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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상

노아

by 통합메일 2015. 3.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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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아>


기나긴 홍수가 지나가고 노아는 방주의 문을 열었다. 깨끗하게 청소된 세상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온갖 똥냄새에 마비된 코에는 그 맑은 공기만큼 잔인한 것이 없었다. 그저 그냥 공기로 여겨지던 것들이 문득 악취로 돌변하는 것은 바로 그러한 때이니 말이다. 그리고 눈은, 눈이라는 창문을 통해 또 하나의 창을 바라보는 마음은 그 풍경을 마주하매 그곳에서 무엇을 봤을까.


하나님 당신이 쓸어내린 이 세상을 보고서 당신이 만든 것은 천국입니까 아니면 지옥입니까. 만들어내고 보기에 좋았다고 고백했던 존재를 사멸시키는 것은 당신 스스로를 부정하는 것이 아닙니까. 아니면 그저 신은 언제나 내키는 대로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자 했던 것입니까?


차라리 창문을 열지 않는 것이 나을 뻔 했다. 온갖 만물의 똥냄새를 마시며, 영원히 바깥을 구경하지 않았으면 방주는 그냥 또 하나의 우주가 되었을 것이다. 만물이라 할 수 있는 것들을 태운 것이 많다면 문제는 그저 세상이 조금 작아졌다는 것 뿐이다.


이를테면 만물이라고 할만한 것을 마음에 품고 있다면 다시는 마음의 문을 열지 않아도 그냥 그 자체로 하나의 우주로 존재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때가 있는 것이다. 이것은 그래 경험적인 사실이구나.


벌써 내 마음의 만물이 우주가 되어버렸다. 애써 무언가를 추가하기엔 지나치게 완전무결한 세상이다.


그와 더불어 어울리는 단어들, 시선, 숨, 머뭇거림, 출러이는 공간, 흑백화, 석회화, 가라앉고, 닫히고,,


신의 홍수는 소리없이 조용한 것. 생존은 했으되 중심을 잡지 못하고 이리저리 출렁이고 휘청이는 마음과 같은 것이다. 조용히 많은 것이 죽어가야만 한다. 이 세상에서의 가장 보편적인 의무가 바로 그러한 것이다. 생의 의지, 학구의 심지가 알량히 여겨지는 것이 바로 그러한 순간이다.


그러고보니 그것 참 지겨운 반복이지 않나. 그 역시 꼰대의 감정이며, 그것을 감수하는 것이 꼰대의 숙명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은 언젠가 결국 꼰대가 된다. 그것을 피하는 길은 내가 꼰대로 비추어질 누군가를 만들거나 만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마음의 창을 닫고, 방주 안에서 서로를 잡아먹으며 살아나가다 보면 꼰대가 될 일은 없을 것이다. 누군가를 꼰대로 만들기에는 그들은 서로에 대하여 지나치게 소중하다. 똥냄새로 가득한 또 하나의 우주 속에서.


2014. 06.16 내가 졌다 씨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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