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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로드 사이클)

[미친짓 자제요]얼어죽을 뻔한 라이딩(청주-보은 왕복 116km)

by 통합메일 2014. 12.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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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에도 가볍게 자전거를 탔었는데..


오랜만에 단체 라이딩을 해보니..


기량이 말도 안 되게 떨어진 걸 확인하면서 스스로에게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애써 헤헤거리긴 했지만 속이 쓰렸다.


그래서 뭐 토요일도 조용히 보내기도 했으니


일요일에는 교회를 다녀와서 외갓집이 있는 보은에나 다녀와야겠다고 생각을 했다.


이게 모든 사단의 시작이었다.


일단 기록부터 까자면


주행거리 115.9km

최고속도 60.39km/h

주행시간 5시간 36분

평속 20.66km/h

사용금액 24,000원 정도 (소고기, 만두, 포카리, 꿀물)









개인적으로.. 장거리 라이딩을 함에 있어서 필수적인 조건은


가는 길과 오는 길이 같아선 안 된다는 것이다.


갔던 길로 돌아오면 풍경이 너무 눈에 익고 뻔해서 재미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고민 끝에.. 갈 때는 산악지형을 선택했다.





충북 청주시(청원군)에 있는 피반령이라는 고개다.


위 짤방을 보면 산이 두 개가 보일 것이다.


그 중 첫번째가 피반령이다. 두번째는 뭔지 모르겠다.


산이 힘든 것이야 당연한데..


일단 산악지형에 들어가기 전에..


클빠링을 한 번 했다.





클빠링이란 자전거를 탈 때 신는 클릿슈즈(페달과 발을 합체시켜주는 신발)를


페달에 끼우지 못하거나, 빼지 못하거나, 뺴는 걸 까먹거나 함으로써


자전거와 함께 그대로 옆으로 넘어가는 현상을 말한다.


현상이라기 보다는 사고에 가깝지만..


신호대기하고 있다가 신호 바뀌어서 출발하는데 왼쪽 클릿이 안 끼워지면서


속도를 잃고.. 오른쪽으로 그대로......


아 그 불쾌함은 진짜..


하필이면 아끼는 자전거를 탄 날 처음으로 클빠링을 하니 멘탈이 우수수 무너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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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돌아갔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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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넘어진 충격으로 뒷바퀴 브레이크의 간섭현상이 발생하여..


적당한 곳에 멈춰서 브레이크는 해결했다.


근데 어째 체인이 계속 변속기에 걸리면서 돌아가는 느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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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돌아갔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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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상태로 피반령을 넘었다.


근데 이상하게 허리가 아픈 게 아닌가?


어딘가 자전거 피팅이 안 맞는 모양인데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안장이 너무 평평해서 그런가 싶기도 하고..


하여간 진짜 엄.청.나.게 아팠다.


오르막을 오를 때 뭔가 안 맞는 게 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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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돌아갔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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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진짜 머리가 이상해질 정도의 통증을 꾹 참고 고개를 넘었다.


그런데 피반령 넘어 '회인'이라는 마을에서


두번쨰 클빠링을 해버린다.





먼지를 먹어 시커멓게 되어버린 살얼음 덩어리를 미처 보지 못하고.. 서행으로 지나갔는데..  


바퀴가 헛돌면서 그 자리에서 스톱하면서 또 우빠링


자꾸 우빠링이다.


이번엔 너무 화가 나서 소리를 막 질렀다.


넘어지기도 제대로 넘어졌고..


클빠링 특성상 넘어질 때마다 똑같은 곳(팔꿈치 무릎)을 다치게 되고..


무엇보다 자전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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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돌아갔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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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상태로 고개를 하나 더 넘었다.


2~3시 되어가는 것 같았는데


그 사이에 엄청나게 추워져서 3~4~5번 발가락엔 감각이 없었다.


그리고 드디어 보은


보은 오기가 이렇게 힘들다니..


2007년에 여행 갔을 땐


마지막날 보은에서 청주 오는 건 너무 시시해서 말도 안 나올 정도였는데..


스스로가 이렇게 나약해졌음을 새삼 느꼈다.


하여간 보은에 가서는 농협 하나로마트에 가서


할머니 드릴 국거리용 소고기, 만두, 포카리 700ml짜리를 샀다.


그거만 해도 22,000원 정도 -_-;


만두가 비싼 듯.. 감자 만두라고 해서 집었더니..







그리고 거기서 또 11km 정도를 달려서 외갓집으로 갔다.


갔는데 역시나 할머니는 안 계시고


계시든 말든 일단 추워 죽겠어서 


자전거 들여놓고..고기는 냉장고에 넣고.. 만두 전자레인지 돌리고..


먹을 것 없나 찾아보니..


붕어 싸만코 아이스크림이 있었다...


어흐흥


열량 있는 걸 먹어야 하니 추워 죽겠지만


아이스크림을 먹었다


맛있더라


안방 아랫목에 파고들어서 만두를 먹으니 몸이 좀 녹는 것 같았다.


그런데 느긋하게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해가 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정리도 제대로 못하고 서둘서 집을 나섰다.


픽업하러 오겠다는 엄마를 만류하고..


내 힘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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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다고 할 때 오시라고 해야 했다.



자 이제 아까 말했던 대로 다른 루트를 통해서 돌아가게 된다.


지형을 보면 올때의 루트와는 달리


상.당.히


점잖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런데 평속은 오히려 더 낮은 듯..


나도 그 이유를 모르겠다.


일단 몹시 추웠고..


두려웠다..


그러고보면 나는 여행다닐 때도 해가 지면 더 이상 달리지 않았다.


해가 지기 전에 잘 곳을 구하는 게 철칙이었다.


타지의 밤이 주는 어떤 본능적인 공포가 있었던 건지도 모르고..


안전문제 때문이었겠지만..







하여간 그래도 이번에도 무섭긴 무서웠는데


사실 추위 때문에 무서워할 정신도 없었다.


해가 떨어지면서 급속도로 추워지기 시작했다.


여름 같았으면 육수로 범벅이 되었어야 할텐데..


육수는 커녕.. 아무리 달려도 몸이 달아 오르지 않았다.


외갓집에서 득템한 비닐봉지를 신발속에 넣어봤는데 생각보다 방풍효과가 상당하다.


그런데 시험 삼아 한쪽만 했더니 한쪽은 역시나 엄청나게 시려웠다.


발가락은 물론이고 4,5번 손가락도 감각이 사라져가기 시작했다.


그러다 20km 쯤 왔을 때 휴대폰 배터리가 방전됐다.


GPS 신호 잡게 해둔 데다가.. 추위 때문에 조기 방전이 된 것이다.


머리가 좀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5km 단위로 허리는 계속 아프고..


멈춰서 허리를 좀 펴볼 까 했는데..


그때


저 멀리 전방 50m 정도에서..


도로 위를 지나는 시커먼 형체가 보였다.


어슬렁 어슬렁


그건





멧돼지였다.




아까 오는 길에 고라니 두 마리가 커플로 로드킬 당한 걸 보고


어째 감이 안 좋더라니..


나는 멧돼지랑 원수지간도 아닌데 왜 외나무 다리에서 만난단 말인가.


왕복2차선 지방도로가 뚫리면서


내가 달리는 구도로에는 10분에 한 번씩 차가 달렸다.




"아 나 씨발"이라고 중얼거리고


머릿 속엔


'좆 됐다.'라는 생각이 흘렀다




방어구라고는 헬멧이 전부인데..


멧돼지 무섭던데!




(명작 게임 파크라이3를 해본 사람이라면 멧돼지의 위력을 알 것이다)



급히 속도를 줄이고 라이트를 슬금슬금 비춰보았다.


그러자 녀석도 놀라서 움칫 스텝을 밟으며 나를 의식하더니


어떻게 할까 잠깐 망설이다가


과감하게 밭으로 뛰어들어 산으로 올라갔다.


"꾸에엑" 하는 소리를 내며


펄쩍


인상적인 몸동작이었다




그때부터 진짜 인적이 없는 곳에서는 멈추지 않고 좆빠지게 달렸다


중간에 주유소에 멈춰서 전화를 빌려서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주유소 아주머니에게 전화를 부탁하자


누구한테 할라고 그러냐고 물으셨다


어머니 걱정하실까봐 전화하려 한다고 하자


크게 설득이 되었는지 쓰라고 하셨다.


전화를 받은 어머니는 역시나 태우러 오시겠단다


나는 역시 여기까지 왔는데 그냥 알아서 가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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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쩔 수 없는 결정이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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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부터 슬슬 콧물을 빨아먹었던 것 같다.


처음이 힘들지..


체온이 묻은 수분이 참 달착지근하니 괜찮았다.


콧물 자체가 상당히 맑기도 했고 말이다.


딴 것엔 도저히 신경을 쓸 수가 없던 상황이었다.


사위는 캄캄하고.. 이따금 수풀에서는 짐승의 발자국 소리 같은 게 들리고


지체했다간 손가락 발가락 잘라내야 할지도 모르겠고


존나게 달리는 수밖에




유령도시 같은 창리를 지나


옥화를 지나


미원을 지나


아니


미원에 도착했을 땐 진짜 감격이었다.


이젠 구도로가 아니라서 차들이 많이 다니는 도로였기 때문이다.


편의점에 들어가서 뜨끈한 꿀물을 사마셨다.


아주머니랑 뭔가 살짝 얘기를 했는데


대부분 산악자전거 타는 분들의 이야기였다.




간신히 몸을 녹이고 다시 청주로 출발


꿀물 효과인지


굉장히 잘 달려졌다.


거의 평지이기도 했고..


조명도 괜찮았기에..


금방 청주에 도착..


지금 생각하면 그런데


그땐 또 아니었다.


춥고, 허리 아프고, 무섭고


들짐승의 두려움은 사라졌으나


교통사고와 동상에 대한 걱정은 여전했다.


콧물을 마시며 걱정을 하며 달렸다.




길고 느긋한 업힐이 3~4개 있는데


마지막 업힐을 올라갈 땐 괴성을 지르면서 댄싱을 쳤다.



옆에 차들이 진짜 미친놈인 줄 알았을 것 같다.


시내에 들어와선..


내가 소심해서 보통은 양보를 하는데


어지간하면 막 뚫었다.


그리고 드디어 집!


온 가족의 환대를 받고


외할머니와 전화 통화를 하고


샤워를 하는데


몸 속에 냉기가 하도 차 있어서


뜨거운 물을 아무리 들이 부어도 오한이 좀처럼 가시질 않았다.


낮에 당한 부상은 또 그것대로 아프고..



그래도 살아 돌아왔으니 된 것 아닌가 한다.


자전거도 크게 망가지진 않았고.


손가락 발가락 자르지 않아도 되었으니..


다만.. 내일 일어나면 몸의 후유증이 무섭긴 하다.


재밌었다.




한시간에 걸쳐 빨래를 하고.. 자전거를 분해해서 닦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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