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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상

콜버그의 메타성

by 통합메일 2013. 9.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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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버그의 메타성


콜버그는 1927년에 태어나 1987년에 죽은 미국의 도덕심리학자이다. 인간의 도덕성 발달에 대한 분야에서 그의 업적은 실로 눈부시다. 그는 피아제의 연구 방향을 계승하여 인간의 도덕성 발달에 있어서 가장 큰 역할을 하는 요소를 ‘인지’로 파악하고, 그러한 인지의 발달에 따라서 인간의 도덕성 역시도 함께 발달해 나간다는 이론을 주장했다. 그러한 도덕성은 부드럽게 연속적으로 발달해 나가는 것이 아니라 불연속적으로 단계를 그리며 발달해 나간다고 주장하는데 이것이 그 유명한 3수준 6단계의 도덕성 발달 이론이다. 발달의 단계는 전 인습, 인습, 후 인습 수준으로 나뉘며 처벌과 복종, 자기이익, 착한아이, 사회적 규범 준수, 공정한 사회계약, 보편적 원리에의 지향을 특징으로 하는 6가지의 단계로 설명된다.

학부에서 윤리교육을 전공한 나는 대학교 3학년 때 즈음 콜버그의 이론을 접하게 되었는데, 자연스럽게 스스로에게 ‘나는 지금 어느 단계에 속한 인간인가?’라는 질문을 아니 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곰곰이 생각해 본 결과, 그리 오리 고민할 것도 없이 스스로를 3단계, 즉 착한 아이 정향이라고 결론내리게 되었다. 그것은 다른 사람에게 칭찬을 받기 호의의 대상이 되기 위하여 도덕적 판단을 내리게 되는 단계다. 물론 훗날 신콜버그 학파로 분류되는 레스트의 주장대로 나 역시 모든 판단을 내림에 있어서 그러한 3수준의 사고방식에 따르는 것은 아니고 때로 더 낮은 처벌과 복종 지향이나, 자기이익 지향 또 때로는 더 높은 사회적 규범의 준수나 공정한 사회계약 지향의 단계에 해당하는 방식으로 사고할 때도 물론 있었지만 스스로를 돌아볼 때 가장 빈도가 많은 것은 3단계에 속한 도덕판단 방식이었던 것이다.

그러한 자기인식은 스스로에게 적잖은 부담이 되었다. 콜버그 역시도 후기 이론으로 가면서 인간이 현실적으로 이를 수 있는 최고의 단계는 6단계가 아닌 5단계라고 이론의 수정을 행하고 있기는 하지만 나는 윤리적 인간을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한다는 사람이 겨우 3단계에 머물러 있다는 자각은 도덕교육분야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이론에 비추어볼 때 매우 실망스러운 것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러한 자괴감과는 별개로 나라는 존재의 도덕판단 방식은 정말 쉽사리 바뀌어 지는 것이 아니었다. 도덕적 판단이나 그로부터 기인하는 행동이라는 것은 단순히 합리성의 영역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살아온 생의 역사와 삶의 영역, 그리고 그가 맺고 있는 다양한 인간관계의 영향을 지대하게 받는 것이기 때문에 그러한 복합적인 요소들과 모질지 못한 나의 심성이 결합하여 결국에는 타인의 평판에 목을 매는 인간으로 스스로를 형성에 나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헤어나올 수 없는 늪과도 같이 여겨졌다. 아무리 내가 머리로 그러한 이론들의 중요성에 대해 파악하고 있다 하더라도 결정적인 순간에서 내가 무의식적으로 채택하게 되는 것은 결국 착한 아이가 되고자 하는 것이었다. 때로 사회규칙을 준수하거나 공정성을 실현하기 위한 방향으로, 혹은 더 나아가 보편의 원리를 궁구하는 방향으로 판단과 행동을 추구해 나가는 상황이라 할지라도 나는 그러한 사고의 이면에 언제나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는 또 하나의 내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가 없었다.

그러던 중에 나는 무모한 가정을 해보게 되었다. 오늘날에 이르러 무수한 학자들의 도전에 직면하고 있는 콜버그의 이론이기는 하지만 그 이론이 가지고 있는 가장 큰 결함이라는 것은 사실 이러한 메타성을 눈치 채지 못한 게 아닌가 하는 가정이었다. 인간이 혼자서 살아가는 존재가 아닌 이상, 그러한 인간이 나름대로의 일반적인 인간관계를 맺으며 살아나간다면 그 종점에서는 보편적 원리보다는 착한 사람이 되는 것을 욕구하게 될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아니 차라리 다시 말한다면 그 종착점에 이르러서는 여타의 모든 단계들, 심지어는 보편적 원리에 따르려는 도덕적 판단 양식까지도 결국에는 타인의 눈에 긍정의 대상이 되고자 하는 것과 동일한 것으로 일치되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여기서 언급되는 타인이라는 것은 비단 일상 영역의 좁은 울타리 안에 존재함으로써 나와 이익을 공유하며, 유사한 가치관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 한정되는 것은 아니어야 할 것이다. 그것은 차라리 매우 이질적인 것으로서 어쩌면 직접적 관계라기보다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의 사슬로 맺어져 잠재적인 관계를 형성하고 있는 무수히 많은 이들을 포함하는 것으로서 그런 사람들에게까지 호의의 대상이 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사회규범을 준수해야 할 것이고, 공정성을 추구해야 할 것이며, 나아가서는 보편적 원리에 따르려는 태도가 필요하게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고 이러한 생각에 근거하여 나는 콜버그의 이론이 설명하고 있는 뭇 단계들이 결국에는 착한 아이의 정향으로 수렴되지 않는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던 것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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