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있닭
때는 바야흐로 2017년, 아무래도 봄이었던 것 같다. 당시의 나는 아무래도 이제는 정말 뭔가 환골탈태를 하지 않으면 연애고 결혼이고 완전히 불가능할 것 것 같다는 자각이 들어 뭔가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때 왜인지 모르지만 내가 선택했던 것은 바로 닭가슴살 다이어트였다. 닭가슴살 다이어트라고 해서 뭔가 심오한 어떤 식단 같은 게 있는 건 아니고 그냥 닭가슴살을 먹는 것이다.
사실 처음에는 그냥 굶으려고 했다. 하지만 이건 도저히 할 짓이 아니라는 생각에 닭가슴살이라도 먹어야겠다는 판단을 하게 됐고 그래서 이리저리 알아봤다. 그러다 문득 그 당시 즐겨듣던 xsfm의 그것은알기싫다라는 프로그램에서 아임닭의 닭가슴살 큐브나 소시지 같은 것을 광고하던 게 생각나서 그런 제품들을 좀 찾아봤다. 그 결과,, 애당초 광고로 들었던 제품은 아임닭인데, 가격 때문에 그랬는지 아니면 제품명을 착각한 건지 모르겠지만, 하여간 아임닭이 아니라 맛있닭을 선택하게 된다.
소시지도 있고, 뭐 스테이크? 같은 것도 있고 샐러드도 있던 것 같고 하여간 닭가슴살을 이용해 만든 제품은 아무 많았다.
지금 다시 들어가보니까 더 많은 종류가 만들어졌다. 근데 하여간 나는 직장에서 먹어야 하는 상황이라 최대한 간편하게 게 먹을 수 있는 게 중요했다. 그렇다면 닭가슴살 볼이나 닭가슴살 큐브나 닭가슴살 소시지 등으로 선택지가 좁혀진다. 스테이크는 아무래도 뭔가 써는 맛이 있어야 하다보니까 좀 거추장스러워지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했던 것 같다.
그 중에서도 닭가슴살 큐브가 아무래도 그냥 집어먹기만 하면 되니까 그냥 제일 기본에 충실하고 간편할 것이라고 생각해서 닭가슴살 큐브를 선택했다. 무슨 맛을 먹을 지가 문제였는데, 마늘맛과 고추맛 중에서 어떤 걸 선택할지 결단이 서지 않아서 그냥 두 가지를 반반 주문했다. 각각 10개씩 주문했던 것 같은데 결론적으로 나한테는 고추맛이 맛있었다. 언뜻 생각하기에는 마늘맛이 마늘 특유의 풍미 때문에 맛있지 않을까 생각할 수도 있는데 이게 가공식품에서는 그렇게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는 것 같았고, 마늘이 그렇게 많이 들어가지도 않는 것 같았다. 그렇다고 고추맛이 고추가 그렇게 많이 들어가는 것도 아니긴 하지만, 이 청양고추라는 것은 미량만으로도 마늘보다 강력한 효과를 낼 수 있다 보니까 고추맛에 더 끌린 게 아닐까. 하여간 두 가지를 함께 먹다보니 나는 고추맛으로 결론내렸고, 우연히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봐도 고추맛에 더 매력을 느낀 사람들이 많았던 것 같다.
그렇게 나는 닭가슴살에 입문했고, 나중에는 닭가슴살 고추맛에 중독될 지경에 이르게 된다. 정말 어쩌면 이것만 먹으면서 살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여담이지만 이 닭가슴살 큐브라는 게 한 번 입에 적응시키기만 하면 술 안주도로 아주 끝내준다. 크.. 매일 밤 퇴근한 다음 자취방에 가서 소주와 함께 닭가슴살 큐브를 먹으면 소주 한병이 뚝딱뚝딱뚝딱뚝딱뚝딱딱따리릴따딱 제껴지는 것이 아주 신이 났다. 물론 나중에 자취방에 놀러온 선후배들에게 이 닭가슴살을 안주로 내줬더니 다들 기겁을 하면서 손도 대지 않아서 조금 섭섭했다. 두 봉지나 데웠는데.. (하긴 적응기간이 필요한 거겠지.)
하여간 내가 하고자 하는 말은 '한창 먹을 때는 그 정도로 맛있게 잘 먹었다'는 말이다.
그리고 이때 살을 많이 뺐다. 물론 그냥 빠진 건 아니고 운동을 같이 해야 한다. 하.. 이게 쉽지 않지.. 쉽지 않은 데 그보다 더 쉽지 않은 것은 식욕을 줄이는 일이다. 그래도 자연스럽게 천천히 식욕을 줄여나가는 것을 닭가슴살이 많이 도와주는 편이다. 뭔가를 먹었다는 자각을 들게 해주고 움직일 수 있는 힘을 준다.
솔직히 말해서 운동은 거의 술기운에 했던 것 같다. 그러니까 엄밀히 말해서 술도 많이 도움을.. 아니다. 근데 처음 시작할 때는 운동의 영감을 갖는 데 분명히 술기운이 좀 도움을 줬다. 나중엔 술 없이도 운동을 할 수 있었다. 근데 이게 진짜 식사량을 줄이고, 닭가슴살 위주로 먹고, 밤에 러닝도 하고 하니까 정말 잘 빠졌다. 살 빠지는 속도가 진짜 (물론 초반에 진입장벽이좀 있긴 하지만 그것만 넘으면) 드라마티컬한 속도를 보여준다. 나중에는 거의 하루에 두 끼를 닭가슴살만 먹는 삶을 살기도 했다.
밥을 못 먹고 닭가슴살만 먹어야 하는 모습을 본 사람들의 애처로운 반응을 견디는 것도 좀 어렵긴 한데 나중에는 괜찮아진다. 아주 즐겁게 스마트폰으로 인터넷을 하면서 하나씩 집어먹다 보면 어느새 다 먹었다. 먹는 속도도 정말 빠르다. 5분에서 10분이면 다 먹는다. 솔직히 10분까지 걸리지도 않는다. 고추맛은 은근히 소금기도 있어서 잘 넘어가는 편이다.
아임닭
그로부터 시간이 훌쩍 지났다. 나는 다시 돼지가 되었다. ㅎㅎㅎ 8kg 정도 뺐는데 10Kg가 쪘으니 뭐 원상복귀를 뛰어넘는 성과다. 금연의 탓도 분명히 있긴 하겠으나, 나태한 생활이 문제가 되었으리라.. 그런데 이 식욕이라는 게 역시 어김없이 이번에도 마치 중독과 같은 성격을 띠고 있는지라 끊기가 쉽지 않았다. 담배도 식사도 모두 끊겠다는 다짐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에 정말 힘들다는 생각이다.
그러고보면 정말 담배나 식사나 핑계가 비슷하다. 일을 해야해서 스트레스 때문에, 삶에 낙이 없어서 줄이거나 끊지 못한다. 하지만 막상 해보면 또 할 수 있다. 나는 담배를 먼저 끊고 그 다음 식사를 '줄였다.'
이미 한 번 해봤기 때문에 하면 된다는 걸 알고 있다. 하지만 하는 게 쉽지 않았다. 그래서 꽤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마침내 다시 닭가슴살을 주문했다. 이번에는 아임닭이었다. 이번에는 실수하지 않고 제대로 주문했다.
몇 년 사이에 새로운 맛들이 정말 많이 나왔다. 그래서 기본 베이스를 청양고추로 하고 다른 종류의 맛들을 섞어서 주문해봤다.
스무 봉지 샀는데 4만원?? 한 끼게 2천원 정도다. 점심만 먹고 저녁을 닭가슴살로 먹는 전략. 처음에는 잘 안 됐다. 당연히.. 저녁을 포기한 삶은 굉장히 밋밋해질 수밖에 없다. 담배를 끊으면서 삶이 한 번 크게 담백해졌는데, 한 번 더 또 더 담백하게 만들려니.. 정말 말 그대로 인생이 퍽퍽한 닭가슴살이 되어버릴 것 같아서 더 암울해서 힘들었는지도 모르겠다.
무엇보다 오래간만에 닭가슴살을 다시 먹으려니 심리적으로나 생리적으로나 잘 맞지 않아서 힘들었다. 이미 속세의 자극적인 맛에 적응해버려서 닭가슴살의 깊은 맛을 제대로 음미하지 못했다. 예전처럼 청양고추맛을 입에 넣었는데 마치 무슨 고무 씹는 맛처럼 느껴져서 놀랐다. (지금 생각해보면 전자렌지에 잘못 데운 것 같다. 봉지를 너무 많이 뜯은 듯)
그래서 불고기맛, 야채맛, 현미맛 등을 먹으면서 입맛을 달랬는데, 의외로 야채맛이 꽤 맛있어서 스스로에게 놀랐으나,, 나중에 가니까 다시 '역시 청양고추맛이 진리구나'라는 깨달음에 이를 수 있었다. 현재는 청양고추맛이 제일이고 나머지는 미만잡으로 평가하고 있으며 그 중에서도 현미맛은 정말 무미담백고소하기만 하여 마치 정말로 이따금은 고무를 씹는 듯한 식감을 주는지라 어쩌다보니 지금 냉동실에도 결국 남아버린 것은 현미, 불고기 등의 맛이다. 언제나 내 곁에서 나를 배신하지 않는 녀석은 역시 청양고추맛이다.
술이랑 먹어도 맛있고, 김치랑 먹어도 맛있고 만능이다.
아 다만 지금은 아직 운동을 못하고 있다.
변명하고 핑계를 대자면 동거인이 술을 허락하지 않다보니까 어떤 운동적 영감을 얻지 못하고 있다랄까.
동거인은 우연히라도 운명적으로 이 글을 본다면 나에게 술을 허하라.
마시면 뛰지 않을까?
안 뛸 수도 있고 ㅎㅎㅎ
'일상의 기록'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영웅 616 닙마름 현상 캡 오일링으로 해결 (0) | 2020.12.04 |
---|---|
[보건복지부]사회적 거리 두기 단계별 기준 및 방역 조치(카드 뉴스)(PDF파일 첨부) (0) | 2020.11.26 |
제천 의림지 솔밭공원 피크닉 (0) | 2020.10.19 |
1865 와인 - 명불허전 (0) | 2020.10.18 |
사조 프레시 한입 피자 후기 - 정말 한입이네 (0) | 2020.10.18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