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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생각

안철수의 새 정치, 정치공학의 배제인가 진영논리로부터의 자유인가

by 통합메일 2014. 1.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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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의 새 정치, 정치공학의 배제인가 진영논리로부터의 자유인가

 

어제는 사회적 각성을 이룬 친구 녀석 하나와 또 시국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해를 돕기 위해 묘사를 하자면 그의 사회적 정체성은 깨시민에 가깝고 나의 사회적 정체성은 좌빨 리버럴 혹은 진신류에 가깝다.

 

그와의 대화를 어떤 체계적 구조를 씌워서 정리하고 싶은 생각은 없고, 그게 딱히 가능하거나 수월할 것 같지도 않다. 다만 기억나는 맥락부터 당장 이야기를 해보자면 안철수. 확실히 2013, 아니 2012년으로 거슬러 올라가더라도 안철수처럼 매력적이고 흥미로운 정치적 소재가 과연 있을까 싶다. 기성 정치인들이 암만 알록달록 재주를 부린다 하더라도 이미 질릴 대로 질린 얼굴 쉰내가 날 뿐인데, 안철수는 아무래도 뉴 페이스만이 가지고 있는 신선함을 부여해주고, 나아가 사람들마다 각자 어떤 안목으로 정치를 바라보는지 가늠할 수 있게 해주는 어떤 시험지 같은 역할마저 한다는 생각도 드는 것이다.

 

최근 안철수의 행보는 어떠한가? 그는 2014 지방선거를 앞두고 신당 창당에 열심이다. 결정적 참모로 결국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이 합류했다. 킹메이커라고 하는 윤여준의 합류는 일반 대중이 안철수의 행보에 더욱더 큰 기대를 갖게 만든다. 이 기대라는 것에 대해서 다양한 스펙트럼이 존재할 수 있을 것이나, 나의 경우에 그 기대라는 것은 그가 잘 해낼 것이라는 기대라기보다는, 이 재미있는 이야기가 얼마나 더 재미있게 전개될 것인가 하는 유흥적 기대이다. 이래저래 정치에 지나치게 감정이입 하는 것은 바보 같은 일이라고 생각하여 늘 경계하고 있는 바이기 때문이다. (뭐 그럼에도 불구하고 때로는 바보 같이 감정이입을 숱하게 해버리곤 한다.)

 

나아가 안철수는 민주당을 비롯한 야권과의 연대 가능성을 극구 부인하면서 신년인가 언젠가 전직 대통령들의 묘소를 참배했는데 그 중에 이승만과 박정희의 묘소가 끼어있어서 많은 질타의 대상이 되었다. 신당창당 움직임에 이은 이러한 그의 행보는 당연히 기성 야권 세력으로부터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 얼핏 봐도 솔직히 까달라고 애원하는 꼴로 보이기도 한다.

 

편의상 굳이 분류하면 깨시민인 내 친구의 경우에는 그러한 안철수의 행보를 곱게 보지 않았다. 반면에 좌빨 리버럴 진신류인 나는 그런 안철수의 행보가 차라리 마음에 들었다. 그러한 의견의 불일치로부터 우리는 그러한 불일치를 만들어내는 요소들의 정체와 그러한 불일치로부터 파생되는 문제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박근혜가 당선되던 날 친구 녀석도 나도 기분이 썩 좋지는 않았다. 내게 있어 노빠의 지원을 받는 문재인이라는 인물은 썩 달갑지는 않으나 역시 차선이라는 측면에서 마지못해 표를 몰아다 준 인물이었다. 그럼에도 막상 박근혜가 당선이 되니 내가 전혀 지지하던 인물이 아니었기에 만족스럽지 않은 결과라고 생각됐다. 친구 녀석의 경우에는 아무래도 나보다는 더 문재인을 지지했기에 더 적극적으로 좌절을 경험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다. 그 때 나는 친구에게 내 나름의 절망을 풍자를 통해 전달했다. 이야기의 요지는 이 나라는 더욱더 열심히 망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신자유주의의 지원을 받는 인물이 이 정도의 투표율에도 불구하고 당선이 되었다는 사실은 이 나라의 국민들이 아직까지 그래도 살만하다는 것을 반증하고 있는 것이라고 나는 보았다. 그도 그럴 것이 내 눈에는 신문이고 방송에서 이 사람 저 사람, 특히 정치인이라는 인간들이 암만 국민들이 지금 너무도 어렵다고 떠들어댄다고 하더라도 그냥저냥 먹고 살만하다고 생각하는 인물들이 많은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암만 그녀가 복지정책을 외쳤다 하더라도 마찬가지로 복지정책을 외친 문재인 후보를 외면하고 그에게로 표를 던졌을리 만무하지 않은가? 이것을 인정하지 못한다면 야권에 미래는 없다. 박정희는 죽지 않았다. 20년의 독재 시절 동안 이 나라의 국민들은 나날이 변해 가는 강산을 목격했고, 그 기억 속에 박정희는 살아있으며, 박근혜를 바라보는 자신의 시선 속에서 사람들은 순간순간 다시 살아나는 박정희를 목격한다. 다시 말해서 박정희는 이미 죽어버린 독재의 망령이 아니라, 여전히 살아 숨 쉬고 있는 정치적 존재라는 말이다. 그것은 시대가 흐르고 흘러 하나의 연령층이 멸종을 고하는 날까지는 사라지지 않을 정도로 이 나라에 뿌리 깊게 박힌 가시다. 그는 누군가에게는 그저 탐욕스럽고 추잡한 독재자에 불과할지 모르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영웅이고 반인반신의 존재이다. 이러한 양립 불가능한 사고가 서로 공존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이 작금의 대한민국이다. 그리고 그렇게 양분된 사고는 곧 정치적 진영의 양분을 가져온다. 박정희라는 존재에 대한 정의와 평가만 가지고도 누군가의 정치적 입장을 짐작하는 게 가능할 정도로 그 인물이 오늘날에 끼치는 영향력은 막대하다. 이러한 인물, 혹은 부자들의 입장을 대변하는 신자유주의적 흐름을 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비롯 대선에서는 졌지만,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바로 그런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다. 어디 인터넷 여기저기에 널려있는 야권 정신승리소 같은데 틀어박혀 모여서 나라가 망했으니 어쩌느니 하면서 질질 짜는 일은 아무런 생산성도 없다. 내가 생각한 것은 그 시대에 대한 향수를 가지고 있는 세대가 결국 늙어 죽게 되는 날을 기다리거나, 아니면 그런 날이 도래하기 이전에 신자유주의 정책에 의해서 나라가 폭삭 망하든가 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속전속결로 이 나라가, 이 나라의 국민들이 정신을 차리는 방법은 그냥 얼른 다시 폭삭 망하는 방법뿐이라고 말했던 것이다. 그러한 나의 발언에는 이 나라가 겪은, 한강의 기적이라는 단어로 표상되는 그러한 급속한 산업개발과 경제발전이라는 것이 결과적으로는 건강하지 못한 자유주의와 민주주의를 이 땅에 뿌리내리도록 만들었으며, 나아가 이 나라의 국민들로 하여금 자신들이 살아가고 있는 자유민주주의 공화국의 가장 근본적인 가치라고 할 수 있는 자유주의와 민주주의에 대한 적절한 최소한의 숙고와 이해조차 결여한 채 아니 오히려 더 나아가 모종의 오해로 가득 찬 이념으로 이 나라의 가치들을 영위해 나가는 결과를 초래했다는 나의 분석이 깔려있다. 결국, 내 말은 게임을 하다가 어딘가 잘못 되었다면 다시 이전의 세이브 포인트로 돌아가서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도록 조심조심 또 나아가야 한다는 말이 될 것이다. 귀찮고 번거롭고 고통스럽겠지만 그것은 결과적으로 좋은 엔딩을 위해 유저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이기도 하다.

 

친구는 내가 말하는 그런 의견에 반대했다. 그는 경제적으로 파탄이 난다 하더라도 언론과 교육이 이 지경인 이상 국민들이 의식이 유의미하게 개선될 것이라고 기대되지는 않는다고 했다. 그런 의미에서 그가 강조하는 것은 언론과 교육에 있어서의 정화, 정치적 간섭의 배제 같은 것이 보장될 수 있는 정권의 수립이었다. 그리고 그가 생각하기 그러한 언론과 교육에 있어서의 자유 민주적 가치를 보장할 수 있는 정권은 새누리당이 아니라 민주당이었다. 때문에 그는 어서 빨리 야권, 그 중에서도 집권 가능성이 가장 큰 민주당이 어서 빨리 정권을 잡아서 언론과 교육을 정상화시키는 게 시급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야권의 분열(?)’을 조장하는 안철수의 행보는 좀처럼 곱게 여겨질 수가 없는 것일 테였다. 나아가 그는 내 주장처럼 이 사회의 경제가 다시 산업개발 이전으로 돌아간다고 할지라도 그러한 사실적 변화가 필연적으로 국민 의식의 진보적 내지는 민주적 방향으로의 전환으로 연결될 것인지는 의문이라고 말했다. 그 점에 대해서는 나도 일리가 있다고 생각하였다. 사실 처음부터 실현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외쳐댄 발상은 아니었지만, 그러한 발상은 그 친구 녀석의 지적처럼 그것이 이루어진다고 해서 시민들이 반드시 신자유주의 정권의 해악을 직시하고 진보적 의식을 고취하게 되는 것은 아닐 것도 같았던 것이다.

 

다음으로 이야기는 안철수의 새 정치에 대한 이야기로 흘러간다. 우리가 수월하게 공감하는 부분은 안철수가 어느덧 세속 정치인이 되어버렸다는 점이었다. 이를테면 정치철학 보다는 정치공학에 매몰되어 가는 모습이 점점 뚜렷해져 간다는 인상을 공히 받았던 것이라고 하겠다. 나라서 문재인 지지자들을 비롯한 노빠 진영에 대한 강한 거부감을 가지고 있는 나로써도 이즈음해서는 진정한 안철수 팬이라면 슬슬 안철수라는 패를 언제 버려야 할는지 때를 가늠하는 게 응당하겠지.’라고 자조했다. 그것은 애당초 안철수를 지지하게 만들었던, 혹은 안철수를 지지할 수 있도록 해줬던 정치철학적 명문의 문제였다. 점차 정치판에 찌들어가는 그를 바라보면서 그의 끗발도 다해가는 것은 아닌지 신중하게 살피게 되는 것은 그러한 명문론의 영향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안철수 지지자로서는 당연한 결정이 아닐까 한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안처수라는 패를 포기하는 한이 있더라도 문재인의 편으로 돌아가지는 않을 것이다. 진신류는 그냥 진신류답게 모두의 위에서 모두를 굽어 내려다보며 깔보는 일로 돌아갈 따름이다. 안철수에 대한 지지는 신선이 잠시 인간계에 내려왔던 유희 중에 하나였을 따름이다.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철수의 새 정치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견이 엇갈리는 부분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친구는 정치철학을 망각하고, 다시 말해 초심을 망각하고 정치공학적인 부분에 매몰되어 가는 모습을 보면 그가 말하는 새 정치라는 단어가 무색해진다고 비판했다. 이것은 그가 안철수가 말하는 새 정치에 대해서 정치공학적 접근보다는 정치철학적 접근에 치중하는 행보를 기대했던 것이라고, 혹자에 따라서는 나이브한 입장을 기대했던 것이라고 판단할 여지가 있어 보인다.



 

하지만 나는 그가 말하는 새 정치라는 것을 그렇게 나이브한 것으로 간주하고 싶지는 않다. 분명 그가 말하는 새 정치에 대응하는 구태 정치는 정치철학을 망각하고 정치철학에 매몰되는 모습을 보여왔고, 그런 맥락에서 사람들은 그가 말하는 새 정치에 대하여 그와는 다른 모습을 기대할 수밖에 없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킹 메이커라는 윤여준까지 합류한 상황에서 그에 대하여 정치공학을 도외시하는 행보를 기대하기란 이미 글른 것이고, 대통령을 노렸던 남자에게서 정치공학이 배제된 모습을 기대하는 것은 이상적이어도 너무 이상적이지 않나 하는 생각이다. 물론 정치는 어떤 이상을 전제로 하고 최선의 방법을 고려하는 것이니 만큼 이상이 무시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은 인정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실적 요소들이 우리에게 강제하는 제한들은 우리로 하여금 그런 이상으로서의 철학뿐만 아니라 공학적인 측면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것이다.

 

그러한 맥락에서 나는 그가 재작년에 대선에 출마하겠다고 기자회견을 하는 순간 그는 기존에 청년들을 만나면서 늘어놓았던 정치철학들이나 신념들을 완전히 포기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그래도 이제는 현실정치인답게 정치공학적 행보를 이어나가게 되리라고 예상했었다. 정권을 잡는 것을 지상 목표로 하는 정치인에게 있어서 정치공학을 포기하고 순전히 정치철학만을 요구하는 것은 무리하다. 대신 나는 그의 새 정치를 국민통합에의 새로운 발상으로 이해한다. 제목에서도 적었던 것처럼 그것은 진영논리로부터의 해방이다. 그는 그 누구에 대해서도 함부로 욕하지 않는다. 어쩌다 새누리당이 정말로 그 누구로부터도 비판을 피하지 못할 정도의 상황이 되면 그제야 비판을 한다. 그러한 행보 때문에 그는 기회주의자 혹은 간철수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기도 했다. 딱히 누구를 칭찬하는 것도 아니지만 그를 싫어하는 사람들이 그를 비판하는 것은 그가 누군가를 까지 않기 때문이다. 그 자리에서 친구 녀석은 국정원 대선 개입 사건에 대하여 안철수가 제대로 된 비판을 하지 않는 것에 대해서 무척 실망을 했다고 했다. 하지만 나는 그건 안철수의 입장에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 아니냐고 반문했다. 앞서 말했듯이 현실 정치인이라면 마찬가지로, 정권을 잡는 것이 지상의 목표인데, 자신이 직접 대선에 나갔던 것도 아니고 문재인의 뒤에 서있어야 했던 입장으로서 섣불리 국정원대선개입을 비판하고 나섰다가는 대선이 끝나고 나서도 문재인의 영향력 뒤에 가려지게 되는 결과를 낳는 것이다. 그것은 대선이 끝나고 간신히 몸을 추슬러 이제 좀 신당창당을 할까 말까 하는 그에게 있어서 스스로 자기의 무덤을 파는 행위와 다름없는 것이었다. 따라서 나는 그에게 그러한 일을 요구하거나 기대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현실정치인이 되어버린 이상 그는 정권 획득을 위해 달려갈 수밖에 없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그것을 위해 가장 좋은 방법은 가장 많은 국민의 동의를 얻을 수 있는 철학과 공학을 동원하는 것이다. 문제는 그러한 철학과 공학 사이에 일어나는 괴리이다. 새누리당이라는 존재를 끌어와서 이야기를 하면 매우 편리하다고 하겠다. 대선의 이전에 여론의 주목을 받으며 급부상하기 시작한 안철수는 새누리당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취해왔다. 새누리당 입당 가능성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내가 만약 입당을 한다면 적어도 새누리당은 아닐 거라고 그가 선을 그을 때 얼마나 많은 민주당 지지자를 포함한 야권 지지자들이 환호를 했던가. 하여간 그렇게 새누리당에 대하여 비판적인 시각을 견지하는 그의 태도를 보면서 민주당 지지자들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그를 자신의 편으로 간주하게 되었을 것이다. 물론 중간중간 편도 아니고 적도 아니고 굳이 말하면 편에 가깝다는 식으로 정리하면서 과도한 기대를 염려하는 인사들이 있었지만 대다수의 우매한 군중들은 어김없이 자신의 마음대로 그를 재단해버렸다. 그리고 이제 그가 현실정치인으로서 가장 효과적인 정치공학을 선택하매 사람들은 배신감을 느끼게 된 것이다. 확실히 이건 슬픈 일이다. 왜냐하면 현실정치인이 되면서 그가 처음에 견지했던 초심으로서의 정치철학이 정치공학에 의해 집어삼켜지는 결과가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앞서 언급했던 박정희 묘소 참배의 건이다.

 

하지만 소식이 전해지자 일부 진보적 성향 누리꾼들 사이에서는 비난 여론이 거셌다. 누리꾼 ‘duc*****’는 이날 트위터에 안철수씨, 새해 첫날 박정희 묘소 가서 향피우고 절하는 것이 새정치입니까라며 현대사 모순의 뿌리에게 참배하며 새정치를 외치는 것은 기만이고 사기라고 비판했다. 누리꾼 ‘oo****’안철수 의원이 반새누리를 자처하니 그렇다 치더라도 내 관점에선 민주·진보 진영 정치인으로 도무지 생각되지 않는 행보를 보여준다라며 특히 역사관(이 그렇다)”고 적었다.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401011550501

<그건 니들 생각이고요.

이 나라 사람들 대다수가 니들 같이 생각하면 왜 정권은 다른 애들이 잡은 걸까?>



진짜 그의 마음이 어떤지는 몰라도 나 역시 그에게서 비전을 발견했을 때는 적어도 새누리당과 같은 인간은 아닐 거라고 생각은 했기 때문에 그런 그의 행보에서 많든 적든 간에 어느 정도 배신감 같은 걸 느끼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니 어쩌면 오히려 그런 의미에서 그의 행보는 새 정치라고 불려질 수 있는 맥락이 있다. 그것은 공학과 전략에 있어서의 최고의 효율을 추구하는 행보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행보의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것은 이 싸움의 핵심이 되는 최대 다수의 지지이다. 논의상 저절로 가려지긴 했지만, 그가 참배한 것은 비단 박정희의 묘소만이 아니었다. 그는 김대중의 묘소도 함께 참배했다. 하지만 사람들은 김대중 묘소에 대한 참배는 전혀 언급하지 않고, 박정희 묘소의 참배만 가지고 이 사건을 분석하고 있다. 만일 그가 오직 박정희의 묘소만 참배했다면 그들의 비판이 훨씬 더 힘을 얻었을테지만 현실을 그리 간단치가 않아 보인다.

 

여기서 내가 읽을 수 있는 것은 국민통합에 대한 그의 의지다. 사실 이것은 통합이라고 해야 할지 야합이라고 해야 할지는 내가 결정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마치 야권이 선거철마다 뭉치는 것을 통합이라고 해야 할지 야합이라고 해야 할지 알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다만, 여기서 안철수가 자신의 행보를 통해서 추구하고 있는 통합/야합은 매우 탁월한 정치공학이라는 것이다. 비록 그 행보가 결과적으로 또다른 파국을 초래할 가능성을 잉태하고 있어 보이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그가 대통령이 되는 데 가장 효과적인 일임에는 분명해 봉니다. 현재의 상황에서 안철수는 누구보다도 더 자연스럽게 양쪽의 전직 대통령 묘소를 참배할 수 있는 인물이다. 박근혜나 문재인이 그렇게 했다면 어쩔 것인가? 그것은 그것 나름대로 자기 무덤을 파는 일이다. 그들은 그들의 지지기반을 고려해 볼 때 그런 행보를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는 인간들이다. (물론 최근 들어서 민주당과 새누리당의 국회의원들이 서로 김대중 생가와 박정희 생가를 방문하는 되게 신기한 모습을 보여줘서 마치 안철수 코스프레를 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하지만 안철수는 다르다. 안철수를 지지하는 사람들 중에는 진영논리에 피곤함을 느껴온 사람들이 적지 않다. 각종 정치적 상황과 논의를 진영논리를 통해서 재단해 버리는 세태에 환멸을 느낀 인간들에게 안철수의 이러한 행보는 애당초의 정치철학이 훼손된다는 측면에서 씁쓸하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용가능성 영역 내에 있는 것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앞서 말한 대로 그것은 진영논리로부터의 해방을 추구하는 행보이며, 나아가 작금의 현실에서 안철수만이 할 수 있는 것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물론 이야기했듯이 지금 안철수의 행보는 많은 악재가 도사리고 있다. 대선의 경험으로 추진력을 크게 잃은데다가, 정치판에 찌들어 가면서 뉴페이스 효과도 거의 끝물이 아닌가 하는 전망이 흘러나오고 있으며, 신당창당과 지방선거 후보로 언급되는 인물들은 구태 정치로 표상되는 새누리당과 민주당에서 공천 낙선한 인물들이 대다수라는 소리가 들린다. 무엇보다 그가 지향하고 있는 국민 통합/야합의 방향이라는 것이 그게 만약 성공한다고 하더라도 그러한 미봉책으로는 언젠가 다시 상처가 곪아 터질 것이리라는 예상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지기 때문에 역시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현실적으로 볼 때 안철수에 대하여 새로운 차선으로서의 기대를 가지고 지지를 시작한 사람이라면 이제는 슬슬 안철수라는 장기말을 던질 타이밍을 재야 할 때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그렇다고 새누리당이나 민주당으로 갈 생각도 없다. 아 물론 투표는 그 당에게 할 수도 있겠지. 하지만 그들이 명심했으면 하는 것은 정치는 객관식만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비록 미약하고 쉽게 간과되기는 하지만 주관식으로서의 정치가 엄존하는 것이고, 기실 진정 민주정치라 할 수 있는 일들은 그런 주관식의 영역에서 일어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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