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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생각

대통령에 대한 민주시민의 자세. 비판적 지지와 동일시 사이에서.

by 통합메일 2013. 11.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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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대통령제 국가에서 태어나 살고 있다.

내가 태어났을 때 대통령은 전두환이었다.

다다음 해에 혁명이 일어났고, 대통령은 최대한 아름답게 자리에서 내려왔다.

이후로, 국민이 뽑은 6명의 대통령이 나왔다.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그들은 언제나 멀고도 가까운 존재였다.

인터넷 세상이 되고나서는 그나마 조금 가까워진 것도 같았는데

다른 한편으로는 오히려 더 멀어진 것도 같았다.

공부를 하면 할 수록 그들에 대한 정의를 내리기가 어려웠다.

책에서 배운 것과 현실세계에서의 내용이 판이했다.





사람들은 입으로 두 가지의 말을 동시에 외치며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그들을 대했다.

때로는 무지렁뱅이 하인을 대하듯, 때로는 천상천하 유아독존을 대하듯

인간이란 본디 그리 간사한 존재인가 했다.

하긴, 그 땅에서 인간이 경험한 억압과 박해와 치욕을 생각하면 이해 못 할 일도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시간이 약인 모양인지 사람들이 점점 두려움에서 해방되어 가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잡혀갈 걱정을 덜 수 있는 세상'이 왔다.

언로가 열리기 시작했고 세상의 변화에 가속도가 붙었다.

새 시대는 경제나 기술이 발전해서 오는 게 아니라, 사람들의 사고방식이 변함으로써 온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말이 많아지니 근심이 느는 법.

사람 하나를 두고 여러 사람이 이쪽과 저쪽에서 싸웠다.

한 쪽은 깎으려 했고, 한 쪽은 높이려 했다.

나라가 쪼개진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 싸움이 지난해지리라는 예감이 들었다.


옛날 생각이 났다.

사람들은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그를 대했다.

무지렁뱅이 하인을 대하듯, 천상천하 유아독존을 대하듯 

다만 이제 동시에 두 말을 하기 보다는, 두 말 중에 한 말만을 골라서 했다.

누군가에게 그는 무지렁뱅이 천한 놈이었고,

누군가에게 그는 천상천하 유아독존이었다.


물음표 가득한 죽음으로써 그는

누군가에게는 비겁한 도망자가 되었고

누군가에게는 영원히 퇴색되지 않는 신이 되었다.


때로 생각한다.

과연 그가 정말로 되고 싶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사실 그 의문이 이 글의 핵심을 이룬다.




대통령이 바뀌고 여전히 사람들이 싸웠다.

이제 사람들에게 대통령이라는 것은 가운데 두고 싸워야 하는 존재로 인식되고 있는 듯 했다.

여전히 나라는 쪼개진 상태였다.

싸움은 끝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옛날 생각이 났다.

사람들은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그를 대했다.

무지렁뱅이 하인을 대하듯, 천상천하 유아독존을 대하듯 

다만 이제 동시에 두 말을 하기 보다는, 두 말 중에 한 말만을 골라서 했다.

누군가에게 그는 무지렁뱅이 천한 놈이었고,

누군가에게 그는 천상천하 유아독존이었다.

이 전의 대통령과 달리

그는 죽지 않았다.






또 대통령이 바뀌었다.

이번에는 여자다.

그녀의 아버지는 자신의 손으로 대통령이 됐지만, 그녀는 국민들의 손으로 대통령이 됐다.

그 국민들의 손이 진짜 국민들의 손인지 의심스러운 구석이 있기는 하지만, 그녀는 국민들의 손으로 대통령이 됐다.

사람들은 여전히 싸웠다.


옛날 생각이 났다.

사람들은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그녀를 대했다.

누군가에게 그녀는 독재자의 딸이었고,

누군가에게 그녀는 제왕의 피를 이어받은 혈통이었다.

<여자 대통령>이라는 어느 걸그룹의 노래가 인기몰이를 했다.

그녀 즈음 나이의 여성들, 혹은 아주 늙어버린 여성들은 묘한 시선으로 그녀를 바라봤다.

그녀들이 바라보는 대통령은 여자이되 같은 여자가 아닌 듯 했다.

'여자'라는 단어가 무척이나 멀게 느껴져, 수평선이 아득했다.

여기에도 이 글의 핵심이 있다.



사람들은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대통령을 대하매 싸운다.

대통령을 어떻게 대하냐가 그 사람의 '편'을 결정한다.

다만 곰곰히 생각해보면 대통령이라는 것이 자신의 편으로서의 정체성을 걸 만큼 큰 가치가 있는가 하는 생각을 한다.

우리는 늘 정치인들을 우리의 하인이라고 생각하는 공화국의 민주시민교육을 받고 자라왔는데 현실은 암담하다.

극단과 극단이 잡아당겨 나라가 찢어진다.

여자 대통령이 나왔건만 여자들에게 그녀는 동일시의 대상이 아니라 경외의 대상이다.

동일시 하기엔 그녀는 일반 여성들의 삶에서 너무 멀다.

사람들은 그녀를 보면서 여권신장을 보는 게 아니라 그냥 여왕을 본다.

그리고 마음 속으로 외칠 것이다. '우리 나라에도 여왕이 있다.'라고.


일관성이 없는 세상이라는 생각이 많이 든다.

공인으로 공적 자리에서 하는 말도 아니고, 국민으로 인터넷 세상에서 댓글을 달매

대통령의 이름에 호칭을 붙이지 않았다고 지적을 받아야 하는 세상.

또 때로 붙이면 붙였다고 지랄하는 세상이다.

이중잣대 아니냐고 반박하면,

'똥인지 된장인지 구별 못하냐'고 맞받아진다.

현상학의 <판단정지>가 생각났다. 그런데 쓸 개념은 아닐텐데 그냥 생각났다. 그거라도 생각해야 했다.


언제부턴가 이 세상에 공화국이 얼마나 희귀한지를 깨닫고는 스스로가 공화국의 시민임을 자랑스러워하며 살려 노력한다.

자유민주공화국에서 대통령이란 비판적 지지와 동일시를 통해 대해야 하는 존재가 아닌가 하고 생각한다.

밀어주긴 밀어주되 항상 감시해야 하기 떄문에 비판적 지지이며,

항상 감시해야 하긴 하나 밀어주긴 해야 하기에 비판적 지지이다.

무엇보다 동일시가 중요하리라 생각한다.

국가의 원수이지만 행정부의 최고 수장이지만 안타깝게도 여기는 공화국이라 그는 최소한 동일시의 대상이다.

사실 이것도 많이 봐준 거다.

고전사회계론자들의 주장에서 대통령과 같은 이의 입지는 너무도 좁다.

홉스? 계약의 당사자도 아닌 사실상 수단적 존재일 뿐 결코 이론의 주인공은 아니다.


그런데 문제는 사람들이 '알아서 긴다.'는 데 있다.

'노비 근성' 같기도 한데, 사람들은 참 알아서 잘 긴다.

정작 본인이 그런 것을 챙기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지나치게 그를 높인다.

천.상.천.하.유.아.독.존

반대 세력에서는 혹은 하다못해 비판적 지지세력에서는 그것만큼 배알이 꼴리는 게 없다.

대저, '까보다 빠가 더 미운 세상'이기 때문이다.

내가 앞서 한 말을 잘 봐라.

대통령은 잘 봐줘야 동일시의 대상이다.

동일시가 무엇인가. 나와 같은 존재로 본다는 말이다. 그것도 잘 봐줘야.

사람들은 이 말을 매우 선택적으로 적용한다. 그것이 많은 문제를 일으킨다.

가치관의 일관적 적용은 합리적 인간에게 있어서 사회적 문제를 일으키지 않기 위한 기존적 조건이다.

쉽지 않은 일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지향하는 것이 민주시민의 기본소양이건만 지키는 사람이 많지 않다.

그냥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한다.

높이고 싶으면 높이고 깎아내리고 싶으면 깎아 내린다.


차라리 "나는 정치에 관심 없어."라고 하는 사람들이 더 쿨하게 보일 때가 있는 것은 바로 이 일관성 때문이다.

이러한 일관성의 부재는 "똥인지 된장인지 구분 못하냐"는 말로 면책될 수 없다.

(이제는 아주 공식이다. 반사작용 처럼 튀어나오는 모양이지?)

이러한 일관성만 많은 국민들이 체득해도 사회가 많이 좋아지리라고 기대한다.

내 말은 그의 공과에 상관없이 무조건 칭찬하라거나 무조건 비판하라는 게 아니다.

'대통령'이라는 직위에 대하여 민주시민으로서의 바람직한 자세를 확립하라는 것이다.


죽어버린 대통령이 정말로 되고 싶었던 것 무엇이었을까?

그가 남기고 간 숙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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