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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상

어머니의 비전

by 통합메일 2013. 9.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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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비전


오늘의 후회에 대해 이야기 해보자. 사실 이것은 비단 오늘에만 국한되는 이야기는 아니고 아주 오랫동안 나의 인생 전반에 걸쳐 이어져 내려온 후회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사실 그러한 후회를 미연에 방지하거나 교정할 수 있는 기회는 여러 차례 있었을 것이다. 아마도 대학교 진로를 선택할 때가 가장 적합한 때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 물론 윤리교육과를 나온 것에 대해서는 그다지 후회를 하고 있지는 않지만 다른 과를 갔다 하더라도 또 그 나름대로의 생활에 만족하고 살고 있지 않았을까 하는 그런 생각도 하게 되는 것이다 보니 이래저래 마음이 복잡하다. 대체 나는 그 무엇에 나의 뜻을 두어야 하는 것일까.

어제는 어머니께서 교대편입 얘기를 꺼내셨다. 그 얘기를 듣는 순간 나도 모르게 기겁을 해버렸다. 어떤 반응이었냐면 지겹고 징그럽다는 듯 한 그런 반응을 어머니께 보였다. 실로 나는 무의식 중에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동안 몇 차례인가에 걸쳐서 나의 뜻을 보여드렸는데, 결국 어머니는 ‘교사’나 ‘공무원’ 이외에는 그 어떠한 비전도 나에게 보여줄 수가 없는 사람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다보니 결국 어머니가 오늘날처럼 아버지 같은 사람과 살아가게 된 것 역시 어떤 실수나 우연의 결과물이라기보다는 필연이라든지 온전한 당신의 선택의 결과물이라는 것으로 해석하는 것이 차라리 더 합리적인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드는 것이고.

그렇게 나는 어머니에게서 또 한 번의 잔인함을 느꼈다. 중등교사도 잔인한 판에 나에게 초등교사를 권유하는 것이 얼마나 더 잔인한 일인지 아마 어머니께서도 인지하지 못하시는 것일 테다. 그러니 나에게 그런 권유를 할 수 있던 거겠지. 얼마든지 그렇게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그와 별개로 그러한 선의가 나에게 지독하게도 잔인하게 다가오는 것이란 점은 부인할 수가 없었다. 아침에 출근하는 어머니의 차에 동승했는데 또 그 얘기를 꺼내니 나는 나도 모르게 또 역정을 내버렸다. 내고 또 한참을 후회할 것을 알면서 역정을 냈다. 말이 통하지 않는 아이들, 교감을 나눌 수 없는 아이들을 상대로 나는 얼마나 더 외로운 인간이 되어야 할 것인가. 글이라도 쓴다면 내 안에 만들어지는 인간들과 대화를 할 수라도 있겠지만 아이들을 다루느라 정신이 없는 와중에서 나는 그 누구에게 의존해야 하는 것일까. 결국에는 자살 밖에 없다. 그렇다면 교사가 돼서 자살을 하는 것이나, 그 전에 자살을 하는 것이나 별반 큰 차이는 없을 것이다. 월급을 좀 받다가 자살을 하게 되니 돈은 좀 벌어둘 수 있겠구나. 그 돈으로 장례를 치르면 될 것이다.

볼일을 보고 어머니 차를 주차하고 집으로 걸어오는 길에는 진지하게 자살에 대해서 생각했다. ‘자살’이라는 단어를 바깥 세상에서 읊는 것은 굉장히 불건전한 일로 모두가 동의를 하지만 사실 그것이 합리적 고려의 대상이 된다면 그리 불건전한 것도 아니다. 자살을 고려하는 일은 얼마든지 합리적인 일이 될 수 있다. 오히려 자살이라는 것에 대해 생각하는 것 자체를 무의식적으로 회피하는 일이 스스로에게 더욱 더 큰 해악으로 잠재될 가능성이 지대하지 않겠는가. 차라리 인생의 마지막 출구로서 자살을 합리적으로 고려한다면 그러한 고려가 합리적인 이상에는 쉽게 자살하지 않을 것이다. 자살을 결정하기 이전에 얼마든지 다양한 선택지를 염두에 두게 되니까 말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살을 결정하게 된다면 경우에 따라서 그러한 자살은 존중할 수도 있지 않겠는가? 칸트는 자살금지는 아주 보편적이고 절대적인 의무라고 규정하고 있지만 그것은 모든 사람이 자살하는 사회를 보편적인 것으로 의욕 할 수 없다는 명제를 전제로 할 때만 가능한 일이다. 나 역시 모든 사람이 아무 이유 없이 약간의 고통에도 쉽사리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처방을 선택하기를 의욕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그러한 선택이 합리적일 수 있는 모종의 조건이 존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다시 말해서 어떤 옵션을 갖다 붙이느냐에 따라서 그것은 합리적이며 또한 건전한 것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 나의 생각인 것이다. 그리하여 그렇게 돌아오는 길에서 자살에 대해 했던 고민의 결론은 무엇이었느냐고? 물론 아직은 이르다는 것이다. 그리고 자살에 이르는 길 역시도 너무나도 어렵다는 것이다. 이 사회는 자살이라는 것에 이르는 길을 꽤나 치밀하게 봉쇄해두고 있어서 한편으로 다행이다. 그 적절한 치밀함이 말이다.

죽지 않기로 결심했다고 적고 보니 글의 분위기가 갑자기 무척이나 훈훈해지는 기분이지만, 해결된 것은 사실 아무것도 없다. 어렴풋이 느껴온 감정이지만 나의 생은 그 과정의 어딘가에서 단단하게 고착되어 있다. 자아는 묵묵히 뛰거나 걷거나 기어서 여기까지 이르렀지만 생의 본질을 이루고 있는 관계적 요소 중의 어떤 것, 즉 나의 장래성에 대한 주변 사람들의 호의와 같은 것은 변함이 없다. 물론 그에 대해서 나의 책임이 전무하다는 것도 아니다. 나는 편한 길을 택해 왔던 것이다. 일단 즐길 것은 모두 다 즐기며 편하게 교사가 된 뒤에 경제적으로 풍족한 상태에서 취미 삼아 글을 쓰다보면 언젠가 유명한 작가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그러한 인생의 그림을 그려두고, 틈틈이 그것을 보면서 제법 잘 그린 그림이라고 자평하며 살아온 것이 지금까지의 나의 삶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그러한 그림에는 어떤 오류가 있었던 거겠지. 하나는 편하게 놀다가 교사가 되는 일이 현실적으로 그리 쉬운 일은 아니라는 것이고, 나아가 그렇게 해서 어떻게 교사가 됐다 하더라도 현실에 안주하게 됨으로써 유명하고 위대한 작가가 되는 일은 점점 요원해져 가리라는 예상이다.

무수히 많이 언급했던 얘기지만 나는 학부시절 스스로에 대해서 ‘훌륭한 교사’가 되겠다는 아이들의 자기 암시나 자기 긍정 발언에 대해서 전혀 공감하지 못했으며 그러한 발언을 스스로에게 부여하는 일 역시도 매우 끔찍하게 생각했다. 그것은 너무 건전함으로써 너무 불건전하게 되는 말이었다. 거기에는 어떤 회의나 염세도 없었다. 오직 굳건한 신념과 사명감 따위가 잔뜩 서려있었을 뿐이다. 긍정에 긍정게 긍정에 긍정만이 존재했다. 하지만 그와는 무관하게 우리가 사는 세상과 그 속에 포함된 학교라는 곳은 그렇게 긍정으로 요약될 수 있는 곳은 아니었다. 아마도 영원히 그럴 수는 없으이라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그것은 현실감이 없게 느껴지는 발언들이었다. 그래서 그들의 발언은 매우 뻔뻔하게 느껴졌다. 과연 저들은 진심으로 하는 말일까 하고 나는 의심했다. 그리고 만약에 그들이 진심이라면 그것은 참 부러운 일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도저히 그런 말은 물론이거니와 그러한 마음을 가질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나에게 있어서 좋은 교사라는 것은 GTO에 나오는 오니즈카와 같은 존재다. 그것은 학생들과 맞담배를 피우고 학생들과 친구처럼 지내는 교사의 상이었다. 하지만 오늘날의 대한민국 공교육에서 그러한 교사는 완전한 비정상으로 상정될 것이 뻔했다. 가장 심각했던 것은 그러한 인식이 비단 어른들만의 것은 아니라는 것이었다. 학생을 존중하는 일이 금기시 되는 곳이 학교였다. 학생을 가장 존중해야 하는 곳에서 가장 금기시되는 일이 학생을 존중하는 일이라는 사실을 깨달아가는 일이 교사가 되는 일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었다. 실습이나 시간강사로 학교 현장에 서보면 학생을 존중하려 하는 나에 대하여 어른인 교사들은 아니꼽다거나 유난이라는 시선을 보내왔고, 아이들은 그러한 존중을 기이한 시선으로 바라보거나 오히려 역이용하려 했다. 이래저래 상호존중의 가치를 실현할 수 있는 준비가 학교현장에는 이루어져 있지 않았다. 나는 심각하게 겁을 먹었다.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해서 실망을 했던 것 같다. 내가 아무리 조심스럽고 스스로를 낮추는 인간이 되더라도 상대 인간들이 그것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지 않다면 그 모든 게 다 무슨 소용인가. 운이 좋아서 그런 학생을 만나 상호존중의 가치를 조금이라도 실현했다 하더라도 그 학생은 결국 생의 어느 시점에선가 무시를 경험하게 될 것이다. 필연적으로 무시를 받아야 하는 세계라면 그러한 세계에서 존중의 경험은 차라리 없느니만 못한 것이 아닐까. 결국 인간은 서로를 혐오하고 두려워하며 살아가야 하는 존재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그렇다면 내가 사랑하고 욕구하는 상호존중과 인간 본질에 대한 탐구를 온전하게 할 수 있는 공간은 어디에 있는가?

여기서 나는 일사회를 언급할 수 있다. 일사회는 나의 고등학교 친구 집단이지만 그와 동시에 내가 모종의 실험과 관찰을 수행하고 있는 공간이기도 하다. 그야말로 독특한 개성을 가진 구성원들의 집단에서 어떤 이는 잘나고 어떤 이는 못났으며, 어떤 때는 자극이 주어지고 또 어떤 때는 실로 무덤덤하다. 그것은 세계의 작은 축소판인 동시에 여타의 또래집단과의 차별화를 통하여 ‘의’의 실현을 추구해 나가보려는 나의 실험정신이 반영되어 있는 곳이기도 하다. 평등과 정의, 뭐 그런 뻔한 가치들을 알게 모르게 추구하는 데 주목해야 할 것은 그러한 가치들에 대하여 심심찮은 도전이 제기되며 그러한 도전자들 속에는 나 자신도 포함된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나는 실험자인 동시에 피실험자이며 일사회라는 공간은 세계를 관찰하는 하나의 렌즈와도 같은 것이라 묘사할 수가 있을 듯 하다.

하지만 그 역시도 불충분하다. 친구라는 것은 참 소중하고 필수적이며 좋은 것이기는 하지만 그것은 생의 어떤 필요충분조건이라고 할 수는 없었다. 그들 역시 자신의 가족과 가정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모든 것을 함께 할 수는 없는 것이다. 한 때 나는 그러한 사실을 혼동하기도 했었다. 대표적인 기억은 고등학교 2학년 때 순동이와의 논쟁이었다. 일사회의 단합을 공고히하기 위해서는 어떤 순혈주의를 추구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가급적이면 자신의 행동들을 일사회와 함께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 나의 주장이었고, 순동이는 그건 무리라는 주장이었다. 나중에는 그러한 주장에 대해 찬찬히 검토하면서 그것이 무리라는 점에 대해서는 동의를 하게 되었지만 그 주장의 이면에 존재했던 감정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 것이라는 것 역시 확인하게 되었다. 물론 아이러니하게도 몇 년 뒤 순동이가 내가 했던 주장을 그대로 이어받았기도 하지만, 그것은 결국 자신이 처한 상황과 어떤 순간의 비전에 이끌려 선택하지 않을 수 없는 도전과도 같은 것이 아닐까 한다. 그래서 우연과 필연을 동시에 지는 것. 즉 그것은 필요조건으로서의 친구라는 존재를 필요충분조건으로 만들려는 시도였다고 할 수 있다. 물론 그러한 시도는 보기 좋게 실패로 돌아갔지만 말이다.

그렇다면 가족은 어떤가? 가족도 마찬가지다. 길게 말할 필요도 없겠지만 같은 집 안에서 그렇게 오랜 시간을 생활하건만 서로의 가치관과 생활방식과 취향이 그렇게 다를 수 있다는 사실에 매 순간 경악의 연속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면 결국에는 자기 자신 밖에 없다는 아주 소박한 결론으로 다시 돌아갈 수밖에.

종종 내가 말하는 것이 인간이 고아해지고 우아해지기 위해서는 매우 까다로워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아무 것이나 먹지 않고, 아무 것이나 입지 않고, 아무 데서나 눕지 않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사람들이 쉽게 인식하지 못하는 곳에서는 더욱더 자신의 공고한 취향을 가져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살다보면 보통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게 되지만 결국 어느 시점에서는 ‘고독’을 느끼게 되는 법이 아닌가 한다. 그렇다. 지금 나는 고독과 생의 우아함을 어떤 연속선 위에 놓는 시도를 하고 있다. 고독은 우아함의 대가이고, 우아함은 고독의 대가일 것이다. 우아하면서 모든 이와 어울릴 수는 없는 일이고, 고독하지 않으면서 우아할 수는 없는 일일 것이다. 물론 가장 나쁜 것은 고독하면서도 우아하지 않은 것이겠지. 이래저래 생은 씁쓸한 것이 아닌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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