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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

7년의 밤 독후감

by 통합메일 2012. 5.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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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의 밤 독후감


1.소개

2.줄거리

3.구성

4.캐릭터

  1)현수

  2)승환

  3)서원

  4)은주

  5)영제

5.생생한 묘사

6.스릴러

7.문장

1.소개

이 책은 2011년 4월 출간된 정유정 작가의 장편 스릴러 소설이다. 문학서적이 베스트셀러 순위에 올라가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 되는 시대에, 이 책은 김애란 작가의 <두근두근 내 인생>과 함께 베스트셀러 10~20위 권에 꽤 오랫동안 머물렀던 책으로 내게 기억되고 있다. 그래서 일단 나에게는 ‘문학작품’이라는 이유로 반가웠고, 좋은 어감을 가진 그녀의 이름에 근거 없는 기대감이 일었으며, 내 취향에 부합하는 표지에 마음이 좋았다. 물론 스릴러 소설이라는 점에서 나의 기대가 무너지기는 했으나, 글을 읽어가면서 나는 작가가 가진 역량에 몇 번이나 감탄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최근에 읽은 스릴러 소설이 넬러 노이하우스의 <백설공주에게 죽음을>과 더글라스 케네디의 <빅픽처>인데 이 작품을 읽으면서 생각난 것을 전자다. 특정 폐쇄된 지역사회를 배경으로 하고 있고, 음산한 분위기를 풍기는 것이 매우 닮은 동시에 그것보다 더욱 뛰어난 작품성을 보여준다고 생각된다.


2.줄거리

최현수는 어릴 적 주정뱅이 아버지를 저주하다가 진짜 아버지가 죽어버리는 바람에 모종의 죄책감을 가지고 성장한 전직 야구선수다. 유망주였지만 불운의 부상으로 인하여 그는 자신의 꿈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은주는 술과 몸을 파는 어머니에게서 태어나 밑으로 여동생과 남동생을 두었다. 가난이 지긋지긋했고, 어머니가 지긋지긋했다. 그래서 그녀는 학업을 마치자마자 멀리 광주로 취직을 했다. 하지만 정에 이끌려 잠시 찾아간 서울에서 그녀는 자신이 버린 가족들에 의해 발목을 잡힌다. 정에 이끌려버린 자신을 원망해도 이미 때는 늦었다. 여동생의 학비를 댔고, 곧이어 찾아들어온 어머니와 남동생의 생계도 책임져야 했다. 그래도 어찌어찌 그녀는 가족을 지켜냈다. 여동생 영주는 교사가 되었고 은주는 동생 대신 나간 소개팅에서 현수를 만나 결혼한다.

부상으로 야구를 그만둔 현수는 경비보안업체에 취직했다. 만족할 수는 없지만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힘들게 살아온 은주는 ‘중산층’의 반열에 들기 위해서 더욱더 억척이었고 현수는 그런 그녀의 의지를 거스를 수 없었다. 결국 은주는 수도권의 중형 아파트를 계약했고 거기에 걸린 대출금을 갚기 위해 그들은 지방의 근무지를 선택하게 된다. 그들에게는 아들 최서원이 있었다.

현수가 전근 간 곳은 세령댐이었다. 그들 가족은 그곳의 사택에 살게 되었다. 현수는 세령댐의 보안팀장으로 가게 되었다. 그곳에서 그들은 오승환과 오영제를 만난다. 승환은 세령댐에서 근무하는 보안직원이다. 다시 말해 현수의 부하직원이 될 것이었다.

세령댐으로 이사 가기 며칠 전 은주는 현수에게 미리 그곳에 다녀오라고 한다. 미리 가서 집을 둘러보고 승환과 생활방식도 협의하라는 얘기였는데 현수는 아내의 의도를 자신에게 동기들과 술 마실 기회를 주겠다는 것으로 해석하고는 만취 상태가 되어 차를 끌고 세령댐으로 가게 된다. 그는 술만 마시면 차를 운전하는 나쁜 버릇을 가지고 있었다. 아내의 채근에 술을 마시던 도중에 일어나 어찌어찌 댐에 도착하기는 했으나 댐에는 짙게 안개가 깔려있었고, 그는 과속을 했다. 그리하여 마침 튀어나온 여자아이를 치어 죽이고 만다.

아이의 이름은 오세령. 지역 유지이자 치과의사인 오영제의 외동딸이다. 난폭하고 자기중심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는 오영제는 자신의 아내와 딸을 습관적으로 폭행했다. 그런 그를 못 견딘 아내 하영은 딸을 버리고 도망쳐서 오영제와의 이혼 소송에서 승리했고, 그 일로 오영제는 자신의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는 상태였다. 그리고 세령은 그런 오영제의 폭행으로부터 도망쳐 나왔던 것인데 도망치던 와중에 현수의 차에 치이게 된 것이다. 음주운전 사실이 들통 날 것을 두려워한 현수는 아이를 병원으로 옮기는 대신 입을 틀어막아 완전히 숨을 끊어버린다. 그리고 죽은 아이를 호수에 던져버리고 일산으로 돌아온다. 그 때 승환은 취미인 스쿠버 다이빙을 하면서 소설에 필요한 자료들을 수집하고 있었다. 한 밤 중의 어두컴컴한 물속에 들어가 수장된 도시를 탐험하고 물 밖으로 돌아오던 그는 현수가 던져버린 세령의 시신이 자신의 머리 위에서부터 천천히 가라앉는 것을 목격한다. 대신 그는 범인이 누구인지까지 확인하지는 못한다. 처음에 그는 세령을 죽인 것이 그녀의 아버지인 오영제일 거라고 생각했다.

여전히 만취 상태로 고속도로를 달려 일산으로 돌아온 현수는 아침에 차 안에서 정신을 차리고 자신이 저지른 일을 뼈저리게 반성한다. 하지만 이미 돌이킬 수 없었다. 그는 최대한 은밀히 차를 고쳤고, 며칠 뒤 그의 가족은 예정대로 세령댐으로 이사를 간다. 술에 취해 여자아이를 치어죽인 곳으로 돌아온 현수의 심경은 물론 말이 아니었다. 하지만 내 집 장만의 꿈에 잔뜩 부풀어 있는 은주는 그런 남편의 변화를 전혀 알아채지 못하고 더욱더 남편을 옭아맬 뿐이었다.

자신을 피해 창문으로 도망친 딸이 돌아오지 않고 사라지자 영제는 다양한 가설을 세워서 그 흔적을 추적한다. 그러다 결국 자신의 딸이 세령호수에 가라앉아 있을 거라는 추론에 이르렀고 결과적으로 그 추론은 맞아떨어졌다. 오영제는 매우 영악한 인간이었다. 그는 먼저 승환을 의심한다. 일전에 자신으로부터 도망친 세령을 발견한 승환이 아이를 진료소로 데려갔고 그 일로 영제에게 승환은 좋지 않은 기억으로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승환이 다이빙에 능하다는 사실까지 알아내는 등 그 뒷조사도 철저히 했지만 생각할수록 승환은 범인이 아닌 것 같았다. 그러던 중에 그는 새로 이사 온 현수를 의심하기 시작한다. 실로 놀라운 추리력이었다.

영제가 호수에서 세령의 옷 조각을 발견하고 신고를 함으로써 수중 수색이 시작됐고 마침내 세령의 시신을 건져 올린다. 세령의 시신과 그 장례식을 본 현수는 몽유병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과거 아버지에 대한 죄책감과 세령을 죽인 죄책감이 뒤섞인 병이었다. 밤마다 술에 취해 잠을 청하면 어느새 깨어 일어나 누군가의 신발을 들고 밖으로 나가 세령호에 그것을 버리고 오는 기괴한 증상에 시달렸다. 그것은 과거 자신이 살던 동네에 있던 우물에 아버지의 신발을 버렸던 일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영제는 그런 현수의 뒤를 쫓았고 그에게 딸의 복수를 할 계획을 세운다. 그리고 승환은 어렴풋하게 그런 영수의 계략을 눈치 채기 시작했다.

영제는 자신이 고용한 서포터즈를 이용해서 현수의 가족과 승환을 습격한다. 은주와 승환과 서원을 마취약으로 잠재우고 감금한 뒤에 홀로 댐 경비실을 지키는 현수를 영제가 덮친다. 영제는 현수를 댐관리동 중앙통제실에 묶어두고는 호수 한 가운데에 묶여있는 아들의 모습을 보여주며 괴로워하는 모습을 지켜본다. 현수는 재치를 발휘해서 영제를 제압하고 아들 서원을 구하기 위해, 호수의 물을 빼기 위해 댐 수문으로 달려간다. 같은 시각, 승환은 마취약에서 깨어나 감금에서 탈출하여 호수에 뛰어들어 서원을 구해낸 뒤 현수에게 달려간다. 영제는 기절 상태에서 깨어나 고지대의 휴게소로 도망치던 중에 은주와 마주친다. 다혈질인 은주는 영제에게 달려들었고 영제는 홧김에 그녀를 때려죽인다. 경찰이 도착했고, 현수는 모든 혐의를 다 뒤집어쓰고 체포됐다.

그리고 7년이 지났다. 서원은 19살이 되었다. 그 날 이후 서원은 끊임없이 그 악몽에 시달려야 했다. 그 모든 것이 아버지가 저지른 죄라는 것을 받아들일 수가 없어서, 아무래도 뭔가 잘못된 것이 분명하다는 생각에 일말의 희망을 잃지 않기 위해서 일부러 아버지의 소식을 외면했다. 무엇보다 감옥 안의 아버지는 자신을 만나지 않으려 했다.

아버지의 친척들은 자신을 외면했다. 각자 의무적으로 서원을 3개월씩 맡아준 다음 이사를 가는 방식으로 서원을 버렸다. 유일하게 승환만이 서원을 외면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이 가는 곳마다 알 수 없는 손길이 철저히 그들을 따라다녔다. 살인자의 아들이라는 낙인은 떨어지지 않았고, 서원과 승환은 끊임없이 도망다녀야 했다. 결국 서원은 학교를 그만두고 남해안의 등대마을로 숨어들었다. 하지만 그곳에서의 평화도 잠시. 다이빙을 하러 온 젊은이들이 객기에 그만 사고를 당했고, 서원과 승환은 그들을 구조했다. 부잣집 자식들인데다가 서원의 이력에 냄새를 맡은 언론은 그 사실을 제법 크게 실었고, 서원의 존재는 새삼 세상에 다시 알려지게 되었다. 보이지 않는 손길도 다시 서원을 쫓아왔다.

그러던 어느 날 아저씨가 사라졌다. 서원은 불안에 휩싸였다. 대신 누가 보냈는지 알 수 없는 소포들이 속속 배달되기 시작했다. 아저씨의 소설이었다. 서원은 그 소설을 읽으면서 7년 전에 무슨 일이 일어났었는지 깨달아가기 시작했다. 그 속에는 승환이 영제의 전 처인 하영과 주고받은 편지도 있어서 오영제의 과거에 대해서도 자세히 알 수 있었다. 그 일이 일어난 이후 승환은 틈틈이 그 사건을 재구성하고 정리해 나갔던 것이다. 편지의 마지막에서 하영은 승환과 서원에게 오영제는 절대로 포기하지 않을 것이니 조심하라고 경고하고 있었다. 그리고 곧이어 도착한 전보를 통해서 서원은 아버지가 어제 사형에 처해졌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것들을 모두 읽은 서원은 그 위험한 순간이 찾아왔음을 직감할 수 있었다. 그는 스스로 덫으로 뛰어들기로 했고 예상대로 오영제와 그 부하들은 서원을 낚아챘다. 하영의 말대로 오영제는 그들을 포기하지 않았다. 현수의 사형이 집행되는 때에 맞춰 승환과 서원마저 깨끗하게 처리해버리려고 준비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감옥 안의 현수는 냉정함을 되찾고 그러한 오영제의 속을 꿰뚫어보고 있었다. 현수는 승환을 통해서 앞으로의 일을 준비할 것과 서원을 잘 맡아줄 것을 부탁했다. 그 준비대로 승환과 서원은 합을 맞추어 오영제 일당은 제압하고 그를 경찰에 넘겼다. 마지막으로 교도소에 가서 현수의 시신을 인도받아 화장하고 그 유골을 바다에 뿌리면서 부자는 마침내 다시 만났고 거기서 소설은 끝난다.


3.구성

이야기는 등대마을에서부터 시작된다. 즉 때는 세령댐에서의 사건이 일어난 지 7년이 지난 후였다. 최서원은 어느새 19살이 되어 있었다. 이야기가 전개되는 모습을 보면서 나라면 어떤 방식으로 7년 전의 이야기를 꺼낼까 생각을 해봤다. 아저씨(승환)가 쓴 소설은 현재와 7년 전을 넘나들게 해주는 유용한 장치다. 이를 통해 작가는 자연스럽게 과거 얘기를 꺼낼 수 있게 된다. 그리고 그것은 어디까지나 소설이기 때문에 언제든지 다시 7년 후의 현실로 돌아올 수 있게 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물론 이 소설의 알맹이는 바로 그 소설 속에 담긴 내용이겠지만 소설 내부에서 ‘현재’라고 할 수 있는 것은 그로부터 7년이 지난 때인 것이다. 그리하여 정리하면 이 소설은 7년 전의 이야기로 인해 만들어진 현재의 시점에서 다시 소설을 통해서 그 7년 전으로 돌아가고 결국 그 때의 사건이 완전히 끝나지 않고 현재에 이르기까지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음을 깨달은 주인공들이 그 일을 완전히 매듭짓기 위해서 현실로 돌아와 마무리를 짓는 구조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4.캐릭터

이 소설의 또 한 가지 특징은 인물들의 캐릭터가 제법 극단적으로 설정되어 있다는 것이다. 극단적인 캐릭터는 이야기를 보다 더 극적으로 만들어주는 힘이 있다. 하지만 그 극단성이 심해질수록 이야기는 개연성을 잃을 것이다. 결국 이야기를 만드는 데 신경 써야 할 것은 얼마나 아름답게 개연성을 위반하느냐 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1)현수

전직 운동선수였던 그는 순박한 인간형을 충실히 대변해주고 있다. 무식할 정도로 자신의 아들만을 바라보며 살아가고 또 아내의 바가지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기만 한다. 영악한 오영제의 계략을 어렴풋이 눈치 채면서도 발 빠르게 대처하지 못함으로써 결국 선수를 빼앗기고 만다. 하지만 그런 그의 우직함이 바로 독자로 하여금 철저히 그의 편에서 생각하도록 만드는 것이 아닐까 한다. 실제로 나는 이 글을 읽어가면서 분명히 철저한 살인자인 현수를 어쩔 수 없이 동정하고, 그의 범죄 사실이 들키지 않기를 바라는 스스로를 발견하게 된다. 무슨 이유일까? 아무래도 그것은 너나 할 것 없이 앞 다투어 영악해져 가고 있는 이 시대에 사람들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자신에게 혹은 세상에게 바라고 있는 인간상이 바로 그런 그의 이미지이기 때문이 아닐까.


2)승환

이야기에는 언제나 감초 같은 인물이 등장한다. 보통 그런 인물들은 주인공의 친구의 역할을 맡는다. 이런 캐릭터는 이야기를 이끌어 나가는 동기를 부여하거나 발생시키는 역할을 하는 동시에 이야기에 유머러스한 요소를 챙겨주는 기능을 하기도 한다. 이 소설에서는 서원이 ‘아저씨’라는 호칭으로 부르는 승환이 바로 그러한 역할을 하는 것 같다. 우연히 현수네 가족과 인연이 닿은 승환은 7년 전 그 날의 사건이 일어난 이후 오랜 시간 동안 서원을 맡아 보살폈다. 글을 읽는 내내 이것은 이해하기 쉽지 않은 부분이었다. 한참 동안 이야기를 읽어나가도 승환이 그 정도로 현수와 서원에게 헌신할 동기를 찾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나중에야 안 일이지만 승환은 사건의 윤곽을 어느 정도 어렴풋이 짐작하고 있었으면서도 이야기의 끝을 보고 싶다는 생각에 미리 손을 쓰지 않은 자신 때문에 죄책감을 느끼고 있었고 그것을 서원에 대한 헌신으로 속죄하고자 했던 것이다.


3)서원

이야기의 주인공이다. 물론 7년 전의 사건 때는 12살에 불과했기 때문에 사건의 전개에 어떤 결정적인 역할을 하지는 못하지만 현수와 오영제의 결투에서 중요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은 분명하다. 오영제가 서원을 인질로 잡고 현수를 괴롭혔기 때문이다.

서원은 내가 소설을 읽으면서 가장 불편함을 느꼈던 캐릭터다. 여성작가가 그린 남자아이의 자아이기 때문일까. 나는 7년 전 이 12살짜리 소년의 자아가 너무 현실성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말하자면 아무리 어린아이라고는 하지만 남자애인데 너무 어린아이 티나게 그리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고, 고양이에 대한 근거 없는 호감도 좀 거부감이 드는 것이다. 물론 극적인 설정이겠지만 ‘나라면 대한민국의 12세 소년을 이렇게 그리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12세 서원과 19세 서원의 자아가 보여주는 차이 역시도 나의 불편함을 뒷받침한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7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지만 두 자아는 동일 인물이라고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판이하게 다르다.

또한 아버지에 대해 서원이 가지고 있는 복잡 미묘한 감정이 제대로 표현되지 않았다는 생각이다. 초반에 작가가 부각하고 있는 것은 7년 전 그 날 밤의 스케치와 아버지의 사형집행인이 되는 꿈을 꾸는 서원의 내면 심리였는데, 이야기가 전개되어 나가면서 작가는 서원이 아버지에 대해 가지고 있는 감정을 제대로 이어서 표현하지 못하다가, 작품의 말미에 가서 자식이 아버지의 유골을 수습하는 과정에서 뒤늦게 허겁지겁 챙겨 넣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4)은주

이 책을 읽다보면 완전한 악역인 오영제 못지않게 밉상으로 그려지는 것이 바로 현수의 아내이자 서원의 어머니인 은주다. 비록 철없는 실수이긴 했지만 사고를 쳐서 그것을 책임지겠다고 비장한 각오를 한 남편에게 계속 바가지만 긁어대는 그녀의 모습을 보면서 독자들은 아마도 답답함 비슷한 것을 느낄 수밖에 없지 않나 하는 생각이다. 한쪽에서는 죽느냐 사느냐 하는 문제를 가지고 씨름하고 있는데 그녀는 알뜰살뜰한 꽁순이의 역할에만 충실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남편을 지나치게 낭떠러지로 몰아세운다는 느낌마저 준다. 그녀의 캐릭터를 알아갈수록 아마도 대다수의 남자들은 앞으로 닥쳐올 혹은 현재 경험하고 있는 생활에 대한 답답함에 크게 공감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심지어 나는 화가 나기까지 했다. 그녀가 바라보는 남편이라는 존재는 이따금 불필요하고 무능력하고 그저 한심하기만 한 존재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보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그녀의 성격 역시 작가가 생각해낸 것이라는 점을 상기해본다면 그리 지나친 감정이입을 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오히려 우리가 그녀의 캐릭터에 분노한다는 사실은 그만큼 작가가 그녀의 캐릭터를 현실감 있게 그려냈다는 것이고, 그러한 그녀의 캐릭터가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이라는 점과 그것이 가지고 있는 개연성을 증명하는 것이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사실 현실을 살아가면서 가장 용감한 것은 현수나 승환이 아니라 바로 은주 같은 주부들이다. 아내와 엄마와 주부의 역할을 동시에 맡아 수행해내는 그녀들이 있기에 세상은 돌아간다. 우리가 그녀를 그렇게 바라보지 못하는 것은 이 소설에서 그려지고 있는 상황이 일상적인 상황이 아니라 초일상적인 상황이기 때문이다.


5)영제

악의 화신으로 등장하는 인물이다. 사실 사건의 구도만 보자면 그는 피해자다. 그는 현수가 치로 치어죽인 아이의 아버지였기 때문이다. 조그만 생각해보면 우리는 자식의 복수를 위해 혈혈단신으로 적에게 뛰어드는 아버지의 모습을 그려보매 그 모습이 보통 악역은 아니었음을 상기할 수 있다. 하지만 작가는 그러한 영제를 철저한 악역으로 만들어 낸다. 이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으리라 생각한다. 때문에 이야기를 읽다보면 조금 톱니바퀴가 어긋난다고 생각되는 부분도 있긴 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을 상쇄시켜버리는 것은 바로 오영제의 잔인한 심성이다. 처자식에게 휘두른 가정폭력과 고양이, 현수에게 가한 폭력들을 보면서 우리는 그 낭자한 혈흔을 상상하며 그에 대한 증오심을 키울 수 있고 마침내 우리들의 머릿속에는 철저하게 선과 악의 이분법의 구도가 자리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작가는 우리가 마냥 그를 증오하게 내버려 두지는 않는다. 작가는 영제의 아내인 하영이 승환에게 보내온 오영제의 과거사를 우리에게 들려주면서 독자들이 그를 이해해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데 이것이 작가의 참으로 섬세한 면이 아닌가 한다. 그로 인해 우리는 무엇이 그를 그렇게 잔인하게 만들었는지, 무엇이 그를 그렇게 외톨이로 만들었는지 이해하는 동시에 모종의 타산지석의 교훈을 얻을 수도 있을 것이다. 나아가 어쩌면 “우리 편은 생각보다 선하지 않고, 적은 생각만큼 악하지 않다.”는 진리도 깨우칠 수 있을지도 모른다.


5.생생한 묘사

이 소설을 읽으면 읽을수록 나는 영화를 염두에 두고 쓰인 소설이라는 생각을 했다. 안 그래도 영화화 계약을 맺었다는 소식을 들은 것도 같다. 그런 생각이 드는 이유는 이 소설이 어떤 상황에 대한 묘사를 무척이나 실감하게 해내고 있다는 것이다.

가장 시선을 끄는 것은 스쿠버 다이빙이 관련되는 장면들이다. 약 세 번 정도의 장면이 있었는데, 초반에 서원과 승환이 젊은 다이버들을 구조하기 위해서 바다에 들어가는 장면, 초중반에 승환이 작품 취재를 위해 세령댐에 몰래 잠수하는 장면, 마지막으로 아버지의 사형 소식을 들은 서원이 홀로 바다에 잠수하는 장면이다. 작가의 말을 통해서 작가가 스쿠버 다이빙과 관련하여 전문가의 도움을 받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런데 그 정성도 정성이지만 글을 읽어보면 마치 자신이 직접 다이빙을 했던 것처럼 생생하게 그리고 꼼곰하게 그리고 있다.

한편 내가 묘사적인 부분에서 가장 깊은 인상을 받았던 것은 승환이 댐 경비대에 배치되어 담장의 개구멍을 발견하고 열쇠를 복사하는 등 잠수할 준비를 하는 과정을 그린 부분이다. 어떻게 개구멍을 발견했는지, 열쇠를 복사하긴 하는데 어떻게 했으며 왜 그렇게 해야만 했는지, 근무시간이 그런 열쇠복사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잠수를 하기 위해 낚싯줄에 형광물질을 바르는 장면, 랜턴을 끄는 장면, 자물쇠 쇠사슬을 바깥에서 열고 안에서 걸어 잠그는 장면, 물속에 잠든 수중도시의 묘사 같은 것들이다. 마치 작가가 직접 그 생활을 했을 것처럼 세세한 부분에 신경을 쓰고 있어서 그것에서 모종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을 정도다. 작가의 말에서 그녀는 자신이 세령댐 마을의 이장이었다고 말하는데 그 말처럼 나는 이 글을 읽으며 그녀가 자신이 만들어낸 가상의 공간에 대해 갖는 애착의 크지를 짐작할 수 있었다.

한 가지 덧붙이자면 이 책을 읽을 때는 반드시 책의 표지 바로 뒤에 있는 세령댐 마을 지도를 볼 필요가 있다. 보통의 스릴러 서적에는 이런 지도가 붙어있는 모양인데 나는 깜빡하고 그냥 지나갔다. 덕분에 수첩에 내 머릿속에 그려진 마을의 지도를 대강 그려가며 읽었다. 물론 그 역시도 하나의 즐거운 경험이었지만 그래도 작가의 머릿속에 있는 마을을 내 머릿속에 새로 이주시킨다는 것이 그리 썩 쉬운 작업은 아니었기 때문에 만약에 내가 다시 이 책을 처음으로 읽게 된다면 반드시 그 지도를 참고할 것 같다. 나는 책의 중후반에 가서 뒤늦게 지도를 생각해냈다.


6.스릴러

앞서 말했듯이 이 영화는 마치 영화화를 염두에 두고 만든 것 같다는 생각을 종종 하게 만든다. 위에 언급한 ‘묘사’의 부분에서도 그렇지만 스릴러적 요소가 정말 훌륭하다. 보통 스릴러 소설들은 ‘글’이라는 표현방식이 갖는 한계 때문에 동적인 움직임보다는 사건의 실마리가 어떻게 풀려나가는가 하는 부분에 심혈을 기울여서 독자들에게 어필해왔다는 생각이다. 이 소설도 그런 요소들을 가지고 있다. 물론 이 소설의 경우에는 오세령을 죽인 범인이 바로 최현수라는 사실을 처음부터 밝혀놓고 이야기를 시작하기 때문에 진짜 범인을 찾아나가는 다른 소설들과는 약간의 차별성을 갖는다. 대신 이 소설이 내세우고 있는 것은 악역이 되는 오영제가 어떤 방식으로 현수에게 복수를 감행하느냐 하는 것과 7년 전의 사건이 현재의 시점에 어떤 영향을 끼치며 어떤 모습으로 부활할 것이냐 하는 질문들이다.

하지만 이 소설은 이러한 시나리오의 요소들뿐만 아니라, 액션의 요소들까지도 훌륭하게 소화해 내고 있다는 점에서 그 가치가 더욱 더 빛난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은 7년 전 그날 밤, 오영제가 홀로 경비실에서 근무하고 있는 현수의 팔을 낚아채며 그를 제압하는 장면이었다. 그 이전에 그의 아내 은주 역시도 같은 방법으로 습격을 당했다. 나는 한 번도 듣도 보도 못한 방법이었기 때문에 대체 이 작가는 어떻게 이런 장면을 생각해냈나 감탄을 금할 수 없어서 몇 번씩이나 다시 읽었던 장면이다.


7.문장

그렇다고 작가가 오직 스릴러적 구성과 묘사만을 가진 것은 아니다. 그녀는 마치 자신에게 그런 오해가 주어지는 것을 예상이라도 한 듯 작품 속에 자신의 문장력을 드러낼 수 있을 부분을 삽입한다. 그것은 은주가 성장해서 현수를 만나 결혼하게 되는 과정에 대한 이야기들이다. 이 장면들은 작가가 스릴러 구성능력 뿐만 아니라 문장력에서도 무척 탄탄한 매력을 지님을 보여준다.

또한 자신의 딸의 죽음을 암묵적으로 짐작하고 있던 오영제 그 냉혈한이 막상 딸의 시신을 보게 되었을 때 느끼는 심리적 변화를 묘사한 부분 역시도 매우 훌륭했다.

그리고 현수가 세령을 차로 치었을 때부터 드러나기 시작하는 내면의 조력자라는 존재 역시도 그녀의 문학적 인간관을 더듬어 볼 수 있게 해주는 요소가 아닐까 생각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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