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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상

비바람, 5월의 눈

by 통합메일 2014. 5.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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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히 말해서,

밤의 가로등 밑에서 눈이 내리는 것을,
빗을 빗듯, 한 차례의 눈이 그렇게 어디론가 날아가는 것을 봤다는 생각이다.

숨이 막힐 정도의 바람이 불었다. 뱉는 숨을 도로 목구멍 속으로 우겨 넣는 풍경에 그만 밤의 음부를 목격한 표정이 되었을 것이다. 

넥타이가 프로펠러처럼 휘날리고, 저고리 자락이 아무리 날개짓을 하더라도 몸이 날아오르는 일은 없었다. 다만 사방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문득 지난 날에 드문드문 찍어둔 세이브포인트들이 떠오르기도 하였다. 

빗방울이라기엔 너무 하얗게 반짝이고, 꽃잎이라기엔 지나치게 투명한 그것을 본 것은 집을 5분 정도 남겨두었을 때였다. 그러고보니 어디선가 5월의 눈이 내렸다는 뉴스를 본 것도 같았다. 본능적으로 더듬던 을씨년스러움이 돌연 아련함으로 탈바꿈했다.

그 아련함에 아니나 다를까,

곧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집까지는 1분이 남아 있었다. 세상은 금새 시큼한 냄새로 가득 찼다. 바람은 여전했다. 혼이 나고 있다는 생각, 혹은 책망을 받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득 아침 출근길에 만지작 거리던 '표지'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단어는 떠올랐는데 그 단어에 연결된 서사는 떠오르지 않았다. 줄을 끊고 도망가버렸지.

독한 시큼함에 몸을 떨며 세상을 탈출하듯 집으로 뛰어들어왔다. 숨을 돌리며 세상을 내다보니 바람 한 점, 비 한 방울 없어 보이는 것이 세상은 잔뜩 딴청을 피우고 있었다. 무슨 유난이냐는 표정을 한 내가 밤의 수면 위에 떠올라 깜빡깜빡이는 눈으로 나를 쳐다 보고 있었다. 

누가 저 세상을 내게로 보내왔나.

긴 연휴 다음치고는 참 괜찮은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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