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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무

2019년 졸업 - 전하지 못하고, 채 다 쓰지 못한 편지

by 통합메일 2019. 2.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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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반 학생들에게

공식적인 이별을 앞두고 몇 마디 적어봅니다. 일전에는 한 명 한 명을 대상으로 편지를 적어볼까 생각한 적도 있습니다. 때로 저와 당신은 서로를 건너편에 두고 줄다리기를 하거나, 공동의 목표를 성취하기 위해 함께 호흡을 맞추어 고분군투 한 적도 있는 만큼.. 역시 때로는 무언가 고마움과 애틋함을 남겨 전하고 싶다는 충동이 물밀듯이 밀려오는 날도 있던 것이지요.

하지만 저는 이내 그만두기로 했습니다. 분량이 엄두가 안 나기도 했고, 무엇보다 주제넘은 충고가 나도 모르는 사이에이별의 마디 어딘가에 박히는 것이 심히 우려되기도 했으며, 당신 누군가에 대한 무지와 오해의 소산이 가시적인 혀애로 세계에 생산되어 보존되는 일이 두려웠던 것입니다. 그래서 준비하는 것은 <여러분을 향한 글>입니다. 그러니까 말하자면 이것은 무지와 오해를 덮어둔 채로 신비로운 하나의 풍경을 멀리서 바라보는 일에 가깝습니다.

방학 중에는 스카이캐슬이라는 드라마를 정주행했습니다. 여러분이 그러했을 것과 마찬가지로 저도 매우 인상적으로 시청했습니다. 1년 동안 내가 몸담았던 일과 매우 밀접하게 관련이 있는 주제를 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대학에 가는 것을 삶의 모든 것으로 간주하는 일이 부질없다는 메시지를 읽으며 마음이 복잡해지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한편으로는 공감하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그것이 또 얼마나 공허한 외침인지를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또 한편 내가 나의 삶을 통해 공부한 철학적 질문이기도 합니다.

<어떻게 사는 것이 좋은 삶인가?> 수 많은 철학자가 여기에 대해 제 나름대로의 대답을 내놓았는데, 아주 오랜시간이 지난 미래에는 그때 그 당시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의 철학적 풍토는 금권과 정치력을 담보하는 명문 대학 입학권을 획득하는 데에 ㅁ자추어져 있었고, 이러한 교육열을 반영하는 사회는 상당히 위계화, 서열화되어 있었다고 기록하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즉, <걱정 없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아가는 삶>을 성취하는 데에는 좋은 대학에 입학하여 그곳을 졸업하는 일이 굉장히 대표적인 하나의 방법으로 통용되고 있따는 것을 작금의 이 시대의 청사진으로 제시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는 결코 부정하기 힘든 사실입니다. 막대한 재산을 물려받거나, 전망이 탁월한 사업체를 물려받을 예정인 사람이라면 더 좋겠지만, 그런 사람이라 할지라도 혹은 그 외의 경우에는 최고의 명문대학에 진학한 사람에 가까울 수록 그에 비례하여 축하와 부러움이 주어지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축하와 부러움의 이면에는 다분히 미래에 예상되는 금전적이거나 정치적인 가치들이 그 배경을 이루고 있다는 사실이 매우 재밌는 것이죠.

자본주의를 기조로 삼고 있는 국가와 행성에 살아가고 있는 생명체로서의 저 역시 이러한 흐름을 거스르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것을 완벽하게 거스르기 위해서는 마르크스의 이상에 흠뻑 빠져 자본주의 시스템 자체를 부정해버리는 게 가장 단순명료하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러한 시스템에서 12년 간의 정규교육과정을 이수하신 여러분 정말 수고가 많았습니다. 몇 번이나 한 얘기고, 여러분도 절실히 체험하고 있는 요즘이겠지만 매일 아침 일찍 등교하여 잠에 드는 시간까지 학업이라는 행위를 눈 앞에 두고 혹은 염두에 두고 살아가는 일은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닙니다. 어려운 일이기 때문에 누군가는 그 과정에서 중도하차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여러분은 아닙니다. 누구보다 충실하게 살았고, 진지하게 자신의 삶을 마주하며 살아온 덕에 12년만의 결실을 맛볼 수 있게 된 여러분은 축하받아 마땅한 존재들입니다.

그럼 이제 앞으로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요? 고등학교를 떠나고 고향을 떠나고 새로운 지역이나 새로운 학교.. 여러분이 항상 갈망했던 곳에 도착했을 때 모든 게 낯설 것입니다. 그리고 준거집단이 바뀌게 될 것입니다. 새로이 만난 이들과 내가 얼마나 어떻게 다른 내용의 시간을 걸어 어떤 차이를 공유하고 있는지를 확인해나가는 나날들이 제법 흥미로운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크게 보면 인생은 그런 일의 연속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드네요. 흥미로운 반면 상당히 에너지의 소모가 극심한 일이지요. 연애도 결혼도 그런 면에서 참..

하여간 그 과정에서 여러분은 많이 변하게 될 것입니다. 인간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끊임없이 변화를 경험한다는 점을 생각하면 참 당연한 얘기군요. 그 과정에서 부디 좋은 사람을 많이 만나시고, 그 전에 여러분 자신이 좋은 사람이기를 바랍니다. 가족에게도 형제자매에게도 친구에게도 선후배에게도 스승과 제자에게도 자식에게도.. 심지어는 자연환경에게도.. 자기 자신에게도..

그 좋음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안다 해도 변수가 너무 많습니다. 내가 아무리 좋은 능력과 선의로 가득 찬 사람이라 할지라도, 환경, 다른 사람,, 타이밍의 문제로 제대로 나의 좋음이 드러나지 못하거나 오히여 나쁜 사람이 되는 억울한 일을 경험할 수도 있습니다. 문제의 원인이 자신에게 있다면 용서를 구하고 반성을 하세요. 타인에게 문제가 있다면 변화를 도모하고 떄를 기다리거나 그를 떠나세요. 하지만 세상의 이치 상 어느 한쪽에게만 일방적으로 책임이 있는 경우는 많지 않지요. 군자는 문제의 원인을 우선 자신에게서 찾는다는 성현의 말을 떠올려야 하는 까닭입니다.

1년을 함께 생활하고 보니 저는 여러분과 성별도 나이도 취향도 성장환경도 상이하여 세대차이도 많이 나는 것 같고, 공감하지 못하는 게 많더군요.. 물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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