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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생각

일베 논란 등에 관한 김진표의 해명에 대하여-아빠 어디가 캐스팅 논란

by 통합메일 2014. 1.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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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베 논란 등에 관한 김진표의 해명에 대하여

김진표 블로그 해명글 http://blahblahpapa.com/201942721


<Google image>

들어가는 말

김진표는 1995년 이적과 함께 <패닉>이라는 그룹으로 데뷔했다. 당시의 나는 초등학교 5학년이었다. 데뷔곡 ‘달팽이’는 무척이나 많은 인기를 얻었다. 패닉은 대한민국 가요계에서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인지도를 가진 그룹으로 성장했다. 내 기억에 비추어볼 때 데뷔 당시에는 색소폰을 부는 역할을 맡았기 때문에 이적에 비해서는 인지도가 보잘 것 없었다. 다만 1999년에 <노바소닉>이라는 그룹을 결성하고, 나중에 개인앨범을 발표하면서 독특한 음색의 랩으로 나름 그 실력을 인정받았던 것 같다. 그 외에도 카레이서, 포토그래퍼, MC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발하게 활동을 해왔고, 자동차에 대한 관심을 바탕으로 2011년에는 <탑 기어 코리아>의 고정 MC로 현재까지 활동하고 있다.



비판과 해명

나는 김진표에게 호감을 갖고 있었고, 지금도 그렇다. 그 호감의 이유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지는 않았지만 지금에 와서 굳이 그 이유를 생각해보면 방송에서 그가 보여주는 자유분방함이라든지 활발함 같은 것들 때문이 아닌가 하는 것이고, 무엇보다도 그의 언변에서 묻어나는 매니악함에 모종의 동질감을 느꼈던 게 아닌가 한다.


그런 그가 2014년 갑오년 새해를 전후로 하여 상당한 논란의 주인공이 되었다. 이전부터 제기되어보던 지적이긴 했지만, MBC의 인기 프로그램 <아빠 어디가>에 합류하게 되었다는 소식이 세간에 알려지면서 네티즌들이 그에 대하여 본격적인 맹비난을 퍼붓기 시작한 것이다.


그 비난의 요지는 크게 세 가지로 정리된다.


1.운지사건

그가 진행하는 <탑 기어 코리아>의 방송 내용 중에는 자동차와 헬리콥터가 속도 경주를 하다가 예기치 못한 사고로 해당 헬리콥터가 추락하는 장면이 포함되어 있었다. 이 내용이 처음 방송될 당시에는 별 문제가 없었으나, 시즌을 마무리하는 시점에서 해당 방송내용을 다시 돌아볼 때 김진표가 그에 대해 첨언을 하면서 “헬기가 운지했다.”라는 발언을 했던 모양이다. 세간에 잘 알려진대로 ‘운지’라는 단어는 ‘일간베스트(이하 ’일베‘)’라는 커뮤니티에서 퍼지기 시작하여 지금은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자살을 조롱하는 용도로 널리 사용되고 있는 단어이다. 그리고 해당 용어는 고인에 대한 선호 및 동조 여부를 떠나서 죽은 자에 대한 무례라는 측면에서 바람직하지 않은 용어라는 점이 인터넷 상에서 폭넓은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따라서 그는 이 용어를 사용함에 따라 고인을 모욕했다는 점과, 일베 이용자가 아니냐는 의혹에 의해 비난을 받고 있다. 물론 그는 자신이 그 용어에 내포된 의미를 전혀 모르고 사용했을 뿐이고 해명하고 있다.


2.Dr. no therapy

Dr. no therapy라는 노래가 있단다. 필자도 이번 사건을 통해서 처음 알게된 노래다. 2005년에 발매된 조PD의 프로젝트 앨범에 수록된 곡이라고 한다.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 이 노래의 가사인데, 그 중에서도 가장 많은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것은 다음과 같은 구절이다.



대통령이 수술한 거 말야

나 열라 불만 많어

완전 지대로 코미디라 생각하지

허나 내가 그거 열라 까대보자

찌라시들 열라 기사쓰겠지

당연쓰겠지

그럼 포탈에서 퍼나르겠지

선정적인 제목 하나쯤은

달아주겠지

허 그럼 노빠들 모여 태클간다

노빠 호빠 다 짜증나

(가사 전체보기 :http://music.naver.com/lyric/index.nhn?trackId=511549)

읽어보면 알 수 있듯이, 이 가사는 1.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생전에 쌍커플 수술을 했던 일과, 2.자극적인 기사 제목을 다는 언론들과, 3.'노빠'라고 지칭되는 극성 노무현 지지자들에 대한 불만을 드러내고 있다. 2와 3은 그렇다 치더라도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1이다. 일단 그것은 한 개인이 의료적 목적에서 받은 성형수술에 대한 불만을 드러내며 비난을 하고 있는 것인데 이것은 자유주의 국가의 시민이 가질만한 온당한 불만이라고 보기 힘들다. 그 수술이 의료를 목적으로 했음을 감안하면 더욱더 그렇다.


이 노래에 대하여 그는 해명하기를, 당시에 너나 할 것 없이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을 욕하는 사회적 분위기에 편승하여 생각 없이 그리고 철 없이 만들어 부른 노래라고 고백하고 있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4년 3월 12일 야당 국회의원 193명의 찬성으로 대통령 탄핵안이 가결되어 탄핵의 위기에 처했으나, 그 안이 같은 해 5월 14일 헌법재판소에서 기각되어 위기를 모면할 수 있었다. 문제가 되는 노래가 발매된 것은 그로부터 1년이 지난 시점인 것을 보면 노래가 만들어진 것은 그 1년이라는 시간 동안일 것이니 당시의 사회적 맥락에 편승한 것이라는 그의 주장을 사실적인 관점에서 이해할 개연성은 있어 보인다.


하지만 그렇게 사회적 분위기에 기댄다고 해서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인간은 이성적 능력을 가지고 자율적으로 생각함으로써 사실의 세계과 독립하여 자기 자신의 이성을 통해 자신만의 도덕법칙과 결단을 행할 수 있는 존엄한 존재이다. 인간의 존엄성이라는 것은 그러한 이성능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고 그렇게 사실의 세계에 횡행하는 사회적 분위기에 편승할 때 버려지는 것이라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사실 의료가 목적이든 미용이 목적이든 그것이 타인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으면서 동시에 사회적 질서에 위해를 가하지 않는 이상 한 인간이 성형수술을 했다는 이유로 비난을 받아서는 안된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사회가 자유주의 국가라면 말이다. 한마디로 그것은 그 사람 사정이니 우리가 상관할 바가 아니라는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 주변에서는 '성괴'라는 단어로 대표되는 성형에 대한 자성적 혐오가 만연해 있다. 이 사건을 보면서 내가 잠시 주춤했던 것은 그 지점이다. 다만 현재로서는 필자도 그에 대한 충분한 숙고를 거치지 못했기 때문에, 고인의 수술이 의료를 목적으로 했다는 점을 기준으로 하여 이야기를 정리하고자 한다. 김진표와 조PD가 만들어 부른 위 노래는 그와 같이 특정 타인의 정당한 자유에 대한 침해라는 측면에서 비판을 면하기 힘들어 보인다. 그리고 그 스스로가 고백하고 있듯이 대중들은 그가 앞으로도 '주위 말들에 이쪽저쪽 현혹 당하게' 되는 상황에 대한 우려를 그러한 비판과 함께 그에게 표현하고 있는 것이라고 본다.


3.엄창

이것은 필자도 목격했던 것인데, 한 번인가 두 번인가 그가 방송에서 엄지 손가락과 새끼 손가락을 이용해 특정한 손모양을 만들어 보였던 것이다. 그것은 사실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표현으로서, "지금 내가 한 말이 거짓이라면 우리 엄마는 창녀다."라는 표현이다. 기억해 보건대 이것은 내가 중학교 2학년 때 유행하던 손동작이었다. 전교생 모두가 너 나 할 것이 노상 그와 같은 손모양을 만들어 자신의 얼굴에 가져다 대던 나날들이 기억난다. 그 유행은 한 2~3년 정도 지속됐던 것 같고, 고등학교에 들어갔을 때부터 점차 사라져서 대학생이 되었을 때는 그런 손모양을 쓰는 사람은 거의 찾아볼 수가 없었다. 다만 그는 스스로가 고등학생 때도 그러한 손동작을 써가며 놀았다고 말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서는 지역에 따라서 유행한 시기나, 유행이 지속된 기간이 상이한 모양이다.



이 손모양의 가장 큰 문제점은 그것이 '패륜'적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는 점이다.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기 위하여 자신의 어머니를 담보로 삼는 (그것도 '창녀'라는 조건을 달아서) 행위는 인륜이라는 개념에 비추어 용납할 수 없는 표현이다. 더불어 그의 행위는 1.그가 중고등학생이 아니라 마흔이 다 되어가는 성인이라는 점, 2.사석에서가 아니라 불특정 다수의 대중에게 노출되어 있는 방송에서 그러한 행위를 했다는 점 때문에 더욱더 큰 비난을 면할 수 없을 것이다.



이에 대하여 그는 그 행위에 내포된 의미를 알고는 있지만, 스스로가 해당 행위를 함에 있어서, 그 행위에 내포된 그러한 의미를 염두에 두고 그러한 행위를 한다기 보다는 그저 장난의 차원에서 해왔고, 탑 기어 코리아라는 프로그램의 매니악한 성격상 그러한 표현은 용납 가능한 수준에 포함되어 있었다고 여겼기 때문에 그만 철 없이 그러한 행위를 했다고 하고 있다. 솔직히 고백해서 나는 그의 그러한 표현을 보면서 확실히 짐짓 놀라기는 했으나, 나도 모르게 재미를 느끼고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이렇게 그의 행위를 놓고 그 행위의 도덕성을 따져보는 마당에 고찰해본다면, 그의 행위와 함께 그 행위가 가진 심각성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한 시청자로서의 스스로에게 있어서도 반성의 필요성이 있는 것 같다. 그의 말대로 어쩌면 나 역시도 탑 기어 코리아라는 그 프로그램에서는 그러한 표현이 용인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던 모양이다. 하지만 방송이라는 것은 불특정 다수에게 어떻게 측정할 수 없을 정도의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매체다. 다시 말해 그러한 프로그램을 아직 합리적 능력이 미발달한 미성년의 학생이 시청하게 된다면 그 학생이 그러한 표현을 모방하게 될 가능성을 결코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탑 기어 코리아는 15세 이상 관람가이다.) 따라서 이 문제에 대한 그의 근원적 잘못을 지적한다면 일단 애당초 해당 프로그램을 그런 표현이 가능한 것으로 인식한 시점에서 이미 사회윤리적 잘못을 범하고 있는 것이고, 나아가 그 스스로 그러한 표현을 사석에서라도 스스럼 없이 사용한다는 것은 그 자신의 영혼과 인격에 그리 좋은 영향을 미치지는 못한다는 측면에서 덕윤리나 개인적 의미 차원에서의 도덕적 잘못을 범하고 있는 바 그러한 맥락에서 그에 대한 비판이 가능하다고 생각된다.





맺는 말

사실 나는 이 논란을 바라보면서 그에 대한 호감을 바탕으로 순수 전략적 차원에서 그냥 그가 이러한 논란을 외면하는 것이 가장 '합리적'인 선택이 아닐까 하고 생각하기도 했다. 대한민국 여론의 특성상 사회 전체가 어떤 한가지 이슈를 끈질기게 몰고가기 힘들기 때문이다. 내 생각에 그것은 흔히 말하는 '냄비근성' 같은 것 때문이라기 보다는, 한가지 이슈만 가지고 그토록 오랫동안 욕을 하기에는 대한민국에는 신경써야 할 이슈가 지나치게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그러한 외면의 방법 대신 이러한 논란에 대응하는 선택을 했다. 그가 그러한 선택을 함에 있어서 '합리성'이 작용한 것인지 아니면 '합당성'이 작용한 것인지 나로서는 알 수 없다. 물론 그가 작성한 글에서는 '합당성'을 그 이유로 하고 있는 것 같지만 말이다. 

(여기서 언급되는 용어는 롤즈의 <정치적 자유주의>에서 사용되는 맥락에서 기술했다. 즉, <합리성>은 이해타산적 개념이고, <합당성>은 도덕적 개념이다.)



일단 그는 지금 그에게 향하고 있는 비판들의 요지, 즉 문제의 핵심은 제대로 파악한 것 같다. 뭐 비판하는 주체에 따라서 더 다양한 비판이나 비난거리를 이야기 할 수 있겠지만, 적어도 내가 인터넷 상에서 관찰했던 굵직굵직한 비판의 요지들을 포함하고 있다는 인상이며, 나아가 본인이 비판의 핵심을 그렇게 3가지로 요약함으로써 여타의 비판거리가 그 3가지의 비판거리에 의해 삼켜지게 되는 효과도 나타나는 것 같다. 이러한 해명 혹은 반성의 글을 통해 그는 대중들에게 자신의 입장을 해명할 수 있을 것이고, 그러한 해명이 먹히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 나름대로 스스로 대중들과 소통했다는 명분은 얻게 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그가 이러한 글을 작성한 것을 좋게 평가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의 글에서 해명의 근거로 제시되고 있는 사연이나 변명들은 아무래도 좀 궁색하다는 인상을 준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그는 타인의 의료목적의 성형수술을 비난한 것에 대하여 그저 사회적 분위기나 주변의 말에 현혹되었던 것이라고 해명하고 있지만 그것은 합리적 이성을 가진 인간으로서 바람직하지 못한 일이었다. (이따 이야기하겠지만 아마 이건 김진표를 비판하는 사람들 중에서도 자유롭지 않은 사람이 꽤 있을 것이다.) 물론 뒤에 이어서 죄송하다는 말로 반성의 뜻을 전하고 있기는 하지만 조금만 더 아주 조심스럽게라도 이와 비슷한 경우에 있어서의 본인의 다짐을 적었더라면 더 좋았을 것이다.

또한 패륜적 손동작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인데, 문맥적 의미로 추론하건대 일단 그는 탑 기어 코리아라는 프로그램에 대한 인식이 잘못되었던 점을 고백하고 그에 대한 개선을 약속하고 있는 듯 하다. 명확하게 기술이 되지 않은 점은 아쉽지만 그래도 그 점은 제대로 반성의 의미가 전달되지 않았나 한다. 하지만 사석에서 그러한 행위를 함에 있어서는 그저 스스로의 철 없음에서 기인한 것이라고만 이야기함으로써 한계를 보인다. 물론 여기에서도 "사석에서의 개인의 행위"에까지 간섭할 필요가 있냐는 반박이 가능할 것이다. 물론 일견 타당한 반박이다. 하지만 지금의 상황은 그가 일련의 확인된 잘못으로 인하여 극심한 비판에 직면한 상황인바, 과오에 대한 반성과 다짐을 보여주려 했다면 사석에서의 그러한 행동에 대해서도 철저하게 반성하는 과감함이 필요했던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한편, 그에게 쏟아지는 비난과 비판에 대해서도 아쉬운 점이 있다. 


첫번째로는 비판에서의 형평성에 대한 문제로서 해당 노래를 함께 제작한 조PD에 대한 비판이 생략되어 있다는 것이다. 아무래도 해당 비판이 일련의 비판에 세트로 포함되어 있는 것이기 때문에 다른 비판과 함께 김진표에게로 흘러가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이 문제에 대한 공동 책임자인 조PD에 대한 비판이 생략되어 있다는 점은 어쩐지 김진표를 비판하기 위해 이러한 과거의 잘못을 끄집어 낸 것이 아니냐는 의문을 불러올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다음으로는 의무론과 결과론의 측면에 있어서의 문제다. 사실 이 지적은 그가 말한 '나는 운지라는 단어의 뜻을 모르고 썼다.'라는 사실적 해명을 신뢰하는 이들에게만 해당된다. 그 말을 사실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이 비판은 적용되지 않는다. 요는 간단하다. 그가 비록 고인을 비하하고 조롱하는 '운지'라는 단어를 사용했다고 하더라도 그가 그 용어에 내포된 의미를 받아들이지 못함으로써 그 단어가 의도하는 목표를 의식하지 못한 채 그러한 용어를 사용했다면 그에게 그런 단어에 대한 의미를 제대로 인식하고 사용하지 못한 부주의에 대한 책임은 물을 수 있을 지언정, 일베라는 단어를 썼다는 사실 자체만 가지고 그의 의도를 비판할 수는 없다는 말이다. 이 정도로 간단하게 정리하겠다. 


마지막으로 합리적 이성을 가진 인간으로서의 문제다. 앞서 말했듯 김진표는 9년 전인 2005년에 사회적 분위기에 편승하여 그리고 주변 사람들의 말에 현혹되어 그러한 노래를 짓게 되었다고 고백한다. 그리고 나는 이 점에 대하여 분명 그것은 그의 잘못이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글을 마무리 짓는 마당에 있어서 메타적 사고로 주위를 한 번 둘러보면 그를 비판하는 우리는 그러한 비판으로부터 과연 자유롭냐는 자문을 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렇다고 이 반박이 "모두 똑같은 놈들이니 너희는 욕 할 자격이 없다."는 말로 이해되어서는 곤란하다. 다만 앞서 필자 역시 스스로의 도덕적 민감성의 결여에 대하여 반성을 했던 것처럼, 김진표라는 인물에 대한 비판을 함에 있어서, 그것은 그에 대한 비판에서 그칠 것이 아니라, 더 나아가 비판을 던지고 있는 우리 스스로에 대한 비판과 반성으로 연결되고 확장되어야만 우리는 합리적 이성을 가진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힘겹게나마 지켜내고, 나아가 존엄한 시민의 집합으로서의 이 사회를 보다 더 건강하게 만들 수 있으리라고 나는 생각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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