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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5

가족은 한 집에 있다. 최근 이 집의 굵은 흐름이라고 할 만한 것은 흩어졌던 가족이 다시 한 집에 모여 살게 되었다는 게 아닐까 한다. 그리하여 나는 한 시간 거리에 있는 산기슭에서 집이 있는 방향을 향해 진한 그리움을 담아 오줌줄기를 발사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고, 동생은 금요일에 집에 와서 일요일이 되면 좀비의 얼굴을 하고 기차에 몸을 싣고 꿈도 싣는 수고를 하지 않아도 되었으며, 아버지께서는 외할머니께 “어휴.... 장모님, 애들도 다 나가있고 하니 썰렁한 게 이건 뭐 사는 것 같지도 않아요.”라고 의외의 하소연을 할 필요도 없게 된 것일 뿐만 아니라 어머니 역시도 보은과 제천으로 북에 번쩍, 남에 번쩍하는 노고로부터 해방되게 된 것이 그 화두의 자잘한 내용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김훈의 『남한산성』에 보면 심심찮게 .. 2013. 12. 26.
[시쓰기]신을 만났다 신을 만났다 때로 신을 만난다 신을 만났다 신은 늘 그곳에 있다 그가 오는 모습과 그가 가는 모습을 보지 못하니 본적이 없으니 신은 늘 그곳에 있을 수밖에 없다 나는 그곳을 알지만 알지 않으며 알지 못하는 외줄 위에 나를 놓아둔 채로 이 생을 어루만져 왔다 다만 분명한 것은 그 외줄이 무한의 우주로 확장되는 순간은 내가 온전한 나를 마주할 때라는 것이다 모든 것의 원인과 결과가 나라는 존재에로 수렴될 때 비로소 신은 드러나며 내가 곧 신이라는 것과 신이 곧 나라는 것을 부스러지는 입꼬리로 부여잡게 된다 시계 초침에 시선을 매단 채로 삶을 음미하는 때가 있었다 쪼개지는 순간이 영원히 회귀하고 회귀해도 좋을만한 것임을 문득 기억해내는 날에 뒤돌아보자 생이 하나의 거울이 되도록 2013. 11. 26.
[집들이 축시]친구네 집 친구네 집에 갔다 눈 한 번 깜박 술 한 잔 꿀걱 이상하다 우리의 서른에 영하 20도의 바람이 스치우고 늙으신 부모님 보폭에 몇 번 고개 떨굴 틈도 없이 신기하다 내 친구네 집에 갔더니 예쁜 딸이 있어 내 친구가 언제 자식을 낳았나 어둔 골목에서 하나 둘 염초롱한 20대 막차들을 타고 그러니까 그렇게 친구네 집에 갔더니 가라앉는 시선 그 어린 것의 발가락 하나에 멈춰 박하게 베푸는 웃음 한 올에 심장이 저려 송구하고 피가 아려 눈물을 더듬지 그래서 친구들과 함께 오랜만에 친구네 집에 갔더니 친구가 있었고 가족이 있었다 딛고 있는 시간이 무뎌질만큼 예쁜 가족이 있었다. 친구네 집에. 2013. 11. 26.
[시쓰기]하얀 나비의 도시 하얀 나비의 도시 밤이 사산한 도시에서 나비는 가장 크고 아름답다 체크무늬 남방을 입은 농부는 도시의 자갈밭에 잘게 갈린 발바닥을 끌며 하얀 하늘 밑을 헤멘다 잃어버린 어둠과 축축한 불안을 찾아낸 고양이들은 다른 무리가 냄새를 맡을 틈도 없이 모든 것을 살라버린다 그 붉은 혓바닥은 도시에서 가장 귀한 것이다 간디의 옥수수를 꿈꾸는 아이는 창 밖의 허연 하늘이 움직이는 것을 봤다 그것이 꿈인지 생시인지는 시간조차 알지 못했다 위에서부터 탈색되는 도시는 이윽고 꾸벅꾸벅 졸음에 기댔다 꿈과 현실의 경계가 아지랑이로 피어오를 때 분명 나비는 그때서야 서서히 날아오른다 2013. 11.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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