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련글: http://mskjh.tistory.com/465 청주 전청우 이비인후과에 다녀왔다.
오늘은 외할머니를 모시고 또 병원에 갔다. 지난번에 귀에서 매미소리가 들리신다고 하여 전청우 이비인후과에 가서 진료를 받고 약을 처방받아서 일주일 동안 복용했는데 차도가 없어서 결국 준종합병원이자 심혈관질환지역거점병원인 청주 효성병원을 방문하게 된 것이다. 사실 근처에서 가장 규모가 큰 병원은 충북대학교 병원이지만 할머니네 동네에서는 이 병원이 잘 본다고 소문이 났다고 한다.
어제 MRI를 찍고 오늘 결과를 봤다. MRI 비용은 707,900원이 나왔다. 보험 여부를 물어보니 급성심혈관 관련해서 찍는 게 아니면 보험 적용이 많이 안 된다고 하는 것 같았다. 촬영시간은 30~40분 정도가 걸렸다. 일단 촬영을 하고 하룻밤을 지낸 후에 결과를 들으러 병원에 방문했다. 할머니는 당신의 몸이 어떤 상태인지 내심 불안해 하시는 것 같았다. 그럴 것이다. 근 몇 년 동안 할머니는 힘들게 농사를 지어서 겨울에 부상이나 병에 걸려 힘들게 모은 돈을 결국 병원비에 쏟아 붓는 일들을 반복해야만 했다.
할머니 담당은 경상도 말씨의 젊은 의사 선생님이셨다. 많지 않은 나이 같았는데도 할머니의 호소를 주의 깊게 듣고 조근조근 잘 설명을 해주셨다. 촬영 결과 할머니의 뇌 혈관 중에서 말라붙은 것 같이 가늘어진 부분이 몇 군데 있었고, 목에 디스크가 좀 있었다. 다행히 혈관이 막히거나 한 것은 아니어서 수술까지 필요하지는 않아 보인다고 했다. 다행이다 싶으면서도 가늘어진 혈관이 위태롭게 보여 어쩐지 마음이 좋지 않았다. 가늘어진 혈관이 악화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 혈전방지 차원에서 아스피린 한 달치와 머리 아픈 데에 드는 약을 처방받았다.
약값은 11,900원이 나왔다.
귀에서 이명이 들리는 증상에 대해서는 속 시원한 답을 듣질 못했다. 그래서 할머니는 충북대병원 이비인후과에 가보고 싶어 했다. 예약을 하지 않아서 진료를 받을 수 있을까 싶었지만 할머니가 워낙 가자고 하셔서 가봤다. 그런데 역시나 예약을 하지 않으면 힘들고, 또 하필이면 오늘은 이비인후과 진료가 없는 날이라고 했다. 그래서 결국 오늘 받은 약을 일주일 정도라도 복용을 해보고 그래도 귀에서 나는 소리가 사라지지 않으면 그때는 충북대 병원에 예약을 해서 다시 오기로 했다.
이래저래.. 온 몸이 고장나서 부서져가는 생을 할머니는 살아가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나는 그녀의 생의 의지가 여전함을 순간순간 확인한다. 가족과 자식에 대한 애착, 인정받고 싶은 욕구, 관계에 대한 지향 같은 것들은 인생의 페이지, 그리고 육신의 여실함과는 독립적으로 작동하는 기제인 듯 했다.
의료관광을 마치고, 삼촌네 집에 가기로 했다. 외숙모에게 전화를 걸어서 할머니와 함께 방문하겠다고 했다. 외숙모는 친손자 셋을 낳았다. 아들만 셋인 집이라 시끌시끌하고 힘들다. 첫째와 둘째는 어린이집에 갔고, 집에는 막내만 남아있었다. 이제 갓 돌이 지난 아기다.
셋째 아이라 그런지 이래저래 발달이 빠르다. 걷는 것도 빠르고, 형들 노는 걸 보고 자라서 그런지 활동력이 왕성해서 잠시도 가만히 있지를 않았다. 말귀도 거진 다 알아 듣는 듯 했다. 이 집 아이들은 코다 다 저렇다. 코 모양이 참 독특하다. 아이들 얼굴은 백 번을 변한다나 천 번을 변한다나 이 녀석은 어떻게 변할지 무척 궁금하다. 할머니와 손자의 사진을 마지막으로 찍었는데 그러고보니 할머니는 손자들과 사진을 찍을 때면 언제나 항상 저런 포즈를 취하신다. 의료관광을 돌고 천신만고 끝에 만난 손자와 찍은 사진 속의 할머니가 억척스러우면서도 왠지 모르게 측은하다. 기실 그녀는 우리에게 뿌리 같은 존재지만, 살다보니 그 사실을 쉽게 잊어버린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 이 생을 긍정하려면 우선 그녀의 삶을 긍정하지 않으면 안될텐데 그 자체도 어렵지만 그 사실을 자각하는 것도 쉽지 않을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 세상이라는 생각이 든다.
갈수록, 그녀가 이 세상을 버거워 하는 모습을 목격하곤 한다. 여권이 신장되는 세상에 그녀는 결코 적응하지 못할 것이다. 귀가하는 남편과 아버지을 건성으로 맞는 가족을 이해하지 못하기에 그녀는 굳이 부서진 몸을 일으켜 퇴근하는 사위를 맞이한다. 주방에 선 가장을 이해하지 못하기에 그녀는 일요일 오전 굳이 사위에게 밥을 차려준다. 우리가 그러시지 말라고 아무리 당부를 해도 고쳐지지 않는 것, 고쳐질 수 없는 것, 고치고 싶지 않은 것이 그녀에게는 있으리라는 생각이다. 따라서 그런 이유로 그녀와 우리 사이에 존재하는, 존재해야만 하는 간극은 결코 좁혀질 수 없는 것이고, 오히려 걷잡을 수 없이 넓어지리라고 예상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따금씩이라도 그녀의 생을 이해하고 긍정하려는 노력을 하는 것이 그녀라는 뿌리에서 뻗어나간 자손들의 도리가 아닌가, 그렇게 힘겹게 죄를 뉘우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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