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1월 22일 천주교 정의 구현 사제단의 시국 미사가 있었다.
이 미사에서 사제들은 박근혜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했다고 한다.
이러한 요구는 지금까지 종교계에서는 물론 야권에서도 찾아볼 수가 없던 주장이었기 때문에 뜨거운 이슈가 되었다.
이에 대하여 청와대의 반응은 이렇다.
이정현 홍보수석은 브리핑에서 "기도란 잘 되기를 바라면서 은총을 기원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국민이 뽑은 대통령의 사퇴를 촉구하는 것은 잘되라는 것이 아니다"라며 "대통령은 지난 10개월간 참으로 혼신의 노력을 다해 국민 행복을 위해 진력해왔다"고 말했다.
그리고 다음날인가에는 상황이 좀 더 심각해진 모양인지, 천주교 사제단들에 대하여 좀 더 강경한 반응을 보였다.
"그 사람들 조국이 어딘지 의심스럽다."라고 한 것이다.
이정현 홍보수석이 어떤 사람이냐하면, 이런 사람인데, 전라도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박근혜에게 그 능력을 인정받아서 지난대선에서 선거캠프의 홍소 역할을 맡아서 각종 언론사 인터뷰나 토론에서 피와 침을 튀겨가며 혁혁한 공을 세웠던 인물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당시에 필자는 매일매일 손석희의 시선집중이나, 김현정의 뉴스쇼나, 시사자키 정관용과 같은 라디오 시사프로그램들을 즐겨 들었었는데, 가뜩이나 대선관련 뉴스만 나오는 통에 잔뜩 질려있었는데, 인터뷰나 토론의 당사자로 이정현 최고위원이 나온다고 하면 정말 아주아주 끔찍했다.
"아닙니다 아닙니다"하면서 박근혜 당시 후보에 대해 제기되는 의문들을 묵살시키는 동시에 야당 후보 붙잡고 다이빙하는 물귀신 전술 등을 상당히 자유자재로 능수능란하게 사용하는 사람이었기에 나는 몇 번이나 혀를 내둘렀다.
아무튼, 이 글에서 얘기하고자 하는 것은 이정현 홍보수석의 "기도관"이다.
기도란 잘 되기를 바라면서 은총을 기원하는 것
분명히 그는 그렇게 말했다.
그리고 뒤에 이어지는 주장을 볼 때 이 문장은 그가 내세우는 주장의 대전제가 되는 내용이라 할 수 있다.
대전제: 기도란 잘 되 기를 바라면서 은총을 기원하는 것이다.
소전제: 천주교 사제단은 비판의 용도로 기도를 사용했다.
결론: 청주교 사제단은 제대로 된 기도를 하지 않고 있고 기도를 오용하고 있다.
뭐 이러한 형태의 삼단논법을 상정해 볼 수도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해본다.
그렇다면 과연 기도라는 것이 잘 되기를 바라면서 은총을 기원하는 것일까?
세간에서는 흔히 이러한 기도관을 '기복신앙'이라고 부른다.
즉, 복을 기원하는 것을 신앙의 근본으로 삼고 있는 신앙관 혹은 기도관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렇다면 이에 대해서는 과연 신앙이라는 것이 혹은 종교라는 것이 결국에는 자신이나 자신이 속한 공동체의 복을 빌기 위한 것으로 귀결되는 것인지 아닌지에 대한 합의가 선결되어야만 이 문제의 당부당을 판단해 낼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종교란 무엇인가? 신앙이란 무엇인가?
물론 종교에는 분명히 기복의 성격이 들어있다.
특히 우리 민족 특유의 무속을 비롯한 여러 토속 신앙들을 보면 진실로 그러하다.
굿을 하거나 성황당에 비는 행위는 대개가 무병장수 등의 복을 그 목적으로 하는 행위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든 종교의 목적이 그러한 것은 아니다.
특히 개신교와 천주교의 모태를 이루는 기독교의 경우에는 더더욱 그러한데, 그 종교에서 신으로 규정하여 섬김을 대상으로 추구하는 '예수'의 삶을 돌아보면 실로 더욱 그러하다.
다시 말해서 예수의 삶을 돌아볼 때 그 삶이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복을 기원하는 것이라기 보다는 약자를 돕고 사랑을 베푸는 일, 그리고 더 나아가 인류애를 실천하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로부터 더욱 확장하게 된다면 그것은 인류가 공통적으로 지향해야 할 어떤 선이나 윤리에 대한 지향이라고까지 할 수 있으리라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이렇게 되면 이정현 홍보수석이 말한 기복신앙과 내가 후술한 보편적 윤리로서의 종교관 사이에는 적지 않은 간극이 형성되는 것을 보인다.
물론 선택은 각자의 몫일 수 있고, 이러한 신앙관이 양립 불가능성이 아닌 것으로 서로 혼재되어 있기도 하다는 것이 나의 현실인식이기도 하며, 또 꼭 분리되어야 할 당위가 있는지도 나는 잘 모르겠다.
다만!
그러한 전제에서라도, 종교를 단순히 '기복신앙'으로만 규정하여 기도의 목적을 복과 은총을 비는 행위로 제한하는 것은, 종교의 의미를 왜곡하고, 그 가능성을 제한하는 것이며, 보편적 윤리를 지향하는 종교의 위상을 폄하하는 행위가 아닐 수 없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다시 말해 "꼭 기도가 복을 비는 행위가 한정될 필요도 이유도 당위도 없다."는 것이 나의 주장이다.
따라서 천주교 사제들이 한 행위가 잘못된 기도라는 이정현 홍보 수석의 묵시적 결론은 잘못되었다는 것이다.
나아가 개인적 취향에 비추어 기복신앙이 종교를 오염시키는 근본으로 인식하는바, 이정현 수석의 기도관보다는 천주교 사제들의 기도관이 더욱더 참된 종교적인 것으로 다가오는 것이기도 하다.
이를테면, 단순히 자신의 복이라는 이유 혹은 자신이 속한 공동체의 복이라는 이유에서 자신이 믿는 신에게 그 주체의 복을 희망하는 행위보다는, 그것이 자신의 복이라 하더라도 그리고 자신이 속한 공동체의 복이라 하더라도 그것이 옳지 않은 것이라면 오직 주님 당신의 뜻대로 하소서라고 희망하는 것이 진정으로 종교인다운 기도가 아닌가 하는 것이다.
예수의 삶이 바로 그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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