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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기록

구정 끝. 제천으로 가는 기차 안에서

by 통합메일 2016. 12.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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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정 끝. 제천으로 가는 기차 안에서

 

이번 명절은 참으로 개인적으로 매정해지고 냉정해지는 나의 성격을 확인한 계기가 되기도 하였다. 하지만 온전히 마음에 들지 않는 이유는 역시 그것이 완벽하게 냉정하거나 매정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한 표현으로서의 성격은 결국 지나친 배려는 악을 낳는다.’라는 나의 신념과 맥을 같이 한다. 혹은 그 옛날 어느 늙은 깡패가 했던 말처럼 완전히 밟아놓지 못하면 그 화는 결국 너 자신에게로 돌아온다.’는 것과 통하든.

 

많은 경우에 있어서 나로 하여금 그러한 성격을 갖게 만드는 것은 빈부격차다. 자산과 수입에 따라서 사람의 인생은 달라질 수밖에 없다. 이전의 나는 그 당시의 내가 벌어들이던 수입과 예상 자산에 따라서 나의 삶을 계획했던 것이고, 임용 이후의 나는 지금의 내가 벌어들이든 수입에 따라서 그에 따라 달리지는 자산을 가지고 나의 삶을 계획하는 것이다. 그렇게 그려지는 삶의 모습은 내 안에서 조차도 상당히 다를 수밖에 없다. 동일한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얼마만큼의 수입을 벌고 어떤 사람들과 같이 살아가느냐에 따라서 사람의 삶은 상당히 달라질 수밖에 없는 일이다. 가증스러운 일이다. 물질의 수준에 따라서 존재가 모습을 달리 한다는 사실은 사실 참 씁쓸한 일이다. 그 존재가 기존에 품고 있던 꿈이라는 게 상당히 별 볼일 없는 것이었다는 반응이 되기도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같은 맥락에서 라이프 스타일의 차이 역시도 나의 성격을 냉소적으로 만든다. 벌어들이는 돈에 따라서 라이프 스타일이 달라진다. 그리고 때로는 벌어들이는 돈이 같다 하더라도 라이프 스타일은 다를 수 있다. 어디에 사는지의 문제가 일단 가장 크게 작용하고, 그 사람의 나이와 신념, 문화, 교육 수준 등이 다각적으로 영향을 미치게 된다. 같다는 것보다 다르다는 것이 더욱더 크게 작용하게 될 때 이성은 그러한 차이가 어디에서 기인하는 것인지 필사적으로 찾아 헤매게 되는 것이고, 그러한 차이점에의 인식이 결국 세상을 바라보는 눈을 시니컬하게 만드는 것이다.

 

어쩌면 그들의 흉이라고 생각하여 내가 지목하는 무수한 결점들이 결국은 나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그것을 알아볼 수 있는 눈이 있다는 것 자체가 이미 저주에 다름 아닌 것. 늙음이 싫다. 그 총기의 부재가 싫다. 엉뚱한 방향으로 관심이 흐르는 모습이 꼴 보기 싫다. 그들의 삶을 빛내던 열정이 흩어져 버리는 게 눈에 선하여 두렵다. 부질없는 것들에 집착하는 그 모습이 보기 싫다.

 

악착 같이 물질과 성공하기를 멈추고 이제는 자신의 존재와 관계를 돌아보는 이들이 많다. 늙은이들이었다. 이제 더 이상 높은 곳을 바라볼 수 없게 된 것이다. 아쉽다. 아깝다. 한심하다.

 

그러는 나도 꿈이 있으니 불안하고, 꿈이 없으니 사는 대로 생각할 수 있게 되어 편리하다. 관성적인 삶이라는 표현은 이제 너무 흔하게 발에 채여 쓰고 싶지 않으나 써본다. 괜찮을까 싶어서.

 

고햘으로 돌아가는 기차 안에는 사람들이 가득이다. 사람들이 많다 못해 복도에도 서있다. 이름하여 흔히 말하는 입석이다. 입석으로 서있는 사람들 중에는 늙은이들이 많다. 아마도 스마트폰이나 인터넷 등을 이용한 예약 시스템에 적응하지 못해서 역에 와서 기차표를 사려고 하다가 늦어버린 사람들이리라. 슬픈 일이다. 보기 싫다는 생각이 우선 드는 것이지만, 이런 사람들을 만들어낸 것이 과연 이들 스스로인가 아니면, 사회 시스템인가 하는 생각으로의 발전은 생각보다 꽤 수월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내 오른쪽에 앉은 촌부보다도 스마트폰을 다루지 못하는 아버지를 생각하면 시발 이게 또 어덯게 된 일인가 하는 생각보다도 더 큰 억울함이 목구멍을 감싸 쥐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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