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랭 드 보통의 불안 독후감상문
이 문서는 알랭 드 보통의 <불안>을 읽고 작성한 독후감이다. 문학서적 같은 제목을 가지고 있지만 이 책은 사회/철학적 내용을 다루고 있다. 현대인이 살아가면서 마주하게 되는 독특한 종류로서의 불안의 원인과 그 해결책을 제시하고 있는데 작가의 독특한 시선만으로도 읽을 가치가 있다고 보여지는 책이다.
1.소개 2.현대의 초상-불안 3.불안의 생김새 4.불안의 성장과정 5.불안의 극복 6.나의 불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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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소개
알랭 드 보통은 1969는 스위스 취리히에서 태어났으며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교에서 수학했다. 1993년에 발표한 처녀작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부터 발표하는 소설마다 큰 호응을 불러일으켰다. 뒤이어 <여행의 기술>을 출간하여 평단으로부터의 찬사뿐만 아니라 독자들의 뜨거운 사랑을 받는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의 반열에 올랐다. 다음 작품이 가장 기대되는 작가로 꼽히는 드 보통의 저서들은 현재 20여 개의 언어로 번역 출간되어 세계 각국에서 수십만 부씩 팔리는 베스트셀러이다. 2000년의 역사를 꿰뚫으며 경제적 능력으로 규정되는 사회적 위치에 대한 불안의 문제를 다룬 <불안>은 2004년에 발표한 최신작이다.
우리나라에서 작가로서의 그의 이름은 꽤나 많이 알려져 있다. 그가 쓴 책들도 마찬가지이며 인터넷 서핑을 하다보면 심심찮게 그의 책들을 발견할 수 있기도 하다. 사실 나는 이 책을 문학서적인 줄 알고 구매했다. 이 책이 가지고 있는 제목이 철학 서적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단순했기 때문일까? 아무튼 책을 펼치는 순간 문학을 기대했던 내 눈에 사회ㆍ철학적 내용들이 읽힐 때의 당황스러움을 나는 쉽게 잊지 못한다. 제목처럼 이 책은 ‘불안’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데 그 불안도 좀 독특한 불안에 대한 것이다.
책의 구조는 크게 현대인들이 경험하고 있는 독특한 불안의 <원인>과 <결과>로 나뉘어져 있다. 현대사회의 사회구조를 심리학적 모티브를 중심으로 고찰하고 있다는 데에 그 독창성이 있을 것 같고, 예술과 철학과 역사의 분야에 있어서도 많은 연관을 시도하고 있으며, 무엇보다도 오늘날의 우리 사회를 바라보는 현대인의 시각을 교정하고 사고의 전환을 꾀하게 하는 무수한 시도들이 바닷가의 아름다운 모래처럼 빛난다고 표현할 수 있을 것 같다.
2.현대의 초상-불안
이 책에서 작가가 묘사하는 현대인의 모습은 매우 암울하고 심지어는 불쾌하기까지 하다. 우리는 하루가 다르게 진보해가는 현대 문명의 이기를 목도하며 살아가고 그 진보의 한 일원으로 당연히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을 자랑스럽게 여기며 살아갈지도 모르지만 작가는 우리가 살아가고 또 목격하는 세계의 이면의 것들을 지적한다.
이제 이 책을 읽기 시작하면 우리는 철저히 작가의 시선을 따라가게 된다. 작가의 눈에 비친 세계는 눈부신 산업발전의 껍질 밑에서 썩어 들어가고 염증과 고통에 신음하기를 멈추지 않는 현대인들의 군상이다. 그들은 애써 그런 고통을 외며한 채 자신들 위에 군림하는 근대 이후의 이상에 동조하고 있지만 그들의 표정을 한 꺼풀 벗겨버리면 고통스러운 진짜 모습이 나타나는 것은 시간문제다.
현대인들을 고통스럽게 만드는 원인은 바로 불안이다. 이 점에 대해 우리는 확실히 우리가 그 어떤 불안에 시달리고 있다는 점에서 그 주장에 동의할 수도 있고, 또 한편으로는 불안에 시달린 것은 비단 현대의 일에만 국한 되는 것은 아니고 인류는 역사상 언제나 불안에 시달려 왔다는 이유에서 이의를 제기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한마디로 인류가 겪는 불안이라는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니 새삼스러울 것이 없다는 말이다.
그래서 작가는 불안의 영역을 다소 한정짓기로 했다. 즉 그냥 막연한 불안이 아니라 바로 ‘지위에 대한 불안’이라는 것으로 말이다. 따라서 불안에 대한 작가의 정의를 대입한다면 현대 사회라는 것은 무수한 인간들이 문명의 이기에도 불구하고 ‘지위에 대한 불안’에 시달리며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시기로 규정지어진다.
3.불안의 생김새
작가의 이야기 중에서 의미심장하게 다가오는 두 개의 주제가 있다. 하나는 불안이 우리의 내부에서 작용하는 메커니즘이라는 것이고, 또 하나는 그러한 불안이 생겨나서 구체화되고 오늘날 같은 영향을 갖추게 된 과정에 대한 이야기다.
우선 전자에 대해 이야기해보자면 우리가 지위에 대해서 불안을 갖는다는 것은 우리가 그러한 지위를 가지고 싶은데 현실적으로는 갖지 못해서 절망에 빠지거나 설사 그러한 지위를 소유하고 있다 하더라도 그것을 영원히 고수할 수 없음을 알기에 경험하게 되는 감정을 말하는 것이다.
이에 대해 우리는 작가가 무슨 말을 하는 것인지 쉽게 이해할 수 있고 또 동의할 수도 있다. 실제로 우리와 우리 주변인들을 관찰해보면 이는 실로 쉽게 확인할 수 있는 현상이다. 특히 1997년 IMF 사태 이후로 국내 시장의 고용 불안정이 심화되면서 명예퇴직이 사회적 이슈가 되었고, 그로부터 십 여 년이 지난 지금은 그러한 어려움이 세대를 거쳐 내려오면서 청년 실업이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기에 이르렀다. 기성세대는 지위를 유지하지 못할까봐 하루하루를 노심초사하며 살아가고, 새로운 세대는 갈망하는 지위에 도달할 방법의 부재 앞에서 끊임없는 좌절을 경험한다.
이에 대해 작가는 매우 독특한 분석을 제시한다. 우리는 흔히 생각하기로 우리가 그런 지위로 인해 겪는 불만의 원인이 그런 지위에 결부되어 있는 경제적인 요소 때문이라고 생각하지만 작가는 여기서 한 층 더 깊이 들어가서 바로 사랑에 대한 욕구가 그러한 불안의 궁극적인 원인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것은 우리가 지위를 추구하는 동기와 관련된 일이기도 하다. 다시 말해 우리가 어떤 지위를 추구하는 근본적인 동기는 경제적인 요소가 아니라 사랑으로 대표되는, 타인의 관심과 인정을 얻기 위함이라는 것이며, 나아가 작가는 지위라는 것을 사랑을 얻는 열쇠로 규정하고 있다.
이러한 작가의 생각은 제법 설득력이 있게 다가왔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했듯이 인간은 사회적인(정확히는 정치적인) 동물로서 타인과의 관계를 필수적으로 갈망하고 그 관계를 통해서 모종의 인정이나 사랑 같은 것을 추구할 수밖에 없는 특성으로 천성으로 소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이 어떤 지위나 재화를 추구하는 이유의 근원을 추적해 들어간다면 그것은 ‘사랑에 대한 욕구’라고 할 수 있을 것이고, 나아가 아리스토텔레스가 궁극적인 목적으로 규정했던 행복과 동일시할 수 있는 것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인간의 천성과는 무관하게 현대 사회는 갈수록 피폐해져가고 있다. 과학기술의 발달과 정치제도의 발달이 인간의 생활을 윤택하게 하고 편리하게 만들어주기는 했지만 인간과 인간 사이의 관계는 오히려 더 멀어졌다. 이런 사회에서는 인간이 자신의 본성인 사랑의 욕구를 충족하기가 더욱더 어려워진다.
그리고 작가가 말하고 있듯이 이러한 사랑의 결핍은 ‘속물’이라는 유형의 인간을 탄생시킨다. 작가가 말하는 ‘속물’이라는 것은 어떤 사람의 재화나 지위로 그 사람의 가치를 온전히 평가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또 그렇게 행동하는 사람들을 말한다.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부자와 가난한 자를 정서적으로 차별하는 이들을 말한다고 보면 될 것이다. 이들은 그 누구보다도 지위를 갈구하는 자들이다. 그리고 물론 그 갈구의 동기가 되는 것은 사랑인데, 이들이 심각한 문제가 되는 이유는 그들의 그런 가치관과 행동이 또 다른 속물을 만들어 낸다는 데에 있다. 이른바 가치관의 확산이다. 어느 한 명의 속물이 다른 이들의 지위를 그의 가치와 동일시하게 되는 과정에서 다른 사람도 결국에는 그와 같은 가치관을 가지고 세상과 그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바라보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결국 이러한 속물들의 핵심은 다름 아닌 불안이며, 두려움이다.
4.불안의 성장과정
앞서 말했던 대로 작가가 말하는 핵심적인 내용의 두 번째는 오늘 날과 같은 불안이 구체화되어 이 정도의 영향력을 끼치게 된 과정에 대한 작가 나름의 해석이다. 이 책이 갖고 있는 가장 독창적인 내용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인데, 작가는 과거, 즉 근대 이전의 인간들의 경우에는 이러한 불안에 시달리지 않고 살아갔다고 보고 있다. 이것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로서는 쉽게 납득할 수 없는 이야기다.(물론 그래서 그의 생각이 독창성을 갖게 되는 것이다.) 상론했듯이 현대인들은 아무리 가난하고 고단하게 살아간다고 해도 계급이라는 것이 존재했던 시대로 돌아가느니 아무렴 그래도 모두가 평등한 자유를 향유하고 있는 현대에 머무르는 것이 낫다는 데에 동의할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작가는 이러한 현대인들의 생각이 건강하지 못하다고 생각한다. 그 생각이 잘못됐다는 것이다. 작가의 말에 따르면 과거의 인간들은 비록 계급사회를 살아가면서 엄격한 위계질서를 준수해야만 했고 또 고정된 자신의 계급을 가지고 한 평생을 살아가야만 하는 숙명에 처해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계급이라는 것이 오히려 그의 처지를 정당화해주고 또 위로해주는 역할을 했기 때문에 지금과 같은 불안에 시달리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산업혁명과 명예혁명, 그리고 독립전쟁 등의 역사적 사건을 거치면서 인간은 점차 계급사회를 부정하고 평등한 사회를 발전시켜오게 되었다.
그 과정의 결과로 물질문명이 발달하면서 과소비가 당연시되게 되었고 그로 인해 인간의 기대가 성장하게 되었다. 과거 계급사회에서는 인간이 가질 수 있는 기대라는 것이 그가 속해 있는 계급에 의해서 정해지는 것이었던 반면 이제는 계급이 아니라 그가 가지고 있는 부에 의해서 정해지고 이 부라는 것은 그의 노력 여하에 따라서 얼마든지 확대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그 기대라는 것과 함께 무제한의 확장을 경험하게 되었다. 이는 우리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과소비의 풍조를 보면 알 수 있다. 또한 ‘필수품’이라는 것의 관념을 자세히 들여다보는 것도 매우 좋은 방법이다. 불과 몇 십 년 전, 아니 몇 년 전만 하더라도 겨울철의 패딩 점퍼를 ‘필수품’이라는 개념에 속하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2010년인 현재를 둘러보면 30~40만원에 이르는 유명 브랜드의 패딩 점퍼는 대한민국 중고등학생들의 필수품으로 자리잡아버렸다.
또한 그러한 과정의 결과로서 평등의 관념이 생산되고 보편화되었다. 이것은 과거와는 달리 계급 간의 이동이 가능해지고 나아가 계급이라는 관념이 철폐될 수 있다는 생각이 퍼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를 다시 곰곰이 생각해보면 이러한 평등의 관념이라는 것은 사실 계급과 소유를 정당화하기 위한 형식적 평등에 불과한 것이라는 게 작가의 생각이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마찬가지인데 정치와 경제가 부정부패를 통해서 밀접하게 유착되어 있는 모습이라든지, 대기업들의 부정 세습들을 보면 과연 우리 사회가 진정한 평등을 이룩했는지는 의문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좀처럼 쉽게 평등에 대한 관념을 버리지 못한다. 심심찮게 사람들은 ‘저 사람도 나와 똑같은 사람인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는 자신의 처지를 정당화하기 위한 잘못된 위로라는 것이 작가의 주장이다. 오히려 이러한 잘못된 관념은 인간의 자아를 파먹는다. 다시 말해서 인간의 경제적, 사회적 성공은 그 사람의 노력의 결과이고, 반대로 실패는 그 사람의 게으름의 자연스러운 귀결이라는 관념이 재생산되는 것이다. 이는 모두다 인간은 평등하게 태어나 평등하게 살아간다는 관념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과거에는 인간이 불평등하게 되는 이유는 그 사람의 천부적 계급 때문이라고 치부할 수 있었지만 이제는 그 사람의 지위는 오로지 그 사람의 노력 여하로 책임이 돌려지게 된다. 이제는 더 이상 불평할 곳이 없는 것이다. 결국 이렇게 부에는 도덕적 의미가 깃들게 된다. 그리고 나아가 지위가 갖는 무게는 더욱 더 커지게 된다. 과거에는 그 사람의 지위라는 것이 그저 그 사람이 우연히 좋은 집에서 태어났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에 불과했지만 이제는 지위가 그 사람의 인성까지 판가름하는 것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앞서 말한 속물들의 가치관이 전체 사회의 공식적인 가치관으로 자리 잡아 버린 꼴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5.불안의 극복
이렇게 현대인의 겪고 있는 불안의 모습과 그 원인에 대해서 고찰한 작가는 이를 극복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해 말을 꺼낸다.
첫 번째는 철학이다. 이것은 자기주체의식을 갖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인간들이 저렇게 속물들의 가치관을 공식적인 것으로 간주하게 된 것은 사실 자신의 가치관을 형성할 수 있는 권리를 타인이나 사회에 위임했기 때문이다. 이는 매우 수동적인 방식이다. 물론 인간은 사회적인 동물인바 사회에 형성되어 있는 규범을 완전히 무시할 수는 없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의지의 자유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자신의 규범과 가치관은 온전히 자신이 결정할 수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중요한 것은 자신의 머리로 생각하기인 것이다.
두 번째는 예술이다. 이것은 속물근성을 전복시키는 데 아주 효과적인 수단이다. 속물근성에 의해 지배당한 사회는 언제나 성공한 이에게만 갈채를 보낸다. 그 과정 따위는 깡그리 무시되어 버리고 무슨 수를 써서라도 성공하지 못하면 관심의 대상도 되어보지 못하고 잊혀지는 수밖에 없다. 이런 사회의 근본적인 가치관을 공략하는 것이 바로 예술이다. 그것은 실패자와 나를 동일시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또 한편으로는 희극을 통하여 속물근성에 지배당한 이들과 사회를 비웃고 동시에 자신을 긍정할 수 있는 힘을 키우는 것이다.
세 번째는 정치다. 이것은 이데올로기의 간파를 의미한다. 그리고 그 이데올로기를 변화시키는 것 길이 바로 정치에 있다.
네 번째는 기독교다. 기독교는 이분법적 사고관을 가지고 근대의 목적합리성을 낳는데 기여하기는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세속적 가치의 중요성을 재확인할 수 있는 그 저력은 여전히 무시할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인간의 유한성을 노정하게 됨으로써 인간은 자신의 기대와 욕망을 절제할 수 있을 것이고 나아가 현세에서 이루지 못한 행복에 대하여 신을 요청하는 기독교적 희망에 기대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마지막은 보헤미안의 정신이다. 보헤미안은 탈 부르주아의 정신을 실천하는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반항의 정신이다. 하지만 단순한 반항이 아니다. 단순한 반항에 그친다면 그것은 니체가 말하는 노예도덕에 지나지 않는 것일 게다. 따라서 그것은 자기긍정을 실현한 사람들의 정신이라고 할 수 있다.
6.나의 불안
내 최초의 장래 희망은 로봇이었다. 로봇 만화에 열광하는 평범한 소년이었던 5살 무렵이 최초의 기억이다. 마음대로 변신을 하고 악당들을 물리치는 로봇이 나의 눈에는 가장 멋져보였던 모양이다. 어느 정도 철이 든 이후에 지금까지 나의 장래 희망으로 규정되어 지는 것은 ‘교사’와 ‘소설가’다. 좀 더 돈을 많이 버는 직업을 희망한 적도 있었지만 스스로의 특이나 본성을 확인하면 할수록 저 직업들이라도 가질 수 있게 된다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굳어져 갔다. 그리고 이 책을 읽고 느끼는 것은 역시 저와 같은 나의 장래희망 역시 그 이면에 작용하고 있는 동기는 사랑에 대한 갈망이라는 것이다. 그 지위를 얻음으로 인해서 나는 사람들의 사랑을 얻고 싶어 하고 있는 것이다.
돌이켜 보면 이러한 지위에 대한 욕구는 누군가를 사랑해서 그 사람의 사랑을 받고 싶어 하는 마음이 강해질수록 덩달아서 강해졌다. 살아오면서 연애를 하고 또 짝사랑을 함에 있어서 나는 종종 나의 직업에 대한 욕구를 다졌다. ‘내가 그 직업을 갖게 된다면 그녀를 가질 수 있겠지.’라는 생각에 기인한 욕구였을 것이다.
이는 나이와도 비례했다. 어릴 적에는 그저 직업은 나의 만족의 대상에 불과했다. 하지만 나이를 먹어갈수록 내가 희망하는 나의 지위는 점점 나의 사랑과 결부되어 가기 시작한다. 아무리 발버둥 쳐도 헤어 나올 수 없는 늪처럼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책을 보면서 미약하나마 내 안에는 학문에 대한 비세속적 가치에 대한 열망의 불씨가 남아있다고 믿는다. 교사가 되고 싶은 것은 어쩌면 누군가의 사랑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의 만족, 즉 학생들을 가르치고 지속적으로 공부를 계속하고 싶은 나의 마음 때문이고, 소설가가 되고 싶은 것도 돈을 많이 벌고 사회적 명성을 얻어서 사람들의 사랑과 인기를 얻고 싶은 마음 때문이 아니라 글로 만들어 낼 수 있는 아름다움을 확인하고 싶은 나의 마음 때문이라고 믿는 것이다.
박민규 작가의 『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을 읽으며 느꼈던 것처럼 사실 이 인생은 나의 인생이다. 그 누가 하찮다고 말한다고 해서 정말로 하찮아지는 것은 아니다. 나는 비록 타인의 사랑을 갈구할 수밖에 없는 존재로 태어났지만 또 한편으로는 자신의 정체성과 가치관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의지의 자유를 가진 존재로 태어나기도 했다.
불안, 완전히 없앨 수도, 또 살아가기 위해서는 완전히 없어도 안 될 것이다. 인간의 욕구나 열등감을 삻의 원동력으로 간주한 정약용이나 아들러처럼 말이다. 다만 그저 그것을 온전히 나의 것으로 만들어 그 불안조차도 내 영혼이 살아낼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다. 그것이 나의 진정한 실존이라 믿는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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