서는 변함이 없다.(표현을 지적하는 게 아님)


잠깐 재밌는 이야기를 하자면, 사실 나는 마지막까지도 이 핑계에 대한 미련을 못 버리고, 혹시라도 일베에 자유민주주의적인 가치를 존중하고, 사회 공동체의 구성원을 존중하며, 지역주의에 사로잡히지 않고, 존댓말을 사용하며, 민주화를 부르짖는 그런 인물이 없는지 일베에 한 번 들어가 보았다. 한 장씩 페이지를 넘기면서 제목들을 훑어보는데, 마치 기독교 성경 (창 18:22-32) 중의 32절 "아브라함이 또 이르되 주는 노하지 마옵소서 내가 이번만 더 아뢰리이다. 거기서 십 명을 찾으시면 어찌 하려 하시나이까. 이르시되 내가 십 명으로 말미암아 멸하지 아니하리라.(대충 요약하자면 신이 아브라함이라는 인간에게 어떤 타락한 성(마을?)에 의인 50명을 찾으면 멸망시키지 않는다고 함. 아브라함이 알겠다고 하고 찾으러감. 못 찾겠다고 하면서 45명-40명-30명-20명-10명으로 깎음. 근데 그 착한 사람 열 명을 못 찾아서 결국 멸망함)에 나오는 신이 된 기분이 들었다. 대홍수를 일으키기 이전에 세상을 굽어보던 신의 기분이 이런 것이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의인이라고 하기엔 뭐하고 어느 시계 매니아의 글은 이전에도 한 번 읽은 경험이 있는데 게시물이 담고 있는 정보가 나름 재미가 있었고 유용했다.) 결국 나는 의인을 찾지 못하고 이내 페이지 넘기기를 포기했다. 그리고 이 글을 쓰는 동안 찾아온 아침의 여명이 밝아오는 것을 보면서 이제는 그 귀납적 바리케이드를 치워버려야 할 때가 됐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일반화의 오류 운운하기에는 위에서 언급한 특성을 공유하는 이들이 절대 다수였다. 지나치게 많았다. 일베라는 이름의 성 안에 말이다.


2.사회 통합 지향과 계몽 가능성이 선사하는 희망고문


다음으로 내가 멸시에 주저한 이유는 나는 그들 역시도 우리 사회를 구성하는 구성원 중의 하나라고, 그리고 합리적 이성을 가짐으로써 계몽이 가능한 인간이라고 생각하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지금 그 믿음을 포기한 것은 아니다.) 당시에 내가 이해한 <멸시>라는 것은 <포기>라는 어감으로 크게 다가왔고, 그것은 내가 가지고 있는 위와 같은 신념과 양립할 수 없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즉 다시 말해서 그들이 내가 앞서 말한 비판의 대상으로서의 특성들을 공유하고 있는, 사회적 해악의 원인이 되는 존재이자, 동시에 비윤리적이고 반인륜적인 존재들이라고 할지라도 그들을 멸시라는 이름으로 포기하는 것은 사회 통합에의 의지를 포기하는 것이며, 합리적이고 목적적인 존재로서의 칸트적 인간관에 대한 나의 신념을 저버리는 결과를 초래하게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 의무의 방기를 중단하고, 내 나름대로 일베와 일베 이용자들에 대한 도덕적 결단을 내리는 순간에 있어서 나는 그러한 사회통합에의 의지와 인간에 대한 신념을 포기하는 대신 <멸시>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내림으로써 이런 상충의 문제를 돌아나가고자 한다. 




해피엔딩의 씨로써 멸시를 뿌리는 일

사실 이쯤되면 결말이 너무 뻔해져서 시시해지기도 하지만 그래도 끝까지 한 번 열심히 걸어가보겠다. 자자 얼마 안 남았다.


사실 공정으로서의 정의에 차원에서도 멸시를 주저하는 일은 딜레마가 아닐 수 없다. 사회에 존재하는 사람들 중에는 분명 일베 이용자들과 달리 자유민주주의를 존중하고, 인권, 일본주의, 사회구성원에 대한 배려에 충실하는 등 그들과 다른 정체성을 가지는 이들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 상황에서 서로 다른 이들에 대해 똑같이 멸시를 주저하는 일은 다른 것을 같게 대하는 것으로서 그것은 공정하지 못한 일이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나는 선의의 멸시라는 개념을 상정하기로 했다. 과연 그것은 존재 가능한 개념일까? 국어 사전을 찾아보면 멸시라는 단어는 <업신여기거나 하찮게 여겨 깔봄.>의 의미를 가진 낱말이다. 그렇다면 나는, 그리고 사회통합의 의지를 가지고 인간성에 대한 신념을 가지고 있는 우리는 선한 의도를 가지고 일베 이용자들을 업신여기거나 하찮게 여길 수 있을까? 다시 말해 우리는 <선의의 멸시>를 할 수 있을까? 나는 그것이 행위 가능하며, 동시에 존재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인간사를 살펴보면 객체에게는 불쾌하기 이를데 없지만 주체의 입장에서는 나름대로 혹은 하염없이 객체를 위하는 선한 의도에서 비롯되는 행동과 감정들이 얼마든지 존재하기 때문이다. 또한 설사 그런 개념이 지금까지 존재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사회와 그 속의 인간, 혹은 인간과 그 집합으로서의 사회에 대한 의지와 믿음이 있다면 그 정도의 개념, 감정, 행위를 만들어내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그리고 진중권 교수의 주장 역시도 그들을 멸시함으로써 그들에게 그러한 행위의 잘못된 점을 일깨워주는 선한 의도를 전제하고 있는 것으로 이해하기로 했다. (이를 내가 왜곡 인용하게 되는 것이라면 그에 대한 비난은 달게 받겠다.)


그런 의미에서 한가지 다시 한 번 꼬집자면, 나는 지금까지 많은 인터넷 공간에서 이루어져 온, 일베와 일베 이용자들에 대한 숱한 비난들은 내가 말하는 <선의의 멸시>의 범주에 포함되지 않는 경우가 상당하다고 인식하며, 그런 의미에서 그것들은 아직 비판과 개선의 여지가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 양쪽의 사람들이 자신만의 울타리 안에 모여 서로를 공격하매, 그 사이에서 조용히 입을 다물거나 슬쩍 딴지나 놓던 나날 동안 나는 묻고 싶었다. 당신들은 우리 사회가 언젠가는 전제나 독선을 경계하고 다양성과 다원주의를 보존하는 연장선에서 건전한 사회통합을 이뤄야 한다는 의지를 가지고 있느냐고, 당신은 합리적 이성을 통해 선의지를 인식하고 그것을 통해 도덕성의 완성으로 나아갈 수 있는 인강성을 믿느냐고.


그러한 질문에 긍정적인 대답을 하는 사람이라면 그러한 새로운 연역적 전제에 입각하여 나는 멸시에 대한 이러한 나의 해석이 그 인격에 조금이나마 해피엔딩의 씨앗을 뿌리는 계기로 작용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앞서 이미 좋고/나쁨과 선/악의 구도에 대해 밝힌 이상 왜 굳이 이쪽에서 먼저 해야 하냐고 되묻는 사람은 없을 것 같다. 오히려 우리가 진정으로 그들을 비판하고자 하고 그들을 업신여기거나 하찮게 여기고자 한다면 가장 확실하고 손쉬운 길은 도덕적이 되는 것이며, 도덕의 극치는 자신이 혐오하는 대상 자신의 원수를 사랑하는 일이다. 선한 멸시는 그러한 사랑이 구체화된 것으로써 사회통합과 도덕적 인간성이라는 해피엔딩을 위한 씨앗이 되어주리라 믿는다. 그 씨가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 우선은 우리 마음 속에 가려진 선의를 재확인하는 일일 것이고, 우리가 갇혀있는 구조를 통찰하는 일이 아닐까 한다.


그렇게 조용히 밤을 새우며 멸시의 결단을 내렸다.


해가 뜬다. 작은 멸시의 씨앗이 해피엔딩의 꿈과 함께 누군가의 마음 속에 뿌려지는 날이었으면 좋겠다.

-끝-

<길고 만연한 글 읽는 수고를 마다 않은 독자께 깊은 감사의 마음을 갖고 살아가겠습니다.>



일베와 일베를 욕하는 이들에 대하여.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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