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생의 책장에 꽂혀있던 프란츠 카프카의 변신을 읽었다. 이 아이는 책은 좋아한답시고 좋은 책들은 참 잘 사들이는데(그만큼 쓰레기 같은 책들도 적잖이 사들인다.) 도무지 읽질 않는 모양이다. 하여간 나도 읽어야지 읽어야지 하다가 드디어 읽었다.
정확히 말해서 프란츠 카프카의 단편소설집이라고 하는 게 맞을 것이다.
어느 중산층 집안이 있다. 그 집의 가장이던 아버지는 어찌된 일인지 빚을 잔뜩 지게 되었다. 장남인 그레고르는 집안의 빚을 갚기 위해서 채권자인 옷감회사 사장에게 고용되어 여기저기 여행을 하듯 떠돌아야 하는 영업사원으로 살아가게 된다. 그 나날은 실로 고달픈 것이었다. 피곤에 찌들어 하루하루를 보내야 했다. 그러던 어느날 잠에서 깬 그레고르는 자신이 해충이 되어버린 것을 깨달았다. 여기서부터 이야기는 시작된다. 실로 기괴하고 말도 안 되는 이야기이지만 의외로 그는 상황을 담담하게 받아들인다. 자신이 왜 해충이 된 것인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하는지에 대해 고민하기 보다, 그가 정작 걱정하는 것은 출근에 늦었다는 것이었다. 그는 자신이 해충이 되었다는 사실보다는 자신이 늦잠을 자서 지각을 하게 되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 그래서 그는 그렇게 벌레가 된 몸으로라도 출근을 하기 위해서 안간힘을 쓴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모습을 가족들이 목격하면 그들이 충격을 받게 될 것을 걱정하여 혼자만의 힘으로 그 상황을 타개하고자 한다. 하지만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었고, 한 시간 두 시간 그의 출근은 늦어졌다. 출근하지 않은 그 때문에 회사의 지배인이 집을 방문했다. 지배인의 등장에 가족들은 발발 동동 구르며 어찌할 줄을 몰라한다.
잠긴 방문 앞에서 가족들과 지배인은 어서 나오라고 그를 타이른다. 지루한 줄다리기 끝에 드디어 그가 문을 열었다. 물론 손이 아니라 주둥이 같은 것을 이용해서였다. 벌레가 되었지만 아직 인간이라는 자각이 남아 있어서 벌레의 다리로 직립을 했다. 열린 문 너머로 다리를 후들거리며 서있는 벌레 그레고르를 바라본 가족들과 지배인은 경악했다. 지배인은 정신 없이 도망쳤다. 가족들 역시 놀라긴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서둘러 문을 닫아버렸다. 벌레가 된 그를 위하는 것은 여동생 그레테였다. 그녀는 오빠를 위해서 먹을 것을 갖다 바쳤다. 벌레가 된 그레고르는 인간들이 먹는 음식에는 별 매력을 느끼지 못했고, 벌레들이 좋아하는, 썩은 냄새가 진동하는 음식에 식욕을 느꼈다. 얼마간 그는 그런 음식들을 탐닉했다.
집안의 주 수입원이었던 그레고르가 해고되면서 가세는 기우는 듯 했다. 하지만 그의 빈자리에 가족들은 알아서 살 길을 찾아나서기 시작했다. 어머니는 어머니대로 아버지는 아버지대로, 그리고 여동생은 그녀대로 일을 찾았다. 그리고 하숙인도 들였다. 변한 것은 오직 그 뿐이었다. 그는 벌레로 변신해버렸지만, 이 이야기를 가장 잔인하게 만드는 것은 아들이 벌레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별 무리없이 돌아가는 그 가족들의 모습이었다. 대체 그들에게 아들이란, 오빠란 어떤 존재였을까? 그저 돈을 벌어오는 존재에 불과했던 것일까?
그렇게 그레고르가 결여된 일상이 이어지자 가족들은 점차 그를 잊어가기 시작했다. 그레고르 본인 조차도 그런 일상에 익숙해져가기 시작했다. 그는 이제 완전히 집에 기생하는 어엿한 벌레로 자리잡게 되었다. 처음에 가족들은 그가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도록 방의 가구를 꺼내주기도 했지만 나중에는 거꾸로 각종 잡동사니를 그 방에 쳐넣기 시작했다. 가족들이 그에게 해주는 것은 먹이를 주는 것과, 저녁 식사 즈음에 가족들의 대화를 들을 수 있도록 그의 방문을 열어주는 일이었다. 그레고르는 천천히 죽어갔다. 어찌된 일인지 그는 더이상 먹질 않았다. 그가 있어야할 행복이 먼발치에 있었건만, 그는 감히 자신의 방문턱을 넘어갈 수가 없었다.
그러던 어느날 드디어 사건이 일어났다. 하숙생들의 식사자리에서 여동생 그레테가 멋지게 바이올린을 연주하고 있을 때, 그레고르는 그 아름다운 소리에 이끌려 저도 모르게 방 바깥으로 나와버렸다. 마찬가지로 연주에 심취했던 사람들은 그레고르가 바로 코앞까지 접근했을 때에야 그 존재를 인식할 수 있었다. 그들은 경악했다. 가족들은 놀라서 그를 위협했다. 그레고르는 마지막 남은 힘을 쥐어짜서 자신의 방으로 돌아갔다. 천천히 그 어두운 방으로 돌아갔다. 그것이 그레고르가 한 마지막 일이었다. 그것을 마지막으로 그레고르는 숨을 거둔다. 가족들에게는, 늙은 파출부에게는 그것은 그저 골치 아픈 벌레가 죽은 것에 불과했다. 가족들은 슬퍼하는 대신 홀가분한 마음을 나누었다. 벌레 문제로 따져묻는 하숙생들을 쿨하게 내친 그들은 각자의 고용주에게 제출할 결근계를 작성하고는 나들이를 떠난다.
씁쓸하다는 말로 이 이야기가 주는 감상을 다 표현할 수 있을까. 이 이야기는 약 100년 전에 쓰여진 것이었다. 나에게는 이 이야기가 자본주의의 병폐가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대놓고 침범하는 순간을 목격하는 것으로 읽혔다. 그런 의미에서 여전히 자본주의의 폭풍 속을 힘겹게 걸어가는 현대인들에게 이 이야기는 여전히 유의미하게 다가온다. 적지 않은 시간 뒤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는 대체 얼마나 다른 삶을 살아가고 있는가. 변명하자면 그것은 남은 자들이 외면할 수 없는 삶에의 의지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식으로 이 도덕적 죄의식을 면제받기엔, 그렇게 도태되는 그레고르 같은 인물들이 가지는 삶의 의지는 어떻게 설명해야 할는가. 슬픈 일이다. 이 이야기에서 인간이기를 포기한 것은 대체 누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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