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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로드 사이클)

2010년에 있었던 정말 어이없던 자전거 사고 복기(장파열, 복막염, 폐수종)

by 통합메일 2015. 4.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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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어슬렁거리다가 우연히 사고게시판이 있는 걸 발견하고 기록을 남겨 봅니다.






벌써 이제 4~5년 전 일이네요.


2007~2008년에는 자전거도 열심히 타고, 여행도 많이 다니고, 학과 학회장도 하고 참 활발하게 살았는데


취업시험에 떨어지니 부모님 눈치도 많이 보이고 이래저래 좀이 쑤셔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던 시절이었습니다.


덩달아서 학교 선배 권유로 동네 중학교에 시간제 교사로 다니다보니 체력도 달려서..


뭔가 활기를 찾기 위해 시작한 일이었는데 적잖이 부담이 되더라고요.


그런 증상이 봄이 되니까 더 심해졌습니다.


벚꽃이 필랑말랑하는 딱 이 정도 되는 떄였어요.


2010년 3월 말에 일어났던 사고지요.


일요일이라 아침에 교회에 갔는데,


청년부 형제들이 자전거 타고 오창이나 다녀오자고 하더군요.


평소같으면 교회 교제에 별로 관심이 없었는데


자전거를 타자고 하니 마음이 설렜습니다.


부리나케 나갔지요. 공부 안 하고 어딜 나가냐는 잔소리도 역시 듣고요 ㅎ


저희집은 수곡2동 우편집중국 쪽인데, 루트는 구법원-무심천 방향으로 잡았습니다.


아는 분은 아시겠지만 수곡2동에서 1동 내려가는 길이 상태가 참 안 좋아요.


(지금은 어지간하면 그 길로 안 가고 무심천을 가도 분평동으로 해서 돌아서 갑니다.)


가면서 보니 이 분들이 단체 라이딩을 하던 사람들이 아니라,


역주행이며, 신호위반이며, 중앙선 침범이며.. 같이 달리기 힘들더라고요.


뭐 하여간 구법원까지 내려가서 충북여고 쪽까지 잘 갔습니다.


신호 지키면서 달리다보니 앞서 달리던 분들은 이미 시야에 없었어요.


그렇게 혼자 충북여고에서 꽃다리 쪽으로 얼마 안 되는 거리를 가다가 사고가 났습니다.


혼자서 났습니다.


일행들의 라이딩 스타일이 짜증났던 것도 있었고,


뒤에 오는 차가 괜히 빵빵 거리는 것도 짜증났고,


뒤따라오는 차에게 '감자 먹어라'는 심정으로,(아아 그러면 안되는 거였는데......)


차도로 달리다가 횡단보도에서 정차할 때 그냥 서지 않고 앞브레이크를 잡고 뒷바이크를 드는


잭나이프를 시도했습니다.


오랜만에 타는 자전거였는데 그날 따라 유난히 뒤가 잘 들리더라고요.


전에 이거하다가 180도로 예쁘게 뒤집힌 적이 있어서 겁이 덜컥났습니다.


(그때는 타던 자세 그대로 넘어갔어요. 핸들도 페달도 모두 제자리에;; 딱히 부상도 없었고)




그때는 베네통 생활차를 탔는데요


바엔드가 매우 우람햇습니다.



하여간, 그때의 경험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단순히 운동신경이 둔해서 그랬는지


혹은 핸들을 놓치거나, 혹은 팔꿈치에 힘이 빠졌는지..


예쁘게 넘어가지 못하고


핸들이 휙 돌아가면서 창에 꽂히듯


제 왼쪽 아랫배가 저 바엔드에 꽂히고, 그 다음에 땅으로 떨어지게 됩니다.


(참 이상하죠? 병원에 누워서 계속 사고 상황만 생각했네요)


일단 얼굴을 비롯한 다른 부분엔 거의 아무런 데미지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코끝에서 피냄새가 감돌고.. 엄청 분명히 뭐에 찔린 듯이 엄청 아팠습니다.


당장은 신호가 바뀌어 버렸기에,


일단 급한대로 자전거를 한 손으로 집어서 인도 쪽으로 집어 던지고,


허겁지겁 인도로 올라가서 신호등인지 가로등인지에 기대 누웠습니다.


숨이 잘 쉬어지지 않았어요.


고개를 돌려보니 앞서 가던 일행들이 저 멀리 가는 게 보이더군요.


"형"이라고 소리를 지르고 싶은데 목소리가 안 나옵니다.


엄청 서러웠습니다. 목소리가 안 나오다니.


옷을 걷어서 배를 살펴봤는데 외관상 별 상처는 없었습니다.


그렇게 누워서 할 수 있는 건 하악하악 거리는 것 뿐이었습니다.


그러고 있으니 웬 할아버지께서 다가오셔서


"얌마 너 왜 그래 괜찮아? 119 불러?"라고 하시더군요.


"에에에"


라고 대답했던 걸로 기억합니다.


다행히 바로 코앞이 소방서라서 구급차는 금방 왔는데


그 당시에는 엄청 오래 걸렸던 느낌이었습니다.


구급차가 오면 들것을 내리고,


"이 위로 올라갈 수 있겠냐"고 물어봅니다.


하악거리던 저는 폐를 끼치면 안 되겠다 싶어서 심호흡을 한 번 하고 훌쩍 올라갔습니다.


태어나서 처음 들것에 실려 앰뷸런스에 타보는데


아파서 정신이 몽롱해지는 와중에도 '신기하다'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병원을 어디로 갈 것이냐고 묻기에 제일 가까운 효성병원으로 가자고 했습니다.


(하지만 이 때 차라리 충대병원으로 가야했습니다. 집에서 병원이 머니까 가족들이 너무 힘들더라고요)


코앞이니까 금방 갔죠.


가는 길에 응급요원에게 전화기를 건네면서 어머니께 전화 좀 해달라고 했는데


그 당시 사용하던 폰이 극악의 사용감을 가진 윈도우 모바일이라서 전화를 못 거시더군요


응급실에 누우니 '이제 살았구나' 싶었는데..


당직의사가 와서 배를 누르며 진단을 하시더니


그냥 '경과를 지켜봅시다'라고 하고는 아무 것도 해주질 않는 것입니다 ㅠㅠ


아득해지는 정신을 가다듬어 어머니께 전화를 하니 곧 오셨습니다.


마는, 멀쩡한 배를 보더니 "너 공부하기 싫어서 꾀병 부리는 거 아니냐"고 ㅋㅋㅋㅋ


분통이 터지는 일이었지만, 잠시 후에 CT를 찍었는데 CT에도 별다른 게 안 잡히는 겁니다.


하지만 배는 여전히 아프고.. 결국 아무 조치도 받지 못한채


입원해서 병원에서 하룻밤을 자게 됩니다.


당연히 잠은 안 오고, 시계만 보면서 눈만 꿈뻑거리고 있었습니다.


10시인가 12시인가.. 간호사에게 요청해서 진통제를 맞았습니다.


딱 30분 가더라고요. 시계가 30분이 지나면 약기운이 천천히 몸을 떠나는 게 느껴집니다.


그래서 최대한 참다가 한 번 더 맞았습니다.


어김 없이 또 30분..


나중엔 포기하고 그냥 의식의 끈을 놓고 멍하고 잇으니 가수면 상태로 가더군요.


자다 깨다를 반복하니 동이 트고..


어깻죽지라고 해야 하나, 목이라고 해야 하나 승모근 있는 부위가 너무 결리고 저려오기 시작했습니다.


아버지에게 부탁해서 파스를 사다가 도배를 했지요.


아침에 CT를 한 번 더 찍었습니다.


9~10시 사이에 어제랑은 다른 외과과장이 오더니 장파열과 복막염 소견이 보인다고 수술을 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어깨가 결리는 증상은 장파열 염증이 번져서 췌장이 부으면서 생기는 증상이라고 했습니다.





정말


너무 기뻤습니다.


드디어 수술을 할 수 있다니..


이 고통에서 해방될 수 있다니..


설레일 정도였습니다.



2시 쯤인가 수술에 들어갔고,


효성병원 수술실은.. 아니 왜 이렇게 음침하죠.


십자가 같은 형틀에 내 몸을 묶을 땐 뭔가 싸..하더군요.


수술실이라기 보다는, 장기밀매의 현장 같다는 인상이..


하여간 마취약을 주사로 놓은 건지 들이 마신 건지.. 순식간에 기억이 끊겼습니다.


제 배에 소독약을 칠갑하던 때까지는 기억이 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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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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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몇 시간이 지난 건지 모르겟는데


눈을 뜨니 입원실이고, 영화에서처럼 가족들이 곁에서 수다를 떨고 있었습니다.


근데 별로 낭만적이거나 감동적이지 않은 게


코에 튜브가 끼워져 있고,


배에도 구멍을 뚫어서 고름 주어니가 채워져 있었고,


곶휴에도.........


링겔은 3개가 매달려 있었습니다.


'어우 이게 뭐여'


며칠은 고생했습니다.


특히 코끼리 튜브가 매우 힘들어요. 숨쉬기도 힘들고, 말도 힘들고..



아직 고름 주머니 안 뺐을 때..


소독 할 때 처음으로


붕대를 풀고 배를 볼 수 있었는데


고어한 모습에


"오 마이 갓"을 외쳤습니다.






2주 동안 고생하신 어머니;;



2년 같은 2주 동안 지겹도록 올려다본 천장



2일째 가장 먼저 요도관을 제거하고,


3~4일 째 코에 끼운 튜브를 제거하고,


8~9일 째 뱃속과 연결되 고름 주머니를 제거하고,


11~12일 째 링겔도 제거하고..


하나하나로부터 자유로워지는 재미가 있긴 했습니다.


팔에 잡아 놓은 라인을 통해서 하루에 4 x 3회 = 12방의 주사가 주입되는데요..


처음엔 몰랐는데 나중에 가니까 배가 불렀는지..


항생제 들어가면 그 냄새가 너무 심해서 좀 많이 힘들었습니다.




그런데 아직 고난이 끝나지 않았습니다.




일주일쯤 되었을 때


X-ray를 찍었는데, 뭐가 이상합니다.



다친 왼쪽에 있는 폐가 절반 밖에 없습니다.


폐에 물이 찼답니다.


what the f


주치의께서는 내과의랑 상의를 좀 해보겠다고 합니다.


그날 오후가 되니 내과 선생님이 오셨는데..


성함이 구XX이셨는데 아직도 기억이 나네요.



간호사를 한 명 대동하시고는


마스크로 얼굴을 반쯤 가린 채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렇게 폐에 물이 차는 데에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는데, 폐렴이나 폐암의 가능성도 있다.


이런 경우에는 폐에 바늘을 찔러서 물을 빼서 검사를 해보는 게 정석이다.


그런데 그런 처치를 하는 경우에 일어날 수 있는 부작용이 있는데, 기흉이 올 수도 있고,


바늘이 뼈를 잘못 찌를 수도 있다."




저는 대체 저한테 왜 그런 말씀을 하시는지..


폐에 주사기를 꽂아서 물을 뺸다니..


마른 하늘의 날벼락인 심정이 되어 겁에 질렸고,


어머니의 복기에 따르면 얼굴이 하얗게 질렸더랍니다.


가족회의 끝에 물을 빼는 검사는 좀 경과를 지켜보기로 하고


일단은 이뇨제를 복용해서 물을 빼보기로 합니다.




다음날부터 진짜 산책 엄청나게 했네요.


폐에 주사기를 꽂을 수는 없다는 일념 하에..


이뇨제 먹으면 1~2시간은 15분에 한 번씩 화장실을 가야 하는데 뭐 그 정도야...



하여간 며칠 뒤에 다시 찍어보니 물의 거의 다 빠졌더라고요..


진땀을 닦았습니다.




그리곤 결국 정확히 2주만에 퇴원을 하게 됩니다.


이후로 4년 동안 자전거를 타지 않았지요.


취업공부하느라 그랬던 것도 있지만,


입원했던 2주 동안 급히 늙어버린 어머니 때문에라도


자전거를 타면 안 되겠다고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다시 자전거를 타는 것에 대한 두려움도 컸고요.





원체 겁이 많아서 은근히 꼼꼼하다보니 


오히려 고속 주행과 같이 주의를 기울이게 되는 상황에서 사고가 난 적은 거의 없던 것 같네요


사고가 난 건 거의 십중팔구 '객기'를 부릴 때였던 것 같습니다.


괜히 비올 때 자전거 타고 나가거나,;;


손 놓고 내리막 내려 가거나,;;


술 먹고 헤어핀 커브 돌거나;;


괜히 하지도 못하는 잭나이프를 하거나;;




이제 취직(임용대기)을 하면서 다시 자전거를 타기 시작했는데


스스로에게 거듭 주의를 줄 겸,


희미해지는 기억 복기해서 공유할 겸 남깁니다.


안라하세요 ㅎ_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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