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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

<촘스키, 누가 무엇으로 세상을 지배하는가.>에 대한 요약

by 통합메일 2021. 2.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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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촘스키, 누가 무엇으로 세상을 지배하는가.>에 대한 요약

이 문서는 촘스키, 누가 무엇으로 세상을 지배하는가.(시대의창)을 읽고 그 내용을 챕터별로 요약해 놓은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책은 드니 로베르라는 인물이 유명한 학자 노암 촘스키를 만나서 궁금했던 이러저러한 사안에 대하여 인터뷰를 진행한 내용을 대화의 형식으로 그대로 진술하고 있는 형태를 취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인터뷰의 형식적 특성상 곁가지로 사료되는 내용들이 적지 않았고 촘스키의 사생활 같은 부분은 과감히 제거를 하고 평소 그가 가지고 있는 정치적/철학적 신념을 표현하고 있다고 생각되는 부분만을 취하여 요약하였다. 이 책은 약 230여 페이지이며, 이것을 5~6페이지로 요약하였고, 아래 한글 프로그램의 맞춤법 교정을 행하였다.

 

프롤로그-노암 촘스키를 위하여

지식인의 역할은 진실을 말하는 것이다.

나는 포리송 사건을 통해 표현의 자유를 말했을 뿐이다.

누가 무엇을 세상을 지배하는가,

자본주의는 없다.

보이지 않는 세력이 경제를 지배한다.

이제는 거대 기업이 권력의 중심이다.

현실의 민주주의는 가짜다

언론과 지식인은 조작된 동의의 배달부다.

나는 미국이 지난 세월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잘 알고 있다.

에필로그-나는 세상 일을 염려하는 사람일 뿐이다.

프롤로그-노암 촘스키를 위하여 <드니 로베르>

촘스키는 MIT의 교수이며 언어학자다.

집단은 힘이 강력해질수록 그들의 이익에 동조하는 정치세력을 앞세운다.”

언론의 덫을 고발한다.

기존의 생각을 곧이곧대로 믿지 말고, 말을 앞세우는 사람들을 절대 믿지 말라.’

자신의 생각을 되풀이해 말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라.’

 

<포리송 사건>

촘스키에게 신나치주의자의 누명이 씌워짐. 그러나 촘스키는 표현의 자유를 주장했을 뿐이다.

볼테르는 말한다. “나는 당신이 쓴 글을 혐오한다. 그러나 당신의 생각을 표현할 권리를 당신에게 보장해주기 위해 나는 기꺼이 죽을 준비가 되어 있다.”

누군가에게 생각을 표현할 권리를 인정한다고 그것이 곧 그의 생각에 공감한다는 뜻은 아니라고 말했다.

표현의 자유가 모든 것에 우선한다.”

합리성 여부를 떠나 자유로운 정신에 입각한 사고방식이 중요하다.

 

지식인의 역할은 진실을 말하는 것이다.

수천 년 전부터 지식인의 역할은 민중을 소극적이고 순종적이며 무지한, 프로그램된 존재로 만드는데 있었다.

영국/미국은 여론을 통제해서 시민들을 공동체의 삶에서 떼어 놓아야 할 필요성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다. (이런 국가들은 자유가 보장된 산업사회로서 무력을 사용할 수 없기 때문에 여론 통제의 필요성이 대두 되었다.)

이 과정에서 진보적 지식인들은 주어진 역할을 완벽히 수행했다. 사회가 민주화될 때 국민을 강제로 통제하고 소외시키기 힘들 때 엘리트 집단은 선전이라는 방법을 동원한다.

예전부터 선전은 지식인들의 몫이었다. 중세 성직자도 마찬가지다.

지식인이란 인간의 문제에 대한 정보를 수집해서 진지하게 고민하고 나름대로 이해하고 통찰해보는 마음가짐이 있어야 한다.

저명한 지식인이 꼭 진정한 지식인은 아니다. 오늘날 진정한 지식인으로 인정받는 이들은 보통 당시에는 핍박당하는 처지에 있었다.

엘살바도르에서 미국이 훈련시킨 코만도들에 의해 저질러진 살상극이 있었다. 세상 사람들은 이 지식인들의 죽음에 대해 아무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적의 영토에서건, 우리의 영토에서건 남다른 용기를 보여준 반체제 인사들은 공평하게 존경받고 찬사 받아야 한다.

현실을 있는 그대로 말하는 것이 진실입니다. 진실된 말은 꾸밀 필요가 없습니다.

 

나는 포리송 사건을 통해 표현의 자유를 말했을 뿐이다.

표현의 자유를 옹호하는데 그 내용을 검토할 이유는 없습니다. 공격당한 사람의 신념을 두고 고민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저 표현의 자유를 옹호할 따름입니다.

반유태주의자/신나치주의자라 하더라도 그런 이유로 표현의 자유까지 박탈당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내 생각에 표현의 자유는 어떤 이유로도 제한될 수 없는 권리입니다.

내게 중요한 것은 표현의 자유입니다. 우리가 증오하는 사람들에게도 표현의 자유가 허락되어야 합니다. 우리 마음을 흡족하게 하는 생각만을 인정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진실로 정직하다면 괴벨스와 조다노프의 주장까지도 수긍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마음에 드는 표현만을 인정한다면 그들과 다를 게 뭡니까.

전 세계에서 유독 프랑스만 표현의 자유에 대해 폐쇄적이다.

반맑시즘, 반나치즘이 오히려 프랑스를 폐쇄적으로 만든다.

이런 흐름을 주도하는 소수의 지식인들은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해 현실과 동떨어진 신화를 만들어낸다.

 

누가 무엇으로 세상을 지배하는가.

최강대국, 다국적 기업, 금융기관, 국제기관 등은 공동의 이익을 위해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며 거대한 네트워크를 맺고 있다.

기업은 독자적 성격을 띤 기관이다. 현대 다국적 기업들은 유기적 존재가 개인에 앞서 특권을 갖는다.”라는 원칙에 따라 운영된다. 그런데 볼셰비키즘과 파시즘도 이런 원칙으로 운영되었다. 요컨대 이 셋은 전통적 자유주의에 극단적으로 대립하는 사상에 뿌리내리고 있다.

시민의 권한을 개인 기업에 양도하는 것이 신자유주의다.

정부와 대기업의 선전대로 진실을 아는 사람은 안다.

엘리트집단은 그들의 특권과 권한을 강화하는데 혈안이 되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일반 대중이 넋을 놓고 있지는 않습니다. 1998년 시애틀 MAI 회의무산은 민중의 힘을 보여준다.

언론기관과 홍보기관은 <순간적으로 유행하는 소비재와 같이 천박한 것에 집착하는 인생관>을 노동자들에게 심어주면서 장시간의 노동을 기꺼이 수용하도록 했다. 타인에 대한 연민/연대 같은 위험한 생각은 잊게 만들었다. 요컨대 인간의 가치를 완전히 잊게 만들었다.

사회과학은 이러한 선전에 동참한다. 민중은 우매하기 때문에 그들을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어줄 지도자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민중을 참여자가 아닌 구경꾼으로 전락시킨다. 대부분의 지식인은 입을 다문 채 대중을 종속시키는 이런 음모에 가담한다. 그들의 밥줄이기 때문이다.

물론 반대편에 서있기는 하지만 우리는 똑같은 방식으로 세상은 본다. 하지만 동일한 현상에서 끌어내는 결론이 다르고, 그 결론들은 가치관의 차이를 반영한다는 것이다.

1954년 과테말라 정부 전복(미국이 40년 동안 후원한 쿠데타)

MS와 보잉은 정치권력의 산물이다. 미래의 기술에서 최첨단 영역은 공공분야가 전적으로 재정을 떠맡고 있다. 공공분야의 창의적 발상과 공적자금으로 개발된 이런 모든 것은 공공의 재산이 되어야 하지만 알 수 없는 이유로 민간에 양도됐다. MS처럼.

이런 사실을 알면서 입 다물고 있는 경제전문가와 지식인이 가장 큰 위선자다.

 

자본주의는 없다.

자본의 흐름과 악의적 투기를 규제하기 위한 브레턴우즈 체제가 무너지면서 공공서비스의 질이 현격하게 떨어졌다. 사회보장제도가 왜곡되고 실질임금이 제자리걸음을 하거나 떨어졌다.

적어도 순수한 시장경제의 의미에서의 자본주의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비용과 위험을 공동으로 부담하는 거대한 공공분야와 전체주의적 성격을 띤 거대한 민간분야가 양분하고 있는 경제현실에 우리는 살고 있을 뿐입니다. 이런 세상은 자본주의가 아닙니다.

현재의 경제체제는 엄청난 권력을 지닌 개인 기업들이 서로 전략으로 연대하고 강력한 국가권력에 의존하면서 위험과 비용을 분산시키는 체제입니다. 그래서 <연대 국가자본주의> 혹은 <기업 중상주의>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모든 면에서 우리는 자유경쟁체제의 껍데기만 흉내 내고 있다. 자유무역론은 노동은 이동 가능하지만 자본은 이동가능하지 않다.”라는 가정에서 출발한다. 하지만 현실은 정반대다. 노동은 이동되지 않지만 자본은 마음대로 국경을 넘나든다.

금융시장은 완전히 개방되었지만 생산체제는 그만큼 탈 국제화되지는 않았다.

GM이 멕시코에 공장을 세우면 멕시코 기업과 같은 대우를 받는다. 그러나 멕시코 시민이 미국에 가서 미국인과 같은 대우를 받지는 않았다. 이것은 고전 경제학파의 자유무역론에 대한 심각한 도전이다.

우리가 사는 사회는 시장에 의해 지배되는바 환경에 대한 우려가 무시되고 있고 그로 인한 비용은 죄 없는 미래세대가 떠안게 될 것이다. (교육과 민간단체의 노력과 힘이 필요하다.)

 

보이지 않는 세력이 경제를 지배한다.

마약에 관련된 탈법과 돈은 다국적 기업들이 세금을 벗어나려 동원하는 방법들에 비하면 유치한 수준이다.

마피아가 기업으로 변신하고 있다.

외국에 투자되는 자본은 대부분이 경영지배권의 확보를 위한 돈이다. 공공기업의 민영화는 공공기업의 민간 기업이나 외국계 다국적 기업에 넘기려는 속임수일 뿐이다.

회계 상의 자금이동이 존재하는 이유는 부자나라들이 그것을 원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대기업이 법적인 테두리 내에서 국민의 몫을 훔칠 수 있도록 배려하는 것이다. 국가의 역할일 바로 그것이다. 부자를 더 부자로 만들어주는 것이 국가의 역할이다.

외부의 지원이 없다면 법관들은 아무런 힘도 갖지 못한다. 정부는 아주 단순한 이유로 법관들에게 압력을 가한다. 대기업이나 국가가 법의 심판을 원치 않는다는 것이다.

큰길가에서 일어나는 범죄보다 오히려 기업이 더 많은 희생자를 만들어내지만 기업이 기소당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판사들이 자율적으로 권한을 행사하려하면 국가가 즉시 딴지를 걸고 나선다. 이 때문에 판사들의 권한만으로는 어떤 일도 시도할 수 없다.

법이 존재하고 사법권이 운영되지만 권력자에게는 커다란 효력을 발휘하지 못한다. 국민의 거대한 압력이 행사되어 사법권에 힘을 보태주지 않는다면 말이다.

하지만 이런 나라(스위스)에서도 여론이 잠에서 깨어나 압력을 가하면 모든 것이 변할 수 있다.

기층조직의 힘이 중요하다. 무엇보다 국민이 깨어나야 한다. 내가 미디어, 학교, 지배계급의 문화에 반대하여 민중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여론의 압력이 더해질 때는 어떤 일이라도 가능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제는 거대기업이 권력의 중심이다.

기업이 법적지위를 얻은 것은 20세기 초였다. 사법부의 판결 덕분이었다. 민구의 연방최고법원이 기업에 인간과 똑같은 권리를 보장해준 시기도 바로 이 시기였다. 이런 판결은 독일철학, 즉 유기적 조직체에 대한 신헤겔철학에 크게 영향을 받은 것이었다. 다양한 형태로 발전한 독재체제들도 바로 이 철학에 근거를 두고 있다.

따라서 당신이 그럴듯한 힘을 쥐고 있다면 법 때문에 안절부절 못할 필요가 없다. 국내법은 문제조차 되지 않는다. 국민들도 모르는 사이에 국가 간에 체결된 협정이 문제다. 대다수의 국민이 그런 것에 좋지 않은 감정을 품고 있는데도 그런 것을 협정이라 칭하는 게 우습다.

각국 정부는 모든 협상을 비밀리에 진행한다. 국민이 반대할 것을 알기 때문이다. 무역협정의 목표는 다국적 기업의 이익과 권리를 보호/증진시키는데 있다. 이런 협정은 국민의 주권과 민주주의의 발전을 직접적으로 훼손하는 것이다.

 

앤서니 기든스의 <좌우를 넘어서: 급진 정치의 미래> 3의 길

세계화는 결코 자연스러운 현상이 아니다. 분명한 목표지점을 향해서 정치적으로 고안된 현상이다. 요컨대 세계화는 미국식 모델을 전 지구에 심는 것이다. 이것이 세계화의 목표고 결론이다.

미국에서와 마찬가지로 유럽에서도 부와 권력을 쥔 사람들이 대중의 참여를 완전히 반대한다. 국민이 지배계급의 독선을 그대로 수용할 필요는 없다. 그 흐름을 거꾸로 뒤집어버릴 수도 있다. 하지만 먼저 이런 흐름을 인식해야 한다.

 

현실의 민주주의는 가짜다.

미국에서 거의 공식화된 이론에 따르면 민주주의는 국민이 당사자가 아니라 방관자에 머무르는 체제다. 일정한 시간 간격을 두고 국민은 투표권을 행사하며 그들에게 나아갈 방향을 지시해 줄 지도자를 선택한다. 이런 권리를 행사한 이후에는 집에 얌전히 틀어박혀 있어야 한다.

유럽에는 참여 지식인들이 많다고 생각하겠지만 실제로는 전혀 그렇지 않다. 많은 진보적 발전이 있었지만 그 원동력은 지식인이 아니었다. 대중의 결집된 힘 그리고 조직화된 노동계급이었다.

삼각위원회의 민주주의의 위기라는 보고서에 따르면 삼각위원회에 참여한 국가의 국민들이 1960년대 들면서 공공의 장에 진입하려 했기 때문에 민주주의의 위기가 닥쳤다는 것이다. 그들의 논리에 따르면 대중이 온순하고 무관심한 대중으로 돌아갈 때에야 진정한 민주주의가 회복될 수 있다.

사회가 자유로워질수록 지배계급은 공포심을 조장하고 선전에 열을 올린다. 전쟁에 대한 공포심 조장은 자유로운 나라에서 더욱 효과적이다.

노동조합은 민주주의 발전에 결정적인 역할을 해왔다. 노동조합은 가난한 사람들이 단결하고 집단적으로 해동할 수 있는 공간이다. 바로 이런 이유로 기업과 언론이 앞장서서 노동조합을 매도하는 것이다.

마르크스주의나 프로이드주의처럼 사람의 이름이 붙여진 학설은 일종의 종교로 미화되는 경향이 있다. 학설이 그 인물을 신격화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조직화된 종교에 입문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실제로 마르크스주의는 마르크스를 숭배하는 종교였다.

기존 생각에서 벗어날 때 혁명이 일어난다. 다국적 기업의 횡포를 무너뜨리겠다는 실천적 의지가 있어야 한다. 19C 사람들은 노동자가 생산수단을 소유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임금노동은 노예제의 다른 형태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국민이 혁명을 일으키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대중이 혁명세력으로 발전하지 못하는 이유는 대중이 현실을 모르기 때문이 아니다. 그것은 값비싼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행동하기 위해서는 그 대가를 기꺼이 치르겠다는 각오가 있어야 한다.

행동하고 싶다면 주변의 소리에 귀를 막아야 한다. 정당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자유롭게 행동으로 옮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이런 곤경으로부터 벗어나는 유일한 길은 조직화되는 것이다. 예컨대 노동조합으로 조직화된다면 혼자서 감당할 수 없는 희생을 수월히 넘길 수 있다. 그래서 노동조합을 파괴하려는 음모가 다각도로 펼쳐지는 것이고, 선전보다 이런 파괴공작 때문에 국민이 혁명세력으로 발전하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다.

비판세력과 언론계가 서로에게 자극제가 될 수도 있다.

나는 대중의 압력을 강조한다.

지난 30~40년 동안 여성의 권리는 상당히 신장되었는데 주로 좌익출신인 반체제집단의 저항 때문이었다. 예컨대 인권 투쟁을 주도한다는 남성들이 여성을 억압하는 실상에 운동권 내부의 여성들이 불만을 터뜨리기 시작했던 것이다. 대중이 행동을 결심하면 어떤 일이라도 해낼 수 있다.

 

언론과 지식인은 조작된 동의의 배달부다.

워터게이트 사건 vs 정ㅇ부 주도의 민간 사찰/정당 사찰

언론의 꼼수-제한된 토론 방향/제한된 시간과 분량

대개의 경우 정보라고 표현되는 것들은 왜곡된 정보다.

정보가 곧바로 전달되어도 나쁠 것은 없지만 하루 늦게 전달되더라도 변하는 것은 없다.

비판정신이 실증되는 것은 커뮤니케이션의 속도 경쟁 탓이 아니라 깊이가 없는 커뮤니케이션 때문이다.

속도는 우리에게 사건의 중심에 살고 있다는 환상을 품게 한다. 하지만 다른 각도에서 보면 선전 효과에 100% 노출된다는 뜻이기도 하다. 결국 동시성과 즉각성은 사건의 흐름에 우리 몸을 그대로 내맡기게 만든다.

현재의 인식세계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속도가 아니라 피상적 수준에 머물러 있는 커뮤니케이션이다. 이 모든 것이 우리의 기억을 지워버리려고 고안된 것이다.

인터넷은 젊은이들을 소외시키는 도구가 될 수 있다.

지식인들은 전문용어를 사용하고 난해한 문장으로 이론적인 냄새를 풍길 수도 있겠지만 그건 허세다. 그들은 어려운 단어를 써서 복잡하게 말해야 지식인 대접을 받으며 특권층으로 군림할 수 있으니 그렇게 한다. 하지만 아무리 어려운 말이라도 쉬운 말로 풀어 설명할 수 있다.

 

나는 미국이 지난 세월 무슨 일을 저질렀는지 알고 있다.

이제부터라도 세계 모든 국가들이 미국과 유럽의 공격에 대비해야 할 것이다. 요컨대 모든 국가가 상대국의 공격을 억제할 힘을 보유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핵무기를 보유해서라도 말이다. (미국은 힘으로 세계를 정복하려 하는구만)

미국은 변덕스럽고 보복을 잊지 않는 국가로 인식되기를 바란다. 그래야 세계 모든 국가가 미국을 두려워할 테니까. 지나치게 합리성을 따지는 국가로 인식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에필로그-나는 세상 일을 염려하는 사람일 뿐이다.

훌륭한 많은 법안들이 여론의 압력 덕분에 쉽게 통과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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