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사회 생각

[정치적유머]친구들에게 부정개표의혹 동영상을 공유했더니

by 통합메일 2013. 11. 27.
반응형





얼마 전의 일이다.

카톡에서 (준)깨시민으로 분류될 수 있는 한 친구가 부정개표의혹 동영상을 공유했다.

어떤 동영상이었느냐면 국정원 여론 조작 사건으로 유명해진 <오늘의유머> 사이트에 올라온 부정개표의혹제기 동영상이었다





http://m.todayhumor.co.kr/view.php?table=bestofbest&no=136111



해당 동영상의 길이는 42분에 달한다.

따라서, 우리 친구들은 이 동영상을 볼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그리고 대신 우스갯소리로 깨시민 친구에 대한 사상검증 놀이를 가볍게 했다.




물론 그는 북한을 추종하는 인간도 아니며, 내 친구들도 진심으로 그를 종북으로 몰았던 것은 아니다.

다만 한바탕 그런 종북몰이 놀이를 하고나서 잠자리에 누우니 뭔가 진한 씁쓸함이 입 안에 가득 남는 것이었다.


래 다.


사실 나는 해당 동영상에서 나오는 이야기들을 얼추 대강은 알고 있다.

동영상에 등장하는 개량한복 입은 아저씨도 이제 낯이 익는다.

그리하여 나는 부정개표의혹에 대하여 선뜻 믿기는 힘들어도 대놓고 묵살할 수는 없는 의혹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동시에 나는 내 친구들이 그런 의혹에 대하여, 혹은 정치에 대하여 나나 그 깨시민 친구처럼 그 서사에 합류하게 되는 일이 결코 쉽지 않으리라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덕분에 조금이나마 그 씁쓸함이 덜했던 것이리라.




이 글에서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부정개표의혹이 아니다.

그것은 방편에 불과하다.

문제는 왜 내 친구들은 정치를 도외시 하는가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에 대한 사회의 시선과 나의 시선 간에 존재할만한 괴리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친야권 커뮤니티들에 돌아다니다보면 자기 친분집단의 정치적 무관심을 비탄하는 게시물들을 종종 보게 된다.

정치를 도외시하는 시민 일반을 개탄하는 일도 심심찮다.

그런 많은 사람들은 정치적 무관심자 혹은 정치적 회의주의자들에게 이렇게 이야기하곤 한다.


"니가 금 게 고 는 게 로 치 다."


결국 정치가 사회의 구조를 결정하는 중요한 합의의 과정을 포함하는 것이기 떄문에 나는 위의 문장이 맞는 이야기라고 생각하고, 아마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도 제딴에는 자신이 아주 위대한 말을 했다고 생각할 것이다.

만, 런 는 두 지 서 다.

하나는 정치공학적 입장에서, 저런 말을 듣게 되는 객체는 분명 정치적 회의주의자이거나 무관심자일진대 그런 사람들이 저런 말을 들으면 어떤 돈오의 깨달음을 얻게 된다기 보다는 그냥 빈정이 상하고 화가 나게 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 하나는 위의 문장이 담고 있는 구조주의의 모순에서 기인하는 것인데, 정치적 회의주의자들의 처지나 환경이 정치에서 기인하는 구조의 문제라면, 그들의 회의나 무관심 역시도 구조에서 기인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는 바, 그들에게 어떤 비난을 가한다거나, 혹은 구조의 변혁을 요구한다는 것은 역시 구조의 제한에 가로막혀 불가능한 일이 되어버리지 않는다는 게 되지 않느냐 하는 것이다.

즉, 정치적 변혁의 필요성을 구조의 문제에서 발생하는 문제로부터 도출해내게 된다면 결국 모든 것은 구조 안에서 벌어지는 일이기 때문에 그러한 구조에 갇혀 있는 논의의 한계상 그런 구조 자체도 대변되는 정치라는 것은 변혁의 대상이라기 보다는 우리의 처지를 넘어서서 우리의 가치관과 관념마저도 지배하고 있는 영원불변한 보편적인 것이 되어버리지 않느냐는 사고로 이어질 우려가 있다.

물론 구조를 드러냄으로써 상대방을 계몽시키려는 시도는 마지막 매트릭스의 네오가 쳐먹은 빨간약처럼(파란약이었나?) 단숨에 구조의 모순을 깨닫게 함으로써 혁명으로 치닫게 할 수 있는 순기능이 없다고 할 수는 없겠으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구조 안에 머물러 있는 인간에게 그러한 구조를 뛰어넘으라는 강요가 되는 것으로서, 실현가능성의 측면에서는 오히려 뒤떨어지는 것이고, 되려 상대방을 그런 구조 속으로 침전시키는 역효과를 낳게 되기 십상이라고 하겠다.

면 게 야 가?


결국 정치적 계몽주의자들의 목표는 시민의 정치화이고, 그것을 통해 진정한 민주주의를 달성하는 것이다.

1.일단은 용어의 분명한 정의와 합의가 필요하다. <양비론>같은 용어를 오용하는 일이 비일비재한 상황에서 미래는 암울하다.

2.일을 너무 단순하게 생각하지 않아야 할 것이고,

3.상대가 무서운 줄을 알아야 한다. 벌벌 떨어야 한다. 국민의 종? 대표에 불과해? 그건 행정부 얘기고, 입법부는 또 다르지. 또 현실에서는 행정부가 니 상전이다.


다 가 

물론 지금도 저들 딴에는 '유머'라고 떠들어내는 콘텐츠들이 아주 넘쳐나는데,,

사람들은 그러한 유머가 어떤 기능을 해야하는 지 별로 생각을 하지 않는 듯 하다.

그것은 정치적 회의주의자나 정치적 무관심자들을 정치적 서사에서 편입시키는 기능을 해야 한다.

그런데 작금의 정치적 유머들은 그런 기능을 전혀 하지 못하고, 그저 이너서클을 확고히 하는 기능만을 수행한다.

공감할 수 없는 유머는 더 이상 유머가 아니다.

그런 측면에서 유머는 보편적이고 일반적이어야 하며, 조심스러워야 한다. 가벼워야 한다.


구조와 유머의 차이는 명확하다.

구조는 사실 우리의 삶 그 자체이고 우리에게 더욱더 밀접하고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는 것인 반면, 유머는 그렇지 않다.

하지만 구조라는 것은 삶 그 자체이기 때문에 좀처럼 인식이 불가능하고, 그 변화가 실시간으로 체감되지 않는다.

반면 유머는 가정이고, 풍자이며, 아이러니이기 때문에 실존하는 미래라고 할 수 있을만큼 바로 생겨났다가 바로 사라지며,

차라리 그것은 잔상과 여운으로만 존재하는 것이다.


따라서 나는 침 튀기며 외쳐대는 구조의 모순보다는, 함께 걸으며 모퉁이를 도는 순간에 얇게 저미는 유머 한 올이 더욱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런 한 올 한 올의 유머가 모였을 때, 단단한 밧줄이 되고, 언젠가는 그것이 거대한 구조라는 바위를 움직이게 될 수 있으리라고 믿는 것이다.




뭐 이 즈음 쓸까 한다.

이 글을 쓰면서 계속 생각나는 것이, 김만권-<자유주의에 관한 짧은 에세이들>의 마지막 장에 나오는 '로티'의 아이러니인데, 지금은 나도 잘 그 내용이 기억이 나질 않아서; 언제 한 번 읽어보고 기회가 있으면 적어봐야겠다.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