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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기록

[항문기]치질/치핵 자연치유 후기(병원의 문턱에서)-자가치료: 좌욕도 비데도 아니었지(스압)

by 통합메일 2021. 1.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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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나 인상적이었는지 심지어는 일기까지 썼는데

그 일기를 참고해서 기록을 옮겨보자면

그 날 일기의 제목은

 

'치질이다 치질이야'

 

사실 나는 평소

치질에 걸리기 딱 좋은 습관을 많이 가지고 있다.

 

1.음주

2.운동 잘 안 함

3.배변 시간 김 - 영원히 앉아 있을 수도 있음. 어릴 때부터 변기에 앉아 책 읽기를 즐겼고 지금은 스마트폰

4.고기 좋아함 - 채소도 좋아하긴 함

5.스트레스 잘 받는 성격

6.커피도 자주 마심 - 평균 카누 2잔, 많이 마시는 날은 다섯 잔도 마시는 듯

 

그리고 예전에 걸렸던 병력도 있다.

 

정확히 언제냐고 한다면 확실치 않은데

치핵이 한 번 삐져나온 적이 있다.

어린 마음에 무척 놀랐다.

항문에 변형이 온 것이다.

이대로 변형을 방치했다가는 정말

버스 옆구리에 광고가 붙어 있는 항문외과, 창문외과 그런데 가서 수술을 해야 한다는 걸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그래서 손가락을 이용해서 감으로, 그 변형된 항문을 바로 잡았던 것 같다. 에둘러 말하면 그렇고.. 그냥 치핵을 다시 집어넣은 것이다. 근데 이 과정이 좀 거칠고 험하다. 아무리 섬세하게 하려고 해도 결국은 피를 볼 수 밖에 없다. 이런 작업은 보통 샤워할 때 이루어지는 데.. 모르긴 몰라도 이 과정에서 치핵이 터지는 모양이다. 그래서 결국에는 핏물이 한 번 흐르고 손가락에 핏물이 흥건할 정도가 되어버린다. 하여간 이번에도 그랬고 그때도 그랬고, 피를 보지 않을 수는 없었다.

 


Day 1

이번에는 정말.. 좀 기습적으로 치핵이 찾아왔는데..

느낌이 좀 쎄하긴 했다.

어째.. 하필이면 최근 먹고 있는 약 때문인지 변비 비슷한 게 왔기 때문이다.

언제나 늘 쾌변을 보는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못해도 이틀 안에는 신호가 오는 편이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달랐다.

 

그래서 3일째 되는 날 결단을 내렸다.

그런데 너무 오래 묵힌 탓인지

아니면 장운동에 문제가 있어서인지

굉장히 매우 마른 변이, 그것도 굵게 나오는 게 아닌가

치질

 

나무위키 치질 페이지에서는 치열 항목에서

'쇠로 된 칼날을 항문으로 배출하는 느낌이 들 정도'라고 얘기하고 있는 걸 확인할 수 있는데

하필이면 그 당시의 내가 느낀 감각이 딱 그 방식이었다.

순간 과거의 기억이 떠오르면서

'큰일났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당장에는 문제가 없었기 때문에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뒤처리를 했다.

심지어는 피부에 피가 묻어나오거나 하는 일도 없었다.

 

근데 문제는 몇 시간 뒤에 시작됐다.

슬슬 아프기 시작하는 것이다.

나무위키 치질 페이지에서 치핵에 대해 서술한 내용을 보면

엉덩이살이 외치핵을 건드릴 때의 아픔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바로 그것이었다.

 

돌이켜보면 그 때 나는 얼른 서둘러서 튀어나온 치핵을 집어넣었어야 한다.

(물론 샤워하면서 겸사겸사 말이다.)

하지만 사정상 그러지 못했다.

결국 하루 반나절을 치핵이 삐져나온 상태로 걷고 앉고 했다.

퇴근하고 집에 돌아왔을 때는 상당히 아팠다.

 

설마설마 하면서 손을 뻗어 항문 주변을 만져보니

왕방울만한 물집이 잡혔다.

아니 이런 게 어떻게 여기에 있지?
이런게 여기에 있어도 되는 건가? 싶을 정도였다.

 

그 날 저녁에 쓴 일기를 보면

 

"변을 본 직후에는 그리 아프다는 느낌은 없었는데 퇴근할 때 즈음이 되니까 슬슬 아파오기 시작했다. 운전할 때도 상당히 신경쓰이는 것이 이거 보통 일이 아니구나 생각했지만.. 집에 와서 비데를 해보니 지금까지 살면서 겪은 고통은 그냥 일반 커피에 불과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걱정이다. 잘 치료할 수 있을까."

 

집에 와서 비데를 했던 이유는, 과거의 경험에 비추어 볼 때 좌욕하는 기분으로 비데의 세정 기능을 사용하는 게 치질 자가치료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환부의 상태가 훨씬 더 심각한 것 같았다. 고통이 중추신경을 자극했다. 잠이 덜 깬 상태였다면 정신이 번쩍 들었을 것이다. 식은 땀이 날 정도의 고통이었다.

 

'이상하다. 왜 이렇게 아프지? 옛날엔 이게 도움이 됐는데..'

본능적으로 이게 보통 일이 아니라는 걸 직감할 수 있었다.

 

그래서 좀 더 겸손한 자세를 갖추고 함께 살고 있는 치열 환자에게 도움을 청했다.

그는 일찍이 치열을 겪고 치질 수술을 받았지만 치열이 재발하여 고생하고 있었다.

그는 나에게 좌욕기를 빌려주었다. 좌욕기에 뜨신 물을 담고 그걸 변기에 올린 다음, 거기에 앉았다. 효과는? 있는 것도 같고 없는 것도 같았다. 베테랑의 처방이니 묵묵히 순응했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큰 차도는 없었다.


Day 2

두번째 날의 일기를 우선 옮긴다.

 

"치질과 보낸 하루다. 하루 아침에 치핵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튀어나왔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치료를 한답시고 비데를 했는데 그것이 문제였다. 엄청난 고통과 함께 상처만 터지는 결과를 맞이했다. 그대로 출근을 했고, 출근하는 운전길조차도 너무나 괴로웠다. 무엇하나 제대로 할 수가 없었다. 항문통은 생각보다 일상의 모든 장면에서 나를 괴롭혔다. 진득하니 집중하는 게 힘들었다. 다행히 밥을 먹고 진통 소염제를 먹고 약간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퇴근하고 집에 돌아와서는 대충 식사를 하고 진통제를 먹고 변을 보고 항문에 처치를 했다. 생각보다 상황은 심각했다. 좌욕을 했으나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그래서 결국 욕실 샤워부스에서 손가락으로 항문을 밀어넣는 처치를 했다. 생각건대 상황은 좀 심각했다. 어쩌면 정말로 병원에 가야할지도 모른다. 앉지 않고 엎드려 쓰는 일이다."

 

두번째 날은 정말 하루 종일 고생했는데 특히 오전의 고생이 크다. 아침에 괜히 비데질을 했다가 망했다. 자는 동안 그나마 붓기가 가라앉았는데 그걸 다시 성나게 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좌욕은 여전히 큰 효과가 없었다. 아침에 입고 나간 팬티에는 피가 제법 많이 묻어 있었다.

 

1~2일 차를 보내면서 내가 가장 걱정한 것은 여전히 튀어나와 있는 치핵이었다. 너무 오랫동안 치핵이 튀어나온 채로 방치되고 있었다. 이 상태로 살아간다면 치핵은 바깥으로 삐져나온 채로 자리를 잡아버릴 것만 같았다. 그리고 삐져나온 치핵을 엉덩이 살이 반복해서 때리는 바람에 괴로웠다. 결단을 내릴 때가 됐다.

 

나무위키 치핵 항목을 보면, 치핵은 1단계에서부터 4단계까지 있는데 3단계는 손가락으로 치핵을 밀어넣을 수 있는 단계다. 반면 4단계는 치핵이 들어가지 않는 단계다. 나는 거의 이틀에 걸쳐서 치핵이 돌출된 상태로 너무 오래 생활을 했기 때문에 처음에는 치핵이 들어가지 않았다. 과연 나는 4단계일까 3단계일까. 4단계라면 수술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하루 아침에 1,2,3 단계 모두 다 건너 뛰고 4단계가 되는 게 가능한가? 다단계 회사도 피래미부터 시작하는데 치질이라는 건 위아래도 없단 말인가.

 

샤워부스에서 쪼그려 앉은 채로 밀어넣으려고 노력했지만, 항문 한쪽이 퉁퉁 부어서 딱딱떙떙해져 있는 상태였기 때문에 섣불리 건드리기가 무서웠다. 조금만 만져도 엄청난 고통이 돌아오는 것은 물론이었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이 세상에서 이 부위를 가장 섬세하게 다룰 수 있는 건 나 밖에 없다. 나의 항문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완벽하게 밀어넣지는 못하더라도 최대한 밀어넣으려고 애썼다. 항문 안으로 손가락이 진입하는 건 꿈도 못 꾸고 튀어나온 치핵 부위만 살살 달래가며,, 항문 속으로 묻어넣는 기분으로 힘을 주었다. 묻어넣으면서 어지간히 묻어들어 갔다 싶으면 살살 돌리고 돌리고 문질러 주면서 맛사지를 해주려고 했다. 아무래도 이게 결국 혈관의 문제이기 때문에 혈액순환이 잘 되는 게 관건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이틀 동안 바깥으로 삐져나온 채로 괄약근에 의해서 압박되고, 엉덩이살에 의해 마찰되면서 혈액순환이 잘 안 되어서 이러한 붓기가 더욱 악화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에 혈액순환에 집중하려고 했다. 치핵을 밀어넣고 시계 반 시계 방향으로 천천히 돌리는 동안 나는 그 속에서 알아서 자연의 섭리에 따라 다시 자리를 잡아가는 세포 조직들을 상상했다.

 

작업을 마친 손가락에는 핏물이 흥건했다. 현기증이 약간 나는 것 같았지만 심각하진 않았다. 아무래도 너무 오래 쪼그려 있던 탓이었을 것이다. 한 10분은 족히 시간을 들였던 것 같다. 출혈이 예상되어 동거인에게 생리대를 빌려볼까 했으나 그쪽도 치열 때문에 정신이 없는 것 같아서 그냥 곽티슈에서 휴지를 한 장 뽑아 엉덩이와 팬티 사이에 끼웠다.

 

잠자리에 들 때까지 항문에 끼워둔 치핵이 삐져나오지 않게 신경을 많이 썼다. 그렇기 신경을 썼는데도 자기 전에 점검해보니 또 적잖이 삐져나와 있었기 때문에 다시 욕실에 들어가서 마저 쑤셔넣고 잠자리에 들었다.


Day 3

 

이 날의 일기

 

"아침부터 피를 봤다. 어쩌면 어느 정도는 예상했다. 팬티에 피가 제법 묻어 있었다. 어쩐지 잠자리에 들 때의 끈끈한 느낌이 예사롭지 않더라니 결국 이렇게 됐다. 하지만 잠들기 직전에도 꿋꿋하게 다시 한 번 항문을 점검하고 치핵을 밀어넣어주고 잤더니 확실히 수면의 질은 양호했다. 하지만 하여간 그 일로 인해서 추가적인 출혈이 발생했고 또 그로 인해서 일정량의 혈액이 외부로 용출되어 흘러나온 것이다. 하필이면 흰 팬티라 육안으로의 관찰이 용이했는데 거무칙칙한 색깔을 띠고 있었다. 아직도 통증이 있다.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어쩌면 항문외과에 가야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수술과 회복의 고통이 두렵기 때문에 가급적이면 피하고 싶다."

 

3일차까지의 경험을 통해 얻은 깨달음은 이렇다.

 

'작업할 때는 아무래도 민망하고 고통스러울 수는 있어도 그래도, 치핵을 항문 속으로 밀어넣어야 뭐가 되도 된다. 그래야 통증이 완화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날부터 회복의 속도가 빨라지기 시작했다. 물론 아직도 약간 치핵이 튀어나오기는 했지만 전처럼 왕방울만하게 부어오르지는 않았다.

 

물론 방심은 금물인지라.. 이제 회복의 궤도에 올랐는가? 하는 생각을 하기 무섭게 변을 보면 곧바로 다시 환부가 썽나기 일쑤였다. 그렇게 되면 못해도 반나절 정도는 구들장에 누워서 엉덩이를 지져줘야만 아픔이 잠잠해지곤 했다. 부위가 부위인만큼 뭔가 항생제가 있으면 병을 다스리기가 더 좋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가지고 있는 항생제가 없어서 그냥 마침 관절염 때문에 먹고 있는 소염제의 효과를 좀 보긴 한 것 같다.

 


Day 4

이 날의 일기

"공 든 탑이 무너지랴 하지만, 공 들인 똥꼬가 무너졌다. 어쩌면 이는 사람의 마음과도 마찬가지다. 상처 입은 마음에 시간이 필요한 것처럼, 상처 입어 찢어진 항문에도 아물 시간이 필요한 법이다. 하지만 세상은 그렇게 나의 똥꼬를 기다려주지 않았다. 그러니까 이것은 그야말로 전쟁터인 것이다. 아물고자 하는 자와 찢으려고 하는 자의 줄다리기가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전쟁에서 패배한 감히 상상할 수 없는 것이고, 상상해서도 안 되는 것이다. 벌써 3일째 항문의 건강을 간절히 바라면서 잠을 청했다. 그리고 아침에 일어났을 때는 이 모든 것이 꿈이길 바랐다. 하지만 결코 꿈은 아니었다. 그것은 날카롭기 그지없는 현실이었다. 활동과 샤워가 나에게 도움이 된다는 걸 알았다."

 

나흘째부터는 아무래도 제법 궤도에 올랐다. 비록 일기에서는 무척이나 비관하고 실망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것도 위에서 말한 것과 마찬가지로 변을 볼 때마다 어김없이 상처가 부어오르면서 직면하게 되는 시련이었다.

 

하지만 변을 볼 때마다 나는 곧바로 샤워를 하면서 환부를 깨끗하게 씻으려 노력했다. 물론 샤워기를 이용해서 항문에 직접적인 자극을 가하는 건 별로 좋지 않다. 그것도 치핵이 튀어나온 상태에서 하는 건 절대 금지다. 하지만 치핵을 항문 속으로 밀어넣은 상태에서는 살살 해보면 통증이 그렇게 심하지 않다는 걸 알 수 있었고, 조심조심 좌욕을 하는 겸 샤워기를 이용해서 꼼꼼하게 세척해줬다. 물론 그렇게 해도 잠시 활동하다 보면 또 조금 치핵이 튀어나오고 진물이 새어 나오는 걸 확인할 수 있었지만, 하루하루 날이 갈수록 그 정도가 줄어듦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이때부터는 회복 속도를 좀 빠르게 하고 싶어서 가급적 배변을 매일매일 보기 보다는 이틀에 한 번 보려고 노력했다. 일기에 적은 것처럼 항문에게 아물 시간을 보장해주고 싶었다. 그 결과 눈에 띄게 차도가 있었다.

 

나는 담배는 피우다가 끊은지가 어언 1년이고, 술은 딱히 관리하지 않았다. 그냥 마시는대로 며칠에 한 번 수육에 와인도 마시는 등 물론 과음은 아니지만 술을 조심하려고 엄청 노력하지는 않았다. 어쩌면 코로나로 인해 회식이나 외식을 하지 못하는 게 치핵 치료에 도움이 된 것도 같다.

 

바닥에 앉는 것도.. 사실 책상다리를 하고 앉는 것 보다는 다리를 일자로 쭉 뻗고 앉는 게 항문에 더욱 더 무리를 준다. 그렇게 앉지는 않으려 노력했다. 직장에서는 거의 아침부터 퇴근 때까지 노상 앉아 있는데 이것도 별로 문제가 될 것 같지는 않다. 다만 한 번 처음에 앉을 때 제대로 잘 앉는 건 중요할 것 같고.. 절대 치핵이 바깥으로 삐져나온 상태로 시간을 오래 보내지 않는 게 중요할 것 같다.


And now

일주일 정도 지났을 때.. 그러니까 이제는 제법.. 항문에게 아물 시간을 줬다고 생각했을 때..

 

샤워를 하면서 환부를 점검했다. 이제는 아주 미약하게 이 부분이 튀어나왔었구나 하는 흔적 정도만이 남아 있었다. 그리고 신기한 것은 환부를 비롯해서 환부의 주변이 아기살처럼 연하게 변해 있었다는 것이다. 열을 많이 줘서 그런가. 낫기 위해 새 살이 돋아났다 싶기도 했다.(그런데 그렇게 넓은 부위에 걸쳐서?) 하여간 어떻게 좀 잘 설명이 안 되게 그랬다.

 

이 주가 다 되어 가는 지금은 일주일 하고도 절반 정도가 지났다. 정말 얼마 안 지났는데 엄청나게 많은 시간이 지난 것 같다. 그만큼 처절하고 치열했던 시간이었다. 연말새해 연휴를 맞이해서 코로나 방역을 위해 노상 집에서 먹고 놀았다. 덕분에 치유가 빨랐던 것도 같다.

 

아직도 변을 보면 휴지에 맑은 피가 좀 묻어 나오기는 한다. 하지만 변을 보고 난 이후 치핵이 튀어나온다거나 부어오른다거나 하지는 않는다. 조금 아프기는 하다. 그래서 얼른 샤워를 하면서 잘 달래줘야 한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확연히 좋아지고 있다는 게 느껴진다. 그러니까 치핵이 터져서 속 안에서 말라붙는 느낌이랄까.

 

사실 나는 나무위키 치질 항목에서 아홉번째 주석에 모든 희망을 걸었다.

 

[9] 한참 항문 밖으로 튀어나와서 통증을 유발하던 게 매일 청결하게 유지하고 최대한 덜 앉아 있다 보니 1주일쯤 뒤 갑자기 치핵이 터져버린 후 쪼그라들은 사례도 있다.

 

어쩌면 나도 이제 한 번 경험해 본 적이 있기 때문에 이번에도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고, 결과적으로 아직까지는 잘 해나가고 있는 것 같다. 예전에도 완벽하게 대변 후 출혈까지 멎기까지는 시간이 좀 걸렸다.

 

마지막으로, 치질과 싸우며 적었던 수필 [항문기]를 붙이며 맺는다.


항문기

처음으로 항문에 손가락을 넣은 게 언제더라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적어도 항문기는 아니었을 것이다. 초등학생 때 친구들과 함께 목욕탕에 가서 수다를 떨면서 그래도 다들 한 번씩은 넣어봤구나 싶어서 신기했고, 그런 경험을 한 게 나 혼자만은 아니라는 생각에 안도했다.

 

생각해보면 그런 의미에서 항문기라는 것은 많은 이들에게 있어서 생각보다 오랫동안 길게 지속되는 게 아닐까 생각한다. 물론 프로이드가 말한 항문기와는 사뭇 다른 의미겠지만 말이다.

 

그래도 초등학교 고학년 때부터는 이미 스스로 항문과 담을 쌓기 시작했다. 성에 눈 뜨면서 행해진 일종의 자기 검열 같은 게 아니었을까.

 

한 번은 나에게 치핵이 찾아왔을 때 스스로 고친 경험이 있다. 이를 위해서는 오랜만에 항문을 만져야 했다. 대칭이 전혀 맞지 않는 항문을 어루만지며 머릿속으로 항문의 지형도를 그렸다. 항문은 여리고 여린 기관이기 때문에 아주 조심히 다루어야 한다. 인간의 엉덩이가 그렇게 갈라지고 엉덩이 깊은 곳에 항문을 숨겨둔 이유가 있는 것이다. 섬세하게 아주 섬세하게 해저의 지형도를 그리듯이 손가락의 감촉에 모든 감각을 집중한다. 자칫 잘못하면 해저화산이 폭발할 수도 있기 때문에 조심해야 한다. 그리고 모든 탐사가 끝났다면 조심스럽게 튀어나온 분화구를 무저갱 안으로 집어넣어야 한다. 나는 감히 그것이 솟아오른 과정을 알 길이 없기 때문에 어림짐작과 신념을 가지고 이 방향과 저 방향, 사방과 팔방으로 힘을 주면서 이 솟아오른 화산이 다시금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는 길을 모색한다. 돌리고 돌리는 씨름 끝에 때로는 피를 보기도 하지만 결국에는 서로의 합의점에 도달하는 데 성공한다. 그리고 마침내 찾아오는 평화는 유난히 성스럽다. 늘 그렇듯 아무도 모르게 지구는 다시 한 번 몰래 위기로부터 구원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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